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단편소설 [마크리(MAKRI)]
게시물ID : readers_315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명희
추천 : 2
조회수 : 32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4/24 23:23:17
김명희단편소설

마크리(MAKRI)



유골이 놓인 형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손은 등 뒤로 묶였거나 깍지를 낀 상태에서 집단 사살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완전한 사지 유골이 없어 키나 신원 추정은 어려웠다. 현장에서는 탄피와 탄두, 탄창도 여러 점 나왔다.

― 박 하사! 산 아래 대기차량에 연락해 감식반 좀 올라오라해! 빨리!
― 내가 참말루 환장허구! 면장을 허겄네! 시방 당신들, 제정신여? 남의 선친들 고이 잠든 선산을 사전에 후손들한테 단 한마디 말두 없이! 아, 내가 종손이구 이 산 주인인데 내 허락두 없이! 이따위로 남의 선산을 파재끼다니 이게 말이 돼? 내가 너무 황당해서 온산을 돌며 파제낀 구덩이를 모조리 다 세 봤어. 구덩이가 무려 칠십 개가 넘드만? 당신들 그걸 다 어쩔 거여? 그리구, 이 산은 송이를 재배하는 산인 게 젊은 양반 눈에 안 보여? 물 호스가 뺑 둘러진 거 눈에 안 보이냐 말여? 어? 워쩔 껴? 이제 워쩔 겨?

주머니에서는 전화가 계속 울렸다. 집일 것이다. 지금은 도저히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 아…… 죄송합니다. 지자체에 사전에 연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어르신께 통보가 간 줄 알았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 당신이 책임자여? 쳇! 면목 없으믄 다여? 다여? 나! 이번 일 절대 순순히 못 넘어가는구먼! 이게 다 정부에서 지시 내려 하는 일 아닌감? 내가 울아들 시켜서 청와대와 담판 지면 되겠구만? 안 그런가? 난 당신들과 상대 못하것네! 정부가 나서서 내게 직접 사과하구 송이체취사업이랑 전부 피해보상 받아야겄어!
―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한 단시일에 다시 원래대로 해놓겠습니다. 사죄드립니다.
― 뭐? 원래대루? 허! 그래 말 잘했구만. 워떻게 원상복귀할 건데? 송이는 나던 자리가 한번 뒤집히면 다시는 나지 않는 벱인디. 뭘! 워떻게 헐 거여? 이 산에서 송이를 팔아 몇 식구가 입에 풀칠하는지 알구 허는 소리여? 당신네덜 일만 중요허구 남의 생업은 안중에두 없는겨?
― ……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원래만큼은 아니더라도 최대한 제자리로 돌려놓겠습니다.
산주인이 워낙 대차게 나왔다. 나는 분명 지자체에 알렸다. 사전 통보는 그들의 몫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산주인은 전혀 우리의 발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저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고개 숙여 진심을 다해 사죄를 드렸다.
― 어쨌거나 다시 제자리로 돌려 노슈! 그래봤댔자 송이 농사는 물 건너간 걸 테지만! 조상님 묘 주변이라두 제자리를 해놔야 인간의 도리 아니겄어? 젊은 양반들은 부모도 음나? 그렇게 처신하는 게 아닌겨! 흠!
― 네, 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 지금은 이만하고 지켜 보겄네! 며칠 후 올라와봐서 산 상태를 보고 다시 말함세! 흠!
― 예. 조심해서 내려가십시오. 암튼 죄송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 어머니를 찾았을까? 나는 산주인한테 온갖 항의를 다 받으면서도 오로지 어머니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목구멍에서 시고 텁텁한 물이 연신 넘어왔다.
― 박 중사!
― 넵! 충성! 단장님 부르셨습니까?
― 애들 시켜서 저것들 최대한 원래대로 해 놔.

산을 내려오며 급히 전화를 꺼내보았다. 메시지 하나가 와있었다.

‘여보. 왜 이리 연락이 안돼요? 문자 보는 대로 빨리 연락 좀 줘요.’

아내에게서 부재 중 전화가 여섯 통이 걸려와 있었다.

