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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판타지입니다
게시물ID : readers_296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0월의밤
추천 : 2
조회수 : 18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9/16 23:13:21

혼자 끄적거리던 판타지입니다. 

앞부분만 잘라서 올려봅니다. 혼자 쓰니까 재미가 덜해서ㅜa





감히 늪지대 숲을 침범하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용의 백성만이 번영할 수 있었을 뿐.

 

 

 

 

[1]

 

이런 바보 천치 새끼.”

이거 줄 테니까 우리 영지에서 썩 꺼져버리라구.”

 

제법 굳은살 박인 아이의 주먹이 흙바닥에 주저앉은 청년의 뒤통수를 자비 없이 가격했다. 뻑 소리가 요란한 걸 보니 큼지막한 혹을 선물한 게 틀림없다.

 

저 싸가지 없는 놈들이 이번엔 또 누굴 괴롭히고 있나.

 

영지 브릿의 전속 해양지도 제작자 숀 아이작은 육안으로 원거리 사물을 잘 식별하지 못했다. 가늘게 실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 보던 그가 결국 목에 늘어뜨린 안경을 코에 걸친다.

 

덕분에 건물 몇 층 아래 넓은 장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이 선명해졌다. 성정 거칠기로 소문난 레인저들의 자녀들이 셋. 그리고 녀석들의 주먹세례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흑발 청년이 하나.

 

어디보자, 저 얼뜨기 놈 얼굴이!

 

멍청하게도 매가리 없이 주저앉아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청년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단춧구멍처럼 작은 아이작의 두 눈이 단번에 쟁반만 해졌다. 곧바로 기겁을 한 그가 한 아름 들고 있던 서류들이 무너질 새라 비틀비틀 층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놈들아! 그만 두지 못 할까!”

, 안경잽이 떴다!”

 

건물 복도 난간을 붙잡고 고래고래 외치는 아이작을 발견한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한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숀 아이작은 수도사처럼 밋밋한 옷차림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영지민들에게 본명보다 안경잽이로 통할만도 했다.

 

저 분이 뉘신 줄 알고 함부로 손을 올려? 이 천 벌 받을 놈들! 용 하품에 녹아버릴 육시랄 놈들!”

 

용의 영지 브릿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용과 관련된 관용어가 많았다. 용 발바닥에 찍힐 새끼, 용 꼬리에 모가지 꺾일 새끼 등등의 욕설도 포함해서.

 

용 코딱지보다 못한 아새끼들, 용 비늘 하나 못 뗄 쫄보들이, 감히 용 콧털을 건드려?!

 

용용 욕을 하며 허둥지둥 2층을 돌아서 뛰어 내려가던 아이작이 갑자기 발걸음을 딱 멈추었다. 으흠. 영문 모를 침음을 흘린 그가 다시 뒷걸음질로 계단을 거꾸로 올랐다.

 

아무래도 시야 한 구석에 낯익은 색이 스쳐간 게 영 찜찜하게 걸렸기 때문이다.

 

아이고, 제니에님!”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에게 기시감을 던진 색을 지난 남자는 과연 예상대로 그 사람이었다.

 

여기서 도대체 뭐하고 계십니까? 저기, 저 밖에서 나는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지금 막내 공자님께서 위험에 처하셨다고요!”

아 왜, ……. 저번처럼 흙 퍼먹다가 배탈 났대?”

그런 사소한 문제 정도가 아니에요. 하도 얻어 맞으셔서 뇌진탕 걸리게 생기셨다니까요, 지금!”

? 어쩌다가?!”

저한테 따져 묻기 전에 밖 좀 쳐다보시죠!”

 

아이작이 숨넘어가게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러자 처음엔 마지못해 응수하는 듯 했던 남자가, 2층 재고실 구석에서 바람처럼 복도로 뛰어나왔다. 재고실 안에서 그와 은밀하게 시시덕거리던 심부름 하녀가 당황하여 말문을 떼기도 전이었다.

 

제니에라 불린 남자의 가장 인상적인 특색이라면 역시 순은보다 밝게 탈색된 백발을 꼽을 수 있으리라. 듬직한 장정의 체구에 백발 자안. 누가 봐도 이국적인 외양을 가진 남자.

 

저것들 봐라.”

 

한 손 그늘을 만들어 광장을 훑어본 제니에가 재빠르게 창이 없는 복도 난간 위로 뛰어올랐다. 준비 자세와 도약은 동시였다. 가볍게 장원 바닥을 굴러 착지한 남자가 달린다. 그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올망졸망 복도로 구경 나온 사람들의 눈도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아니, 저 놈이 멋있어 보이려고 발목 아작낼 셈 인가.

 

으아, 도망가자! 호호 할아버지 쫓아온다!”

도망가긴 어딜 도망 가.”

! 살려 줘!”

 

결국 가장 살집이 많아 민첩하지 못한 아이부터 덜미가 잡혔다. , 입 바람으로 앞머리를 날린 제니에가 매운 손길로 덜렁 들어 올린 아이의 이마를 후렸다.

 

내가 말했지. 호호 할아버지가 아니라 잘 생기고 똑똑한 제니에님이라고 했어, 안 했어?”

