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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제국을 그리워하며- 라데츠키 행진곡/ 요제프 로트
게시물ID : readers_290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역둔토
추천 : 2
조회수 : 48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7/21 15:16:24



라데츠키 행진곡이라는 단어를 본다면 대개 요한 스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유명한 행진곡을 떠올릴 것이다.

라데츠키 행진곡은 요한 스트라우스 1세가 1848년 전 유럽을 뒤덮은 혁명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라데츠키 장군이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로 무장하고 빈 체제를 붕괴시켜 외세의 지배를 받는 이탈리아를 되찾고

통일하기 위해 일어선 사보이 왕국과 이탈리아인들을 제 1차 쿠스토자 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격파하고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붙인 행진곡이다. 그런 면에서 살펴본다면 라데츠키 행진곡은 보수적인

구체제를 옹호하며 전혀 다른 언어, 종교, 관습을 가진 다민족이 얼기설기 엉겨 붙어 있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가치관, 이념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군주인 황제를 위한 교향곡이라고 보기에 충분할 것이다.

 

아마 라데츠키 행진곡에서 영감을 얻었고 작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했을 소설 라데츠키 행진곡에도

행진곡 라데츠키 행진곡의 주제가 자주 엿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소설의 배경인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엽까지의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향곡, 라데츠키 행진곡이 내포하는 바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교향곡과 반대로 소설

라데츠키 행진곡에서는 행진곡이 지키려했던 가치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설 라데츠키 행진곡은 행진곡의 가치와는 다르게 19세기 말, 20세기 초 시대가 보내고 시간의 흐름이

가져온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족주의가 밀려오고 있는 와중,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통제력은 물론이거니와 제국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와 능력조차 빼앗겨 버린 낡아버리고 무너져가는 제국.

행진곡 라데츠키 행진곡이 내포하고 있는 것들을 잃고 행진곡이 경멸해 마지않았고 적대했던 것들에

파멸해버린 제국을 향한 작가의 담담한 장송곡이다.

 

소설이 제국에 대한 담담한 장송곡이라고 느껴진 것은 책을 다 읽고 나서 되새김질 해볼 때에도 들었지만,

작가의 배경에 대해 대강 조사하자 더욱 확신이 들었다. 작가 요제프 로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혼기인 1984년에 태어나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와 그 시체 위에 세워진

민족국가의 수립을 직접 목격했다. 작가가 제국의 붕괴와 신생국의 수립에서 박탈감을 느끼고 사라져버린

옛 제국에 대한 장송곡을 집필한 것은 그가 독일인이 아니라 독일화된 유대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갈리치아-로도메리아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화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럽에서 산업화가 미진하고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많이 보존했다고 평가받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안에서도

갈리치아-로도메리아는 가장 발전이 더딘 곳이었다. 그곳의 주민들은 대개 폴란드인 귀족과 지주 아래에서

농사를 짓는 폴란드인이거나 우크라이나인이었고 유대인들은 지역의 최상위 지배자인 오스트리아인 행정 관료,

장교와폴란드인 지주 밑에서 하급관리인, 하급 장교나 하사관을 맡거나 상업에 종사했다.

독일화된 유대인들에게 조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였고 조국은 그들의 생계를 보장해주었다.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이나 안 믿고 독일화된 유대인 모두에게 차별이나 모욕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포그룸이 상시적으로 일어나 유대인들이 떼거지로 죽어나가는 동쪽의 러시아제국과 루마니아 왕국,

반유대주의가 노골적으로 창궐하는 독일 2제국과 프랑스 등에 비하면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최소한 유대인에

대한 집단 테러를 막아주고 노력에 따라 괜찮은 지위도 얻을 수 있는 그들이 사랑을 바칠만한 조국이었다.

그러나 세계대전으로 제국이 파멸하고 생겨난 민족국가들에서 유대인은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민족주의에 자극 받아 세워진 신생국 어디에서도 유대인은 환영받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에 성실히

종사하거나 열심히 공부하면 출세의 기회도 어렵사리 얻을 수 있었던 조국을 잃고 내팽겨졌다. 어떤 나라도

그들을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길 원하지 않았다. 차별과 모욕이 더욱 거세졌을 뿐 아니라 수시로 공권력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는 위치로 전락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민족인

독일인이나 헝가리인보다 유대인들이 사라져버린 옛 나라에 대해 더 절절한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쓴 머리말에 이것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다.

 

나는 제국을 사랑했습니다. 나를 애국자이면서 여러 민족들과 함께 하나로 묶어주었던 조국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조국의 미덕과 장점을 사랑했으며, 조국이 망해 없어진 오늘날 조국이 가졌던 오류와 약점마저 사랑합니다.

(중략) 황제의 병사들인 우리 모두는 우리의 마지막 황제가 돌아가셨으며 황제와 더불어 우리의 고향, 청춘,

세계도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것을 소설의 기초로 삼아 소설의 주인공 격인 <트로타 가문>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가가 제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보여주는 것마냥 주인공 일가는 슬라브족인 슬로베니아인 출신이지만

자신들을 오스트리아인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강해지고 어떤

위협을 받는지 묘사하고 있는걸 보고 있자면 작가가 제국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독일화한 슬라브족이 주인공인 것은 교향곡 라데츠키 행진곡⌟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라데츠키 장군의 선조는 체코에서 기원한 슬라브족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라데츠키 장군은 스스로를

체코인이나 슬라브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오스트리아인이며 황제의 충복이라고 정의했다.

 

아마 이 소설을 집필한 1932년 이후에 작가의 제국에 대한 감정은 더 깊어졌을 것이다.

1933년 히틀러가 독일에서 집권하자 반유대주의를 피해 유럽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 연재의 머리말에서 제국의 오류와 약점마저 사랑한다고 말한 것처럼 제국의 아름다운

면이나 긍정적인 면만을 묘사해 놓지는 않았다. 제국의 관료제와 군대가 얼마나 허례허식에 찌들어 껍데기만

남아 있었는지 변화에 느린 제국이 어떤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와 구시대적 관습에 매몰되어있는 사회를 주인공

일가의 삶에 여기저기 배치해 놓았다.

 

사라져버린 제국에 대한 사랑에서 나왔을 제국의 여러 면, 아름다운 면이나 추한 면을 동등하게 묘사하려고

했던 소설 라데츠키 행진곡은 그러한 점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전혀 관련 없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 그 시대에 제국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려주는 좋은 자료이다.

관심 있는 시대의 풍경을 엿보거나 향취를 맡아보고 싶을 때에는 딱딱한 역사책보다 그 시대를 자세히 묘사한

소설이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소설 라데츠키 행진곡이 보여준다. 더욱이 그 소설이

그 시대에 직접 살았던 사람이 쓴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책 말미에 실린, 작가도 생전에 직접 읽었을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감동을 어떤 이들은 냉소를 표했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선언문 한 구절, 그리고 라데츠키 행진곡이 엿보이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겠다.

 

나는 모진 풍파에도 항상 나의 황위를 중심으로 충성스럽게 일치단결했으며, 조국의 명예, 위대성, 국위를

지키기 위해 막대한 희생을 기꺼이 치렀던 나의 민족들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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