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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323] <오빠는 필요없다>
게시물ID : readers_284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장수집가
추천 : 0
조회수 : 1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19 10: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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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이 변해야 다른 대답이 가능하다. (52)


2)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사고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155)


3) 주류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212)


4) 저항이 세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그만큼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뜻일 수 있다. (263)


5) 무엇이 폭력이며 어디까지가 폭력으로 간주되는가는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다. (164)


6) 어떤 비난이 상처가 되는 것은 그 비난과 동일한 해석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36)


7) 남성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나면 여성은 아무리 남성적이 되어도 결국 남성에 미달한다. (101)


8) 경험이 역사로 기록되고 기억되지 않을 때 우리는 늘 외톨이로 맨땅에 헤딩하듯 싸울 수밖에 없다. (17)


9) 커밍아웃은 자긍심과 용기의 결과물이지만 또 다른 배제와 고립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247)


10) 기존의 해석틀을 너무 잘 알고 자기 것으로 내면화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다. (265)


11)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답은 어느 정도 이미 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인식이 가능하려면 기존의 것과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154)


12) 능력은 소유하는 물체가 아니라 인정받고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권력관계와 분리되어 있을 수 없다

    무엇을 능력으로 간주하느냐 하는 것부터가 질문의 대상이다. (95)


13) 왜 그렇게 다양한 세대들이 모두 내가 막차 탔다고 얘기하는 걸까

    놓쳐버린 첫차가 무엇인지 몰라도 거의 15년 동안 막차만 출발하고 있는 건 설명이 필요한 별난 현상이다. (12~13)


14) ‘사실은 누군가의 손에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그 현실에 참여하고 있는 구성원들 간의 권력관계 속에서 경합하는 해석을 통해 끊임없이 다시 말해지고 재구성되는 구성물이다. (139)


15) 남성 노동자의 파업 투쟁은 아내의 지지와 지원을 받지만 여성 노동자의 파업 투쟁은 오히려 남편의 허락을 얻어야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여성 노동자에게 시민/노동자의 권리보다 아내/어머니/주부의 도리가 우선되기 때문이다. (127)

 

16) 성차별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은 거의 대부분 과도한 감정을 지적받는다

    자본가의 부당한 해고나 임금 체불에 맞서서 파업 투쟁에 나서는 남성 노동자들의 분노에 대해 

    ‘너무 민감하다거나 흥분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137)

 

17) 누군가가 무언가를 하게끔 만드는것은 전형적인 여성의 성역할이다

    대표적인 것이 먹게 하고 자게 하고, 출근시키고 학교 보내는 주부의 노동이다

    타인을 보살피고 지원하는 역할은 그 성취가 타인의 의지와 변화에 달려 있기 때문에 무수한 감정노동을 요구한다. (261)

 

18) 거대한 문제와 사소한 문제는 따로 있지 않다. 둘 사이의 경계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유동적이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무엇이 중대한 문제인가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와 사적인 문제는 누가 정의하며 중대한 문제와 사소한 문제는 어떤 과정을 통해 구분되는가이다. (134)

 

19) 경험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와 일정한 서사 속에 배열될 때에만 비로소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

    새로운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개인사를 다시 쓰는 일이기도 하다

    새롭게 쓰는 역사 속에서 어떤 경험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경험으로 부각시키고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47)

 

20) 국가폭력과 대항폭력의 대립 속에서 만연한 폭력은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여성을 뒤처지는 존재로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전투는 남성의 일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은 별다른 비판 없이 수용되었다

    전쟁 상황을 방불케 하는 폭력 시위와 진압의 현장에서 여성은 열등한 운동가이거나 보호받는 약한 존재가 된다. (77)

 

21) 전선이 하나로 수렴될 수 있다는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성별 권력을 문제화하는 여성주의는 언제나 분열을 조장하는 이기적인 세력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선 자체가 여러 개가 있다는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여성주의 비판은 전선을 흐리는 내부의 적이나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새로운 전선이다. (228)

 

22) 노동자성을 대표하는 것은 남성 노동자들이었고

    생산의 힘’ ‘기계를 멈춰’ ‘역사의 주인’ ‘기름밥 동지’ ‘철의 노동자등 운동 담론이 재현하는 노동자의 이미지는 명백히 남성적이었다.

