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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금지된, 기억]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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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명희
추천 : 2
조회수 : 49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8/04/24 1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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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단편소설


[금지된, 기억]




“글쎄…. 햄경도라믄 내래 잘 모르갔시요. 우리는 핑안북도 철산에 살았더랬시요. 기런데 도저히 먹구 살 길이 읍고 까딱하단 니대로 죽겠다 싶었디요. 해서리 밤마다 자강도로 쪼매씩 이동해 죽을 각오루다 걍 압록강을 넘었더랬디요. 기래서리 무산 쪽 얘기는 내래 도통…….”

북한이탈주민이 새로 왔다는 소식만 들리면 설희는 하나원으로 달려갔다. 혹시나 그들 중 누군가가 무산 쪽 소식을 알까 해서였다. 그녀가 탈북해 대한민국으로 온 후, 거주지 정착지원을 받을 때 하나원에서 멀리 가지 않은 것도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탈북자가 들어왔다는 소문만 들으면 미친 듯 그곳으로 달려갔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탈북자들을 찾아가 면회를 요청하고 재촉하듯 물어봐도 매번 헛수고였다. 그 때마다 오른쪽 허벅지의 통증이 뼛속으로 지독하게 파고들었다.

퇴근한 설희는 느린 걸음으로 어두운 골목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길가 약국에 들러 습관처럼 약을 샀다. 남한에 와서 오른쪽 다리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그럭저럭 견디게 해 주는 진통제였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 약조차 별 효험이 없었다. 그녀 발뒤축에 들러붙은 긴 그림자가 검은 유령처럼 일그러지며 그녀를 따라갔다. 설희는 동네 앞 작은 사거리를 지나다 걸음을 멈추더니 슈퍼로 들어갔다. 가게 주인 여자가 계산대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벌떡 일어나 반겼다.

“아이구 이게 누구래? 오랜만이네!”

말 없는 설희의 안색을 살피며 그녀가 다시 물었다.

“가만 있자….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벌써 돌아왔수?”

“네.”

“차암, 세월도 빠르지.”

“그때처럼, 알아서 담아주세요.”

“알았수. 여기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슈.”

슈퍼 여자가 입구에 매달아 놓은 검은 비닐봉투 몇 개를 힘껏 잡아 뜯더니 숙주나물과 고사리, 과일 등을 덜어 담으며 말을 이었다.

“요즘은 좀 나졌수?”

“그냥…, 그래요.”

설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힘없이 대답했다.

“에혀, 쯧쯧쯧. 허긴 뭐 그게 그렇게 쉽게 잊혀지겠수? 아참, 그런데 소문에 듣자 허니 아무 사이도 아니람서? 그만큼 했으면 이젠 그만 둘 때도 됐잖우? 대체 그 일을 언제까지 하려구 그러우?”

“…….”

“자, 이정도면 됐수? 아참, 포하고 술두?”

“네. 쌀도 최근에 들어온 좋은 걸로 한 봉지 주세요.”

설희는 슈퍼여자가 주섬주섬 건넨 봉투를 들고 골목으로 멀어졌다. 오른쪽 허벅지 통증이 다시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애써 통증을 따돌리며 캄캄한 집 안으로 들어선 그녀가 거실등 스위치를 켰다. 맞은편 거울에 이십대 중반의 젊은 여자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얼굴로 초췌하게 서 있다. 물끄러미 거울 속 자신을 응시하던 설희는 옷을 갈아입고 나물봉지를 개수대로 가져가 서둘러 제사상을 차렸다. 그녀는 늘 해오던 버릇처럼 하얀 쌀밥을 고봉으로 퍼 담고 쓸쓸히 향불을 피웠다. 향 연기가 하얀 해오라기처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리혜상… 이만하믄 만찬 아이네? 저승에서 떠돌믄서까지 배곯티 말구 날래 마이 묵으라.”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어 목숨 걸고 한국으로 탈출한 후, 설희는 벌써 오년 째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적막이 팽팽하게 부푼 누추한 원룸. 절을 마치고 초라한 제상 앞에 앉아 천천히 음복을 하는 그녀. 세월이 많이 지났건만, 눈 덮인 겨울벌판의 삭정이처럼 창백하고 가녀린 팔뚝마다 검붉은 흉터들이 가득했다. 민소매 원피스 밑단 사이로 오른쪽 허벅지가 들춰졌다. 살갗을 덧대어 꿰맨 수술자국으로, 탐스러워야 할 젊은 설희의 다리는 누더기 같았다. 길게 내쉬는 그녀의 한숨 소리가 검은 콜타르처럼 진득하다. 소주가 그녀의 몸속으로 아주 느리게 흘러내렸다. 제상을 마주한 그녀의 눈 속에 서서히 술기운이 차오르자 향불연기가 먼저 취했는지 아지랑이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몽롱함 속에서 자꾸만 누군가의 날카로운 손톱이 자신의 오른쪽 허벅지를 할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면 그곳을 긁는 버릇이 있다. 오래전 탈북하면서 생긴 깊은 흉터가 아직도 검푸르게 남아있었다. 친구가 살려달라고 절규하며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자신의 그 곳. 지금도 후유증으로 그 곳이 욱신거릴 때마다 그녀는 친구 혜상이가 다가와 만지는 줄 알고 화들짝 놀라곤 한다. 혜상이는 죽었다. 이미 오래전, 어릴 때 함께 도망치다 죽었다. 죽은 친구가 어린 모습을 한 채 피 묻은 얼굴로 설희의 꿈에 자주 나타났다. 하루 일을 마치고 불 꺼진 집에 돌아와 눈을 감고 누우면 그날의 악몽이 덮쳐와 설희를 늘 괴롭혔다. 그 후로, 견디다 못한 설희는 독한 술과 함께 수면제를 먹어야 그나마 잠들 수 있었다.

