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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언죄) 윤인석 님의'문장 연습 오늘의 단어'를 보고
게시물ID : readers_311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방울성게
추천 : 7
조회수 : 436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8/02/14 14:09:22
1.
공모전에 투고할 단편 하나를 끝마치고 새 페이지를 열었을 때였습니다.
빼곡하게 70매 가량을 메웠던 것 같은데, 눈앞에 있는 건 흰 공백뿐이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요. 새 글을 써야 하니까 공백인 건 당연합니다. 저는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2.
한참 고민하다 그간 써왔던 짤막한 글을 뒤져보았습니다. 그러다 보인 게 문장 연습이었습니다.
단어만 가지고 글을 써보는 취지의 게시글이었습니다. 몇 번인가 참여한 이력이 있기에 내용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를 차용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단편 소설로요.


3.
동생은 설거지를 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해외에서. 내 염려와는 달리 나는 한참이나 울 수 있었다. 내 울음은 '보여주기'였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세상을 향해 울었다. 그 다음에는 가족과 친척들을 향해 울었다. 마지막으로 동생을 향해 울 때쯤에는 눈물은 거의 말라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마저도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원체 무뚝뚝한 사람이었으니 내 눈물을 반기지는 않을 테니까.

죽었던 동생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면서, 거의 완벽했던 내 계획은 모두 틀어졌다. 느닷없이 냉장고 문을 열고 나타난 동생이 말했다. 여기, 좀 춥네. 나는 동생에게 묻고 싶었지만 말을 아꼈다. 동생은 살아 생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나는 기어코 묻고야 말았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동생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죽고 나서? 그때는 뜨거웠거든. 동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입김을 불었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화장을 했던 것이 아무래도 영향을 끼쳤던 모양이었다. 나는 직업정신을 발휘해서 기사 제목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화장당한 동생, 냉장고 안에서 귀신으로 나타나다, 같은 제목이면 좋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동생은 기지개를 쭉 켜더니 그릇이 잔뜩 쌓인 싱크대를 보며 말했다.

에이, 개같은 거.


4.
저건 아무것도 아닌 조각글이 될 뻔했습니다. 그저 그랬던 엽편에서 그칠뻔 했기도 했지요.
그러나 저걸 고쳐서 한 편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장 연습에서 시작된 글이 수상을 하게 된다면 더더욱 의미가 있겠고요!
부지런히 써서 한 장을 넘겼습니다.


5.
  동생은 설거지를 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해외에서.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쏟아냈다. 타국에서의 죽음이 주된 화제였다. 몇 년 전 요리사가 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났던 동생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요리사가 되지도 못했다. 이따금 소식이 들려오긴 했지만 시급이 인상됐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인생이 나아졌다는 말로는 들리지 않아서 한 번도 편지를 쓴 적은 없었다. 다만 편지의 말미에 성공해서 만나자는 추신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머나먼 타국까지는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날아온 건 동생의 시체뿐이었다. 시체가 싣고 온 사건의 전말은 조촐했다. 부엌에서 시작된 화재가 점차 번져 식당을 홀라당 태웠더라는 이야기였다. 대피하지 못한 건 동생을 비롯한 몇 명뿐이었다. 형체가 거의 없어 식별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는 덤이었다. 동생으로 추측되는 시체를 받은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공식 기사에는 사망자 명단에 동생의 이름이 있었고, 그 앞에 붙은 직함은 요리사였다. 설거지사라는 이름이 없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영정사진 속의 동생은 슬퍼보였다. 성공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인지 죽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죽어서 성공을 이뤘으므로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눈물을 흘려야 할 방향을 잡지는 못했으나 울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조문객들을 향해 열심히 울었다. 눈물은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원체 무뚝뚝한 성격이었으니 내 눈물을 반기지 않을 테니까. 내 눈물이 외국까지 전해질 리는 없을 것이었다.
  연일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집은 평소와 그대로였다. 누군가를 품지 않았으니 누군가 죽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동생이 없는 세상이었건만 달리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설사 느낀다고 하더라도 머나먼 무덤까지는 전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해진 건 세상의 부당함이었다. 목을 축이려고 냉장고를 열자 그곳에는 동생이 있었다. 동생은 영정사진 속에서 봤던 것보다는 훨씬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안녕, 형.

  죽었던 동생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면서 내 일상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냉장고 문을 열고 나타난 동생이 말했다. 여기, 좀 춥네. 동생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말을 아꼈다. 나는 냉장고 안의 동생을 바라보다 한 마디만 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동생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죽고 나서. 그때는 뜨거웠거든. 동생은 입김을 불었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나는 직업정신을 발휘해서 기사 제목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불에 타 죽은 동생, 냉장고 안에서 귀신으로 나타나다… 같은 제목이면 좋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선은 동생에게 냉장고에서 나오길 권유했다. 이대로 문을 열어뒀다간 전기세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동생은 기지개를 쭉 켜더니 냉장고에서 걸어 나왔다. 그릇이 잔뜩 쌓인 싱크대로 향한 동생이 말했다.
  죽었으니까 요리사가 되진 못하겠지?
  기사가 떠올랐지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죽은 마당에 요리사로 거론된 것을 알면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성공이 유효한 건 살아있을 때뿐이고, 그마저도 동생에게는 조롱에 가까웠다. 불타죽은 요리사,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 제목이 떠올라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죽은 자에 대한 예우는 다해야 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없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건 그저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동생이었다. 설거지를 하다 죽었던 동생이었다. 성공해서 만나자던 동생이었다. 죽지 못해 살아난 동생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하면 되잖아.
  죽었는데?
  살아서 못한 성공, 죽어서라도 해.
  죽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동생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성불을 권유해야 하는 게 아니란 것만은 명확했다. 현실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지만 현실적으로 다가가기로 했다. 내 현실이나 동생의 현실이나 망가진 것은 다르지 않았으므로. 미련이 남아 채 죽지 못한 동생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싱크대에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동생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야기했다.
  형, 내가 형이 되면 안 될까?


6.
(핵심) 단편 분량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수상도 노려볼 생각입니다. 새삼 윤인석 님의 문장 연습 오늘의 단어가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부랴부랴 글 올립니다. 덕분에 새 글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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