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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수정본) Who Become Meat? 1.3
게시물ID : readers_317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ardienLupus
추천 : 0
조회수 : 55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6/03 06: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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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우울증 때문에 다소 감정에 기복이 있어서 이제서야 Chapter 1.3 수정본을 올리네요. 앞으로 Chapter 1.4만 수정하고 나면 새 분량을 연제하게 되는데 연제하는 분량에서도 글을 잘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이글을 읽으셨다면 조언으로 덧글을 남겨주실 수 있나요? 항상 조언을 받아들이고 고친다는 건 글을 발전시키는데 큰 밑거름이 됩니다. 좋은 글을 써서 독자를 만족시키는 게 작가의 의무이기도 하고요.

Chapter 1.1 Link : http://todayhumor.com/?readers_31746
Chapter 1.2 Link : http://todayhumor.com/?readers_31748

<1-3>
 “말해보세요. 진짜라고요. 내가 알고 있는 게 진짜라고 확인해줘요. 당신도 그걸 보았잖아요. 그 존재를 말이에요.”
 쥐의 눈빛은 스테돌프 자신을 구세주처럼 보는 것 같이 간절했다.
 스테돌프는 그 눈빛의 의미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쥐는 스테돌프가 여관방에서 한참 고민했던 것과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그 끔찍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스테돌프를 통해 알려고 했다.
 “습격을 당했을 때 그저 나만 이 여관에 도착했다고 하지 않았나?”
 당황스러움은 때로 분노를 만들기도 한다. 모든 감정들은 항상 엇나갈 때가 있다. 갑자기 화가 잔뜩 난 스테돌프는 옆에 있는 암사슴 종업원에게 반쯤 소리쳤다. 그것은 바닥에 거칠게 닫는 낮게 깔린 울음이었다.
 “정확히는 손님 분께서 먼저 들어오시고 군부에 조사를 요청하기 위해 여관의 여우 분을 보냈을 때 쥐가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들어온 쥐 부분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셔서 말을 하지 않은 것이고요. 그리고 괴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쥐도 그저 습격에 겁먹은 것뿐입니다.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 건 감히 말씀 드리자면-.”
 종업원 암사슴이 말을 하려다 중간에서 끊어버렸다. 스테돌프는 이미 아까 방에서 사슴에게 발톱을 대 상처를 상태였다. 종원업 암사슴은 순식간에 몇 걸음 계단을 내려가 스테돌프의 발톱이 안 닫는 곳까지 도달했다.
 교묘하게도 말과 행동을 동시에 한 셈이다. 스테돌프는 비쩍 마른 살에 앙상한 볼기를 가진 쥐를 잠깐 봤다가 사슴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사슴이 아래로 내려간 것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 사슴의 이어지는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포식자로서 하실 말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암사슴이 눈치를 살폈다. 스테돌프의 하늘색에 붉은 색이 약간 섞인 눈을 뻔이 처다 보고 있을 이유는 그뿐이었다. 사슴의 오랜지 빛 눈에는 연륜이 묻어나 보였다. 그는 침착하게 생각해봤다. [하긴 피식자이자 여관 종업원으로서 포식자의 수발을 드는 데는 베테랑이 되었겠지.] 스테돌프는 저런 닳고 닳은 질 낮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많이 들었다. 별 사소한 일에도 눈치를 보고 상대방이 누군지 저울질 해보는 그런 종류의 동물들 말이다. 스테돌프는 아래로 점프해서 암사슴을 덮칠 수도 있었지만 사슴은 스테돌프가 그런 짓까지 할 포식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스테돌프는 소심한 포식자였다. 암사슴은 그 사실을 스테돌프의 눈을 보고 읽었을 터였다.
 “날 봐주세요. 늑대님. 저는 알아요. 여기 있는 모두가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그게- 그게 존재했었잖아요. 제발 늑대님. 제발, 제발 제 말을 들어주세요.”
 쥐의 앙상한 왼발이 스테돌프의 오른발 아래를 잡았다. 기이하게도 스테돌프를 잡은 쥐의 앞발 온도는 딱딱하게 눈밭에 버려진 쇠사슬처럼 차가웠다.