혜상이의 제상을 차렸던 그날 밤도 설희는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술 한잔을 가득 따랐다. 얼마 남지 않은 향불이 제상 위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혜상아…. 리혜상. 너두 이제는 제법 나이를 먹었겠구나야. 자, 후후후 한잔 하재이. 너 한잔, 나 한잔, 오래전 그 두만강의 시퍼런 물살도 한잔. 도망길에 검은 어둠 속에서 야광빛처럼 울어대던 풀벌레들도 한잔. 연변에 숨어 살 때 창백하고 무서웠던 물 먹은 달빛도 한잔….”


벌써 16년 전 일이다. 

전력이 딸려 모두가 일찍 잠든 밤. 함경북도 무산읍 칠성리 작은 마을. 산비탈 판자촌 어느 집에 작은 불빛 하나가 켜졌다. 땟국이 번질거리는 누더기 이불 속에 누워있던 아홉 살 여자아이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다. 오늘따라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고깃국에 허연 이밥을 배불리 먹은 것도 난 데 없는 일이었다. 배는 더없이 부른데, 그전과 달리 왠지 모르게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건넌방에서는 설희의 부모가 뭔가 소리 낮춰 대화중이었다.

“당신 정말 미쳤슴매? 정말 그 짓을 하겠단 말이오까?”

중년의 부부는 오랜 굶주림으로 몰골이 처참했다. 그들이 등을 기대앉은 벽지는 이미 손이 닿을만한 곳은 다 벗겨지고 없었다.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다 참지 못 해 벽지조차 모두 뜯어먹은 후였다.

“기럼 어떡하네? 낼더러 더 이상 뭘 어떡하란 거이가? 기냥 이대루 천장 쳐다 보믄서 세 식구 다 굶어 죽어서리 한날에 황천길 가자는 거이네? 내는 뭐 이기 좋아서 하네?”

“그래두 그렇지비! 그건 도저히 사름으루 할 짓이 못되우다”

“간나 에미나이래, 갑자기 와 이칸? 일전에 니두 동조 아이했네? 고거이 벌써 잊었네? 니보라우, 낸두 가슴은 아프디만… 우짜가서? 니번 고난의 행군 시기를 무사히 넘겨야 하지 않칸? 어케든 니 고비를 넘기구서리, 친애하는 김정일 위원장동지 말대루 이밥에 괴깃국 먹는 시절이 오믄 그때 가서 아는 또 낳으믄 되디 않칸…? 설희 저 아도 니럴 수밖에 읍는 우리를 저승에 가서라두 이해 해 줄 끼야.”

설희는 어느새 방문가까이 귀를 대고 서있었다. 아직 어려 부모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낳아 준 엄마와 아버지가 자신에게 수면제를 먹여 깊이 재운 후 죽여서 장마당에 그 인육을 내다 팔자는 말이 그 방 안에서 오가고 있었다. 충격은 천둥처럼 아이의 귀청을 때렸다. 갑자기 사타구니와 허벅지를 휘감으며 뜨끈한 물줄기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겁에 질린 설희는 선채로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싸고 있었다.

“지 아새끼를 죽이구 난 후에 이밥에 괴깃국, 그기 다 뭔 소용임매? 설희아바디 제발 기만 하쑤꾸마! 흐흑….”

설희엄마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뭐이 어드레? 시방 뭐라했찌비? 이런, 삶은 소대가리 간나이. 이기 완전히 일자무식쟁이두 아임서 말뽄세 보우다. 기럼, 이제 와 내래 어카라는 기야?”

“설희아바디, 안 돼쑤꾸마. 기럴 순 없슴매. 이건 암만 생각해두 인간이 할 짓이 아임매. 말이 안 되우다. 당신은 하늘이 무섭지두 않슴?”

“이 개 쌍 쫑간나이! 일전엔 내 말대루 하겠다 하구선, 인제 와 못 하갓다니, 무시기 지랄이지비? 니 시방, 내 맴은 멀쩡한 줄 알간? 입 다 맞춰 놓구선 와 이제 와 왼새끼를 꼬구 지랄이네?”

“설희아바디, 애 자다가 깨갓수꾸마. 지발 좀 조용조용히 말 하우다래.”

목에 핏대를 세우던 설희아버지가 알 수 없는 흰 가루약 봉지를 방바닥에 패대기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니보라우! 지금 돌아가는 세상 꼴은 말이 되네? 지금 내 하나 잘 살자구 이러네? 우리만 기런 게 아인데 와 자꾸 님자까지 이러는 거지비?”

“글쎄! 난! 못하갔으니깐 더 이상 기딴 소린 하지 마시오다.”

“니런, 쌍! 개 간나이! 설희는 내 새끼 아이네? 내 맴두! 내 맴두! 시방 미어지는 걸 니가 알간?”