― 어, 여보 나야. 미안해. 진행하던 일에 골치 아픈 문제가 좀 생겨서 못 받았어. 어머님은?
― 아효. 말도 마세요. 앞전처럼 또 119 불러서 겨우겨우 핸드폰 위치 추적으로 찾았어요. 아니. 근력도 좋으셔.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 먼데까지 걸어가셨는지 원, 신발은 어쩌시고 맨발이셨어요. 넘어지셨는지 얼굴은 온통 긁히시고, 날이 조금만 더 추웠으면 아니 할 말로 일치를 뻔했어요.
― 그랬군. 그래, 어머님은 괜찮으셔?
― 네, 괜찮으시긴 한데…… 모내기하려고 물댄 논으로 무작정 들어가셔서 온 몸이 흙탕물예요. 다행히 조금 긁히신 것 외에 몸 상하신 데는 없네요. 바지에 오줌을 싸셔서 감기기운이 좀 있으세요. 씻겨드리고 약 드시고 방금 잠드셨어요. 휴, 큰일 날 뻔했지 뭐예요.
― 음, 그래. 당신이 고생 많았소. 나도 곁에 없이 당신혼자 그 일을 매번 감당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오.
― 당신 별말을 다 하네요. 며느리는 자식 아녜요? 나보다 어머님이 더 고생이시지요. 당신 오늘 늦어요? 어머니 깨시면 자꾸 당신 찾으시는데……
― 음, 오늘도 발굴단 회의가 있어서 좀 늦어 긴급회의라. 암튼, 끝나는 대로 서둘러 들어갈게. 당신도 좀 쉬어.
몸이 천근만근이다. 긴급회의실로 가는데 불독이 나를 호출했다. 불독은 허용만 대령의 별명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총지휘관이다. 불독의 분노는 예견된 일이었다. 송이 밭과 선산 문제 때문이다.
― 그쪽 담당 누구야?
― 충성! 저, 접니다. 죄송합니다.
― 그 선산 담당이 김준위였나? 죄송이구 뭐구! 뭔 일을 그따위로 해갖구 상부에까지 항의가 들어오게 만드나? 어? 앞전에도 분란을 일으키더니! 벌써 몇 번째야? 아니. 지자체에 사전 통보도 안했어? 기술사관이면 다야? 발굴단장이면 다냐구? 일 똑바로 못해?
며칠째 정신이 하나도 없다. 태풍에 휩쓸려 허공에서 이리저리 패대기쳐지는 느낌이었다.
― 죄송합니다. 제가 지자체에 사전 통보를 지시했습니다만 암튼, 모두 제 불찰입니다.
― 자네 지금, 뭔 일처리를 이따위로 하나? 언제까지 아랫사람들 핑계 댈 참야? 국민들 세금 날로 먹겠단 거야? 정신을 어디다 두고 일하는 거냐구? 이 일이 장난이야? 장난해 지금? 그 선산주인이 청와대게시판에까지 항의 글을 올렸어. 지금 윗선에선 난리도 아냐!
― …….
― 암튼, 이번 일로 상부에서 말이 여간 많은 게 아냐. 나도 더는 못 덮어줘. 김준위, 자네가 알아서 살아남든지. 옷을 벗든지 책임져.
― 죄송합니다.

― 아이구, 선배님. 뭐 이런 걸 다…… 저희는 이런 거 못 받게 되어있는 거 잘 아시잖아요? 선배님 마음만 받을 테니 다시 가져가세요. 그냥 편히 오셔도 돼요. 선배님, 어머님을 찾았을 때 보니 손에 꼬깃꼬깃한 편지를 들고 계시더라고요. 다행히 위치추적이 다른 날보다 용이했어요. 그쪽이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고 위험한 곳인데. 지나던 행인이 빨리 제보해 사고 없이 찾았죠.
― 김 소방경. 이거 번번이 신세지고 정말 고맙고 면목 없네.
― 선배님, 어머님께 신경 좀 더 쓰셔야겠어요. 노인성치매는 봄가을에 더욱 병세가 심해져요. 어제 다른 한 분은 도랑에서 주검으로 겨우 찾았어요. 아주 순간이에요.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시는 것 같던데…… 저러다 정말 큰일 납니다. 형수님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선배님. 기억나요? 오래전 내가 선배님 집 놀러 가면 어머님이 늘 해주던 그 단팥죽요. 진짜 끝내주게 맛있었죠. 저는 지금도 못 잊는다니까요. 후훗.
― 그래. 어머님이 그땐 팥죽을 자주 해주셨지. 그래, 암튼 여러모로 정말 고마워. 다음부턴 더욱 잘 살펴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지 뭐. 남은 시간 고생해. 이만 갈게.
소방서 주차장을 나서는데 잊은 게 있다며 김 소방경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 선배님, 이거요. 낮에 어머니 구조하고 물에 젖은 거 말려서 돌려드린다는 걸 깜빡했어요. 어머니 손에 꼭 쥐여있던 건데…… 엄청 오래된 편지 같던데요?
― 아, 고마워. 우리 어머니께는 목숨 같은 거야. 오래전 학도병으로 나간 후 소식이 끊겼던 오빠가  보낸 편지거든…… 그런데 치매에 걸리신 이후로는 이 편지를, 오래전 군입대 후 행방불명이 된 동생이 보낸 것으로 아시며 늘 품에 지니고 다니신다네. 어머니께 무척 소중한 건데 이렇게 챙겨줘서 정말 고맙네.
― 후훗, 고맙긴요. 자 그럼, 저는 또 출동 나가야 하니 선배님 살펴가세요.
소방서 주차장을 돌다 가로등 밑에서 낡고 오래된 그 편지를 펼쳐보았다. 흙물이 얼룩져있는 편지. 어머니는 이 편지를 쥐고 외삼촌들을 찾아야 한다며 집을 나가곤 하셨고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오빠와 남동생 이름을 부르며 우셨다. 

