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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필사]이승우 소설집 『신중한 사람』
게시물ID : readers_291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ㅁㅈ이
추천 : 5
조회수 : 23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8/02 16:48:09

이승우 소설집 『신중한 사람』



무수히 많은 자잘한 반점들이 불안정하게 점멸하고 굵은 물결무늬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무수히 많은 반점들과 흔들리는 물결무늬를 헤치고 어떤 형상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잠에서 채 벗어나지 않은 내 눈으로는 불가능했다.

하긴 부러 그러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그러든 옆 사람의 기분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 세상과 잘 접촉하는 사람의 특징인지 모를 일이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무엇인가를 향해, 그것이 무엇이든, 온몸을 내던지듯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나는 불편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와 과감하고 거침없는 움직임을 거북해하는 것 같다. 그들이 과감하고 거침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들이밀고 대들 것 같아 무섭다고 해야 할까.

「리모컨이 필요해」



그의 아내는 치밀하지 못한 신중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약함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신중하기만 하고 치밀하지 못한 것보다는 신중하지 않더라도 치밀한 편이 낫다고 투덜거리곤 했는데,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라고 Y는 생각했다. 치밀하지는 못해도 신중할 수는 있지만 신중하지 않으면서 치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신중한 자는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며 산다. 현상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때때로 비겁해진다.

안에 누군가 있는 게 분명하지만, 안에 누군가 있다는 건, 그가 누구든, 아주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누군가는, 그가 누구든, 거기 있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은 사람은 Y말고는 없었다. 그러니까 Y의 저어하는 마음은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예감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못견뎌 하면서도 견뎌낸 것은 견뎌내지 않을 때 닥쳐올 또 다른, 어쩌면 더 클 수도 있는 억지와 불합리와 막무가내에 대한 예감 때문이었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꺼리는 사람이, 꺼리면서도 부자연스러운 것을 내치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공식이 이래서 성립한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꺼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더 잘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거부하는 자신의 태도가 혹시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끔찍해하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부자연스러움보다 자기가 만들지도 모르는 부자연스러움을 한층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신중한 사람」



일흔세 살은 넘치는 나이도 모자라는 나이도 아니다. 누구에게는 넘칠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는 모자랄 수도 있다.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을 결정하는 객관적이고 엄정한 저울 같은 것은 없다. 다만 그 나이를 품은 각자의 몸이 스스로 넘치거나 모자란다는 감각을 거느릴 따르이다. 몸의 감각 속에 미래를 보는 예지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떻게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같은 걸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대가 어떻게 하든 받아들이기로 정해놓은 거산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이런 경로를 통해, 저렇게 하면 저런 경로를 통해 같은 걸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어떤 태도를 취할지 궁리할 필요가 없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혹은 알더라도, 어떤 태도를 취할지 궁리하게 되고, 결국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말 어떤 태도를 택하게 된다.

그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서체와 문장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서체와 문장이 그의 기억을 끌어내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기억하라고, 인정하라고 몰아대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욕심내고 있다는 건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순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래된 편지」



그는 내가 어떤 반응인가 해주기를 바랐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익숙한 과거와 단절하고 낯설고 새로운 구상을 실천에 옮기는, 혹은 낯설고 새로운 구상을 실천에 옮기는, 혹은 낯설고 새로운 구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익숙한 과거와 단절한 사람 특유의 긴장과 열기에 지나치게 휩싸여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미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러나 지나간 시간으로 존재할 것이다. 시간은 나아갈 것이고 이미는 남겨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가므로 이미는 시간의 뒤에 머물 것이다.

그곳에서 산다는 것은 다만 어딘가에 들러붙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었다. 들러붙어 있는 것들에 들러붙는 것,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들러붙어 있는 것들에 들러붙어 있는 것들에 들러붙는 것......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많으면 과거에 집착하게 되고 과거에 했던 일을 떠올리게 되고 과거의 시간 속에 사는 것처럼 살게 되고 과거의 시간 속에 사는 것 같은 착각을 가지고 현재를 살게 된다. 그는 지금 여기 있지만 지금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여기 있지만, 지금 여기는 그를 간섭하지 못한다.

안개는 꿈틀거리며 솟구치면서 뻗어나간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흡사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 같다. 잔디공원은 개와 그의 놀이터가 아니라 안개의 놀이터다. 잔디공원 안의 모든 것, 연못과 나무와 의자와 개와 그를 포함한 모든 것이 안개의 놀잇감이다. 안개는 잔디공원 안의 모든 것을 가지고 논다.