설희 아버지가 아내를 노려보다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섰다. 설희엄마는 울음소리가 건넌방 설희의 귀에 들릴세라 낡은 이불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통곡했다. 어린 새끼를 죽여야 하는 그녀의 슬픔도, 칠흑같이 캄캄한 밤도 영영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공포에 싸인 얼굴로 문밖에 선 채 굳어졌던 설희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같은 날밤, 옆 마을 독소리도 발칵 뒤집혔다. 주민들에게 배급을 하던 중앙당간부가 양식 일부를 빼돌려 팔아먹다 들통이 나고 말았다. 마침 그 장면을 이웃집 다른 간부가 담장 너머로 모두 보게 된 것이었다. 그 일로 혜상이 아버지는 반동분자로 고발을 당했다. 그 사건은 김정일에게 직보 됐고, 조국과 인민의 생명인 식량을 빼돌린 악질반동분자로 내몰렸다. 그날 밤 온 식구가 체포되어 한밤중에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 무리에서 한 아이가 쫓기는 동물처럼 죽을힘을 다해 어둠 속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혜상이 부모는 결국 북한의 회령 22호 정치범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행복하게 살던 혜상이는 갑자기 꽃제비가 되어 거리로 떠돌았다. 떡지고 난발한 머리에는 이가 득실거렸고 온몸에 벼룩이 옮긴 피부병이 번져 살갗이 말라붙은 똥딱지처럼 갈라졌다. 청진의 수남 장마당을 떠돌며 땅바닥에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주워 먹던 혜상은 배가 너무 고팠다. 오후에 장마당에서 우연히 한 꽃제비를 만났다. 눈만 떼꾼하게 빛나던 그 사내아이는 청진에서 제일 큰 수원 장마당에서 수년간 떠돌았다며 자랑삼아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서인지 사내아이는 정보가 남달리 빨랐다. 그 아이가 혜상에게 속삭였다.

“알았네? 기니까네 이따가 련두봉 첫 번째 골짝 초입으루 나오라우. 기럼 이따 보자이? 내는 기럼 먼저 가갔어.”

사내아이는 혜상이에게 그 말만 남기고 저녁 일몰 속으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밤이 깊어지자 혜상은 속는 셈치고 련두봉 골짜기로 가보기로 결심했다. 깊은 밤을 틈 타, 낮에 사내아이가 일러준 그 야산으로 숨어들었다. 얼마를 올라갔을까. 아궁이그을음처럼 새카만 어둠을 부드러운 달빛이 서서히 밀어냈다. 달빛 아래 야산 자락의 흙들이 붉게 파헤쳐 진 것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때, 그리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흙길에 이슬이 흥건히 내려 혜상의 발이 자꾸 아래로 미끄러졌다. 아이는 소리 나는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곳에는 이미 혜상이 또래 몇이 둥글게 돌아앉아 어둠 속에서 정신없이 뭔가를 파헤치고 있었다. 이틀 전, 계급이 제법 높은 고위층 당간부 집에 초상이 났던 것이었다. 그 소문을 들은 굶주린 꽃제비들이 한밤중에 망자음식으로 배를 채우려 약속이나 한듯 공동묘지로 모여 든 것이었다. 묻은 지 얼마 안 된 무덤 주변에 망자 옷을 태운 잿더미와 갖가지 쓰레기들과 음식 찌꺼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닥쳐올 겨울을 생각해, 불에 타다 만 망자의 옷을 챙기느라 정신없다. 낮에 혜상이와 만났던 그 사내아이는 웬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에잇! 재수가 없을라니끼니! 야, 한발 늦었다. 이미 누군가 먼저 다녀갔다이.”

아이들 중에서 키가 반 뼘쯤 더 큰 아이가 뗏장 흙을 집어 패대기쳤다. 한참을 더 무덤주변을 샅샅이 뒤지던 아이들은 뿔뿔이 산을 내려갔다. 혜상이도 힘없이 산을 내려갔다. 그날 밤, 나무 뒤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설희와, 산을 내려가던 혜상은 처음 만났다. 그날 공동묘지에 가장 먼저 숨어든 설희는 매장지 주변에 떨어진 국수조각 몇 가닥을 먼저 주워 먹고 제법 깨끗한 망자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날 밤 둘은 어둠속에서 서로 부딪쳐 귀신인줄 알고 혼비백산해 뒤로 자빠졌다.

어느 새 열두 살이 된 설희와 혜상이. 그날 무덤 사건 이후로 둘은 단짝이 되었다. 둘은 함께 다니며 장마당에서 구걸을 했고 쓰레기장을 뒤지며 거리를 떠돌았다. 그 해 북녘 땅에는 끝이 없는 고난의 행군과 함께 최악의 가뭄이 찾아왔다. 세상의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마을에서 아이들이 사라지는 그만큼, 거리에는 굶어죽고 얼어 죽은 시체가 늘어갔고, 장마당에는 알 수 없는 고깃덩이들이 밀거래 되었다.

“김일성 장군님 만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장군님을 목숨으로 옹호 보위하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 만세! 만세!”