1951년 4월10일 화요일 

보고픈 나의 동생아 오빠다. 
오빠가 네곁을 떠나온 지도 벌써 한 해가 넘어가네.
오빠가 군 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철이도 입대 했다며?

하루아침에 두 아들을 전장으로 보내고 
먼 발치서 흐느껴 울었을 가족들의 눈물이 가슴을 아프게 하는구나.
그러나 동생아. 나는 지금도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아. 
우리 막내 준철이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야.
우리가 이곳에 있으므로 해서 어머님과 아버님의 하루가 안전하고
나의 예쁜 여동생의 미소가 지켜질 수 있다면 그 뿐, 난 그것으로 족하다. 
행여 오빠 때문에 울지는 마. 그리고 부모님 잘 부탁한다. 
오빠는 이제 내일이면 또 전투를 나가겠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멀리서 총성이 들리고 화약 냄새가 
귀신처럼 우리 곁을 맴돌고 있어. 나는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를 죽여야 해. 
누군가의 소중한 형을 동생을 아들들을 무수히 죽여야 하겠지
오빠는 그것이 가장 괴롭고 힘들다.
어서 하루빨리 이 악마 같은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어. 
잘 자라 이쁜아 내일 또 쓸게
내동생이  너무 그리운 오빠가…….

입이 소태다. 오늘따라 집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 멀다. 이대로 길가 아무데나 쓰러져 눕고 싶은 생각뿐이다. 

메.시.지.왔.어.요―
‘아빠! 아빠의 아들, 승혁입니다. 오늘 용인 기숙사로 다시 내려갑니다. 아빠 일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좀 돌보세요. 산이라 전화 못 받으실 것을 알기에 문자로 인사 드려요. 이번 시험 잘 봐서 꼭 좋은 결과 내도록 할게요. 자랑스러운 우리 아빠 파이팅입니다! ㅎㅎ.’

메.시.지.왔.어.요―
‘당신, 어디세요? 아직예요? 어머님이 또 당신 찾으며 자꾸 문밖으로 나가려 하세요…… 빨리 좀 오세요.’
‘그래. 집 앞이야······.’  

메.시.지.왔.어.요―
‘와우! 단장님. 감식과에서 방금 서류가 도착했는데요. 이번 유골들 중 전사자 유가족들에게서 채혈한 DNA와 일치하는 전사자들이 총 열네 분입니다. 이번에도 단장님의 활약이 단연 크셨습니다. 자세한 건 내일 뵙고 말씀드릴게요.’

감식과 홍 하사다.
― 다녀왔습니다.
― 오빠…… 어디 갔다 왔어? 내가 오빠를 얼마나 찾았는지 알어?
어머니가 내 품에 와서 안긴다.
― 아, 어머니. 저녁은요? 여보, 어머니 저녁 잘 드셨어?
― 오빠. 나 밥! 이만큼 먹었어.
― 아이구! 그러셨어요? 우리 어머님, 정말 잘하셨어요. 아프신 데는 없으세요?
― 오빠. 나 여기두 아프구 여기도 아퍼…….
― 아이쿠, 그래요? 어디…… 음, 제가 얼른 씻고 나와서 약 발라드릴게요. 여보, 나 피곤해 밥은 됐고 그냥 씻고 좀 누울게.
― 오빠 가지 마…….
어머니는 씻으러 가려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셨다.
― 어머니. 저 금방 씻고 나올게요. 어디 안 가요. 아셨죠?
― 여보, 당신 보나마나 한 끼도 제대로 못 드셨을 텐데…… 그럼 사골국물이라도 좀 후룩, 마셔요. 당신 그러다 쓰러져요…….
― …… 그럴까? 그럼 씻고 나올게 조금만 줘.
― 오빠. 오빠…… 가지마.

어머니는 나에게 오빠라 부르셨다. 
어머니는 내 무릎에 올라 앉아 아이처럼 노래를 불렀다. 거실 바닥으로 내려가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신다. 어머니의 치매가 시작된 지도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간다. 몇 년 전부터 증세가 부쩍 더 심해지셨다. 나는 마크리다. 마크리는 국방부에서 설립한 유해발굴감식단의 약칭이다. 우리는 특수부대이다. 내부에 조사과, 발굴과, 감식과, 지원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강원지부 발굴과 단장이다. 내 어머니 연세는 여든 넷 이다. 육이오 전쟁 때 군에 간 오빠와 남동생과 생이별을 하셨다. 두 분이 지금까지 살아 계셨다면 여든넷과 여든 둘 이시다. 큰외삼촌과 나의 어머니는 일란성 쌍둥이셨다. 두 분의 모습을 사진에서 보면 정말 똑같았다.

