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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에서 작가의 이름이 사라진다면
게시물ID : readers_308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etrichor(가입:2014-04-13 방문:1030)
추천 : 13
조회수 : 301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8/01/10 15:55:16
『보르헤스의 말』은 (세상 사랑스러운 작가) 보르헤스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최근 시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보르헤스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인터뷰어: 저는 당신의 새로운 시들이 지적인 면에서나 열정의 면에서나 당신의 시 가운데 가장 강렬한 작품들이라고 확신해요. 새로운 시들에서는 당신의 단편소설이나 에세이에서 허용되지 않았던 개인적인 절망이 종종 표출되곤 해요.

보르헤스: 아니에요. 당신 생각이 잘못된 것 같아요. 당신은 내 시를 너무 좋게 생각해요. 그 시들을 이전 시의 관점으로 읽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들이 무명 시인의 작품으로 당신 눈에 띄었다면 당신은 아마 이것들을 팽개쳤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잘 아는 작가가 쓴 작품을 읽을 때면 그 작품들을 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인 것처럼 읽어요. 하지만 그 마지막 부분은 이전에 쓰인 것들이 없었다면 아무 의미도 없을 거예요. 당신이 어느 시인을 생각할 때 당신은 언제나 그의 마지막 시를 훌륭한 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그 시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그게 아닐 수도 있어요.

*      *      *

실은 저도 어떤 책을 읽을 때 그런 경향이 있어요. 작가와 작품을 떼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작가의 '이름'에 크게 영향을 받는 거죠. 이전에 이미 책을 읽어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거나 아니면 완전 사랑하는 작가 또는 권위를 인정받은(이런 표현을 썩 좋아하지는 않고 이런 생각에 최대한 반항하려고 노력을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역시 권위의 거대한 그림자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못하더라고요) 작가의 경우 책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저는 호의를 품고 있어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볼게, 라는 마음을 먹죠 저도 모르게. 그렇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작가, 그에 대한 어떤 설명이나 소개도 덧붙여 있지 않은 무명의 작가라면 무덤덤하게 읽어나가다가 무덤덤하게 포기할 가능성이 더 클 거예요. 물론 두 경우 다, 읽어나가는 문장에서 특별히 어떤 감흥을 받지 못한 경우를 말하는 거예요. 그럴 때 (이름때문이거나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호감이 가는 작가의 경우라면 좀더 인내심을 발휘하게 된다는 거죠. 

예전에 한 작가의 책을 읽었어요. 사실 그 책을 집어들게 된 이유도 작가의 어떤 '타이틀'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게 아니었다면 당시에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으니까. 책은 정말 좋았어요. 반했다고 말할 만큼. 당신의 다른 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라고 혼자서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할 만큼. 그래서 읽어보았어요 얼마 전에. 잔뜩 기대를 했지만 솔직히 조금 갸웃거리면서 읽었어요. 그래도 열심히 읽었어요. 다 읽고 나서는...꾸역꾸역 한번 더 읽었어요. 그러면서도 조금 웃기더라고요. 만약 이 작가를 몰랐다면, 처음 만나는 작가였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공들여 책을 읽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위에 인용한 보르헤스의 인터뷰가 생각났죠. 나는 어떤 작품을...그 작가가 쓴 긴 소설의 마지막인 것처럼 읽고 있는 건가라는 아쉬움과 그게 뭐 어때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거잖아,라는 뻔뻔함. 말하자면 이런 거예요. 제가 다른 글에서도 인용했던 문장인데,

내가 보는 바가 나를 눈멀게 한다. 내가 듣는 바가 나를 귀먹게 한다. 내가 아는 바가 나를 무지하게 한다. 나는 아는 만큼, 아는 만치 무지하다. 내 앞을 밝히는 이러한 빛은 일종의 가림막으로, 밤과 빛을 뒤덮는 더욱...더욱 어떠하단 말인가? 기이한 전복으로 이곳의 원이 닫힌다. 하여 앎은 존재에 걸친 구름이고, 반짝이는 세계란 각막을 덮은 백반이며, 명료하지 못함이다.

「테스트 씨 항해일지 발췌」, 폴 발레리

때로는 읽기도 전에 이미 어떤 작품을 <좋음>의 범주에 넣어버리는 건 아닌지..그런만큼..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분명 보석같을 어떤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건 아닌지...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읽히기 위해 제 앞에 놓여진 모든 책들을 매번 처음 만나는 작가의 첫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면..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았어요. 실제로는 작품에서 작가의 이름만 지워버린 채 읽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에 그 모든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지만요.

*      *      *

쉽게 읽히지 않는 작품을 굳이 애써가며 힘들게 읽는 이유는..그렇게 읽다가 문득 경험하는 기쁨의 순간 때문일 거예요. 그건 모든 독서를 통틀어도 쉽게 경험하기 힘든 정도의 기쁨이라. 러너스 하이를 위해 꾸역꾸역 뛰어내는 마라토너처럼 지난한 행위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는 것 같아요. (몸에 새겨진 보상의 기억 같은 거라고 할까) 뭐 어쨌든,

그렇게 인내심을 발휘하여 두 번을 읽어낸 작가의 책이 어땠느냐면..ㅋㅋ 여전히 뭔가 속시원한 느낌이 없어서 원서를 펼쳐들게 되었어요. 느릿느릿 첫 페이지를 읽어나가는데..충격이더라고요 너무 좋아서. 그러곤 또 생각에 빠졌어요. 이유가 뭘까..힘들게 읽고 또 읽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문학에서 원서의 힘이란 말도 못하게 큰 것일까 아니면.. 

뭘까요. 잘 모르겠어요. 아직 책(원서)을 다 읽지는 못해서 이렇다 저렇다 정리된 표현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뭘까 책을 읽는다는 건. 그런 생각을 자꾸만 하게 돼요. 공들여 읽어볼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분하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든다는 게..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모든 책을 다 그렇게 읽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어떤 책은 꼭 그렇게 읽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러니까 대체 어떤 책을 그렇게 읽어야 하는 건지에 대한 정답은 없으니까. 

책을 읽을 때의 즐거움은 두 가지인 것 같아요. 비유해보자면 먹는 즐거움과 운동의 즐거움처럼. 먹는 즐거움은 대개 즉각적이지만 운동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정도의 지루함과 반복과 꾸준함과 노력..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문득 행복감을 가져다준다고 할까. 책을 읽을 때에도 그래요. 문장을 읽어나가면서 즉각적으로 기쁨을 느낄 때가 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답답함이 밀려오지만 꾹 참고 성실히 읽어나가다가 결국 만나게 되는 기쁨이 있고요. 두 번째의 기쁨이 참..사랑스러운 골칫덩어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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