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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데미안, 그물망
게시물ID : readers_279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빨간냄비
추천 : 10
조회수 : 79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3/07 22: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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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물어야 해, 언제나 의심해야 하구.”
- <데미안> (헤르만헤세,1919/전영애,1997,민음사) _ 이하 (데미안)

언제나 <데미안>이라는 이름과 그것이 즉각적으로 불러오는 정서에 이물감을 느끼곤 했다. 왜일까?

그것이 궁금해 십수년만에 다시 읽었다. 어떤 책들은 매우 느리게 읽히는데, 다른 어떤 책들은 그 반대인 경우가 있다. 몇몇 부분을 표기해 가며 두어 시간만에 다 읽었다. 그렇다고 감히 답을 찾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 읽었던 번역판과 같은 판본을 선택해 버렸다는 걸 다시 읽어가면서 기억해내고 말았는데(문장을 기억한 게 아니라, 표지와 그립감의 흔적이 손에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번역판본들을 비교해 가며 읽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그저 내가 이물감을 느낀 접촉부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데미안)

<데미안>을 처음 읽었던 시기보다 더 어렸을 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1943)를 읽고 독후감을 쓴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해 ‘억지로’ 쓴 것이다. 소년소녀권장도서목록이 공문으로 뿌려지던 시절이다. 아마 지금도 이런 부분은 규모와 형태를 달리해 남아있을 것이다. 숙제를 꼬박꼬박 하는 착한 학생이었던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이 부분 역시 남아있다) 이런 내용의 독후감을 써 갔다. ‘어른들이 나와 같은 어린 학생들에게 이 책을 강제로 읽히는 것은, 우리들에게 어른들의 시선으로 박제된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강요하기 위함은 아닌가? 나는 모자가 그냥 모자로 보인다’.
야단을 맞거나 매를 맞지도 않았고 복도에 나가서 무릎 꿇고 손들리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더 영웅적인 추억으로 남았을 텐데. 담임선생님은 그저 날 보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음악이 몹시 좋아요, 음악은 별로 도덕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데미안)

<데미안>의 후반부, 주인공 싱클레어가 파스토리우스('피스토리우스'가 맞다-20170310 22:25)라는 자와 교제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이 머릿속에 남긴 한 장의 그림을 이번에 다시 읽으며 선명하게 보았다. 그 그림이 기억 속에서 다른 그림들도 끄집어낸다. 어두운 곳에서 선택받은 사람들끼리만 나누는 비밀스러운 대화. 쉬이 그림을 떠올리기 어렵다면 게임 <스카이림>(베데스다,2011) 곳곳에 등장하는 던전, 지하감옥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될 법하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영화 <죽은시인의사회>(피터위어,1989)에서 그려지는 비밀 모임은 어떤가.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기숙사의 밤은 깜깜하다. 그 암흑을 뚫고 피어오른 촛불이 잘 먹고 잘 자란 아이비리그예비인생들의 뽀오얀 뺨을 어루만지면 그 얼굴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불순한 시를 읊조리는 것이다. 아아 아름답지 않은가. 같은 학교 학생인 건 아니지만 그들의 대화내용이 궁금해진다. 좀 더 잘 듣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당신은 스릴러영화의 등장인물이면서 핸드폰도 끄지 않아 관객들의 질타를 떠안는 눈치없는 사람이 된다. 아니면 (대체 누가 갖다놨는지 알 수 없는) 큼지막한 나뭇가지를 밟는 것으로 충분하다. 덕분에 그들은 교무실로 붙들려가 빠따를 맞을 것이고 당신은 다시는 그 촛불을 구경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엔 <데미안>에서 느꼈던 이물감, 이질감이 발현한 접촉부위가 미묘한 열등감 쪽이 아닌가 생각했고 어느 정도 그렇기도 하다. 나의 상상의 체계는 이를테면 ‘죽은시인의사회’ 일원의 가슴아픈 첫사랑 얘기보다는 이들 모임에 끼고 싶어 전전긍긍하다 결국 기숙사 방에 혼자 틀어박혀 흑마술이나 연구하는 어느 이름모를 녀석의 큼지막한 안경알에 묻은 먼지를 떠올리는, 예컨대 스티븐 킹의 그것에 더 가깝다. 이러한 오작동 성향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나온 것인지는 피차 묻지 말기로 하자(..). 확실한 것 한 가지만 답변하자면, 나는 <죽은시인의사회>가 몇몇 미덕을 갖고 있긴 하나 다시 볼 만한 걸작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미묘한 접촉부위의 대부분을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오히려 ‘피로감’에 가까울 것이다. 어떤 대상이나 이상을 한없이 동경하던 시절의 이야기에서 느끼는. 나는 ‘잃어버린 순수함’이나 ‘일상에 매몰된 이상향’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이러한 피로감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외면하는 성장담이 그 피로를 가중시킨다고 느낀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중 (어느 해적판 잡문집을 제외하면) <데미안> 포함 세 권을 읽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데미안>의 가르침대로 카인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느꼈다면 오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는 두 등장인물간의 선명한 대립을 통해 어떤 삶의 방식이 더 나은 쾌락인가에 대한 끝나지 않는 질문을 남겼으며, <유리알유희>는 모든 책장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다.


