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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할 때 낙서
게시물ID : readers_234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ternalBlue
추천 : 1
조회수 : 28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1/03 19: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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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
오후 두시, 눈부신 하얀 하늘 대신 회색빛 구름만이 잔뜩 머리 위에 끼어있다.
침대에 누워 다시 힘겹게 발가락으로 창문을 닫았다. 어두컴컴한 방 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열고 닫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창문을 여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어두웠기 때문에 그것을 그냥 닫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상 위에 쌓인 <할 일>들에 잠깐 시선을 두다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그것들을 외면했다.
그리고 곧장 침대 밑으로 몸을 숨겼다. 침대 밑은 어둡고 깜깜했으며, 아주 비좁은 공간이었다.
아주 불친절하게 놓인 침대다리에 불평 하나 하지 않고 몸을 이리저리 굽히고, 펴가며 침대 밑 명당 자리에 몸을 뉘였다.
편안했다. 마치 원래 자리였던 것처럼.
눈을 뜨면, 바로 눈 앞에 거친 촉감의 나무 판자가 가까스로 무너져 내리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 또한 모체의 자궁 속 같이 편안하게 느껴져 기가 막히기까지 했다.
 
주인의 부재 아닌 부재에 놓인 싸구려 벽지의 방 안은 아주 고요했다.
<할 일>위로 쌓인 먼지는 제 종족들을 더욱 빨아들이고 있었고, 온통 거무죽죽한 옷가지들이 제멋대로 탑을 쌓고 있었다.
손떼가 그득 타 있는 한 CD는 여러 각도로 구부러진 모양을 하고 힘없이 구석자리에 쳐박혀 있었다.
그것은 우습게도 자신의 주인을 아주 잘 따랐던 모양이다.
 
방 안에는 점점 어둠이 들이차고 창 밖의 빗소리가 울린다.
그때, 방의 주인이 며칠 전 마지막 외출시 방 안에 들고 들어온 생수병의 뚜껑이 스스로 열리더니, 힘없이 쓰러져 물을 바닥으로 콸콸 쏟아내고 있었다.
생수병의 물이 바닥을 보일 때 즈음, 창문이 한번에 쾅! 소리를 내며 열리고 방안으로는 비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가운 가을비는 침대에 놓인 우스운 문양의 얇은 이불자락이 따뜻하게 느껴지기라도 했는지,
더욱더 세차게 방안으로 쳐들어와 침대 위로 자살하기도 하며, 방바닥을 제멋대로 흥건히 침범하기도 했다.
 
꿈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뜨니, 익숙한 나무 판자가 불과 5cm 이내로 나를 반겼고 어둠이 나를 삼킨 상태임을 매번 그랬듯 두번째로 인식했다.
비가 오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다.
왜인지 평소보다 커다랗게 들리는 소리가 좋아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바닥에 뉘인 등이 물로 축축히 젖었음을 느꼈다.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분명 창문을 닫았는데. 비가 침대 밑까지 침범하다니.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아까 문을 열었었나? 분명 닫았는데? 아닌가, 열었었나? 아님, 수도꼭지를 열어놨나? 화장실에? 아, 그랬나 보다.
차가운 바람이 몸을 가로로 관통했다. 그리고 물은 점점 더 차오르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자 찰팍찰팍 거리는 소리가 꽤 듣기 좋아 여러번 반복했다.
 
[띠디디 딘띤]
 
아주 낯설은 전자음에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 벌떡 일어나다 나무판자에 이마를 세게 부딪쳤다.
다시 몸을 뉘이고 소리가 들렸던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네모낳고 딱딱한 그것을 잡아뺐다.
물에 젖은 바지에서 꺼낸 그것이 여전히 낯설어 물끄러미 바라보다 작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눈부신 화면이 반겼다. 그제야 스스로의 바보같은 행동들에 웃음이 나 누운채로 허벅지를 탁탁쳤다. 문자가 온 모양이었다.
 
[어디야? 나 도착했는데. -현]
 
잘못 온 문자라고 생각했다. 보낸이의 이름을 읽기 전까진. 다시 나무 판자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제 제법 젖은 짧은 머리통을 탁 쳤다.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물은 이제 몸의 반을 적실만큼 차올랐고, 수없이 많은 침대 다리들이 나가지 못하게 막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현에게 나가지 못한다고 하려 네모난 그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물을 잔뜩 먹어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머리 위로 아무렇게나 내팽겨쳤다. 수면 아래로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아마 그것은 저처럼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주보고 있는 나무판자까지 물이 닿으면 어떻게 될까란 상상이 되었다.
아마 땅에서 인간이 호흡하는 법이 아닌 바다에서 인간이 호흡하는 법으로 호흡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다소 안심이 되었다. 찬 물이 이제 귀까지 점령했다. 빗소리는 희미해졌고, 더이상 물의 흐름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진정 편안해진 느낌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손과 발이 사라지고 다시 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몸의 앞면이 나무판자에 닿았다. 떠오르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굿마트의 폐점>
 
땅거미 지는 어스름한 사거리 골목길 구멍가게의 침침하게 밝혀진 전구빛이 은근히 시선을 잡아끈다.
봄이 물러가고, 무더운 여름이 찾아와도 오래된 철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람을 기다리던 그 구멍가게.
이른 아침, 새로운 하루 출발을 그 작은 마트와 눈짓을 주고 받으며 시작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졌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길에는 마을의 노인들이 모여 평상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과 사람구경하는 모습을 꼭 눈에 담곤 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저마다 지팡이를 짚고 각자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더랬다.
여름 휴가철, 며칠 굿마트의 셔터가 닫혀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자꾸만 그곳에 시선을 던졌다.
가을비가 찾아오고 부쩍 차가워진 바람에 그 오래된 철 미닫이문은 추위라도 타는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깊어가는 가을날, '그곳은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았다'며 낡은 골목의 쓰린 마음을 자꾸 쑤셔대는 목소리들을 들었다.
비가 그친 가을 초저녁은 부쩍 무겁고 깜깜해졌다.
노인 한명이 꺼진 전구 아래에서 지팡이를 짚은 채 차겁고 딱딱한 평상에 홀로 잠잠하게 앉아있다.
왜 자꾸 눈 앞에 그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던 다른 노인들과 침침하고 벌레 낀 전구가 보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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