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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_밀란 쿤데라
게시물ID : readers_309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필립말로15
추천 : 5
조회수 : 41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1/19 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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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살다보면 생각외로 원한을 품을(혹은 원한을 살)만한 일들이 심심치않게 일어난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이러한 일들은 기본적으로 힘의 불균형에 의해 발생하기에

나보다 강한 힘을 가진, 대항할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할 원한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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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주..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군시절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당시 말년 병장이었던 K에게 심심풀이로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곤 했었다.

나보다 25cm나 작은 비실비실한 K에게 당하는 모멸감 떄문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는 지경이었고

급기야는 몰래 행정실에 들어가 놈의 집 주소를 수첩에 적어놓기에 이르렀다.

'내 이 놈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


몇 년이 지나 나도 제대를 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우연히 대학로 앞에서 K와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왜 그 놈을 때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왜 시원하게 꺼지라고 욕이라도 해주지 않았을까.

경찰서에 끌려갈까봐? 아니면.. 시간이 지나 내 감정이 무뎌졌나?..


나는 실제로는 K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그와 군대에서 함께 하였을 때, 나에게로 향해있던 측면에서만 그를 이해했다.

내가 그억하는 그는, 나에게 있어서 내가 당시에 체험한 상황의 한 기능에 불과했고

그래서 나는 대학로 앞에서 전혀 다른 타인으로 마주한 K에게는 화조차 낼 수 없었다.

따라서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그를 때리려면 영창을 각오하고 그 당시 군대에서 때렸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병장이었던 K와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시간과 장소에 이르러 있었다.


.

.

.


서두가 길어졌지만,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이러한 원한과 복수에 대한 줄거리를 메인으로 하고 있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쓴 편지에 실린 농담 한 마디에 당과 대학에서 축출당하고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빼앗긴 루드빅은 15년 동안 과거에 얽메어 살며

마침내 자신을 나락에 떨어지게 한 옛 동료 제마닉에게 복수할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그의 복수는 참으로 우스꽝스럽게 끝나버리고

15년 만에 재회한 제마닉은 이미 그가 증오하던 옛 모습과는 달라져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조국도 변화해왔고 어쩌면 변하지 않은 것은 루드빅 본인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움직여가는 보도(시간)와 그 위에서 반대로 달리고 있는 사람(나)를 그려본다.

그런데 보도는 나보다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달려가는 방향과 반대편에 있는 목적지로 서서히 나를 데려간다.

과거에 체면이 걸린 나는 어떠한 끈으로 거기에 자신을 묶어두려 하고 있다.

복수라는 끈.

그러나 이 복수라는 것은 요 몇일 사이에 내가 확실하게 알게 되었듯이

움직이는 보도 위를 달리는 나의 질주만큼이나 똑같이 헛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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