맙소사, 제니에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아이 대신 꽥 소리를 지른 건 2층 난간에 떨어질락 말락 매달린 아이작이었다.

 

그러나 그를 힐끗 쳐다 본 제니에는 아랑곳 않고 또 한 번 아이의 이마를 때렸다.

 

그리고 막내 공자님 괴롭히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닭대가리도 이 정도로 일렀으면 달달 암기해서 복명복창을 하지 않았을까요? ? 이 닭대가리만도 못한 무식한 꼬맹이들아.”

그만 때려! 재수 없는 이방인 놈들! 너희들이 우리 영지에서 꿈지럭거리니까 재수가 옴 붙는다고! 썩 나가지 못해?!”

 

 

딱밤 두 방에 기가 죽긴 일렀나 보다. 벌겋게 달아오른 이마를 숨기며 통통한 아이가 빽빽 소리를 질러댔다. 주변 어른들이 숙덕거리던 내용 그대로 상대방을 욕보이려 애를 쓴다. 하지만 아이를 제 코앞까지 높게 올린 제니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되레 비웃음으로 맞받아치는 것이다.

 

얼씨구. 이방인 같은 소리 하네. 네가 감히 우리 공자님의 혈통을 의심한다, 이거냐. 이거 말로 타이르려 했는데 안 되겠군, 그래. 어디 한번 법정에 가서 따져볼까?”

…….”

 

목소리를 낮추어 음험하게 위협하자 아이의 얼굴에서 금세 독기가 빠지고 겁먹은 표정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거짓말쟁이 선동꾼이 무슨 벌을 받는지는 알겠지? 꼬챙이로 혀를 찌르고 단 번에 삭!”

, 그랬다간 우리 아버지가 가만있으실 줄 알아허엉, 아버지, 아버지! 망할 할아범탱이가 나 괴롭혀요!”

 

아이는 수세에 몰리자 아버지, , 누나, 삼촌 등등 힘이 되어줄 만한 뒷배를 목 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이게 또 할아범이래. 너 혹시 지능이 좀 달리냐? 5초 전에 한 말도 까먹게?”

제니에님! 야단 좀 치랬지, 시비 걸라곤 안 했어요! 애들 상대로 유치하게 좀 굴지 마십쇼!”

 

이번에도 아이작이 끼어들어 산통을 깼다.

 

이러니 누가 선생인지 모르겠군. 이래 뵈도 영주님께 임명받은 가정교사는 난데 말이지.”

 

한숨을 내쉰 제니에가 묵직한 아이를 내려놓았다. 기회가 생기자마자 아이는 그의 팔을 내치고 멀리 도망을 놓았다. 발빠르게 성문까지 도망간 아이의 패거리들이 저 멀리서 메롱질을 해댔다.

 

그래도 눈물 찍 나오도록 혼내주었으니 당분간은 얌전할 테지.

 

그제야 바닥에 주저앉은 막내 공자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제니에가 뒤돌아섰다.

 

뒤돌자마자, 급속도로 창백해진 얼굴을 한 그가 잽싸게 공자의 손목을 붙들었다.

 

내가 흙 퍼먹지 말랬지가 아니라 잖아요, 시어도어님! , 제발.”

 

아슬아슬한 순간에 방어에 성공했다.

 

막 시어도어의 이 사이에서 씹히려는 흙덩이를 빼앗아 든 것이다. 손가락 사이에서 꾸물거리는 지렁이 머리를 본 제니에의 등골에 서늘한 식은땀이 흘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번엔 길게 몸을 편 콩벌레들이 흙덩이 아래로 뚝, 뚝 떨어져 뒤집어진 채로 버둥거렸다. 그 끔찍한 광경에 뒤늦은 욱심이 제니에의 뒷골을 강타했다.

 

시발, 저 새끼들을 그냥 놓아주는 게 아니었다.

 

제니에의 눈앞이 분노로 벌겋게 물든 줄도 모르고,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고 있던 시어도어가 느린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이거 흙 아냐주먹밥, 이랬어.”

 

그마저도 제니어의 복장을 뒤집는 내용이었다.

 

맙소사, 이젠 눈도 삐었어요?! 이게 어딜 봐서 사람이 처먹을 음식으로 보입니까. 설마 이거 준대서 따라 나온 거예요?”

놀아주면 밥 준댔어.”

……!”

배고파.”

 

벌레 주먹밥에응징을 끝낸 제니에의 손을 잡고 일어선 시어도어가 아무렇지 않게 무릎을 툭툭 털었다. 늘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제니에가 왜 화가 났는지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갸우뚱한 열여덟 청년이 아랫배를 문지르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제 전담 교사, 제니어가 화난 것과 별개로 배가 고픈 건 사실이었다. 이른 아침에 배급 받은 딱딱한 빵과 희어멀건 죽을 끝으로 여태 아무 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다.

 

꾀를 부리는 식사 담당 하인들에게 엄호령 할 줄도, 회유할 줄도 모르는 바보 공자.

 

주린 배를 부여잡고 저를 찾아 나섰다가 애새끼들한테 잘못 걸린 거겠지. 제니에는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억지로 씹어 삼켰다. 엉긴 홧덩이를 넘긴 목구멍이 아프도록 쓰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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