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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유다 4화 – 다시, 유다 (完)
게시물ID : readers_308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잘안들려
추천 : 2
조회수 : 40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1/08 2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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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퉷, 빌어먹을 바리새놈들.”

  예수를 파는 데 그들이 지불한 돈은 불과 은 30. 유다는 그것이 뭘 상징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예수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예수를 팔겠다고 말한 그에게도 분명한 조롱이었다.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러 욕 짓거리와 침 한 번 뱉는 것으로 대신하였지만, 그것이 꼭 유다의 참을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무죄함이 밝혀지면 안나스 네놈부터 가장 먼저 처리해주지.”

  예수 정도 되는 인물들을 산헤드린 공회에서 처리하진 않을 것이다. 사형권이 없는 공회에서 사형을 요구하려면 반드시 총독부로 넘어가게 될 것인데, 바리새와 서기관들의 공분을 산 것만으로 빌라도가 예수를 결코 정죄할 리 없다는 것이 유다의 판단이었다. 예수는 적어도 지금까진 로마 제국에 조금이라도 해악이 될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무슨 죄가 있다손 쳐도, 명절에 죄수 하나를 풀어주는 풍습에 따라 예수를 석방시키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설마 로마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바라바를 풀어줄까? 

  결국 어떻게든 총독부가 예수를 무죄로 판결하게 될 텐데,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이후 예수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은 곧 로마법에 대한 불신이나 다름없다는 일종의 시혜이리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순인가. 그렇기에 실로 비천한 곳에서 태어난 이스라엘의 메시아에게 걸맞은 옷이다. 

  자신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작은 날개 짓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급기야 온 몸에 소름까지 돋은 유다였다. 그는 실성한 것 마냥 실실 웃으며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

  열 두 제자를 비롯한 몇몇 핵심 제자들만 특별히 만찬 자리에 모은 예수는 다른 때보다 더욱 말이 없었다.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곁눈질로 눈치를 줬지만, 베드로가 고개를 쑥 내밀며 한다는 소린

  “저기, 선생님. 음식이 별로 입에 맞지 않으신지요?”

  따위였다. 안드레가 헛기침을 하자 베드로가 민망하게 안드레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뒤로 젖혔다. 바돌로매가 알겠다는 듯 다시 예수에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지금 하셔도 좋습니다.”

  바돌로매의 말에 예수가 슬몃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곤 손에 든 전병을 다시 내려놓은 채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더니, 손을 닦은 후 겉옷을 벗어두었다. 제자들의 이목은 모두 예수에게 집중되었다.

  “빌립아, 아까 내가 말해둔 수건은 준비해두었느냐.”

  “네, 네. 여기 있습니다. 선생님.”

  예수가 팔을 걷으며 빌립에게 성큼 다가가자, 빌립이 재빨리 수건 몇 장을 예수에게 건넸다. 예수는 그 수건을 허리에 두른 후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기기 시작하셨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다니, 누가 볼까 두려운 마음을 느끼지 않은 제자가 있었을까. 그러나 분위기상 도저히 말을 꺼내기 힘들어 가만히 예수가 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베드로가 잠시 그 흐름을 깼으나 결국 그도 발을 내밀고야 말았다. 마지막 제자의 발까지 닦은 예수가 자리에 앉아 무어라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유다의 머릿속은 온통 이제 곧 있을 일들을 끝없이 예측하여 재생하고 또 재생해보느라 바빴다. 

  “내가 분명히 말해두마. 너희 중 한 사람은 나를 배신할 것이다.”

  문득 들려온 예수의 말에, 유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수가 자신이 팔아넘겨질 것을 알고 있다고? 이 무슨….

  “그 사람은 지금도 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제자들의 얼굴은 전부 잿빛이 되어 서로 불안한 눈빛으로 수군거렸다. 그러나 유다는 예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렇지요. 당신도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지요? 당신은 역시 나의 마음을 헤아려줍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제자들은 서로를 보며 수군거리길 멈추고,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은 아니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 중 누구에게도 대답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 아닌 다른 요한에게 눈치를 주자, 그가 예수에게 바싹 다가가 물었다. 그는 평소 열 두 제자 못지않게 예수에게 신뢰 받고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물음엔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주님,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굽니까?”