 어쩌면 스테돌프가 그렇게 느낀 걸지도 몰랐다. 쌀쌀한 늦가을이라도 여관은 따듯했고 문고리에 습기가 있을 정도로 습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쥐의 손이 차갑게 느껴지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존재, 맥동하는 것 그리고 괴물. 그것은 스테돌프의 평범한 일상을 깨놓았다. 단순히 습격 때문에 스테돌프가 당황한 건 아니다. 이 존재를 인정한다는 건 스테돌프가 어릴 때 악몽이나 무서운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것, 설명하자면 이 당연한 현실 세계너머에는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테돌프는 쥐를 죽이고 싶었다. 저놈의 주둥이를 찢어서 소름 끼치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막고 싶었다.
 쥐고 초식동물보다 조금 더 높은 잡식 동물이어도 프라이드 랜드에서의 지위는 달라지지 않는다. 쥐 같은 피식자는 살아있을 때 좀 더 가치를 갖는 말하는 고기일 뿐이다.
 지하감옥? 프라이드 랜드에선 포식자라도 피식자를 해치면 감옥에 갔다. 매일 도시의 도축장들에게 합법적으로 고기들이 만들어지는데 야만적인 이유의 무차별 살육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보통 형량은 9개월이다. 이건 사자왕의 칙령에 따른 법이다. 하지만 대게 포식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기 마련이고 스테돌프처럼 이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포식자라면 4-5주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스테돌프가 쥐를 죽이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건 결코 동정심 때문이 아니었다.
 “이 쥐 녀석에게 옷이 있다면 그걸 입히고 잠시 방을 구해서 이놈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아까 그 3층 방이면 충분한 장소야.”
 스테돌프가 오랜 고심 끝에 말을 했다. 보통의 일상이 존재하는 세계관은 이미 한 번 금이 간 상태였고 이 쥐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손님께서 이 쥐 녀석을 그냥 데리고 가시는 건 약간 곤란한 일일 것 같은데요? 저희 여관은 이 녀석 옷도 빨래통에 던져놨고 이 녀석이 저보다 머리 하나 낮은 몸으로 여관에서 난리 치는 것도 받아줬거든요. 그것들에는 모두 다 비용을 청구해야 해요.”
 아까 쥐와 싸우던 여우가 말했다. 물방울이 진 우비를 쓴 여우였다. 아침의 이슬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그냥 잠깐 이야기하고 녀석을 다시 넘길 테니까 감옥에 보내던지 어떻게 하든지 알아서 하는 건 어때?”
 스테돌프의 제정상황은 충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여행길에 쓰라고 준 돈은 이미 거의 다 쓴 상태였고 남은 건 방직 조합원으로서 일거리를 구하고 조합 사무장들과 이야기 할 때 쓰라고 준 지폐 수십 장이 전부였다.
 “죄송하지만 손님이 그렇게 자유롭게 결정하실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저희는 여관이고, 여관은 동물들이 모이는 공공장소라는 법령에 따라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하죠. 저희도 돈을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돈을 때먹기 일수인 저 불쾌한 쥐 종족에게는 말입니다.”
 여우가 눈을 바로 뜨면서 말했다. 세금. 프라이드 랜드 사자왕을 위해 내야 하는 세금. 그건 언제나 문제였다. 스테돌프는 쥐가 여우의 협박대로 도축되어 자신의 살, 고기로 여관 값을 치러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쥐와 이야기를 한 다음이어야 했다.
 “얼마지?”
 스테돌프는 가지고 있는 많지 않은 돈을 나눠서 쥐에게 쓰기로 했다. 이 돈을 쓰면 스테돌프는 앞으로 조금 굶어야 했다. 돈을 아껴야 했으니까.
 “415입 정도 되겠군요. 저놈에게 줄 여분의 옷을 생각하면 615입이 됩니다. 저놈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시면서 저 쥐가 그냥 여관 이불보를 덮고 있게 놔두시진 않겠지요?”
 여우가 잠이 눈을 굴리다 생각했다. 여우는 단호했다. 그 눈은 닳고 닳은 금화의 반짝임만큼 밝았다. 600입이라면 하루 세 끼는 때울 수 있었다. 스테돌프는 아쉬웠지만 괴물에 대한 혼란은 다시금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결국 값을 치르기로 했다. 아직까지도 근처에 있던 암사슴에게 돈을 건넸다.