    중공업 분야 생산직 남성 노동자들의 경험을 가장 대표적인 노동자성으로 규정해내는 과정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의 소비적 일상 문화는 노동자성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배제됐다. (112~113)

 

23) 자신이 느끼는 분노조차 스스로 믿을 수 없을 때

    자신이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 끊임없이 오해과민함으로 치부될 때 여성의 문제제기는 효과적으로 침묵당한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가 억압이나 차별에 직면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히려 부당한 상황에서 감정적이 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그것은 합리나 이성이 아니라 약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는 무능력일 뿐이다. (139)

 

24) 때로 대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잘못된 가정에 기반을 두고 구성된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고 대답해도 더 큰 문제가 생길 뿐이다. 

    무수한 방식으로 서로 중첩돼 있는 문제들을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 속에 박제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려 드는 것은

    서로 떼어 놓으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유기체의 각 부분을 가지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만큼 쓸모없는 일일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가 왜 중요한지, 그 질문의 정치적 맥락을 의심해봐야 하는 것이다. (216)

 

25) 운동사회 성폭력은 예외적인 개인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 집단의 가부장적 구조의 일부이자 그 결과물이다

    운동사회에는 내부의 성폭력을 묵인, 은폐, 재생산하는 독특한 논리와 체계가 작동해왔다는 점에서 분석이 필요하다

    사건을 은폐하고 묵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해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운동사회에서 추방하는 고유의 메커니즘이 존재해왔다

    대의를 위해 참으라는 대의론, 위기에 처한 조직을 보위하기 위해 덮어야 한다는 조직 보위론

    반대 세력이나 프락치의 음해라고 보는 음모론 등이 있다. (167)

 

26) 강함을 남성성으로, 약함을 여성성으로 등치하는 의미 체계는 가부장제가 작동하기 위한 기본 요소다

    강력한 국가폭력에 맞서 대항폭력 또한 강력해질 것을 요구하던 사회운동의 문화 속에서 

    강인함과 냉철함은 좋은 운동가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필수적인 미덕으로 간주돼왔다

    반면 약함과 감성적인 특성은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감정적이고 예민하며 비합리적인 존재로서 구성된 여성이라는 위치 때문에 

    여성 활동가들은 분노나 괴로움을 느껴도 감정 표현을 억제하거나 개인적으로 감수하려는 경향을 갖게 됐다. (108~109)

 

27) 한국 사회운동은 초반부터 지식인이 중심이 되어 발전해왔으며 

    그중에서도 대학생들의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선도 투쟁이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깨어있는 지식인이라는 지사적 위치에서 대중을 선도해 나간다는 자의식은 특히 1980년대 학생운동가들에게 널리 퍼져 있던 관념이다

    그러나 전위/대중, 지도자/추종자라는 위계적 이분법에서 드러나듯이 1980년대 한국 사회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인 엘리트주의는 

    지도자 위치에 있는 남성 활동가들에게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면서 결과적으로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 경험을 폄하하는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낳았다. (81)

 

28) 누이를 잃은 남성은 투쟁의 주체로 적합하며 투쟁의 의지를 불러일으키지만 

    오빠를 잃은 여동생은 남겨진 가족이지 투쟁의 주체로 읽히지 않으며 

    투쟁 의지보다는 한이나 슬픔을 환기시키기 때문에 투쟁에서 사용되는 호칭으로 적합하지 않다

    이것과 연결되는 맥락에서 정희진은 왜 비전향 장기수는 선생님이고 위안부 피해자는 할머니로 부르냐고 물으면서

    남성 젠더의 지배 역사 속에서 남성은 역사의 주체이자 행위자인 선생님이고 

    여성은 역사의 피해자로 간주되는 비정치적 존재로서 할머니가 된다고 비판한다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투쟁하는 주체로 불리지만 

    여성은 사적 영역에 속한 가족 구성원으로보호의 대상이거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희생자로 나타난다. (121)

출처 전희경 지음, <오빠는 필요없다>, 이매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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