“열심히 연구에 몰두하는 한 학자가 청년으로부터 이상한 동물이나 우화 속의 존재인 것처럼 경탄받는다는 것은, 이 수도원이 얼마나 학문적으로 나태한가를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 <유리알유희> (헤르만헤세,1943/박성환,청목,1993) _ 이하 (유리알유희)

<데미안>을 서둘러 마무리지은 후 <유리알유희>를 다시 펼쳤다. 역시 제대로 다시 읽은 것은 몇 년만인데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 책은 빠르게 읽기가 어렵다. 천천히 한 단락씩 읽는 중이다. 

“소년은 아주 희미하게 흐르고 있는 음악 속에서 규범과 자유, 복종과 지배를 온화하게 융화시키는 정신적 경지를 느끼게 되었다.”  (유리알유희)

기쁨을 맛보는 것. 순수한 어떤 경지에 다다르는 것.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초월해가는 것. <유리알유희>에는 이러한 본질적인 기쁨 뿐 아니라 어떤 피로, 같지 않은 것들, 끝끝내 저버리는 선택들, 에 대한 긴장 역시 담겨 있다. 감히 말하자면 나는 예술을 꿈꾸는 이들에게 <데미안>보다는 <유리알유희>를 권하고 싶다. 물론 나 역시 <유리알유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내는 사람은 되지 못한다. 그저 이 협화음, 불협화음을 아우르는, 연주로서의 글의 경지를 읽으며 경탄할 뿐이다.

순혈주의나 선민의식에 대한 의혹이 뒤통수를 간지럽힐 만한 저작들임을 모르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가 추구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높은 차원의 유희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우리를 어딘가로 끌고 가는 어떤 것 또는 그런 의도 그 자체인가. 이러한 의혹들 역시 ‘유리알유희’를 구성하는 한 요소이다. ‘논거’나 ‘선물’, ‘선언’이 아니라 ‘유희game'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유리알유희>를 읽다 보면 지난 날 어떤 버르장머리없는 아해가 써낸 <어린왕자>(지금은 이 책 역시 아주 좋아한다) 독후감을 마주한 담임선생님이 지었던 알 수 없는 표정의 비밀이 언뜻 풀리는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시간이 가면서, 내가 인간을 과소평가했음을 알았다.”  (데미안)

나는 저 수많은 데미안들을 본다. 잘 보이지 않을 땐 책상 위에 올라서서 본다. 이상한 동물이나 우화 속의 존재라는 그물망을 펼쳐 잡으려는 유혹을 참으며 본다. 내가 놓친 사냥감들이 발현하는 순수한 악마적 의지들을 본다. 그것들은 아직 고개숙인 채 뒷골목을 헤매이거나 이미 각성하여 광장에서 노기띤 눈으로 행진하는 중이다. 그 눈들은 이미 이 글을 보고 은연중에 눈치챘을 것이다. 누구나 <데미안>에 대해 알은 체하며 말하긴 쉽지만,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고백 없이 <데미안>을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오히려 자연의 의지는 개개인들 속에 적혀 있어. 네 마음속에 그리고 내 마음속에.” (데미안)


나는 동시에 저 끝점도 본다. 그냥 본다. 논거나 선언으로 잡히지 않는 그것은 아직 눈치를 보며 주변을 서성거리지만 한눈판 틈에 다가와 어느새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의지라니 데미안아, 아이고 의미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 <유리알유희>를 3분의 1정도만큼만 다시 읽고 있는 나는 기어이 데미안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에게 세계는 깨지지 않는 어떤 것인가, 깨지지 않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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