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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스포] 콘트라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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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한유적
추천 : 5
조회수 : 3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28 19: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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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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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자신의 방에서, 콘트라베이스와 자신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마치 청중이 있는 양 이야기하지만 아무래도 방 안에는 혼자 있는 것 같다. 콘트라베이스의 위대함, 결점,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의 자신의 삶, 입지, 자신이 짝사랑하고 있는 상대, .... 격정적으로 이야기하던 그는 곧 있을 음악회에 연주자로 참가하기 위해 방을 나서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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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콘트라베이스를 찬양한다. 콘트라베이스가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악기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콘트라베이스 없이는 오케스트라가 성립할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콘트라베이스를 혐오한다. 투박하고 다양하지 않은 음역, 커다랗고 볼품없는 모양새. 자기 삶의 한쪽에 자리 잡은, 발에 채는 애물단지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콘트라베이스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자신이야말로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자부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눈에 띄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같은 오케스트라에서 성악가로 활동하는 여자다. 그는 그녀의 외양과 노래 실력에 푹 빠졌지만, 말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도 없고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그는 그녀가 나이 많은 다른 남자 성악가들의 비싼 저녁 식사 초대에 응해 같이 밥을 먹는 모습에 분노를 느끼고, 제멋대로 관계를 지속할지 말지를 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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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은 건조하고 외롭다. 그의 집은 특수 유리창과 방음판을 둘러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시간이 남을 때는 주로 연습만 하는 편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는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확고한 자존감이 있지 않은 이상 부정적인 생각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부터 많은 실패와 고난을 겪고 주저앉은 그로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또한, 그는 소심하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 한 번 붙여보지 못했고, 붙여볼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 '내 연주 실력을 듣고 감명해 날 알아봐 주길' 바라거나 '연주회 중 느닷없이 괴성을 지르면 자신을 주목해주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만 한다.

책의 초반부만 보면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충만한 것 같다. 단지 주변 사람들이 못 알아볼 뿐, 스스로 중요하고 우수하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반대의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는 자신을 비하하고 폄하한다. 자기 혐오가 심하다.

'우리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들은 그런 점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지하 묘지를 지키는 사나운 수문장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지요. 아니면 음악이라고 하는 것을 몽땅 어깨에 짊어지고 끊임없이 산 위를 올라가야만 하는 시지푸스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찢겨진 가슴을 부여잡은 채, 남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는 꼴을 말입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어떤 시각으로 살펴보아도 최후의 쓰레기 같은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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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이 주인공이 나와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소심한 사람이 실패와 역경이 쌓이면서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더 소심해지고, 결국에는 자신을 고립해서 몰아세우거나 자기 혐오에 빠지는 것. 주변에 도움을 청한다는 선택지는 아예 없고 그저 자기 속으로 계속 파고드는 것. 내성 발톱 같다. 놔두면 계속 살을 파고들지만,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그에게 친구를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 그게 힘들다면 이 책을, '콘트라베이스'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를 제삼자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1, 2년 전에 한참 힘들어하던 나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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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지막에 이야기를 끝내고 방을 나서면서,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주목받기 위해 연주회 중간에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겠다고 말했다. 음악회는 엉망이 되고 자신은 잘리게 되겠지만, 그녀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말했다. '그럴 용기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주회 중간에 고함을 지를 수 있었을까?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소심한 그는 그것을 속으로 상상만 할 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용기는 필요 없다. 자신이 잘리기만 할 뿐,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좋겠다. 창문을 열고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용기. 방을 박차고 나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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