  요한을 부드럽게 바라보던 예수가 말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제자들의 표정은 더욱 아리송해졌다. 자신은 아니냐고 물어볼 때 이미 모든 제자들이 그릇에 손을 넣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수군거림이 커지자, 보다 못한 유다가 덥썩 손을 가져다 그릇에 담으며 말했다.

  “주님, 저는 아니지요?”

  “네가 그렇다고 말하였다.”

  예수의 답변은 중의적이었다. 이미 제자들은 예수가 제대로 말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그렇게 말하여도 그 뜻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 와중 유다의 눈은 확신에 확신으로 가득찼다.

  -그래요, 이 어리석은 놈들이 처음엔 분명 나를 욕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의 전말을 알고 나면 그제야 나를 이해하겠지요. 잠시 잠깐 당신에게 의심을 한 내가 어리석었지. 여기까지 예측한 당신은 정말로 내가 바라던 메시아요. 틀림없소.

  제자들의 화젯거리는 파리 달라붙듯 금방 다른 곳으로 옮겨 붙었다. ‘배반하는 자가 누구냐’에서 이제는 ‘그럼 누가 우리 중 제일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가’로 바뀌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필두로 여러 제자들이 서로 자신의 공적과 능력을 자랑하며 1등을 다투었지만, 곧 인심 쓴다는 듯 재상엔 누구를 두고 총독에는 누가 더 어울리네 따위를 논하기 시작했다. 

  “너는 이제 가서 네 할 일을 하거라.”   

  그 틈에 예수가 유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유다는 그것을 분명한 신호로 받아들였고, 짧은 목례 후 밖으로 나갔다. 

*

  밖으로 나온 유다는 이즈음에서 예수가 기도하러 올라갈 만한 동산을 찾다가 겟세마네를 발견했다. 자욱한 밤안개가 옅게 내리깔려있고, 적당히 사람의 흔적이 있는 작은 동산. 예수는 종종 이곳에 제자들과 함께 기도를 드리곤 했다.

  -오늘도 당신은 이곳에 오시겠지요.

  심호흡을 한번 한 그는 곧장 공회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종종 걸음으로 걷던 그의 보폭이 점점 커졌다. 성큼성큼 걷는 것도 잠시, 어느덧 뛰어가는 유다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그의 머릿속 마지막 퍼즐이 자리를 잡아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보여주는 것 같은 명쾌함이 그의 온 몸을 휘감았다. 흡사 달리기 경주에서 1등을 코앞에 둔 선수처럼 환희와 열정에 사로잡힌 그의 눈엔 빛이라도 번쩍이는 듯 했다. 

*

  “왜 이렇게들 잠만 자고 있느냐? 너희는 잠시라도 나와 함께 있을 수 없겠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나 기도 하거라.”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고 돌아온 예수를 반긴 것은 잠든 제자들의 모습이었다.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제자들을 꾸짖어 깨웠다. 그때였다.

  “나사렛의 예수가 누구냐.”

  자신을 찾는 낯선 이의 목소리에 예수가 등을 돌렸다. 한 무리의 군대를 뒤로 한 채 횃불을 들고 서 있는 군인을 본 예수는 알겠다는 듯 답했다.

  “내가 그다.”

  몇몇 병사들은 그 말을 듣자말자 넘어졌다. 바리새나 사두개들로부터 예수가 바알세불의 권세를 빌려 이적을 행한다는 소문을 들은 자들이 틀림없다. 대오가 흐트러지는 소리에 뒤를 잠시 돌아본 군인이 고개짓을 하자, 쓰러진 자들 주위의 군인들이 얼른 그들을 부축했다. 군인이 다시 예수를 보며 횃불을 좀 더 가까이 들이밀자, 이번엔 예수가 물었다.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앞서 물었던 군인 대신 다른 이가 무리를 헤집고 나오며 답했다. 

  “나사렛의 예수를 찾는다고 하였소.”

  “나 역시 내가 그라고 말하였다. 너희가 찾는 자가 나라면, 여기 이 자들은 가게 두어라.”

  헤집고 나오며 답한 이를 필두로 무리가 예수를 포위하자, 베드로가 갑자기 허리춤의 칼을 꺼내어 가장 앞에 선 이의 오른쪽 얼굴을 내리쳤다. 당한 이는 급히 고개를 왼쪽으로 피했다.

