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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판사의 유산
게시물ID : readers_284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효마(가입:2011-04-28 방문:661)
추천 : 2
조회수 : 1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16 21: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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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 리브레도 카보일 

문서에 적힌 하나의 이름을 보면서 롤란드 법무부 장관은 습관적으로 깍지 낀 손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에 새겨진 저울의 느낌이 손가락으로 전해졌다. 반지는 그의 상징물이며 그의 인생을 요약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의 인생은 진실과 거짓, 그리고 죄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삶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너무나 일찍 사람에 대해서 알아버렸다.

가족 사이에서, 친구 사이에서, 지인 사이에서 알면서도 넘어가야 하는 거짓말, 그리고 알면 안 되는 거짓말에 대해서 지나치지 못했다.

인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인간관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서슬이 퍼란 남편에게서 애정을 찾을 수 없던 아내는 정원사와 바람이 났다.

그러나 바람을 피울 만한 용기가 있었던 여인이 남편을 속일만한 용기는 없었던 모양이다.

표정이 굳어서 재판에 대해 생각하느라 아내가 무엇을 물어보는지도 몰랐던 롤란드에게 지레 겁먹은 아내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빌었다.

용서해줘요. 한 번 뿐이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게요. 애를 봐서라도...

젊었던 시절 검사 롤란드에게 혐의가 밝혀진 범죄자처럼 자비를 구하는 아내의 모습은 극도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거짓말을 밝히는 데 골몰해온 자신의 앞에서 '거짓된 가정'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롤란드는 직장에서의 저울을 가정에서도 들이댔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법. 배신의 대가는 결별이었고 무너진 자존심의 무게만큼 모질게 굴었다.

그는 아내와 젖먹이 아들에게서 자신의 성()을 박탈하고 동전 한 푼 없이 겨울 거리로 쫒아냈다.

그리고 그는 가족을 잊어버리고 일에 빠져 살았다.

매정하다는 손가락질은 오히려 칭찬으로 들었다. 그만큼 그는 더 날카로워질 수 있었다.

더 냉정해질 수 있었다.

가정이 없어서 더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는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파헤쳐서 일말의 거짓말도 남지 않을 만큼 분해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죄를 구형했다.

범죄자가 합당한 형량을 받는 만큼 만족스러웠으며 그러는 날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법원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그를 판사의 자리에 올렸다.

검사나 변호사도 그에게 거짓을 들이댈 수 없었다. 그는 거짓말에 결벽증이 있었고, 거짓말이 밝혀졌을 때 가차 없는 판결을 내렸다.

곧 원로원은 그를 인정하고 존중하여 법무부 장관의 지위에 올렸다.


그것은 우연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필연일 수도 있다.

아내의 처녀 때 성을 기억하려 노력해 본 적도 없었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지만 정례 보고에서 그가 마주하던 수많은 보고서 속에서 '카보일'이라는 성이 스쳐지나갔을 때 그는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궁금했다.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거짓과 죄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했던 그는, 전처의 불행을 확인하고 싶었다.

떨리는 손으로 문서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불행을 확인했다.

그러나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역시나 리브레도 카보일은 그의 아들이었다. 롤란드는 그의 아들을 감옥에서 만났다.

'내가 너의 아버지다'라는 극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단지 궁금함으로 인해 감사를 명분 삼아 리브레도 카보일을 찾아갔을 뿐이다.

물론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몰라 봤지만 그는 한 눈에 자식을 알아보았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빼다 박은 정떨어지는 눈매에 신경질적인 광대뼈, 덥수룩한 수염을 보고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이자가 수북하게 쌓인 빚더미처럼 그의 앞에 들이닥쳤다.

하지만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구석에 숨어 옥바라지를 하는 자신의 전처도 보았다.

전처는 자신보다 훨씬 늙었다.

고왔던 얼굴은 주름이 지고 다리를 절면서 감옥으로 드나들었다.

처음에는 그녀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녀는 아들과의 면회에서 수없이 아들에게 사죄했다.

아들의 죄는 아들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죄했다. 아들아 내 죄다. 이것은 내 죄다.

그녀는 흐느끼며 울었고 아들은 노인이 다 된 자신의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며 소리 질렀다. 또 시발 그 소리네.

롤란드는 무표정하게 옆방에 앉아서 그 소리를 들었다.


그는 면회가 끝난 뒤에 전처의 뒤를 밟았다.

전처는 관절염 때문에 중간중간마다 거리의 귀퉁이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 중얼거렸다. '내 죕니다. 주여, 내 죕니다'

그리고 수도의 외벽 근처에서 토굴 같은 집으로 들어갔다.

롤란드는 그 집으로 뛰어 들어가 전처를 마음껏 비웃어 주고 싶었다.

빈정거리고 모욕하고 상대의 자존감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승리를 선언하고 웃고 떠들고 집으로 들어가 승리를 자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는 전문가였다. 저울질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느낀 배신감과 추락한 자존심을 저울 한 편에 올리고, 다른 한 편에 전처와 자식의 불행을 올렸다.

그리고 흔들리는 저울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저울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수백 번을 재고 잰 후에야 흔들리는 상태가 곧 수평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죄의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는 전처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더 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부성 따위에 흔들림 없는 진정한 전문가였다.