1950년 낙동강 전투 막바지였던 8월. 
온 세상이 포화 속에 파묻혔다. 스물 한 살이었던 큰외삼촌이 입대를 하셨다. 큰외삼촌이 입대하시고 불과 한 달 만에 작은외삼촌이 외할머니의 만류에도 입대를 하셨다. 현준식 이등중사와 현준철 하사 두 아들을 전장에 보내신 후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눈물은 단 하루도 마를 날 없으셨다. 현준식 현준철 두 형제는 입대 후 서울과 평양을 오르내리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어린 어머니는 오빠와 남동생에게 날마다 편지를 보냈다. 그 후 안타깝게 현준식 이등중사는 1951년 4월에 전사했다는 통보만 먼저 고향으로 돌아왔다. 동생 현준철 하사는 그 후 다섯 달 뒤 9월에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한 채 또다시 창백한 전사 통지서만 고향으로 돌아왔다. 두 형제의 유해는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생떼 같았을 두 아들. 그해, 우리 두 외삼촌은 스물 두 살과 스무 살이셨다. 그 충격으로 외할머니는 실신하셨고 지병을 앓다 두 아들을 잊지 못해 하늘로 따라가셨다. 외할아버지는 한동안 실어증에 시달리시다 내가 육군 수색대 하사로 입대했던 그 해, 두 아들과 아내를 따라 저세상으로 가셨다. 그 충격은 지금의 어머니께 다시 고스란히 옮겨졌다. 큰 외삼촌의 유품으로 남은 낡은 편지 한 통과 빛바랜 가족사진은 그날 이후 지금까지 어머니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부 주도하에 일시적으로 마크리가 진행되었다. 어머니는 육이오 전사자 유가족으로 유전자 감식용 채혈을 하셨고 오빠와 동생을 찾는 신청서를 내셨다. 시간만 나면 오빠와 남동생의 유골이라도 찾아야 한다고 혈안이 되곤 하셨다. 이 산하 어느 곳에 외삼촌이 누워 계신 줄 알고 찾느냐고 만류해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6년 전, 기적이 일어났다. 육이오 접전 지역을 발굴하던 중 마크리는 기적처럼 큰 외삼촌의 유해를 찾았다. 외삼촌이 63년 전, 전쟁 중 군에 입대하시며 품에 지니고 가셨던 가족사진까지 그대로 발굴되어 세상의 빛을 본 것이다. 큰 외삼촌이 입고 계셨던 군복은 산화되어 흔적도 없었고 인식표도 찾지 못했다. 다만 큰 외삼촌 유해와 단추 몇 개와 비닐에 싸인 편지와 사진 하나가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그 편지는 바로 어린 소녀였던 어머니께 전장에 나간 오빠가 밤새 적어 보냈던 거였다. 큰 외삼촌은 여동생에게 보낼 편지를 마지막까지 품에 안고 세상을 떠나셨다. 핏물이 얼룩으로 남은 그 빛바랜 편지는 63년 만에야 여동생에게 도착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차고 어두운 지하에 묻혀 지내셨던 큰 외삼촌의 유해가 모셔진 작은 목관에 가슴 벅찬 태극기가 고이 덮였다. 고인이 어둡고 캄캄한 지하에서 나와 새 빛을 보시던 날. 어머니는 어린 소녀의 눈물로 당신 오빠의 유해(遺骸)를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우셨다. 다행히 큰 외삼촌은 서울 현충원에 안장 됐지만, 작은 외삼촌은 63년 째 실종 전사자 상태로 지하를 떠돌며 돌아오지 못하고 계셨다. 큰 외삼촌이 현충원에 잠드신 후, 어머니는 양면의 응어리를 안고 사셨다. 오빠를 다시 찾은 기쁨과 아직 지하 어딘가에 쓸쓸히 잠들어있을 남동생에 대한 죄책감이 어머니를 괴롭혔다.

나는 육군 수색대에서 오래 근무하다 몇 년 전 자진해서 마크리에 들어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눈물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그것은 내 욕심이었다. 나는 지금껏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마크리 단장이 되어서도 이렇다 할 희소식을 안겨드리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내가 잠시만 방심해도 집을 나가셨다. 벌써 여러 번. 언제는 다른 지역에서 어머니를 찾았다. 또 다른 날에는 우리 아파트단지를 7킬로미터나 벗어난 개울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기적처럼 구출했다. 어제는 우리 집에서 2킬로미터나 떨어진 다른 지역 논에 걸어 들어가 무논 한가운데 기운을 잃고 쓰러져 계신 것을 119의 위치 추적으로 간신히 모시고 왔다. 다행히 대학후배가 소방경으로 있어 신세를 지고 있지만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시면 언제나 들판이나 산으로 끝없이 걸어가시는 특징을 나타내셨다. 그래서 더욱 위험했다. 인적이 드문 곳만 골라 사라지시는 어머니. 안전을 위해 걸어드린 목걸이 인식표도 오가는 사람이 드문 산이나 들판에서는 별 효용이 없었다. 어머니를 그토록 밖으로 불러내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오빠와 남동생을 향한 그리움일 것이다.