눈보라 몰아치는 생사의 기로에서 봄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얼음보다 더 차디찬 벌판에, 풀과 나무보다 먼저 피어나는 것은 거리에 나부끼는 화려한 선전문구들이었고, 유래 없는 최고의 겨울추위가 지나고도 봄은 선군정치처럼 멀었다. 들판에 앞 다퉈 피어야 할 꽃들은 씨가 말랐고, 그 대신 곳곳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신음소리가 칡넝쿨 다래넝쿨보다 더 무성했다. 그렇게 질긴 죽음의 봄은 가고 다시 여름이 왔다. 결국 북한정부는 배고프면 반동분자를 고발하라. 그럼 양식을 주마 선전포고를 했다. 배고픔에 참다못한 설희가 혜상이를, 인민의 생명을 담보한 식량을 빼돌린 악질정치범의 도망친 자식이라고 고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배고픔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북한반도의 들판은 붉은 내장을 내보인 지 이미 오래였다. 사막보다 더 황량해진 벌판에서, 그들은 더 이상 풀뿌리를 캐 먹을 수도, 나무껍질을 벗겨 먹을 수도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눈 딱 감구 고발하자우…. 기건 안 돼. 혜상이는 내 동무 아임매…. 동무는 뭐이 얼어 죽을 동무가? 강냉이 죽 한 그릇만 먹었으면 소원이 읍겠다야. 그래도 아니야. 동무를 죽 한 그릇에 팔수는 읍지 않네. 아냐! 내일 혜상이가 장마당으로 나가믄 내는 배가 아프다 하구선 뒤로 빠지는 기야. 그때 인민보안부로 달려가 고발하는 기야. 기래. 혜상이 자는 기래두 부모 잘 만나서리 그동안 호의호식 했잖네? 내가 자한테 미안 할 거 하나두 읍지 않칸?’

그것을 알 리 없는 혜상이가 저만치 앞서 가다가 설희를 불렀다.

“이런! 간나이! 야, 양설희! 와 이리 굼벵이처럼 못 따라오네? 날래 가자.”

혜상이 부르는 소리에, 설희는 순간 혜상이를 고발하려는 자기 생각이라도 들킨 양 가슴이 철렁 무너져 내렸다.

“어? 어…. 지금 가고 있다.”

둘은 동네 냇가로 달려갔다. 냇가 여기저기에서 죽은 시체들이 둥둥 떠내려가다 돌부리에 걸려 간당거렸다. 어떤 시체는 이미 부패가 심해 온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쉬파리 떼가 헤진 살갗을 빨아먹었다. 처음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돌던 때에는 무척 섬뜩했던 광경들이 이제는 너무 흔하게 느껴져, 썪는 악취만 빼면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오래 굶은 아이들에게 불볕더위는 싸워야 할 또 다른 적이었다. 둘은 1초도 망설임 없이 물로 뛰어들었다. 허기증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냇물에 얼굴을 박고 정신없이 물을 들이켜댔다.

그 순간, 갑자기 설희가 물속으로 고꾸라지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야! 와 이칸? 정신 차리라! 설희야! 설희야!”

아이는 미동도 없었다.

“도와 주시라요! 도와 주시라요!”

곁에서 함께 물을 켜던 혜상이 놀라 물에 처박힌 설희를 있는 힘껏 강변으로 끌어냈다.

혜상의 외침에 주변에서 빨래하고 멱을 감던 주민들이 몰려왔다.

“쯧쯧쯧, 이 아는 곧 죽을 기야. 뱃대지에 뭐이 들어갔시야 살지비.”

살갗이 검고 깡마른 중년 사내가 삭정이 같은 손가락으로 실신한 설희의 눈을 까뒤집어 보았다.

“이보라. 누깔이 수년 가뭄에 바짝 마른 빈 우물 보담두 한 뻼은 더 휑허지 않네? 창지 속이 텅텅 비었는데 뭔 힘으루 정신을 붙들갔네? 이 아는 시방 저승이 코 앞이구나야.”

“아재비동무! 재 좀 살려주시라요! 제발 살려주시라요!”

“니 보라. 내 말 못 알아듣네? 야가 뭐를 먹어야 사는데, 사방에 먹을 거이 어드메 이서? 먹을 거라믄 풀뿌리두 나무뿌리도 죄다 씨가 말랐지비? 그래서 죽는다 아이했슴? 용쓰지 말라.”

중년사내가 실신해 늘어진 설희를 안아다 그늘에 눕혀주고 손을 털며 멀어졌다. 혜상이는 주변 나뭇가지를 꺾어 설희에게 그늘을 더 깊이 드리워주었다. 혜상이는 눈물을 훔치며 쏜살같이 거리로 내달렸다. 달리면서 뭔가를 떠올리려 애썼다.

‘설희야 죽지 마라. 죽으믄 절대 안 돼. 기런데 지금 내는 어드메루 가야 하간? 어드메루 가야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지비? 내는 시방 생각해 내야 한다. 빨리 생각해 내야한다….’

혜상이는 장마당으로, 당 간부들이 몰려 사는 동네 쓰레기장으로, 협동농장 두엄더미로, 미친 듯 내달렸다. 혜상이가 설희를 살린 것은 소똥 속에서 찾아낸 옥수수 아홉 알과 밥풀 몇 알이 동동 뜬 돼지우리 구정물이었다. 혜상이는 그것을 품에 안고 달려와, 설희에게 정성껏 먹였다. 거짓말처럼 설희의 정신이 돌아왔다. 설희는 혜상이를 바로 보지 못했다.

‘이런 아를 내가 반동분자의 자식이라고 고발하려 했다니…. 혜상아 정말 미안하다야.’

배고픔에 지친 설희와 혜상이는 시국이 피폐해져 갈수록 구걸이 힘겨워졌다. 온 몸에서 근육이 빠져나가고, 단백질 결핍과 비타민 결핍으로 아무데서나 맥없이 쓰러졌다. 죽음처럼 덮쳐오는 잠을 이기기 힘들었다. 결국 참다 못 한 둘은 깨진 사기조각을 챙겨들고, 밤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인육을 찾아다녔다. 아이들은 그 붉은 살을 도려 먹으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연명해 갔다.

