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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 수장..
게시물ID : readers_301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뤼플리
추천 : 1
조회수 : 29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11/04 00:19:02



오래전 대학교 1학년일때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한 쌍의 시를 읊어 주셨었습니다 

시인인 황동규의 풍장이라는 시에 친구인 마종기(미국에서 의사가 되었다.)가 답글의 형식으로 주고 받은 시였죠..

저는 그게 참 좋았어요..
왠지 운치있고..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는 것 같아 부러웠거든요..

당시에 수업을 듣고 찾아보려고 했는데 쉽게 찾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찾게 되어 메일함에 저장해두고는 가끔씩 꺼내 읽어 봅니다..


풍장 / 황동규

1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수 장
--- 풍장의 동규에게, 외국에서



너는 처음부터 안 보이는 것을 공부했으니
보이다 말다 하는 바람이 낫겠지만
나는 시신을 찢어 가며 전공을 배웠으니
어차피 속살까지 모두 다시 내어 주어야겠지.
보이고 또 끝없이 보이는 실속 없는 물,
그 물 속에 환히 밀어 넣어야겠지.

그러니 수장시켜다오.
외국에서는 말고 이번만은 한국의 바다에서
동해나 황해나 남해나 아무 데나
그러나 너무 멀리는 말고 해안선 가까이에,
내 한 세상의 여행도 결국은 그랬지만 
방향 잃은 늙은 목선의 어스름 저녁,
황혼이 잔잔한 바다에 머리 부딪치며 다시 올 때
부끄러움도 무지함도 감추지 않는 용사의 죽음처럼.

수장시켜다오.
중학교 때의 전쟁과 가난의 땀옷은 수의로 감고
두서없이 무겁던 외로움의 무게를 두 발에 동이고
수상한 장송곡 대신 장타령 한 곡의 중간쯤
물소리 많이 나지 않게 밀어 넣어다오.

갑자기 시원하고 조용해지겠지.
몇 날 며칠 흔들거리며 긴 꿈을 꾸고 나면
한국의 저녁상에 자주 보던 온갖 물고기들,
갈치나 꽁치떼들이 내 살을 파 먹고, 파 먹고
그 살찐 물고기들 어부에게 잡혀 포구에 닿으면
어시장 아주머니 비린 눈매도 신명나누나.

그간에 나는 유심한 구름도 되어 보고
바다 위 날으는 깃 좋은 물새도 되어 보리니,
수장시켜다오.
내 살이 그 많은 조카들의 살이 다시 되어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 때
오래 헤매며 살던 짙은 안개의 세월 끝나고
내가 드디어 뜨거운 눈을 뜨리라.


이렇게 올리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일까요?.. 문제가 되면 석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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