새벽,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 지시가 내려온 발굴지는 집에서 먼 곳이라 서둘러야 한다. 간밤에도 어머니는 나를 오빠라고 부르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셨다. 내 곁에서 주무시는 어머니. 거실 소파에 구겨지듯 피곤한 얼굴로 혼자 잠든 아내. 나의 하루는 이 두 여인을 향해 이불을 덮어주고 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머니가 깨시면 나를 따라오려 해서 곤란하다. 최대한 소리 안 나게 칠흑 같은 어둠을 향해 문을 나선다. 우리 마크리는 처음 2000년도부터 육군에서 추진하던 한시적인 기념사업이었다. 이후, 2006년 국방부에서 정식으로 창설이 된 부대다. 우리 마크리의 막사는 현충원 옆에 위치해있다. 여느 때처럼 어둠이 가득한 연병장에서 군악대가 우리를 맞았다. 우렁차게 들려오는 군악대의 연주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군가가 이번 발굴지의 장엄함을 암시한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연병장에서 발굴 병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 자! 집합! 오늘 우리가 책임질 발굴지는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잠두산과! 백석산이다! 어디라고?
― 잠두산과! 백석산입니다!
― 그래! 잠두산과 백석산이다! 그곳에 잠들어계신 우리들의 선배님들을 기필코 이번에 만나자! 최선을 다해 고이 모시고 함께 뜨거운 전우애로 그 산을 내려오자! 알겠나?
― 충성!
―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 복귀한다! 알겠나?
― 알.겠.습.니.다!
― 자! 오늘 이동경로는 평창군 대화면 신리삼거리로 해서 모릿재와 진부면 오름길을 통과한다. 다시 해발 천이백사십삼미터인 잠두산 정상에서 발굴 작업을 한 후, 비박을 한다. 그 다음날 다시 안부지역과 신 3리를 지난 후 다시 오름길로 해발 천삼백육십사 미터인 백석산까지 간다! 바로 그곳이 이번 발굴지의 마지막 종착지점이 될 것이다! 자! 개인 식량과 물 점검!
― 점검!
― 삽 호미 트롤 벌목도 그리고 발굴 장비와 GPS! 확실히 모두 챙겼나?
― 챙겼습니다!
― 통신장비, DSLR, 캠코더, 목관! 모두 다시 한 번 점검한다. 실시!
― 실시!
― 모두 잘 들어라! 제군들이 이미 잘 알다시피 우리는 비전투 특수부대다! 전 세계에 단 둘뿐인 자랑스러운 마크리 중 우리가 그 하나다! 알겠나?
― 옙!
― 우리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은 ‘단 한 명의 전우도 전장에 남겨두지 않는다.’
모두 복명복창한다.
― 단 한명의 전우도 전장에 남겨두지 않는다!
― 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오나? 다시!
― 단 한 명의 전우도 전장에 남겨두지 않는다!
― 좋아! 선두 출발준비!
― 선두 출발준비!
― 출발!
― 출발!

나의 출발 명령과 함께 부대 문을 나서는 십여 대의 차량들. 
우리 마크리는 현장으로 출동하기 전 가장 먼저 조사과에서 과거 전쟁지역을 조사한다. 그다음 발굴과인 우리 발굴부대가 현장에 나가 전사자 유골을 발굴한다. 발굴지에서 유골이 나오면 곧바로 현장에 대기 중인 이동감식소 차량내부로 옮겨진다. 옮겨진 유골들을 일차 DNA감식을 통해 유족을 찾는다. 사전에 채혈한 유가족들의 DNA지도를 비교하며 검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유가족이 확인되면 그 유골은 다시 부대로 옮겨져 더 정밀한 감식의 절차를 밟는다. 이렇게 해서 정확한 결과를 얻은 전사자의 유해는 영현 팀의 예우를 받으며 국립묘지에 안장해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임무이다. 우리 부대는 일반군대의 차량과 다른 사제차량을 사용한다. 우리 발굴과의 발굴병들은 모두가 육군이다. 대부분 산악지형에 능숙한 수색대원 출신들이다. 그것은 바로 6.25 격전지가 대부분 산꼭대기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 야! 이 새끼야! 이 일을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데 아직도 빌빌거리나? 똑바로 안 해?
― 죄, 죄송합니다!
개인당 이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짐을 짊어지고 해발 천 고지 이상의 산들을 하루에 적게는 이십 킬로미터, 많게는 그 이상씩 이동하며 발굴 작업을 진행하니 발굴병들이 지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발굴 진행 중에 책임자인 내가 다정하게 대해주면 마음이 풀어져 잦은 사고로 연결된다. 안전하게 일이 모두 끝난 후에야, 그때 나는 그들을 뜨겁게 안아준다. 몇 시간을 달리자 태양이 떠올랐다. 햇살에 드러난 산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장엄한 산세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오늘의 이 평화로운 조국이 있게 한 우리 선배들을 오늘은 여러분 찾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변 산을 돌아본다. 잠두산과 백석산을 중심으로 원근의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뒤쪽으로 진부읍내와 오대산 월정사도 눈에 들어왔다. 바람은 시원했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르렀다. 잠두산에서 개인호 흔적이 엿보이는 곳들부터 땅을 파기 시작했다. 우리는 삼백 개가 넘는 개인호를 팠다. 이렇다 할 결과물은 얻지 못했다. 발굴병들은 지치고 별 성과가 없어 조금 일찍 철수했다. 중간에 비박을 하고 다음날 우리 발굴단은 백석산으로 향했다. 하얀 구름 위로 백석산 봉우리가 솟아있다. 신선들이 살면 딱 어울릴 경치다. 발굴병들은 이미 땀으로 파김치가 되었다.
― 자! 이 표시 선 안쪽에서 육이오 때 우리 선배들이 팠던 개인호를 찾아야 한다! 알겠나! 만약 나라면 어디쯤에 내 안전을 위해 개인호를 파겠는지, 산의 모든 환경을 보면서 내 마음을 낱낱이 읽어라! 그러면 돌아가신 선배님들의 흔적이 보일 것이다! 알겠나?
― 옙! 알.겠.습.니.다!
― 육십년 세월을 고독하고 어두운 지하에 잠들어 계신 전우들을 잊지 마라.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발굴을 시작한다! 알겠나!
― 충성!
― 자! 그럼 발굴시작!
― 발굴 시작!

