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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7.4 의료사고는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게시물ID : readers_232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12
조회수 : 956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5/12/18 04: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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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 80대 할머니 한 분이 보름가량 지속된 오한과 발열을 주소로 응급실을 방문했습니다. 열은 39도, 혈압은 낮지 않았고 기침이 있었다는 것 외에 특별한 다른 증상은 없었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니 감기 증상으로 3일 전 응급실을 방문해 피검사를 했었는데, 염증 수치가 약간 증가한 것 외에 다른 검사에선 이상이 없었습니다. 당시엔 열도 없고 해서 단순 감기 추정 하에 귀가했고 이후에 열이 나고 증상도 계속되어 다시 내원했다고 했습니다.


감기 증상이 있었다고 해서 혹시 폐렴으로 악화되었나 싶어 청진을 확인했는데 왼쪽 호흡음이 조금 감소해 있는 것 외에 저명한 폐렴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배와 옆구리에도 특별한 증상이 없었고 목도 부어있지 않았습니다.




수액치료와 피검사, 소변검사를 확인하기로 하고 먼저 흉부 X-ray를 확인했습니다. 왼쪽 폐에 뚜렷한 폐렴 소견은 없었지만 심장이 좀 커져 보였습니다. 심비대는 고혈압 약을 복용 중인 고령의 환자에게 흔히 보이는 소견입니다. 그러려니 하면서 마침 1년 전 본원에서 찍었던 X-ray가 있기에 한번 열어보았습니다. 헌데, 그때엔 심비대 소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할머니께 다가가 다리를 확인했지만 특별히 부은 것도 없고 숨차단 얘기도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심초음파 검사를 확인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마침 심장내과 선생님이 자리를 비워 응급 심초음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심장 초음파는 보통 영상의학과가 아닌 심장내과에서 직접 시행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나온 피검사는 3일 전과 같이 염증 수치 상승 외 심장 효소 수치 등 다른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호자는 가능하면 전원 가기를 원치 않는다고 해서 다음날 심초음파를 확인하기로 하고 당시 가능한 복부초음파만 확인하고 입원하기로 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상의학과 선생님께 특별히 심낭삼출액이 있지는 않은지 함께 확인을 부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영상의학과에서 상당한 양의 심낭삼출액이 확인되었다고 급히 연락이 왔습니다. 보호자께 상황을 설명하고 입원은 취소, 급성 심낭염 추정으로 대학병원으로 급히 전원을 의뢰했습니다.




응급실을 내원하는 흔한 증상 중 하나인 발열은 진단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오래 지속되는 열의 원인은 참 여러 가지입니다. 처음에 할머니를 진찰하면서 폐렴, 신우신염, 복강 내 감염, 말라리아와 쯔쯔가무시 등 전염성 질환에 의한 열, 류마티즘 열, 단순 감기 등을 고려하고 진찰했지만 흉통도 없고 혈압도 정상, 심근 효소 수치도 정상인 상황에서 심낭염은 솔직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환자의 심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고 몸에 수분이 쌓이게 되면 심비대가 옵니다



수년 전 수련받았던 대학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하루 200여 명의 환자를 보면서 몇 번의 뼈아픈 실책을 했던 경험을 고백하고 이야기를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토와 발열로 왔던 젊은 여자 환자가 있었습니다. 갑상선 항진증 약을 먹고 있었고 며칠간 약을 먹지 않았다는 얘기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 시간여 동안 수액치료와 피검사만 기다리고 있다가 갑상샘 중독발작으로 환자를 잃을  뻔했던 경험이 생각납니다. 또, 복통과 복부팽만으로 내원한 할아버지 환자를 증상 조절과 수액 치료만 하고 두 시간여 지켜보다 장간막 경색에 의한 패혈증으로 심장마비까지 발생해 결국 할아버지의 생명을 놓쳤던 가슴 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이번 급성 심낭염 환자도 가슴사진을 확인하면서 과거 사진과 비교하지 않았거나 보호자가 전원을 원치 않는다는 핑계로 심초음파는 내일 확인하자 하고 입원 진행시켰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결과가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런 아픈 경험에 비춰 후배 전공의들에게 항상 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환자 한 명을 퇴원 결정하기 전에 이 환자가 얼마만큼의 위험성을 갖고 퇴원하는 건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의료사고 위험성이 1% 라고만 해도 하루 200명 환자를 보면 그중 두 명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니 아찔하지 않겠는가 라고.




최근 들어 정부차원에서 원격의료를 진행하기 위해 법을 손질 중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눈앞에서 직접 보고, 만져보고, 눌러보고, 들어보는데도 이렇게 어렵고 위험한 게 아픈 사람 생명에 다가서는 일인데 이걸 원격으로 한다니요.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자신의 양심에 되물어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정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 진행하는 것,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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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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