  “으, 으아악!!”

  고통보다 먼저 느껴진 것은 어지간해서 볼 일이 없는 자신의 귀를 본 공포감이었다. 피범벅이 된 귀를 본 것도 잠시, 오른쪽 귀가 있던 자리를 더듬더듬 만져보던 그는 자신의 손가락에 끈적이는 붉은 액체가 묻어나온 것을 확인하였다. 통증은 일시에 덮친 물난리처럼 밀려왔다. 

  “끄아아악!”

  이제는 정말 고통에 찬 소리였다.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고, 군인들은 저마다 창칼을 베드로와 예수에게 겨누었다. 예수는 팔을 들어 베드로를 저지하며 말했다.

  “칼을 도로 꽂아두어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고난의 잔이다. 마땅히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멀찌감치 지켜보던 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드로가 칼을 들고 설칠 때 저도 모르게 뛰쳐나갈 뻔하였다. 자칫 베드로 때문에 예수가 재판을 받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해를 당할 지도 몰랐다. 

  -항상 그 앞뒤 안 가리는 행동들이 맘에 안 들었지만, 정말 끝까지 도움이라곤 눈꼽만큼도 안 되는 놈이군. 저런 자식을 수제자라고 하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어. 네놈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은 너무 과분해, 시몬.
    
  귀가 잘린 이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였다. 두려움과 고통으로 주저앉아 버린 그에게 예수는 조용히 다가가 잘린 귀를 손에 쥐고 그의 귀에 붙여주었다. 병사들이 예수에게 더 다가가려하자 뭔가 낌새를 챈 군인이 병사들을 제지하였다. 예수가 손을 떼자 말고의 오른쪽 귀는 거짓말처럼 원래대로 돌아왔고, 예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선두의 군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가자.”

*

  결박된 예수는 안나스의 저택으로 먼저 보내졌다. 

  “네놈이 예수로군.”

  처음 보는 이에게 그토록 적의를 품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노기 서린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였다. 안나스의 눈에는 핏발마저 서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를 쳐다보기만 할 뿐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네놈이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 내용, 어디 내게도 한 번 지껄여 보아라!”

  안나스는 예수에게 삿대질을 하며 일갈하였다. 그의 저택 뜰에 피워둔 횃불들이 그의 외침에 화답하듯 허공을 날카롭게 찌르며 쉼 없이 일렁였다. 예수는 횃불들을 기준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를 비롯한 많은 대제사장들이 모여 있었고, 군대가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담벼락 밖과 대충 닫은 문 틈 사이로 수많은 이들의 눈길이 자신에게 쏠린 것도 쉬이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예수의 시선이 안나스를 향했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버젓이 말해왔다. 언제나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치지 않았느냐. 내가 숨어서 몰래 말한 것이라곤 조금도 없다. 그런데 왜 나에게 굳이 따로 묻는 것이냐? 내가 무슨 말을 한 지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라. 내가 한 말들은 그들이 잘 알고 있다.”

  “이런 시건방진 놈, 감히 대제사장님께 그 무슨 말버릇이냐!”

  예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위의 경비병 하나가 예수에게 달려들어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꺾인 고개는 그대로 두고 눈길만 경비병에게 돌린 예수가 더욱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한 말에 거짓이나 잘못이 있거든 답 하거라. 그렇지만 잘못이 없는데 어째서 나를 때리느냐?”

  숨는 듯 지켜보던 군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예수가 한 일들을 목격한 자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말하기 시작하자 웅성거림은 동굴 속에서 울리듯 퍼져갔다. 병사들을 풀어 소란을 잠재우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잠시간 저택 주변에서 물러난 무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안나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멀리서 지켜보던 유다는 통쾌하다는 듯 왼손을 꽉 쥐어보였다. 

  “저놈을 가야바에게 보내버려라!”

