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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나라를 세우는 것은 남자인가
게시물ID : readers_283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효마
추천 : 2
조회수 : 4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05 23: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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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티는 아직 동녘에 제후국이 세워지기 전에 사람이다.

출신은 북녘 달로였으며 농부의 아들이다.

북녘은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아 농사를 짓기가 어려웠으나 화티가 태어났을 적에는 여름이 점차 길어지고 있었으므로 땅을 가진 이들이 부자가 되어가는 시기였다.

화티라는 이름은 열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변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열이 많았는데, 그의 어미도 화티를 낳고 산후열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

아비는 젖먹이를 굶겨 죽일 수는 없었으므로 주변을 수소문하여 젖이 나오는 과부에게 새 장가를 들었다.

계모는 화티를 미워하여 죽으라고 자주 찬물에 씻겼으나 간난아이인 화티를 씻기고 나면 오히려 물이 데워지고는 했다.

그리고 화티에게는 누이가 둘이 있었는데 어미가 화티를 낳고 죽었으므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화티가 걸어다니기 시작하고, 옹알이를 끝내어 제법 이야기를 시작하였을 때였다.

큰누이더러 서러운 마음에 엄마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는데 이 이후로 큰 누이는 화티와 말도 나누지 않고 지냈다 한다.

화티는 작은 누이의 손에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컸다.

그는 작은누이를 어미처럼 여겼으나 그런 기색은 하지도 못하였다.

어려서부터 화티의 손에 닿는 농작물은 그 열을 이기지 못해 잘 상했으므로 아비는 일찍부터 화티를 사냥꾼의 무리에 맡겼다.

나이 열둘에 사슴을 잡는 것은 또래에서도 흔치 않았으며 나이 열여섯에 황소만한 늑대를 잡은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농사일이 날로 번창하여 한 철의 농사로 능히 한 해를 먹고 지낼 수 있었으므로 한 번 사냥으로 며칠을 겨우 사는 화티에게는 그 누구도 자신의 딸을 주지 않았다.

나이 스물에 신부를 찾았으나 계모가 남편의 땅을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줄 것을 약속 받았으므로 더욱 암담하였다.

나이 스물 하나에 화티는 신부를 찾아 고향 달로를 떠나 타지를 돌아다녔다.

화티는 거진 십년을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 동녘 마을들을 전전하면서 살았다.

그 동안에 화티는 흉수들을 잡아다가 전시하여 칭찬 받기를 좋아하였다.

마을 주변의 흉수를 잡아온 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그를 칭찬을 하고 거나하게 술을 부어 위로할지언정 딸을 주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 그가 나이가 들어 수염이 덥수룩해졌을 때 쯤, 그의 주변으로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땅도 없고 신부도 없는 사내들이 모여 화티를 우두머리로 삼고 동녘의 땅을 방황했다.

화티는 이들을 이끌고 마을을 돌며 곡물과 가축을 훔쳐 먹고 살았다.

온 동녘 사람들이 그들의 행위에 골치를 앓았다.

동녘의 각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그들의 처우를 두고 논의했다.

한 어르신이 안을 내었다.

 

각 마을마다 흉수들이 많아 땅을 개간하지 못하고, 밤이면 흉수들에게 물려갈까 두려워 떨고 있으니 그들로 하여금 흉수를 잡게 하는 것이 어떤가.”

 

원로들은 동의하여 화티를 불러다 이를 전했다.

화티는 요구했다.

 

수염이 나서도 여인을 얻지 못하는 이들이 많으니 각 고을을 괴롭히는 흉수를 잡거든 우리도 장가를 보내 주시오.”

 

원로들은 요구를 받아들이고 화티는 이를 기뻐하며 이를 자신의 부하들과 자축하였다.

그 후로 화티와 그의 수하들은 고을을 돌아다니며 호랑이와 늑대, 곰들을 잡았다.

덕분에 흉수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많은 청년들이 장가를 얻었고 땅을 새로 경작하여 정착하였다.

그러나 화티는 무리 중에 가장 늙었으므로 신부들이 좋아하지 않아 여전히 장가를 들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에 한 여인이 화티에게 시집을 들고자 하였는데, 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였다.

화티는 자존심이 상하여 거절하였으나 과부가 말하였다.

 

사내가 태어나 스물에 아이를 보고 마흔이면 손자를 보아, 쉰이면 죽으나, 당신은 이미 서른에 땅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곧 늙어 쟁기를 쓸 힘도 달리게 될 것이니 누가 당신에게 시집을 들어 아이를 가지고자 하겠는가. 나는 비록 과부이나 젊고 아름다우니 서로 눈을 낮추어 혼인을 함이 옳다.”

