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도수없는 안경을 쓴 소녀를 안경소녀라고 할 수 있는가
게시물ID : readers_300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3
조회수 : 3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22 15:06:58
 도수없는 안경을 쓴 소녀를 안경소녀라고 할 수 있는가
 
 늦게 연락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아무 사실도 알리지 않은채 떠나는 것 보단, 그래도 알리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이렇게 용기를 내서 편지를 씁니다. 편지에는 작은 금액이지만 돈이 같이 들어있습니다. 무례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고, 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에 넣어두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많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녀가 일부러 당신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세부적인 것은 밝힐 수 없지만, 우리는 기관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특수부서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고, 그곳에서의 나날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습니다. 잠을 잘 수 없는 것은 물론, 거기서 훈련을 받은 사람은 남여 불문하고 온갖 폭행과 성적 희롱,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지냈습니다. 일부러 상처를 내고 죽으려고 뛰어들어도, 그들은 다시 최소한의 응급처치만 한 채 우리를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우리는 삶에 대한 희망도,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감정도 모두 잃은 채 죽고싶다는 생각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정들이었고, 하루빨리 그 일이 끝나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투입된 그 날, 임무는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가장 지독하게 훈련을 받았고, 절대 실패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작전에서 그녀가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죽음만이 이 세상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와는 달리, 그녀는 삶을 향한 갈망을 잊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는 두려웠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두려웠고,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녀 없이 이 임무는 성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실력으로는 그녀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생각을 되돌릴 방법을 찾기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당신을 찾았습니다. 어째서 쓸모도 없는 안경을 그녀가 원했는지 모르지만, 당신이 안경점에서 그녀와 만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당신과의 만남 이후 우리는 그녀와 당신이 가까워 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감시를 계속했습니다. 이미 그녀의 마음이 당신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다시 내려온 임무수행 날짜에 맞춰, 그녀가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빠져들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그녀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고, 자신보다 당신을 더 소중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간단했습니다.
 그녀에게서 당신을 빼앗아, 다시금 임무수행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납치한 그 날, 우리를 죽일 기세로 그녀가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총을 든 순간, 그녀가 무릎을 꿇고 우리에게 빌었습니다.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갈망했던 그녀가 당신을 살려달라고 울면서 빌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삶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겨버린 그녀가 할 수 있던 일이라고는 오로지 우리의 계획에 따르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당신도 알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임무에 성공을 했고, 작전중 총상을 입고 바다에 빠진 그녀를 제외하고 모두 함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자살을 시도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살아남아 편지를 쓰냐고 묻는다면, 살아남아 이렇게 당신에게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느 것이 적어도 이 끔찍한 짓을 저지른 우리의 잘못에 대한 마지막 속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다시 우리를 찾아온 날, 그녀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도수없는 안경을 쓴 소녀를 안경소녀라고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녀는 물체를 본다는 안경의 본질을 망각한 채 그저 도수없는 안경을 쓰기만 해서는 안경소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두운 밤 사랑을 노래하는 책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썼던 추억 없이 그저 도수없는 안경을 끼는 것으로 자신의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온갖 더러운 일을 저질러온 자신이 그저 안경을 끼는 것 만으로 연약한 모습이 되어,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 날 안경점에서 당신을 만난 이후로 그녀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비록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가지고 있더라도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도수없는 안경을 낀 소녀도 안경소녀라는 말에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 편지가 모든 의문을 풀 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와서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녀가 당신에게 가졌던 생각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끝이 났고, 공식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니면 죽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녀가 이야기 했던 것 처럼, 그리고 당신이 이야기 했던 것 처럼, 도수없는 안경을 낀 소녀도 안경소녀라는 말을 믿고 싶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써 본 편지라 너무 횡설수설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죽음만이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게 한 당신에게, 염치없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P.B
 
---------------------------------------------------------------------------------------
 
 이걸로 뭔가를 써 보고 싶네용.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