1―메.시.지.왔.어.요―
‘단장님. 불독의 안색이 심상치 않습니다. 결국 송이버섯 산 주인이 일을 친 모양입니다. 단장님을 징계할 내용을 회의하는 눈칩니다. 윗분들은 왜 저럴까요? 언제까지 저럴 건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암튼, 백석산 발굴작업 무사히 잘 마치시고 문자 보시면 즉시 전화 좀 주세요.’

발굴병들과 백석산 인근부대에서 나온 지원병들은 있는 힘을 다해 발굴을 하고 있었다. 마크리의 발굴병들 삽질실력은 대단하다. 우리는 야전삽 몇 개와 호미 몇 개로 순식간에 작은 개인호 하나를 수영장만 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람이 걸어 다닐 만큼의 토굴을 파내기도 한다. 혹시 우리는 두더지 후예들이 아닐까 싱거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얼마쯤 지났을까.
― 어! 단장님! 단장님! 이것 좀 봐주세요!
한 발굴병사가 나를 급히 불렀다. 가까이 가보니 흙속에 길고 검은 뭔가 보였다.
누군가의 부러진 정강이 뼈 하나와 낡은 단추 두 개. 녹슨 숟가락 하나가 흙속에 묻혀 있었다. 나는 긴급히 그 곳에 전문 발굴병을 투입시켰다. 전문 발굴병들은 특수 솔과 석회가루를 소지하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2-메.시.지.왔.어.요-
‘단장님. 전화가 안되네요. 이곳 분위기 불길합니다. 불독이 결국 일을 낼 모양입니다. 단장님 제 문자 보시면 연락 좀 주세요. 제발요.’

내 예측이 제대로 명중했다. 발굴지 곳곳에서 각종 상상 못한 물건들이 속속 발굴되기 시작했다.
지금껏 이 일을 해오면서 오늘처럼 다양한 유품들은 처음이다. 적군과 아군들의 뒤섞인 군장들도 여러 점 발견되었다. 북한군들의 소유인 듯 보이는 스푼, 아군의 유골 옆에서 찾은 시계, 살은 이미 흔적도 없고 앙상한 손가락뼈에 끼워진 채 발굴된 반지, 안경, 담뱃대, 수첩, 누군가의 어머니 사진, 난생 처음 보는 옛날 도장, 어느 병사가 쓰고 아직 보내지 못한 편지까지 비닐에 고스란히 싸인 채 발굴되었다. 나는 여러 감회가 밀려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3-메.시.지.왔.어.요-
‘여보, 발굴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어요? 아까 오전에 상사 한 분과 당신 동료 윤단장님이 연락도 없이 갑자기 다녀가셨어요. 자세한 말은 없었고요. 그냥 차 한 잔 마시더니 갔어요. 왜 왔는지 물어도 말을 않네요. 당신 무슨 일 있어요? 당신 계신 곳이 전화가 안 되네요. 문자 보시면 연락 좀 주세요..’