 

화티는 과부를 무시했지만 과부는 그날부터 화티의 비루한 움막으로 직접 들어가 가사를 돌보았다.

한 달을 그렇게 보내고 나자 화티도 과부를 백안시할 수 없었다.

화티의 수하들은 과부를 사모로 여기는 눈치였고 화티의 살림도 제법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두 달째에 화티는 과부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으며 곧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과부가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 된 때였다.

화티는 주인 없는 땅을 경작하여 정착을 하려고 하였다.

이때 과부는 몹시 화를 내었다.

 

내가 당신을 선택한 것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인데, 당신은 어찌하여 땅을 파먹으며 남들과 같이 두더지처럼 살려고 하는가.”

그러면 어찌하라는 말인가화티가 따지자 과부가 말했다.

 

내 낭군의 덕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땅을 개간하면서 먹고 사는 것이 당연하니 당신은 새롭게 개간된 땅에 당연히 세를 걷어 먹는 것이 옳다.”

누가 세를 내려고 하겠는가?”

어리석도다. 거꾸로 내 낭군이 세를 걷으려는데 막을 수 있는 이가 누구인가? 칼을 써도 내 낭군과 수하들이 제일이요. 화살을 쓰더라도 한 발에 흉수를 맞추어 죽이는 사람들에게 누가 함부로 덤빌 수가 있으료?”

 

화티는 그 말을 듣고 진심으로 두려워하였다.

 

일하지 않고 먹는 것은 부당하다.”

목숨을 바쳐 흉수를 잡아준 것은 일이 아닌가? 목숨을 건 은혜를 입었으면 평생을 걸쳐 갚는 것이 당연하거늘, 혀꼬인 칭찬 몇 번으로 넘어가려는 이들이 부당한 것이 아닌가. 위험한 일은 내 낭군을 시켜다 남의 손으로 코를 풀고 짐승이 없는 땅에서 곡물이나 추수하며 휘파람을 불 사람들이 밉지도 않는가. 남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으니 내 낭군 참 어질다. 아니다. 어질다 못해 천치와 같다. 내 이 남자를 믿고 살다간 내 자식도 평생을 떠돌아다닐 터이니, 차라리 낳기 전에 이 몸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나으리라.”

 

과부가 물가로 달려가 죽는 시늉을 하자 화티는 겁에 질려 만류하였다.

 

그대의 말이 옳다. 내 이제 당신을 정식으로 아내 삼겠으니 화를 풀라.”

 

과부는 이 말을 듣고 더 화를 내었다.

 

첫 세를 걷기 전까지는 낭군을 집 안에 들이지 않겠으니 그리 알라.”

 

제 집에서 쫓겨난 화티는 급히 수하들을 모아 세를 걷으러 떠났다.

그리고 각 고을을 돌면서 칼과 화살로 윽박질러 세를 걷으니 누가 막을 수 있었으랴.

재화가 동산처럼 쌓이고 곡물이 산처럼 쌓이니 부하들은 과부의 혜안에 찬탄하였다.

화티는 과부에게 장가를 들었고 수하들을 부려 근거지에 크고 넓은 성벽을 쌓고 세를 키웠다.

주변의 작은 고을들이 화티를 두려워하여 온순하게 매년 세를 내었으므로 화티의 세력은 더욱 커져 능히 작은 나라라 할 법하였다.

나중에 화티는 스스로를 이라 칭하고 밑으로 네 명의 들을 두었고 모두들 을 이야기 할 때 머리를 조아리게 했으므로 그를 존경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 없었다.

그리고 이를 야국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과부에 대한 이야기는 사서 별로 분분하다.

세와 왕명에 대해 소상히 알았으며, 일개 사냥꾼으로 늙어 죽을 화티를 소국의 으로 만든 여인이었으므로 투쟁에서 밀려난 왕족이나 귀족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후대의 역사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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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국의 간이야기는 결국 계집의 욕망이 권력의 근본임을 보여준다.

사내는 대부분 하루 먹을 것과 몸을 데워줄 계집만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 각 고을을 윽박질러 를 걷은 것은 의 욕망이 아니라 과부의 욕망이었다.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을 걱정하고 욕망하는 것은 새끼를 키워야만 하는 계집들의 숙명이다.

그리고 그 욕망을 채워주어야 하는 것은 사내의 숙명인 것이다.

지금에 있어서 간(화티)의 야국은 아직도 간을 시조로 삼고 제사를 지내고 있으나 그 제사의 주인은 과부여야 함이 옳다.

 

동토사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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