그는 자식이 필요 없었다.

그에게 자식은 법원이었고 이 세상에 남길 유산도 법원이었다.

법으로 공평한 세상에서 자식의 죄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자신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리브레도 카보일이 옥중에서 죽은 것이다.

착각은 곤란하다. 리브레도 카보일의 죽음이 그의 부성과 죄책감을 자극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전문가였다. 그리고 법에 있어서 그는 명인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그는 아들의 죽음에서 거짓말의 냄새를 맡았던 것뿐이다.


죄수가 감방에서 죽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들은 병에 걸려 죽거나 싸움에 죽거나 분해서 죽거나 정신병으로 인해 미쳐서 죽었다.

그러나 롤란드는 죄인들의 사망 원인을 보고한 문서에서 평생 증오했던 '거짓의 냄새'를 느꼈다.

그는 부성이 아니라 자신의 보물인 ''을 침탈당한 사악한 수전노였기에 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감자 줄기처럼 딸려 나오는 거짓들에 숨이 막혔다.

법원 전체가 부패해 있었다.

젊은 법관들은 거대 상인들과 배가 맞아 거짓과 기만의 사생아들을 낳고 있었고 진실과 정의는 시궁창으로 처박혔다.

이를 원로원이 방치했다.

그들은 부패의 오물 속에서 피어나는 열매들을 고상하게 따먹었다.

오직 그만이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 옛날에 경험했었던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분노를 다시금 경험하게 되었다.

움켜잡은 두 손의 손톱이 맨살을 파고들고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그는 한 치의 거짓말도 용납할 수 없었으므로 더욱 파고들었다.

 

그의 아들 리브라도 카보일은 인쇄공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가난한 상황에서도 매일 밤에 글을 가르쳤고 덕분에 이른 나이부터 활자 인쇄공의 조수로 일해 곧 두 사람 모두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살았다.

우연히도 일했던 인쇄소가 법전을 찍어내는 곳이었기에 젊은 카보일은 어려서부터 드문드문 법을 공부했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를 닮아 거짓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젊은 카보일은 드문드문 법을 공부하는 한편, 자라나면서 나름의 주관을 가지고 세상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실로 놀라운 핏줄의 힘이었다.

사건은 염색공들의 파업에서 시작되었다.

반년 간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한 염색공들이 파업을 했고 자신들의 파업 선언문과 고발장을 인쇄소에서 작성하였다.

젊은 카보일은 이 일에 열성적으로 매달렸다.

그동안 배워 왔던 지식과 가슴속에 끓어 넘치는 정의감으로 노련한 검사 정도나 쓸 법한 고발장을 써서 법원에 제출하고 이를 대량으로 인쇄하여 수도에 뿌렸다.

고발장의 파장은 컸다.

수도의 모두가 이 사건을 알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더 큰 불만이 선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로원의 지침이 전달되고 곧 재판이 열렸다.

상인은 졌다.

염색공들은 밀린 급여를 받았다.

그리고 이전 보다 좋은 계약으로 다시 고용되었다.

불만은 급속도로 사그라들었다.

모두들 젊은 카보일을 칭찬했다.

그 청년은 그때 자신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롤란드는 그 고발장을 본 적 있었다.

염색공들이 모여 썼다고는 볼 수 없는 수작이었다.

그는 그저 비싼 변호사를 고용하여 썼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글은 자신의 아들이 만들어낸 처녀작이었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패배한 상인은 복수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협을 느낀 다른 대상인들도 동참하였다.

젊은 카보일은 일이 끊겼다.

게다가 다른 이의 말만 믿고 대신 작성해준 고발장 또한 문제를 일으켰다.

고발은 모함에 가까웠다.

정작 고발자는 모든 것을 젊은 카보일에게 뒤집어씌우고 잠적했다.

카보일은 무고죄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의 과정도 석연치 않았다.

젊은 카보일이 제시한 무죄의 증거들은 부정당했고 부랑자, 창녀, 건달들이 한 증언들은 인정되어 카보일의 평판을 한 순간에 박살냈다.

분리주의자, 배신자, 남색가로 낙인찍힌 젊은 카보일은 고립되고 무너졌다.

유죄가 확정되던 날 법원에서 그는 스스로를 변호하며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 누구도 법에게 만능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법에 그저 공정함을 바랄 뿐입니다. 단지 저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십시오. 이곳에 정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이미 사기꾼의 낙인이 찍힌 그의 마지막 자기변호는 비웃음에 묻혔고 그는 징역 10년을 받고 감옥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롤란드가 그의 이름을 보고 감옥을 찾아갔을 무렵, 이 사건이 들춰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법관과 상인, 교도소장이 결탁하여 청년을 죽였고 그 죽음을 '수치스러운 자살'로 위장했다.

저울이 기울고 있었다. 아니 고쳐 말한다. 저울은 이미 기울었다.


롤란드는 이 세상에 자신이 남길 유산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그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세상에 괜찮은 법관 하나를 남길 수도 있었으나 그의 알량한 자존심과 분노가 결국 그 기회조차 만들어주지 못했다.

법원은 거짓의 구더기가 넘쳐나는 거름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아무것도 남길 수 없었다.

롤란드는 인정했다.

저울은 무너졌고 그는 파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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