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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예찬 (12) - 오후 4시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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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다뎀벼
추천 : 1
조회수 : 5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23 11:34:35
우주적인 사운드를 표출하는 영국의 신디사이저 주자 버드 엘칸트라~
그가 반인반수의 사이고트를 주제로 한 음악을 연주한 적이 있었다.
아포와 알레시를 이용한 리브즈 샌드~..
지극히 도시적인, 메마른, 냉소적인 음악의 골에서
반은 인간이고 반은 염소인 사이고트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표출하려 했는지도..
 
오후 4시는 희망이 없다.
기형도의 詩는 정곡을 피해, 나를 찌른다.
눈앞에 보여지는 시계의 유랑.. 현재 시간 11시 34분..
예리한 초침이 조금 둔한 분침을 따라 잡는 지금,
마치 나는 사이고트가 된듯하다.    (다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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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의 희망   - 기형도 -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간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 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김은 중얼거린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과 섞였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김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본다, 쏟아질 그 무엇이 남아있다는 듯이
그러나 물을 끝없이 갈아주어도 저 꽃은 죽고 말 것이다, 빵 껍데기처럼
김은 상체를 구부린다, 빵 부스러기처럼
 
내겐 얼마나 사건이 많았던가,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
그러나 경험 따위는 자랑하지 말게 그가 텅텅 울린다, 여보게
놀라지 말게, 아까부터 줄곧 자네 뒤쪽에 앉아있었네
김은 약간 몸을 부스럭거린다, 이봐, 우린 언제나
서류뭉치처럼 속에 나란히 붙어 있네, 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아주 얌전히 명함이나 타이프 용지처럼
햇빛 한 장이 들어온다, 김은 블라인드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가볍게 건드려도 모두 무너진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네
 
김은 그를 바라본다, 그는 김 쪽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
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
 
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
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
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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