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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readers_297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찬바람™
추천 : 2
조회수 : 463회
댓글수 : 31개
등록시간 : 2017/09/26 20:00:15
윤인석님의 매일 글짓기 과제 중에 올렸던 짧은 글입니다.
한시간 좀 덜 걸려서 지은 거라 허점이 많습니다만, 오랜만에 써 본 글이라 다른 분들의 평가를 받고 싶네요.
지적은 냉혹할 수록, 날카로울 수록, 깊을 수록 좋습니다.
모든 범위에서 태클 환영입니다.



과제명은 '선물이 사라졌다' 이고, 제가 붙인 제목은 '선물' 입니다.



아이가 불에 덴 듯 우는 소리에 화들짝 깨서 보니 시계는 아직 다섯시가 되지 않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또 세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이 못된 갓난 녀석이 나를 깨운 것이다. 깨질 듯한 머리를 한 손으로 잠시 감싸 쥐고 있다가 내 침대 옆에 바싹 붙여 놓은 아기 침대를 들여다보니, 녀석은 세상이 곧 끝이라도 날 듯 악을 쓰며 울어 대고 있었다.

일곱시 반쯤이면 나는 으레 출근 준비를 마치고 녀석을 한 팔에 안고 커피를 마신다. 이윽고 보모가 내 아파트 현관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혹시나 아이가 자다가 깰까봐 벨을 누르지 않고 조그마한 소리로 자신이 왔음을 알린다.
“일찍 오셨네요?”
“네, 빨리 오는 길을 알아냈어요.”
활짝 웃으며 말하는 그녀가 신발을 벗고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아이를 건넨다.
아이는 그녀보다 더욱 환한 얼굴로 그녀를 반겼다.
“어머, 어제는 지훈이가 아주 잘 잤나 봐요?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요.”
그랬을 것이다.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은 야근을 전혀 하지 않기 시작하고부터는 의외로 정신 없는 속도로 지나간다. 아내가 죽은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늘 피곤한 채이고 야근도 회식도 참석할 수 없는 내 사정을 동료들은 잘 이해를 해 주고 있지만,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부모님께 맡기지 그래?”
부장은 아직 내가 천애 고아임을 모른다.
“처가댁에 좀 도와 주실 분 없는가?”
부장은 아내의 부모님 역시 대학졸업 무렵에 모두 돌아가셨다는 걸 모른다.
그래서 결혼식을 조촐하게 치르고, 몇몇 친구와 동료만 초대했다는 걸 잘 모른다.
집에 돌아오면 내가 없을 때 보모가 어떤 재주를 부렸는지 지훈이는 그 품에 안겨서 잠들어 있었다. 나로선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얼른 그녀를 퇴근시켜야 했기에 아이를 조용히 넘겨받았다. 보통이라면 이럴 때 또다시 낯선 느낌에 깨어나서 빼액하고 악을 써 대기 마련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내가 받아서 안자 마자 지훈이는 눈을 반짝 떴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곧 울음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런데 지훈이는 내 눈을 말똥말똥 쳐다보며 웃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머, 이젠 지훈이가 아빠를 좋아하나 봐요.”
보모는 나를 보고 생긋 웃으며 말했다.

지훈이의 생일은 아내의 기일이었다. 아이의 첫돌까지도 보모는 지훈이를 돌보기 위해 매일 출근했다. 돌잔치는 하지 않았지만, 돌잡이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보모의 권유에, 난 주위에 물어보고 작은 케이크와 돌잡이를 준비했다. 보모와 내가 지켜보는 와중에 지훈이는 실타래를 집었다. 잘 했다. 이 녀석은 오래 살리고 말겠다. 반드시.
돌 무렵에 걷기 시작했지만 아직 나를 아빠라고 부르지는 못했다. 남자아이는 말이 좀 늦다더니. 하지만 이젠 나를 보고 늘 웃고 내 품에서 칭얼거리다가 잠든다.
두 돌이 지나자, 보모는 이제 복학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요. 그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진심일 수밖에 없었다.
“이젠 지훈이도 어린이집에 갈 수 있으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그동안……”
그녀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지훈이가 보모의 다리를 감싸 안고 보모의 얼굴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만난 사람은 언젠가 헤어지는 법이란다.

아침에 보모가 오지 않고 지훈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퇴근할 때 데리고 오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내 몸은 여전히 피곤했지만 녀석은 날이 갈 수록 기특해져 갔다. 나를 너무 잘 따르고 선생님들도 이렇게 잘 웃고 착한 아이는 처음 본다며 귀여워해주었다. 내가 몸살로 쓰러져서 하루종일 집에 같이 있게 되었던 날, 침대 위에 정좌하고 앉아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빠 많이 아파요?’ 라고 존댓말로 물었을 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세 돌이 되었을 때, 지훈이의 생일 겸 아내의 기일을 나름대로 챙기기 위해 아내의 사진을 꺼내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보모가 지훈이 생일 축하를 위해 와 있었다. 지훈이는 보모의 얼굴을 기억하는 듯 했지만 헤어질 때 보였던 애틋한 모습과는 달리 조금 낯을 가리는 듯 했다. 저녁을 먹은 후, 지훈이에게 엄마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훈아, 이 사람이 엄마야. 예쁘지?”
“엄마는 어디 있어요?”
바로 이 때를 위해 준비했던 말이 있었다.
“엄마는 지훈이를 아빠한테 선물로 주고는 하늘 나라로 간 거야. 하늘 나라 알지?”
“……”
“하늘 나라에서 엄마는 지훈이 지켜보고 있어. 아빠 말 잘 듣는지.”
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를 이해하는 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훈이는 아내가 주고 간 이별선물이라는 것은 진심이었다.

어떻게 이해를 한 것인 지는 알 수 없지만, 지훈이는 엄마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졸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훈이를 방에 재운 뒤, 아내의 사진을 창틀에 올려놓았다. 지훈이가 깨면 엄마가 바라봐 주고 있겠지. 방안이 너무 더운 것 같았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을 살짝 열어주고는 방문을 닫고 나왔다. 아직 감기가 걱정되는 나이였다.
보모는 내년 2월에 졸업이라고 했다. 유아교육이라는 전공이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으니 취업은 걱정 없을 거라고 화답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보모가 살짝 취했음을 알게 되었다. 난 분위기의 어색함을 줄이려고 티비를 틀었고, 우리는 자연스레 식탁에서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 뉴스가 한창이었다.
그녀가 잠시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는가 싶더니 내가 얼굴을 쳐다보자, 내 입술에 키스를 해 왔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입 안에 함께 밀려들어 왔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그녀의 몸 위로 쓰러졌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우리는 부끄러운 표정을 한 채 멋적게 웃으며 옷을 다시 챙겨 입었다. 나는 지훈이가 혹시 깨어서 봤을까 걱정이 되어 방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지훈이는 침대에 없었다.
소리를 지르며 방의 불을 켰다. 침대는 아직 따뜻했지만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커튼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창 틀에 있던 아내의 사진도 온데간데 없었다. 보모는 웃옷을 껴입다가 놀라서 달려왔고, 우리는 반사적으로 창 밖을 내다보았다.
18층 높이였지만, 가로등이 켜져 있는 1층의 화단 옆 바닥에 무언가 보였다. 지훈이로 보이는 아이가 사진액자로 보이는 물체에 손을 뻗은 채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나를 잡아당기고 있던 중력이 갑자기 약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고, 보모가 무엇이라 외치는 모습이 보였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가 창틀에 부딪히는 감각을 느꼈고 잠시 창 밖에 보이는 반달이 여러 개가 되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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