혜상이가 탈북을 결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은 얼마 후였다. 양강도와 함경도 일대를 떠돌던 혜상이와 설희는 우연히 장마당에서 혜상이 부모 소식을 듣게 되었다. 몇 년 전 회령 22호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혜상의 부모가 얼마 전에 처참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회령22호 정치범 수용소는 생화학 무기 인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그곳으로 끌려간 정치범 여섯 명이 생화학 생체실험용으로 희생되었는데, 그때 혜상이의 부모도 함께 죽고 말았다. 혜상은 울지 않았다. 다만 힘없고 불안한 시선을 허공에 두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전처럼 설희와 함께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며 구걸하지 않으려 했다. 혜상은 시간이 갈수록 불안한 눈빛이 심해졌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마다 거리에는 팔다리가 없는 아이들이 눈에 띠게 늘어갔다. 혹독한 겨울을 넘기며 동상 걸린 아이들이 끝내 그곳을 잘라내고 다시 봄이면 냉이나 질경이처럼 끈질기게 거리를 뒤덮었다.

아이들은 그날, 무산쪽 장마당에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국수가닥을 싸움하듯 주워 먹던 혜상의 사타구니 사이로 뜨끈한 게 느껴졌다. 초경이 터진 것이었다. 설희는 말로만 듣던 달거리 광경을 그날 혜상이를 통해 처음 보았다. 배를 움켜진 혜상이는 잘 걷지를 못했다. 허벅지에서 발목으로 선지같이 걸쭉한 핏물이 붉은 꽃뱀처럼 휘감아 내렸다.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혜상이의 얼굴빛이 가루약처럼 하얘졌다. 아이는 판잣집 바람벽에 간신히 기대있었다. 설희가 혜상이를 부축해 냇가로 데려가 몸을 씻게 해주었다. 설희는 태어날 때부터 심한 영양실조로 아직 달거리가 없었지만 혜상이는 그래도 간부의 자식이었기에 건강이 좀 나은 편이었다. 혜상이를 물가에 두고 설희가 어딘가를 다녀왔다. 어디서 구했는지 누더기같은 천 조각들을 모아 혜상에게 건넸다.

“자, 이걸루 위생대 하라.”

둘은 언덕에 쓸쓸히 앉았다.

멀리서 석탄 실은 화물차가 검은 독사처럼 기어가고 있었다. 이제 어른이 다된 설희와 혜상이도 문득 어딘가로 서둘러 떠나야한다는 생각이 여물어갔다.

길 위의 날들이 길어질수록 처음엔 막막했던 꽃제비 생활에 두 아이는 자신들도 모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악취가 풍기는 쓰레기 더미를 들치자 갖가지 오물 더미 속에 낯선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설희가 그것을 판자집 창문 아래로 가져가 희미한 불빛 아래 펼쳐보았다. 손바닥만 한 종이에 검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북한 주민들이여! 우리는 일제시대 보다도 더 악랄한 김씨 일가의 독재정권에 자유와 인권을 빼앗겼다….’

그것은 바로 남한에서 날려 보낸 대북전단지였다. 그날은 운이 좋았다. 1달러도 함께 종이에 접혀 있었기 때문이다. 설희는 누가 볼세라 재빨리 1달러를 숨기고, 다시 썩는 내 나는 쓰레기더미에서 온 종일 굶은 허기를 채워줄 간절한 뭔가를 짐승처럼 찾아 헤맸다. 근처에서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한 꽃제비들이 꽤 여럿 보였다. 여러 날 동안 뭔가를 먹지 못한 설희와 혜상의 얼굴이 망초꽃처럼 하얗게 부어있다.

“혜상아, 네래 뭐이 먹을 거 좀 찾았네?”

“없다쿠나야.”

그때 썩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뭉치 더미를 헤집던 혜상이가 미친 듯 뭔가를 입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딴에도 비위가 뒤집히는지, 당장이라도 토할 듯 헛구역질을 해대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을 본 설희가 알사탕만 한 눈에 불을 켜며 쏘아댔다.

“야, 고거이 뭐이가? 뭘 먹는 거이가?”

혜상이는 대답 할 겨를도 없이 뭔가를 계속 입안으로 우겨넣었다.

“이 간나 에미나이래! 고거이 뭐냐고!”

설희가 사납게 혜상이의 손을 휘감아 쳐냈다. 감자 껍질이었다. 그것은 이미 썩은 지 오래되어 미끄덩거렸다. 그것을 움켜 쥔 혜상의 앙상한 손등까지 커다란 벌레가 우글우글 기어오르고 있었다. 썩은 감자껍질에서는 사람 똥냄새보다 더한 악취가 지독하게 풍겼다. 설희는 자신도 모르게 순간, 손으로 코를 잡아 쥐었다.

“하이구야. 이기를 어케 먹네? 야야, 니 시방 미쳤네? 정신 차리라. 배고프다고 암거나 먹어대단 더 큰 일을 치를 수가 이서. 먹지 말라. 글쎄, 먹지 말라우!”

며칠을 굶은 혜상의 귀에 설희의 그 다그침이 들릴 리 없었다. 당간부의 자식으로 부유하게 자란 혜상이는 설희 보다 유독 배고픔을 참지 못했다. 지독한 굶주림이 심해질수록 더 늦기 전에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는 본능이 더 높이 고개를 들었다. 그날은 설희가 주운 1달러로 둘은 오랜 만에 배불리 잠들 수 있었다.

