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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나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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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상연
추천 : 2
조회수 : 22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11/12 20: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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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바닷가에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 있는 집들은 헐렁한 나무판을 새워서 만든 거라 겨우 바람이나 막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나룻배란 나룻배는 바다에 떳다 하면 금방 물이 차올라서 어부들은 깊은 바다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나는 고기란 영 시원치않는 것들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 마을을 '가난한 어부 마을'이라고 불렀다. 이 시시한 마을에 변화라고는 가끔 늙은 들개가 해안가에 들렸다가 죽은 물고기 먹고 가는 것 빼곤 없었다.

 가난한 어부 마을에는 상연이라는 한 번에 한 단어만 말 하는 바보가 살았다. 상연은 타고난 재주도 어께 너머로 배운 기술도 없이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그런 상연이 하는 일이라고는 딱 두 가지였다. 물빠진 웅덩이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휘젓는 일과 가끔 해변으로 떠밀려온 쓰레기를 줍는 일이었다. 

 그 날은 운 좋은 날이었다. 상연은 물빠진 웅덩이에서 팔뚝만한 물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해변에선 나무통을 주웠다. 나무통은 크고 튼튼해서 장정 한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상연은 통에 물고기를 담은 후 통을 보듬고 낑낑 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상연의 집은 흙과 돌, 나뭇가지로 대충 만들어진 곳이었다. 이런 초라한 곳에 나무통을 놓고보니 굉장히 근사했다. 상연은 나무통을 감탄을 하며 구경하다가, 어제 선교사가 나눠준 빵으로 배를 채웠다. 물론 상연은 빵 한 두개로 배부를 수 있는 청년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무통에 담아놓은 물고기를 먹을까 고민했다. 결국 물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내일 찾아올지도 모르는 선교사에게 오늘 잡은 팔뚝만한 물고기를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질질 흐르는 침과 배고픔을 참으며 상연은 차가운 바닥에 누웠다. 다음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눈을 꼭 감았다.

 다음 날 선교사가 찾아왔다. 상연은 선교사의 팔을 잡아 끌고는 근사한 나무통을 자랑했다. 선교사 또한 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훌륭한 나무통이라며 감탄했다. 진심으로 감탄하는 선교사의 표정을 만족스럽게 살펴본 상연은 물고기를 대접하기 위해 통을 열었다. 새까만 통 속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런데 잡히는 것은 없었다. 깜짝 놀란 상연이 통속에 두 눈을 처박았다. 새까만 그림자 뿐이었다. 

 물고기가 사라진 것에 상연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은 새파랗게 변했다. 그러다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선교사를 노려봤다. 말도 잘 못해서 확실하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없었던 상연이지만, 선교사를 바라보며 따지듯 손가락으로 나무통을 쿡쿡 찔렀다. 사라진 물고기에 대해 몸짓으로 추궁을 했다. 상연이 굉장히 험악한 표정을 짓고 나무통을 가르키자 선교사는 당황했다.

 "제가 그 나무통으로 들어갈까요??"선교사가 말했다. 상연은 "물고기! 물고기!"라고 강력하게 자기 주장을 했다. 의도를 제대로 알아먹지 못한 선교사는 그만 나무통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화가난 상연은 통의 뚜껑을 꽝 닫아버렸다가 다시 뚜껑을 열어 분노의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데 통 속은 비어있었다.

 얼떨떨한 상연이 나무통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휘저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대신 서늘한 어떤 느낌이 상연의 손목을 감쌌다. 소름끼쳐서 서둘러 손을 빼버렸다.
 
 선교사가 나무통속에서 실종되자 상연은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를 불렀다. 태풍에 집이 날아갈 때도 실실 쪼개며 춤을 추던 상연이 "선교사! 선교사!"하고 비명을 지르자 노부부는 큰일이 났음을 느끼고 상연이 사는 집으로 뛰어갔다.

 상연은 텅 비어있는 통을 가리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당황하다. 상연이가 뭔 말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러나 상연은 "선교사! 선교사!"하면서 통속을 가리켰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선교사가 통속으로 사라졌다는 말을 못해서 답답했던 상연은 억울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할머니를 통속으로 밀어넣고 뚜껑을 닫아버렸다. 다시 열었을 때 그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상연이 통속을 가리켰다. "할머니! 할머니!"