  예수를 둘러싼 병사들이 다시 예수의 양 팔을 붙들고 저택 밖으로 나섰다. 무리들은 뒤로 물러나면서도 예수를 쳐다보며 웅성거렸고, 병사들은 신경질적으로 무리들을 걷어차거나 밀치며 예수를 산헤드린 공회 쪽으로 끌고 갔다. 개미들이 먹이를 따라 모이는 것처럼 병사들의 행렬 사방으로 군중들이 에워쌌다. 한 명을 밀치면 다른 한 명이 다시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병사들이 갈 길은 열어두었지만, 가는 길 내내 군중들이 병사들을 둘러싸며 웅성거리자 어느 순간 병사들도 군중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느덧 가야바가 있는 산헤드린 공회에 도착하자 무리들은 다시 흩어져 공회 주변으로 진을 쳤고, 예수는 짐짝처럼 대제사장들 사이에 던져졌다. 자리에 앉아있던 가야바가 무릎을 짚고 일어나며 말했다.

  “예수, 네놈의 신성모독이 결국 널 이 꼴로 만든 것이다.”

  그가 말을 마치자, 마치 준비라도 한 듯 무리 속에서 튀어나온 몇몇 사람들이 예수를 둘러쌌다. 

  “이들은 네놈이 얼마나 지독한 말들을 해왔는지 증언할 자들이다.”

  예수는 자신을 향해 욕지거리를 하며 가야바에게 울분 토하듯 참소하는 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가려보았다. 그러나 단 한마디도 변명을 하거나 응수하지 않았다. 

  -저열한 놈, 사람까지 매수해서 없는 죄를 덮어씌우려고. 명색이 대제사장이라는 놈이 저따위 얕은 수를 쓰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나설 수 없었다. 이를 빠드득 갈며 속으로만 저주하는 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차피 그들과 반대되는 가르침을 몇 번 한 것만으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거짓증언까지 한 것이 나중에 총독에게 가서 밝혀지면, 오히려 예수의 무죄만 더 밝히 입증하는 꼴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때쯤 가야바가 거짓증인들에게 손짓을 하며 뒤로 물린 후 다시 예수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할 말이 없느냐?”

  예수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가야바를 직시하였다. 가야바는 옅은 한숨을 쉰 후 짐짓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내가 살아계신 야훼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분명히 대답하여라. 네놈이 과연 야훼의 아들 그리스도이더냐!?”

  ‘그리스도’라는 말에 군중들이 다시 술렁였다. 지켜보던 유다도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이 그리 말하였소. 내가 다시 말하는데, 이제부터 당신들은 인자가 권능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이 사람이!”

  예수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가야바가 옷을 찢으며 외쳤다.

  “이토록 야훼를 모독했는데,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는가! 사람이 야훼의 아들을 자처하다니, 이 무슨 더러운 신성모독이오? 자, 여러분들이 답하시오.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겠소?”

  작게 웅성거리던 군중 속에서 건장한 남성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사형시켜라!”

  그러자 다른 한편에서도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옳소, 사형시켜라!”

  밀가루 포대 속 누룩이 부풀 듯 사형시키라는 외침이 커져갔다. 최초로 사형시키라고 한 자가 누군지 알 길은 없었으나, 중요한 건 이제 누구랄 것 없이 사형만을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신 나간 새끼들, 몇몇 매수된 녀석들에게 선동당해서는! 여기 있는 놈들 중 예수의 행적을 봐온 놈들도 있을 텐데 뭐하는 거야?

  그러나 정작 그 자신도 무죄라고 목소리 내진 못했다. 물론,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판 장본인이 그들 앞에서 예수가 무죄라고 말하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는 합리화도 뒤따랐다. 

  “좋다. 이놈을 이제 빌라도께 끌고 가라!”

  군중들의 외침에 흡족하다는 듯 웃어 보인 가야바가 신경질적으로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은 한층 더 거칠게 예수를 끌고 총독의 관저로 향했다. 여전히 군중들은 병사를 둘러쌌으나, 그들이 예수를 바라보는 눈빛은 전과 달랐다. 순간 유다는 자신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불안 한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아주 작은 불안감이었지만 마음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퍼져나가고야 말았다. 

  -아니, 어쨌든 빌라도가 판결을 내린다. 판결은 빌라도야.

*

  “바라바, 바라바를 풀어주시오!”