장마가 시작된 그해 여름. 설희와 혜상이는 ‘선군정치’ 간판이 커다랗게 서 있는 두만강으로 향했다. 그러나 국경인민수비대에 걸려 둘은 근처 풀숲으로 거칠게 끌려갔다. 설희와 혜상은 대낮에 들판에서 초병둘에게 겁탈을 당하고 가까스로 철조망을 넘어 도망쳐 나왔다. 둘은 그날의 기억이 너무도 끔찍해 한동안 두만강 근처로 다가가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또 다시 거리의 꽃제비로 구걸이 시작되었다. 그 일로 혜상이는 덜컥 임신을 했고 이듬해 2004년 봄 열여덟 살, 제비꽃같은 나이에 차디찬 폐가 땅바닥에서 원치 않는 아기를 낳아야만 했다.

“응애…! 응애…!”

난생 처음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린 어린 혜상은 알 수 없는 눈물이 끝없이 흘렀다. 핏덩이가 울 때마다 어린 혜상의 젖이 도느라, 불에 데인듯 욱신거리고 아팠다. 너무도 일찍 엄마의 몸이 된 혜상의 젖몸살이 심해질수록 두만강 물줄기보다 더 힘찬 모성이 아기에게로 흘러갔다. 태어난지 며칠 안 된 핏덩이는 수시로 젖을 달라 보챘고, 그런 순간마다 둘은 간이 오그라들었다. 인민보안부 수비대의 순찰이 갈수록 심해지는 판에 아기의 울음소리는 그들의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설희와 혜상이는 젖먹이가 울어 더 이상 데리고 다닐 수 없었다.

“거기 숨은 거이 뉘기네! 날래 나오라우!”

낡고 헤진 거적문 안으로 보안부 모습보다 시커먼 총구가 먼저 뚫고 들어왔다.

둘은 망설임 끝에 헛간에 핏덩이를 눕혀놓고 뒷문으로 도망 쳤다. 혜상이 누워 젖을 물렸던 볏짚 더미에 묻은 핏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그 위에 홀로 남겨진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때 두 아이를 쫓던 인민보안부가 아이 울음소리에 이끌려 모두 헛간 쪽으로 수색방향을 돌렸다. 기구하게 태어난 핏덩이가 두 소녀의 목숨을 살린 날이었다. 설희와 혜상은 본능에 이끌려 두만강 쪽으로 무조건 뛰었다. 몸을 푼 지 얼마 안 된 혜상이 젖이 불어 그 통증으로 잘 뛰지 못했다. 다 낡아 헤진 누런 셔츠에 새어 나온 젖이 흥건히 스며, 해바라기처럼 커다란 얼룩이 활짝 피어났다.

‘아기는 어케 됐을까……?’

허겁지겁 도망치는 혜상의 마음이 캄캄했다. 한참을 도망치던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둘은 서로의 눈을 잠시 바라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기를 낳고 조리를 하지 못한 혜상은 몹시 지쳐 있었다.

‘혜상이에게 뭔가를 먹여야만 할낀데…….’

설희는 도망가는 길에 밤을 틈 타, 길 가에 있는 당간부집 담을 넘어 들어갔다. 그곳 부엌에서 삶은 감자와 소금을 훔쳐 봉지에 꽁꽁 싸매 허리춤에 차고 달빛에 의지해 무조건 두만강 쪽으로 뛰었다. 아직 본격적인 우기가 아니어서 수심이 깊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두만강은 강폭이 좁고 다른 강에 비해 평균수심이 얕았다. 강을 건너 중국 국경부근에서 조금만 가면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가까웠다. 설희는 예전에, 중국에 가면 두만강 주변 조선족들이 탈북민들에게 비교적 호의를 베푼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에게서 들은 기억이 났다.

“혜상아, 저 강을 무사히 건너기만 하믄 우린 자유를 찾는 기야. 날래 가자! 저 너머로 가자우! 어케든 살아서만 건너가자우! 이 강을 살아서 건너가믄 그 짝은 조선족들이 많아서리 숨을 곳도 충분할 기야. 자 어케든 날래 가자!”

“설희야……. 내래 젖이 불어서, 너무 뜨겁고 아프구나야.”

혜상은 마치 곧 터질듯 한 커다란 풍선 둘을 가슴에 품은 듯했다. 혜상의 젖몸살이 목덜미까지 퍼져 얼굴까지 벌겋게 열이 오르고 있었다.

저 멀리 초소 뒤로 낮게 깔린 서녘노을이, 얼큰한 고추장수제비처럼 들끓었다. 노을 속에서 국경수비대 인민군이 총을 메고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인민군 하나가 낯이 익었다. 작년 여름에 설희를 겁탈했던 그 놈이었다. 악몽이 떠올라 미간이 일그러진 설희는 고개를 숙이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풀숲에 몸을 숨긴 설희와 혜상은 경비대가 구역을 순회하러 잠시 사라진 틈을 타 살금살금 물속으로 숨어들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강물은, 중심부로 갈수록 점점 더 깊었다. 보안경비대가 순찰에서 돌아오기 전 둘은 빨리 두만강을 건너야만 했다. 부유했던 시절 간간히 수영을 배웠다던 혜상은 제법 헤엄을 잘 쳤다. 동네 냇가에서 개헤엄만 쳐 본 설희는 수심이 점점 깊어지자 공포감으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혜상이 안간힘을 쓰며 한쪽 팔로 물속으로 가라앉는 설희 몸을 떠받쳐주었다. 둘은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두만강을 건넜다. 혜상은 헤엄이 서툰 설희를 부축하며 건너느라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잠깐이면 건널듯 한 강폭이었지만, 눈앞에 손에 잡힐듯 하면서도 중국 땅이 아득히 멀었다. 둘은 수없이 잠수하고 강물을 삼키며 사력을 다해 헤엄쳤다. 어느새 새벽 푸른빛이 강변에 안개처럼 가득했다. 지옥같은 물속에서 얼마나 허우적댔을까…. 드디어 앞서 헤엄치던 설희의 발밑에 모래와 자갈이 느껴졌다.

