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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담배로 힐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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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상연
추천 : 1
조회수 : 50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19 05: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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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564년 세비야의 의사 니콜라스 모나르데는 『신대륙의 기쁜 소식에 만병통치약을 설명하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만병통치약이 가진 효능은 다음과 같다. 뇌를 맑게 하고 마음의 병, 구강 악취, 호흡 곤란, 지나치게 육식을 하는 어린이, 신장 결석, 촌충, 치통, 호랑이에게 물린 상처, 독화살 맞은 자리, 그리고 배고픔을 억제하고 불면증을 치료하며 인내심이 길러진다. 사실상 모든 종류의 증상에 효과적이다는 설명이다.

 이 소책자에서 소개한 만병통치약은 바로 "담배"다. 모르데스의 소책자만큼 열광적으로 담배를 찬양한 글은 없었다. 이 시대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은 어리석고 손해보는 짓이었다. 담배가 얼마나 이로운지 설명하려고 서론만 말해도 이 작은 방에서 밤을 새야 할 것이다. 물론 그전에 여러분은 떠날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도중에 『담배와 문명』을 정말 감명 깊게 읽었다. 담배에 대한 역사를 많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손해만 봐온 내 인생을 한탄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정신을 맑게 하고 인내심을 길러주는 담배를 피워보도록 했다. 

 오후 3시에 콜라와 담배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버려진 플라스틱 매트에 앉았다. 콜라 한 모금을 마신 뒤에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는데, 구수하면서도 메마른 냄새가 났다. 필터를 빨면서 불을 붙히자 끝이 검게 타오르며 조금 줄어들었다. 연기가 피어났다. 필터을 빨아 연기를 폐로 넘겼다.

 처음에는 목이 매웠다. 그저 텁텁하고 매울 뿐이었다. 하지만 담배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 즘에 머리가 멍해 지더니 피가 쏠리는 것 처럼 어지러웠다. 마치 오래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났을 때 찾아오는 어지러움과 비슷했다. 뇌가 쪼그라 드는 느낌이다. 

 담배를 다 피우고 반쯤 접어든 종이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느낌을 바로 적었는데 글씨가 꼬불꼬불했다. 나는 한동안 어지러움이 가시기를 앉아서 기다렸다. 파란 하늘을 바라봤다. 묘한 고양감을 느꼈다. 그 뒤에 형에게 이 현상을 물어봤다. 이것을 휘내림이라고 했다. 휘내림이란 담배를 피면 일시적인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어지러운 현상을 말한다.

 추석이 지나고 월요일. 연휴에 할머니를 도와주느라 힘들었다. 누나는 일도 안 하고 도망갔고 형은 잠만 처자다가 갔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잠도 안 왔다. 월요일 새벽에 말보르 레드와 아사히 맥주를 샀다. 그리고 이것을 즐길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찾아헤맸다. 가로등이 곁에 세워진 조용한 팔각정에 들어가 기둥에 기대어 앉았다. 먼저 담배를 피웠다. 다 피우고 꽁초를 바닥에 비빈 후에 맥주를 마셨다. 담배 한 가치을 피우고 맥수 세 모금을 마시자 딱딱한 기둥마저 쇼파 처럼 편안했다. 
 
 새벽에 찾아오는 배고픔도 가셨는데, 이런한 부분에 있어서 담배는 명백히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단순히 먹는 다이어트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생각을 다이어트 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담배를 피우다보니 걱정스러운 여러 생각이 줄었다.

 인간관계, 환경, 과거에 대한 후회와 집착,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살아가는가? 이런 걱정 따위는 쌓이고 쌓여서 머리를 무겁게 만든다. 이렇게 비대하고 쓸 모 없는 생각은 글쓰는데도 공부하는데도 일하는데도 방해가 된다. 가끔 여러가지 좋은 아이디어만 가득찬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생각만 많으면 뭐하는가? 생각만 많다보니 글도 못 쓰고 공부도 못 하고 실천도 못하는데. 이건 비만과 같은 생각의 병이다. 생각을 다이어트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 스스로 현명한 의사가 되어 담배를 처방했다. 

 담배를 피우는 이 순간 쓸 때 없는 걱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저 초연하게 앉아서, 타오르는 아름다운 불씨을 바라보거나, 고양이가 옹알거리는 소리를 듣거나,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면 이 모든 걱정이 하찮게 느껴진다. 공허한 마음은 연기로 체워진다. 하나님께선 아담에게 하와를 주셨고 나에겐 담배를 주셨다. 담배란 외로운 마음의 동반자다.

 깊은 새벽이 되었다. 담배 다섯 개피와 맥주 500ml는 영적인 체험을 하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그 와중에 흘러가는 단어를 포착해서 마음에 세겼다. 맥주를 절반 정도 마시고도 그 자리에서 담배를 두 대 더 폈다. 그 후에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렸다. 이불에 누웠는데, 잠을 잤는지도 모르고 다음 날 깨어났다. 담배는 불면증에도 효과적이었다! 

 아직 담배에 대한 체험을 절반도 쓰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고 나서 무릎 위에 적어 놓았던 느낌과 단어을 담은 내 종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곤지산 정상에서, 도서관 옆에서, 전주천에서 피워댔던 기록을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표현을 잃어버렸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그동안 담배를 너무 혐오해왔던 것이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이유는 첫 째로 비싸서, 둘 째로 중독이 될 까봐, 셋 째로 암걸릴까봐 였다. 지나가다가 담배 냄새가 코에 스쳐도 수명이 1분씩 깍이는 심리적 불쾌함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당장에 도서관에 가서 담배를 검색해 보더라도 전부 담배와 중독치료에 관한 이야기 뿐이었다. 어딜 가더라도 담배에 대한 이로움 보다는 담배가 얼마나 쓸모 없고 건강에 해로운 것인지에 대해 설명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담배를 보고 그 냄새를 맡으면서 혐오할 뿐 정작 담배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그 옛날 인디언이 바닥에 흙을 파서 담배잎을 넣어 불을 피우고 연기를 마셨다. 가난한 사람들은 점토로 담뱃대를 만들어 피웠고 배고품을 달랬다. 전쟁에 지친 병사들에게 담배는 화약과 피 가득한 숨막히는 전장에서의 호흡기였고 애인없는 고독한 자에게 동반자가 되어줬다. 귀족의 사치였고 매춘부의 친구였다. 돌파리들의 만능통치약이었고 건강을 헤치게 만드는 악마의 식물이었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담배가 건강을 해치는 것도 사실이고 동시에 우울한 마음을 달랠 수 잇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담배를 피움으로써 힐링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담배란 중독과 헤로움에만 선전하는 사회적 최면 때문에 담배를 치유제로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담배를 피우는 체험으로 담배가 얼마든지 훌륭한 치유제가 될 수 있는 것을 경험 할 수 있었다. 

『담배와 문명』에서 담배를 피우는데는 논리적인 이유가 필요없다고 한다. 저마자 이유 한 두개를 붙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내가 담배를 피웠던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서 그리고 지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였고 결국 둘다 이루어졌다. 이 명백한 경험을 통해 거짓없이 담배란 무엇인가 정의를 내려본다. 담배란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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