「이미, 어디」



질문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질문을 받은 자가 의무를 진다는 생각은 피상적이다. 아무 부담도 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질문한 자가 지는 의무에 비하면 대단하다고 할 수 없다.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질문자는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한다. 질문했기 때문이다. 대답이 나온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었으므로, 대답까지 들었으므로, 질문자는 대화를 끝낼 수 없다. 기대한 대답을 들었다면 기대한 대답을 들었기 때문에 끝낼 수 없고, 기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면 기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끝낼 수 없다. 자기가 기대한 대답을 듣지 못해서 대화를 이어가기가 싫어졌고, 그래서 대화를 서둘러 끝냈다는 혐의를 받지 않으려면 기대했던 대답을 듣지 못했어도 대화를 끝내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기대하는 대답이 따로 없다면.

질문의 성격이 대답에 의해 규정되기도 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예컨대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나 심각한 질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답한 내용의 성격에 의해 우스꽝스러운 질문과 심각한 질문이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질문이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기까지는 우스꽝스럽지도 않고 심각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굳이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얄궂게도 굳이 기억해낼 필요 없이 기억된다. 기억해낼 필요 없이 기억되는 것들은 대게 기억해내고 싶어 하지 않은 것들이다.

「딥 오리진」



그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은 어두워지는 것이 무서워 되도록 눈을 감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고, 잠들었다가도 자주 쉽게 깨어나는 것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 어둠이 의식되는 어떤 순간 무서움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나의 고객은 어둠이 두려워 빛을 버틴다.

시계는 미안해하지도 않고 겸연쩍어하지도 않는다. 시계는 아주 천천히 제 길을 간다. 나에게 밤은 정답지도 사납지도 않다. 다만 지루할 뿐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해야 했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는 걸 안다.
그 순간이 언제나 너무 늦게 찾아온다는 것도.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대개 어떤 이유로든 그렇게 할 수 없게 된 순간이다. 그렇게 할 수 없게 된 순간에야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니까 불필요한 깨달음이다.

상처는 대개 나의 뜨거움에서 비롯했다. 나는 늘 뜨거웠고, 뜨거움에 데었고 허기졌고 안타까웠고 혼란스러웠고 불안했다.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에 더 닿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나는 주어와 목적어를 맞바꿔서 만든 두 개의 미래형 문장의 차이가 소멸되고, 증오와 두려움, 위협과 불안이 뒤섞이는 기묘한 경험을 했고, 나 역시 두려움이거나 증오, 혹은 두려움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절부절못한 상태에 빠졌고, 어쩔 수 없이 혼란스러워졌다.

내 고객들은 모두 심약한 사람들이야 누구보다 약하고 억눌린게 많고 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지.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야. 칼을 모을 만큼 강한 것이 아니라 칼을 수집해야 할 정도로 약한 거지. 칼을 가지고 무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칼을 소지하는 거야......

「칼」



기다리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3주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은 오로지 기다리는 일만을 하기 때문이다.

기다릴 때까지 기다렸지만, 더 기다려야 했다. 기다릴 때까지 기다렸다고 해서, 기다린 것이 오지 않았는데도, 그만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직 기다린 것이 오지 않았다면, 아무리 오래 기다렸어도 기다릴 때까지 기다린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기다림은 기다리는 것이 올 때까지 연기 될 수밖에 없다. 실은 연기되는 것이 기다림의 속성이기도 하다. 무한정은 기다림의 속성이고 무작정은 기다리는 사람의 태도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기다린다. 그러니까 참된 기다림은 연기되는 순간부터 비로소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이미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의 귀에는 현실감 있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든 다 들어주었지만 그가 듣는 이야기들은 현실감이 탈색되고 고유의 내용과 의미를 따라 구별되지 않았으므로 듣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도 없는」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진실, 즉 완벽한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웧나는 것은 다만 그들이 제기한 의혹을 인정하고 항복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가르쳐주는 그를 그가 몰랐던 진정한 그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만족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어렵다.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믿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치욕은 사람의 몸을 뜨겁게 한다. 치욕 앞에서 사람의 몸은 정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열을 내고 뜨겁게 달궈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정신의 수치는 몸의 그 달궈진 뜨거움에 의해 드러나고 만다. 목의 흉터를 가리려는 목적으로 두른 목도리가 거꾸로 목의 흉터를 강조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위장이 고백이 된다. 위장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이 고백하게 된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없는 다른 것을 보기 때문이다.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 다른 것을 보는 자는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굳이 이해하자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란 뜻이다. 당신은 ‘굳이 이해하는’데 탁월한 사람이다. 굳이 이해할 수 있으면 이해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해서. 그래야 그 문제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

문제를 축소해서 말하는 것이 위로의 방법이라는 것을 당신은 안다. 위로의 문장은 축소하는 문장이다. 위협을 가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확대하고, 위로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축소한다.

진실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사람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잘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며,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잘 받아들이는 척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게 당신의 생각이다. 따라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정말로 받아들였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많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하지 않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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