‘살았다! 우리가 드디어 두만강을 건넜구나야!’

혜상이와 설희가 중국 쪽 둑방을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앞서 달리는 설희를 따라 혜상이 힘겹게 달렸다. 북쪽 당간부 집에서 훔쳤던 감자와 소금은 강물이 삼킨 지 이미 오래였다. 바로 그때.

‘탕-!’

‘윽-!’

앞서 달리던 설희의 종아리 쪽으로 따뜻한 뭔가가 튀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살점이었다.

출산 후 회복도 안 된 몸으로 설희 뒤를 힘겹게 따라가던 혜상이 총에 맞고 말았다. 달리던 혜상은 맥없이 억세 밭 위로 고꾸라졌다.

“안 돼! 야, 정신 차리라! 혜상아. 야!”

“서…, 설희야……. 나 좀 사, 살려 줘…….”

“혜상아! 정신 좀 차리라! 이 쫑간나! 죽지 말라우! 니래 이대루 죽으면, 그땐! 내가 정말 죽여버리가서! 알갔네? 눈 떠! 어서 내를 봐! 내 손을 잡으란 말임!”

“설희야……. 내……, 내는 틀렸다이……. 니라두 날래 도망치라…… 날래….”

혜상의 등 쪽 갈비뼈를 뚫고 들어온 총알이 앞쪽 뱃속까지 휘저어 놓았다. 관통상을 입고 풀밭에 쓰러진 혜상이 괴로운 얼굴로 힘겹게 설희를 바라보았다. 극심한 고통으로 숨을 헐떡일 때마다, 혜상의 배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창자가 뱀처럼 꿈틀거렸다.

“설희야……. 너, 너무 아……파……. 제발 내 좀 살려…….”

실오라기처럼 가늘어진 혜상의 숨이 더욱 거칠어졌다. 경련으로 떨리던 혜상의 손이 마지막 힘을 다해 설희의 허벅지를 날카롭게 움켜쥐었다.

“아악-!”

생살이 뜯겨나가는 듯한 통증에 설희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 본능처럼 움켜쥔 혜상의 손에 설희의 허벅지 살이 잡혔던 것이다. 혜상의 눈에는 이미 흰자위가 가득했다. 설희가 놀란 얼굴로 급히 혜상을 품에 끌어안았다.

“설, 설희야……. 내는 인차 틀려서야……. 니래 만약 여기서 무사히 탈출하믄, 아기……, 우리 아기 좀…… 찾아 봐 주라마…….”

“어, 기래! 약속하지비! 알았으니까니 힘내라마. 죽으민 아이된다이……. 혜상아 제발 죽지 말라우…….

극심한 통증으로 온몸에 경련이 일 때마다, 혜상의 가슴에서 퉁퉁 불은 젖이 흙투성이 옷자락에 울컥울컥 베어났다. 설희의 허벅지를 움켜쥔 혜상의 손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더니 땅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멀리 두만강 건너편 검푸른 미명 속에서, 국경수비대가 또 다시 총구를 겨눴다.

“혜상아! 내가, 꼭 다시 올끼니까니. 니 무서워두 조금만 참구 있슴매!”

설희는 강 건너편 인민군의 총구를 피해, 급히 억새풀 사이로 몸을 숨겼다.

‘탕-!’

다급하게 풀을 뜯어 식어가는 혜상의 몸을 대충 덮어놓고 설희는 가파른 강둑을 기어 올라갔다.

‘탕-!’

그 순간 설희는 어떡하든 살아남고 싶은 한 마리 짐승 같았다. 필사적으로 달리는 동안, 혜상이가 자신의 허벅지를 붙들며 살라달라 애원하던 간절한 눈빛이 눈앞을 가렸다. 설희는 산짐승처럼 새벽어둠을 가르며 이를 악물고 쏜살같이 조선족이 산다는 산 쪽으로 무작정 내달렸다.

한낮이 되자 공중의 태양은 거짓말처럼 평화로웠다. 간밤의 사건은 두만강 강바람에 묻혔는지 고요했다. 다만, 물 이쪽과 저쪽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침묵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새벽에 어딘가로 급히 도망쳤던 설희가 한밤중에 몸을 낮추고 들고양이처럼 다시 강변에 나타났다. 설희는 웬일인지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그녀는 중국국경 강둑에 싸늘하게 누워있는 혜상의 시신을 급한대로 구덩이를 파고 묻어주었다. 둥글게 무덤을 만든 후 개망초와 참나리꽃 한줌을 꽂아주고 저만큼 돌아서 가던 설희는 돌아와 무덤을 다시 파헤쳤다.

‘내 너를 두 번 죽게 놔둘 순 읍지비. 혹시 누군가가 너를 파헤쳐 뜯어먹을지 어케 알갔네.’

