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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엄마의 김밥 탑
게시물ID : readers_302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비_
추천 : 6
조회수 : 44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11/16 12: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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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김밥을 볼 때면 포옹이 하고 싶다. 재료를 야물게 감싼 모양새가 새끼 끌어안은 어미 같아 그렇다. 같은 의미로 포대기 둘러 꼭 안긴 아가들을 볼 때면 김밥 같다 생각한다. 엄마표 도시락 단골 메뉴인 탓뿐 아니라 그 모양새 때문이라도 김밥은 어미가 떠오르는 음식이다.      


 김밥 양도 한몫한다. 한 줄 싸고 마는 경우 있던가? 울 엄니 손이 커 그런 줄 몰라도 한 번 하면 여럿 푸지게 먹고 배부를 양이 마련되었다. 내 소풍날은 온 동네 김밥 잔치였다. 아부지 동료들과 나누도록 넓은 삼단 찬합에 들려 출근시키는 건 약과였다. 노인정에 한 보따리 싸 들고 가 할머니 기 세워드리고는 교류하는 이웃집에도 몇 줄씩 맛 보였다. 물론, 내 가방에도 대여섯 장정이 먹고 남을 김밥이 눌러 담겼다. 달동네 학교라 김밥 못 싸오는 친구들 있음 생색 말고 나누라는 연유였다. 우리 집도 잘 사는 편은 아니지만, 김밥 쌀 여유는 있으니 이왕 싸는 김에 조금 더 한 것뿐이라고.  

    

 김밥 종류도 꼬박 세 가지씩 고루 갖췄다. 큼지막한 햄 거뜬히 박힌 기본 김밥에, 마요네즈 버무린 참치 김밥, 고소한 치즈 김밥까지. 돗자리 펴고 삼삼오오 가져온 김밥 풀어 뷔페처럼 먹기 시작하면 울 엄마 김밥이 젤 먼저 동났다.      


- 김밥은 밥이 핵심이야.     


 고슬 밥에 기막힌 간으로 감칠맛 살리는 엄마 솜씨는 유명했다.      


 엄마 김밥은 그렇게 내 새끼, 내 식구뿐 아니라 연 닿는 모든 이를 품었다. 김밥 한 번 싸면 아마 며칠 생활비가 동났을게다. 하지만 김밥은 나누어 먹어야 맛난 음식이라며 엄마는 아낌없이 김밥 탑을 쌓았다. 나의 유년,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만 해도 동네 김밥집이 많지 않았으니 김밥 마는 날이면 꼭 추석, 설과 같은 설렘을 느꼈다. 아침 점심 저녁 김밥을 집어 먹고 그래도 남아 다음날 달걀 옷 입혀 부쳐 먹었다.      


 대학 시절 엄마 김밥은 더 많은 새끼들을 품었다. 팀 프로젝트며 공모전이며 동아리 같은 일로 나는 항상 사람들과 무언가 하고 있었다. 엄마는 자취하는 아들 냉장고 채우려 매달 한 번씩 찾아오셨는데 그때마다 김밥을 싸오셨다. 동아리 방에 강의실에 엄마표 김밥이 나누어졌다. 김밥 소문 때문에 나와 같은 조를 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대충 내 이름 아는 사람이면 울 엄마 김밥 다 한 번씩 맛보았다 해도 과언 아니다. 그 덕에 나는 더 많은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졸업 후 연극한다고 객지 나가 뒹굴 때도 엄마는 김밥을 싸다 주셨다. 어리고 이룬 것 없는 우리들은 늘 배가 고팠다. 연습실에 한 번씩 싸다 주시는 김밥의 어마어마한 양과 어마 무시한 맛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가진 것 없는 청춘들에 김밥 몇 줄의 위로는 큰 힘이 되었다. 잘 되라는 말조차 부담이었던 우리에게 생색 한 줌 없이 많이 먹으란 말이 전부였던 엄마. 김밥을 전해주고 돌아서는 엄마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냥 다 미안했다. 못난 자식 때문에 엄마는 평생 김밥을 싸는구나. 나 대신 내 사람들 보듬는구나. 김밥이 실해서 목 메였다. 너무 크게 싸지 마라니까 진짜.      


 엄마는 김밥으로 그렇게 어린것들을 감쌌다. 별것 아니라 말씀하셔도 김밥이 얼마나 손 많이 가는 음식인지 안다. 직장 다니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싸셨고, 가계부에 구멍 나도 김밥 재료 아끼지 않으셨다. 애들 먹는 거라고. 김밥은 푸짐해야 기분이 좋다고.      


 솔직히 김밥 말고도 얼마나 다양한 음식을 해 주셨을 거며, 정성 안 들어간 음식이 또 무엇 있으랴? 그러나 김밥이 특별한 건 나누기 위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제 자식 입 하나 채우기 위해 김밥 말지 않는다. 한두 줄 먹고 싶다 하면 그냥 사 먹으라 하셨지. 반드시 같이 먹을 누군가가 있어야 김밥을 싸 주셨다.    

  

 엄마의 김밥은 내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김밥 건네며 소통했고 먹으며 협업했다. 김밥을 나눈 이들 상당수와 가까워졌다. 엄마는 남겨 줄 유산 없어 미안하다 하시지만, 김밥으로 물려준 사람들이 다 재산이지 않던가! 다양한 재료가 조화되어 완성된 맛을 내는 김밥처럼, 함께 할 때 큰 것을 이룰 수 있으므로.      


오는 봄에는 내 손으로 김밥 말아 엄마 손에 들려 소풍 보내 드려야겠다. 엄마 친구들과 배 터지게 드실 수 있도록 푸짐하게 담아서. 싸는 김에 넉넉히 탑 쌓아 주변 사람 죄다 먹여야지.

출처 https://brunch.co.kr/@nangbi/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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