  “나사렛의 예수는 사형이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유다는 떨리는 손을 제어하기 위해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빌어먹을 백성들이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빌라도에게 악을 써댔고, 생각보다 빌라도가 용단을 내리지도 않았다.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주동자를 풀어주는 것도 총독으로서 있어선 안 될 일이지만, 자신이 관할하는 곳에서 또 다른 민란이 일어나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백성들의 외침은 광기에 가까웠다. 빌라도는 명절 사면 풍습에 기대어 예수를 풀어주려고 던진 자신의 질문에도 아랑곳 않고 사형만 외치는 그들을 곤란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뭐라고!!”

  기어코 유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도 단단히 늦었다. 군중들의 외침에 파묻혀 유다의 절규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빌라도는 천천히 물이 담긴 대야로 걸음을 옮긴 후 손을 씻으며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예수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입니다!!”

  군중들 중 누군가가 그렇게 외치자, 다른 무리들이 일제히 후창 하였다. 빌라도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빌어먹을 예수라는 놈 때문에 바라바를 풀어주게 생겼다. 최선은커녕 차선 같은 것도 없이 오로지 차악과 최악의 수만 남겨둔 셈이었다. 결국 그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 선포하였다. 

  “반역죄인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한다!”

  “아아, 안 돼. 안 돼. 안 돼! 이런 무지렁이 같은 새끼들이, 모자란 새끼들이! 으아아악-!”

  유다는 얼른 무리를 뚫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앞에 달려갔다. 

  “내가 죄 없는 사람을 배신하였소. 내가 무죄한 자의 피를 팔고 범죄하였소!”

  대제사장에게 받았던 은전 주머니를 그들에게 그대로 돌려주며 피토하는 심정으로 외쳤지만, 대제사장들은 눈썹 하나 변하지 않고 냉랭하게 받아쳤다.

  “그딴 건 우리가 알 바 아니지. 네놈이 알아서 할 문제다.”

  은전주머니를 쥔 유다의 손이 사시나무 떨 듯 파르르 떨렸다. 그의 눈에서 겉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대제사장들이 몸을 돌리자 유다는 입술을 깨물며 그들에게 돈을 던지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잠시 몸을 들썩이던 그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하늘로 들어 외쳤다.

  “예수, 예수!! 왜 아무런 말도 없이 있느냐!! 지금이라도 빨리 하늘의 군대를, 아니 시몬을 시켜서라도 열심당 놈들을 불러 모아야지!”

  ‘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정말 잘 들어 두거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순간 유다의 머릿속에 예수의 음성이 웅웅거리듯 맴돌았다. 유다는 홀린 듯 힘없이 몸을 일으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아니, 예수. 아냐. 잘난 당신은 끝까지 당신 뜻대로 다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

  입안에서 사탕 굴리듯 웅얼거리는 유다를 보던 이들은 슬금슬금 그를 피했다. 팔을 귀신처럼 늘어뜨린 채 눈물콧물 범벅이 된 그는 정말 미친 사람 같았다. 정처 없이 걷던 그는 아주 큰 고목나무의 드러난 뿌리에 발이 채이자, 넘어질 듯 휘청거리다가 나무에 머리를 쿵 박고 멈춰 섰다.

  “흐흐….”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는 바람에 흐르던 눈물이 그의 입술로 빨려 들어갔다. 짠맛이 가감없이 혀끝에서 목구멍까지 퍼져나갔다. 유다의 시선은 나무 옆에 보란 듯 놓인 밧줄에 머물다가 밑둥을 타고 점점 위로 올라가더니, 옆으로 눕듯 뻗은 가지줄기 끝에 걸렸다.

  “예수, 그래도 당신 뜻대로 안 되는 게 있어….”

  시선은 그대로 둔 채 몸을 굽혀 밧줄을 잡은 유다가 계속 웃음을 흘리며 밧줄을 만지작거렸다. 

*

  제자들의 수군거림이 커지자, 보다 못한 유다가 덥썩 손을 가져다 그릇에 담으며 말했다.

  “주님, 저는 아니지요?”

  “네가 그렇다고 말하였다.”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다의 표정은 오히려 흡족해보였다. 유다를 잠시 보던 예수는 이내 고개를 제자들에게 돌리며 말했다.

  “인자는 ‘야훼께서 정하신대로’ 가지만, 인자를 잡아 넘기는 그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의 표정엔 더없는 괴로움이 묻어났다. 그러나 유다는 여전히 손을 그릇에 넣은 채 초점이 무뎌진 눈으로 흡족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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