설희는 망설임 끝에 불룩하게 만들었던 혜상의 무덤을 다급하게 허물었다. 봉분을 없애고 평평하게 흙을 펴서 발로 다지고 그 위에 돌을 얹었다. 그녀는 목이 부러진 들꽃들을 그 위에 흩뿌려주었다.

“혜상아, 내 꼭 니를 다시 찾으러 오꾸마. 알간? 내 꼭, 그 아기도 찾을끼야. 내 이렇게 약속하지비.”

설희는 둑방의 커다란 미루나무로 그곳 위치를 가늠했다. 혜상이 묻힌 지점을 머릿속에 또렷이 새겨두고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 그날 설희는 가파른 둑방을 기어오르다 그만 녹슨 철근 조각에 허벅지를 깊숙이 찔렸다. 그녀는 상처를 돌볼 새도 없이 밤마다 죽을힘을 다해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오른쪽 허벅지의 통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철근에 찔린 그곳은 파상풍으로 덧났고, 도피하는 동안 넓적다리 한쪽 전체가 썩고 곪아갔다. 다리를 절며 설희는 여러 나라를 돌며 8000㎞를 거쳐 가까스로 탈북에 성공했다. 중국과 몽골 국경을 넘어, 2010년 꿈에 그리던 한국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지만 그녀의 허벅지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설희는 안성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받고, 남한 적응기간을 거쳐 자립했다. 2015년까지 5년간 한국에 적응하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친구 혜상이의 제사를 지내온 그녀였다.

“설희씨. 나 박인철 형사입니다. 남한 적응은 잘 하고 있지요? 어려운 점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세요.”

어느 날 그녀의 담당 형사에게서 뜻밖의 연락이 왔다.

“이번에 탈북한 사람이 마침 설희씨 고향 근처에 살았대요. 한번 만나 볼래요?”

설희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극적으로 탈북자 중에 무산쪽 고향사람을 만났다. 그날, 혜상이가 낳아서 버린 갓난아이는 그 폐가에서 북한 경비원이 군홧발로 밟아 작은 두 무릎이 으스러졌다고 했다. 핏덩이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죽었고, 다음날 밤, 그 아기의 시체를 동네 누군가가 몰래 가져가 가마솥에 삶아먹었다는 끔찍한 소문을 설희에게 들려주었다.

실성한 듯 집에 돌아온 설희는 새벽 늦게야 잠이 들었다가 악몽을 꾸고 벌떡 일어났다.

꿈에, 어두운 산속에서 그녀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꿈에서 그녀는 핏덩이를 안고 산속으로 도망치다 포대기 속 아기를 살펴보았다. 방금 전까지 설희를 보며 방긋거리던 아기는 간 데 없고, 그녀 품에는 검게 썩은 구개골이 안겨 있었다.

“으아악-!”

설희는 혼비백산하며 그것을 땅바닥에 내집어던지고 자신의 비명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창백한 그녀 얼굴은 악몽에 시달려 식은땀이 흥건했다. 머리맡에는 병원에서 처방 받은 수면제 약병이 쓰러져 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녀가 거실로 나와 털썩 주저앉았다.

“흐흐흑…! 아---악!”

그녀는 실성한 여자처럼 머리를 풀어헤치고 한참을 울부짖었다. 밖은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소녀들의 웃음소리와 평화로운 인기척이 들려왔다. 설희는 힘겹게 일어나 아침밥상을 차렸다. 전기밥솥을 열고 밥을 푸려다 그녀가 갑자기 소름끼치게 비명을 질렀다.

“아악-! 저리 가!”

밥솥 안을 들여다보던 설희의 눈에, 오래전 폐가에서 인민보위부에게 밟혀 죽은 갓난아기의 얼굴이 보였다. 방금 지은 밥알이 아기 입 속에서 구더기로 돌변하더니 우글거리며 수없이 밥솥 밖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벌레들은 마치 팝콘처럼 부글부글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밥솥에서, 싱크대로, 싱크대에서 다시 거실 바닥을 지나서, 그것들은 그녀의 발등과 종아리를 타고 허벅지로 꾸물꾸물 기어 올라오는 환상이 보였다. 수천수만 마리였다.

"으악--! 저리 가!"

설희는 미친 듯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 뜯으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참다 못한 그녀가 거실벽에 걸린 전신거울을 향해 밥솥을 거칠게 집어 던졌다.

‘쨍그랑!’

산산조각 난 유리파편들이 거실바닥으로 유성비처럼 내리꽂혔다. 온통 아수라장이 된 거실. 중력을 가진 것들이 모두 조용해지자, 미세한 먼지들만이 아침햇살 속에 창백하게 허공을 떠다녔다.

바로 그때

‘위잉-. 위잉-. 위잉-.’

어디선가 곤충의 날갯짓이 들려왔다.

‘위잉-. 위잉-. 위잉-.

커다란 곤충이 간절한 자유를 향해, 필사의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리였다. 설희는 초췌해진 몰골로, 들려오는 소리의 끈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위잉-. 위잉-. 위잉-.

거울유리 파편들이 가득한 거실 바닥에서 핸드폰 진동이 끝없이 울리고 있었다. 박인철 형사였다. 설희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손가락을 뻗어 간신히 전화를 받았다.

‘설희씨, 좋은 아침~. 간밤엔 잘 잤죠? 오늘 북한인권운동 강연회 있는 날인 거 잊지 않았죠? 방송국 카메라 기자들도 많이 온다니까, 예쁘게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윤 형사랑 같이 설희씨 태우러 가는 중입니다. 잠시 후에 만나요.’

-끝-






출처 [김작가의 문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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