― 거기! 야! 박 하사! 너 내가 발굴지에서 나온 흙 함부로 훼손하지 말랬잖아! 유해가 눈에 안 보인다고 흙을 함부로 다루라 누가 가르쳤어! 어? 제발 애들 관리 좀 잘해! 흙 한줌까지 모두 살펴봤어? 흙 거를 체 있는 대로 더 가져와봐! 야! 누가 감히 유골 위로 넘어 다니래! 이런, 건방진 녀석! 윤상병 너 미쳤어? 넌 네 부모도 그렇게 밟고 다니냐? 이 건방진 새끼! 너, 당장 엎드려 뻗쳐! 박 하사! 이 정신 나간 놈 좀! 정신 차리게 빡세게 돌려! 에잇, 한심한 놈!
무수한 물건들이 순식간에 햇살에 드러났다. 그들은 너무 많은 말을 한꺼번에 내게 걸어왔다. 나는 몹시 진정이 안 되어 잠시 경계선 밖으로 나가 담배 한 개비 피고 다시 돌아왔다. 내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탄피도 두 개나 더 발굴되어 있었다. 탄피가 발견된 곳으로 발굴이 진행될수록 수류탄 고폭탄, 지뢰 폭약들이 쏟아져 나왔다.
― 자! 잠시 휴식! 모두 경계선 밖으로 나와라. 각자 개인 비상식량들 꺼내 시식한다! 실시!
― 실시!
나는 발굴병들의 사고를 막기 위해 잠시 모두를 현장에서 물렸다. 긴급히 산 아래 대기 중인 EOD를 불렀다. 무전을 받고 산 정상으로 폭발물 처리반이 올라왔다. 그들이 금속탐지기로 폭발물 현 상태에 대한 현장 정밀검사를 했다. 오전에 발굴이 된 유골 주변에서는 감식반의 붓질이 분주했다. 곳곳에 석회가루가 뿌려지고 접근 금지구역 표지가 세워졌다. 구덩이 하나가 더 파졌다. 먼저 나온 것은 북한군 것으로 보이는 총탄이 반쯤 박힌 돌덩이가 흙 속에 묻혀있다. 총탄은 녹이 슬어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에서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두개골 하나가 또 나타났다. 검게 뚫린 두 개의 눈구멍. 헤 벌어진 턱에서는 아직도 그날의 비명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건강하고 치밀한 치아. 유해 상태는 상상 외로 양호했다. 유해는 낡은 비닐에 싸인 짧은 편지를 품고 있었다. 비닐 때문인지 다행히 유해보다 보관 상태가 좋았다. 전사자 두개골에는 검은 총탄 구멍이 나있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고통스런 표정 옆에서 오래되어 보이는 인식표도 추가로 발견되었다. 
오래되어 글씨는 잘 보이지는 않았다. 산 아래 가져가 화학물에 잠시 담갔다 건지면 훤히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찌그러진 버드와이저 캔과 콜라병도 나타났다. 이런 곳에서 발굴된 유골은 연합군일 확률이 높다. 모신나강트 소련제 소총탄도 몇 개 발굴되었다. 작은 화장품도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유품들을 보면 비로소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던 인간이었다는 것이 실감나곤 했다. 최근 들어 가장 큰 결실이었다.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작업은 사흘간 계속 되었다. 발굴된 유해들 앞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진촬영과 영상촬영 등을 했다. 준비해 간 흰 국화도 헌화해드렸다. 소주와 막걸리, 명태포로 약식 노제도 지내드렸다. 나는 제를 마치고 준비해간 태극기와 목관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발굴단 일동은 전사자에게 마음을 다해 거수경례를 한 후, 모든 마무리를 진행했다. 백석산에서 발굴된 유해를 봉송차량에 정중히 모셨다. 납골함처럼 정갈하게 준비된 차량이 흙속에서 나타난 침묵의 전우들을 어머니처럼 품에 안고 먼저 본부로 출발했다.

― 대대장님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불독이 나를 보자 또 물어뜯으려 으르렁댔다.
-이봐! 김 준위! 내 말 못 알아듣겠나? 내 말이 그렇게 어려워? 얼마 전 집단 사살지역 발굴하다 물의를 일으킨 거 벌써 잊었나? 그 민원이 청와대까지 들어갔다구! 내가 앞전에 말 했잖아? 더 긴 얘긴 나도 피곤하네! 나두 이런 말 자꾸 곤란하니, 자네가 알아서 책임지고 처리해! 더 쉽게 말해줘?
― ……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들었습니다.

파 김치가 된 채 퇴근했다. 
눈치 빠른 아내가 먼저 운을 뗐다.
― 당신…… 괜찮아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 으음…… 어머님은?
― 주무세요. 그런데, 여보 앞전에 당신이 발굴단 이끌고 백석산에서 발굴한 유골이 엄청나다면서요? 오늘 낮에 감식반 홍하사님이 안부전화 왔었어요. 당신 괜찮냐고……. 백석산에서 발굴된 유해가 이번에 유가족들에게 제법 많은 희소식을 전하게 될 것 같다고요.
― …… 그래야지. 내 생의 마지막 발굴 작업이니 더욱. 저, 여보.
― 네?
― 나 말야…….
― 네, 말씀하세요.
― 나, 이제. 이 나이에 어디 취직은 어렵고…… 산악안전구조대 일이나 한번 해볼까 하는데…….
― 당신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그동안도 만날 내근 한번 못해보고 늘 산에서 한뎃잠 자면서 고생만 하셨잖아요……?
― 괜찮아…… 나 내일 그 일 좀 알아봐야겠어.
― 그러세요. 그리구 여보, 정 안되면 좀 쉬시면서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세요. 우리 당장 굶어 죽지 않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요……. 사람이 좀 쉬기도 해야지요. 네?
― 알았어.

