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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창작 - 공돼
게시물ID : readers_296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공돼
추천 : 3
조회수 : 23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9/18 05: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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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안녕하세요. 글쓰기 연습 중인 공돼입니다.

글을 읽고난 소감이라면 욕이든 비방이든 좋습니다. 제 글을 쓰레기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주제가 별로다", "말투가 별로다", "지루하다"같은 추상적인 소감도 저에게 귀중한 공부가 됩니다. 한 분이라도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이 계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완전한 창작-

 창작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고통'이다.

이런 글쓰기 연습조차 고통을 느낀다.

내가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글을 가려 써야 하기 때문이다.

개성 있는 주제, 신선한 내용, 앞뒤가 맞는 주장, 사람들의 관심.

장애물이 많다.

어찌어찌 글이 마무리되면 '나의 글'이 완성된다.

오늘따라 '글'앞에 '나의'라는 표현이 눈에 밟힌다.

"정말 내 것일까"

"완벽히 나만의 창작일까"


 의문은 의문을 낳고, 한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완전한 창작은 존재하는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은 완전한 창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그림을 '표절'이라고 주장할만한 단서와 증거들은 이미 불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명곡의 한 소절은 무명 작곡가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습작의 한 소절과 일치할 수도 있다.

"증거가 없기 때문에", "내가 처음 본 것이니까", "개성 있으니까"

완전한 창작이라는 여러 가지 주장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증명이 될 수는 없다.

완전한 창작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된다.

누군가의 글, 누군가의 노래, 누군가의 그림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창작물에 녹아들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 창작의 '굴레'는 합리화를 하든, 자기최면을 걸든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그 굴레가 풀리지 않는 한 창작과 고통은 언제나 함께 일 것이다.

보잘것없지만, 다음 문단부터 굴레를 벗어나는 발버둥을 쳐보겠다.


'완전한 창작'이라는 발상부터가 잘못되었다.

완전한 창작은 '창조'를 의미한다.

나는 신이 되려고 했다.

세상에는 피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쌍둥이처럼 닮은 사람도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왜 남의 얼굴 표절했어?"라고 따질 수 없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

그들은 "내 생각이 먼저였어"라며 다투지 않는다.

오히려 공감하고 가까이 두려 한다.

나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창작의 본질이고 순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작권은 '닮은 얼굴'과 '같은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창작 = 저작권' 곧 '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순리를 역행한다.


 저작권 문제의 근본은 양심과 확률에 있다.

남의 것을 허락 없이 차용하지 않았다면 창작을 망설일 이유는 없다.

그와 동시에,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생각하든 세상에 비슷한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단 하나뿐이야"라며 목숨 걸고 확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비슷한 것이 존재할 수 있어도, 이것은 분명 내가 만들었다"라는 말에는 목숨을 걸 수 있다.

창조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만, 창작에는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기반을 튼튼히 해주는 것은 여전히 양심이다.

자신의 양심은 튼튼한데 창작에 고통을 느낀다면, 창조를 시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완전한 창작' 욕구는, 창작 자체를 방해한다.

나는 이런 사고방식으로 창작의 고통 중 하나를 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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