 상연의 행동에 할아버지가 개거품을 물고서는 상연의 싸다구를 날리고 통속으로 뛰어들었다. 싸다구를 맞아서 억울한 상연이 통 뚜껑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다시 열었을 때 나무통은 비어있었다. 상연은 싸다구를 날린 할아버지가 사라져서 억울함이 조금 풀렸다.

 상연은 뒤늦게 자신이 좋지 않는 짓을 했다는 느낌을 들기 시작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선교사와 노부부를 찾을 것이다. 그러면 상연의 집에 찾아 올 것이다. 그리고 상연에게 물어 볼 것이다. 결국 상연의 예감이 맞았다. 하루가 지나자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선교사와 노부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상연의 집에 들렸다. 상연은 집에 찾아온 마을 사람에게 그들이 찾는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기 위해 친절히 통속으로 밀어 넣고 뚜껑을 닫아 주었다. 

 1주일 후 가난한 어부 마을은 유령 마을이 되었다. 결국 나무통에서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물고기도 돌아오지 않았다. 상연은 이 찝찝한 통을 버리고 싶었지만, 통은 상연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다. 텅 비어있는 나무통이 무겁다는 것은 웃긴 일이지만, 상연은 이 통이 무언가를 넣으면 넣을 수록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며칠 후 선교사 열 명이 가난한 어부 마을로 찾아왔다. 선교사들은 갑자기 사라진 선교사와 마을 사람에 대해 알아보려고 찾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마을을 돌아다니는 상연을 발견하고는 붙잡고 물어봤는데, 상연은 "통! 통! 통!"하는 소리만 반복했다. 수상쩍음을 느낀 한 선교사가 거칠게 추궁하자 상연이 놀라면서 달아났다. 열 명의 선교사는 상연을 쫒아갔고 결국 상연은 초라한 집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으론 부족했다. 선교사들은 낡아빠진 나무문을 쳐부수고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부스고 들어가자 선교사들은 통속에 몸을 반쯤 넣고 두 손으로 뚜껑을 닫으려는 상연의 모습을 보았다.

 "나무통! 나무통! 나무통!" 외치던 상연은 스스로 나무통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아버렸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선교사 한 명이 뚜껑을 열어봤다. 텅 비어 있었다. "비밀 통로가 있을 거야!"라며 소리친 선교사는 직접 통속으로 들어가 뒤져봤다. 그러나 비밀통로를 찾지 못했다. "들어가서 뚜껑을 닫아봐!"다른 선교사가 조언을 했다. 그래서 상연과 똑같이 뚜껑을 닫았다. 다시 긴 침묵이 흘렀고 다른 선교사가 뚜껑을 열었다. "비밀 통로가 있는 거야? 대답해봐!"하고 불러봤지만 사라진 선교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참지 못한 다른 선교사가 방금과 똑같이 통속으로 들어가서 뚜껑을 닫았고 또 다른 선교사도 그렇게 했다.

 결국 한 명의 선교사가 남았다. 마지막 선교사는 나무통을 바라 볼 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통속으로 들어간 선교사들은 소리없이 사라졌다.  9번이나 옆에서 지켜봐서 알 수 있었다. 저 나무통은 이상하다. 마지막 선교사는 나무통에 들어가는 대신 어디선가 횃불을 가져왔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그 속에 횃불을 던졌다. 나무 통 내부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다음 바람 소리와 함께 섞인 애매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들은 마지막 선교사는 식은땀을 흘리더니 마을밖으로 도망쳤다. 

 마지막 선교사가 떠나고 얼마 후 마을에는 늙은 들개가 나타났다. 모래에 코를 처박고 킁킁 거리던 늙은 들개는 고기냄새가 풍겨오는 초라한 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칠게 부셔진 나무문으로 느릿하게 네 발을 옮겼다. 그곳에서 들개는 쌔카맣게 익어있는 거대한 고기 덩어리를 발견했다. 모양도 냄새도 이상한 고기덩어리였다. 언뜻 사람의 얼굴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그 꺼림직한 모습도 늙은 들개에게는 근사한 만찬에 불과했다. 들개는 며칠간 그 고기를 먹으며 살을 찌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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