모내기 하려고 가득 물 대놓은 논에서 치매로 길 잃은 어머니를 봄에 찾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다행히 더 심해지지는 않았다. 어느새 가을이다. 이곳에서 산악구조원으로 일하게 된 지도 벌써 석 달째다. 힘든 것은 없다. 다만, 그때 불독의 책임지라는 말과 함께 나는 마크리 단장이라는 옷을 벗어야 했다. 내 자리에 불독의 직속 후배가 전임 해 왔다는 소식을 홍하사가 귀띔해주었다. 결국 어머니가 그토록 찾길 원하시던 작은 외삼촌의 유해는 찾지 못한 채 나는 일반인이 되어 있었다.
속리산은 변함없이 단풍이 물들고 산객들은 단풍보다 더 울긋불긋한 차림으로 한껏 물들어갔다. 오늘 오전에는 여타 사고접수가 없었다. 등산로는 만원이었지만, 다행히 나의 시간은 오랜만에 고요했다. 산장에서 주변을 내려다보면 한결같이 드는 생각이 있다. 모두는 단풍에 들뜨고 환호하지만 내게는 언제부턴가 화려한 단풍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단풍 아래 덮인 전우들의 신음 소리만이 단풍보다 더 붉게 메아리쳐온다. 어머니의 과거를 찾아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룬 것은 없었다. 

‘띵동’
1-메.시.지.왔.어.요-
‘단장님! 눈부신 하늘입니다. 점심은 드셨나요? 방금 급보 하나가 접수 되었어요.’

홍하사다. 그녀는 마크리를 퇴역한 지금의 나에게 아직도 단장님이라 불렀다. 나는 한껏 가을오후를 만끽하며 커피 한잔 중이다. 홍하사와 문자를 나눴다.

‘급보? 뭔데?’
‘몇 달 전 단장님이 백석산에서 발굴한 유해와 편지 그리고 유품들 중에 인식표 하나 있었죠?’
‘그거 벌써 결과 나왔어?’
‘네. 그게, 알고 보니 형제였어요. 그 낡은 편지를 품에 갖고 있던 전사자 있죠? 두개골에 총상 입었던. 그가 손에 갖고 있던 인식표에 적힌 전사자와 형제 같더라고요. 정리해보면, 백석산에서 발굴된 그 전사자 유해는 현준철이고요, 인식표에는 현준식이라 적혀있어요. 아마 백석산 전투 이전에 어딘가에서 형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 인식표를 챙겼던 모양인데…… 백석산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는 두 형제가 함께 전투를 했나 봐요. 그곳에서 형이 전사를 한 것 같아요. 혹시 알아요? 이미 먼저 전사한 형은 국립묘지에 잠들어 계실지…… 내일 그것두 좀 조사해 보려고요. 편지에 쓴 내용 밑에 보내는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인식표에 있던 이름과 비교해보면 돌림자일 확률이 높아요. 놀랍죠?’
‘……잠깐! 홍 하사. 그 두 전사자 이름이 뭐라고?’
‘현준식 현준철요. 그 옛날에 지었을 이름인데. 이름이 참 멋지죠? 이쁜 누나를 부르던 편지글이 눈에 선해요. 그 이쁜 누나를 왠지 저도 한번 보고 싶어지는 거 있죠? 후훗. 단장님. 편지글 한번 읽어보실래요? 잠시만요. 지금 바로 문자로 보낼게요.’ 

 ‘띵동’
2-메.시.지.왔.어.요-

 1951년 9월 11일 수요일 -흐림-

누나,
나는 지금 밤하늘을 올려보고 있어. 별이 곳곳에서 반짝여.
밤하늘 가득 달콤한 팥죽이 끓고 있어.
우리 누나가 만들어주던 팥죽은 정말 일품이었지.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 그 그리운 단맛을 볼 수 있을까?
내일 전투에서 이기고 나면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누나를 힘껏 부르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오늘밤도 안전하길 바라며...이만.

내일 전투 다녀와 또 쓸게. 이 편지가 언제쯤 우리 누나에게 도착하려나. 
내일 행군하다가 꼭 부칠게. 누나 잘 자. 예쁜 누나 안녕. 
아참, 누나가 보내준 편지 잘 받았어. 
누나가 보내준 글이 내게 큰 용기가 되고 있어.
그럼 잘 있어. 내일 밤에 또 쓸게.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누나, 지금은 더 이뻐졌겠지…….. 
누나, 너무 보고 싶다. 
- 동생 준철이가-

홍하사가 보내준 편지가 내 심장을 덮쳐온다. 
나는 예리한 것에 찔린 듯, 속리산 비탈길을 거침없이 달려 내려간다. 
순간, 대한민국 특수부대 MAKRI의 구호가 탄알처럼 날아와 귓속에 콱, 박힌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끝>
출처 김작가의 문학여행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