 “3층 방에 다시 들어가셔서 뭔가 폭력적이거나 거친 행동을 하신다면 그에 대한 비용도 지불하셔야 한다는 걸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럼 조용히 가셔서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시길.”
 암사슴이 스테돌프가 거의 던지다시피 건네준 쥐에 대한 비용을 두 앞발로 받으면서 말했다. 암사슴은 평범한 대화라고 했다. 절대로 폭력을 유발하지 않는 종류의 대화 말이다.
 암사슴을 포함해 여관에서 마주친 여우, 이 두 동물은 갑자기 괴물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인이 둘이 되었다고 해서 그걸 인정할 생각은 없다는 걸 밝혔다.
 괴물의 등장은 현실에 생긴 특이하게 금간 자국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스테돌프를 미묘하게 자극했고 그 자극 상태가 당장 풀릴 것 같진 않았다.
 “늑대님 드디어 절 믿어주는군요.”
 쥐가 그 꽤제제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스테돌프는 그 미소를 완전히 무시했다. 이 쥐가 힘들어도 그나마 멀쩡하게 돌아가던 삶을 불확실하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스테돌프는 쥐가 더욱 싫었다.
 “조용히 하고 따라오기나 해. 쥐야. 3층까지는 몇 걸음뿐이야. 몇 층계도 아니지. 그러니까 우리는 방에 들어가서 얌전히, 최대한 조용하고 멀쩡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야.”
 말이 사실성을 가지고, 그 말 속에 강철 스파이크와 나무가시 방책이 들어설 수 있다면 스테돌프의 대답은 적대적인 보루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성을 지키려는 사나운 보루 말이다.
 쥐는 스테돌프가 어떤 해답을 쥐고 있는 것이라 믿는 듯 그를 가만히 잘 따랐고 스테돌프는 그것이 싫었다. 해답을 얻어야 할 건 스테돌프 자신이었다. 아까 머물렀던 3층의 방문을 열었다. 스테돌프는 고깃덩어리를 다루는 것만큼이나 차가운 방식으로 쥐를 방안에 밀어 넣었고 문을 잠가 버렸다. 이제 스테돌프가 당면한 문제를 맞이할 시간이었다.
 “난 그것이 수십 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인지 단순하게 뚫려있는 구멍인지 모르는 곳에 수많은 이빨을 가지고 있는 걸 봤어. 그리고 촉수 같은 부속지까지도. 그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었지. 내가 알고 있는 한 전설 속의 멸종한 파충류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
 스테돌프는 오래 전 할머니가 읽어주었던 이야기 책을 떠올렸다. 어린 새끼 동물들을 놀래키기 위해 만들어진 책 말이다. 그 책들에는 무시무시하고 검은 그림자 같은 존재가 등장했다.
 “전 봤어요. 그것이 살아 숨쉬는 걸요. 그건 차가운 공기를 내뿜고 따듯한 습기를 삼키며 심장이 뛰고 살아 움직이고 있었죠. 꼭 교회의 희생 의식에서 막 꺼내진 심장같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고요. 늑대님 그것은 죽어가는 역겨운 냄새를 풍기면서도 살아있었다고요.”
 쥐의 말이 이어졌다. 그 더러운 쥐 녀석은 스테돌프의 앞발을 계속 잡고 있었다.
 “정리해보자. 넌 어떻게 살아났지? 이곳의 망할 여관 종업원은 내가 어떻게 자기 여관에 도착 했는지만 알고 있더군. 난 그 존재를 본 다음의 기억이 없어.”
 스테돌프가 어지러운 머리 속을 쥐어짜며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여관의 여우가 말해준 건 제가 여관에 들어오면서 [그게 살아있어요.],[그게 숨쉬고 있다고요.] 그렇게 외쳤다는 것뿐이었어요.”
 스테돌프는 쥐가 더러운 이불보를 옷처럼 입고 있다는 게 불쾌했지만 참았다. 스테돌프는 강박증 환자가 아니었다. 지금의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쥐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소한 감정보다 말이다.
 옛길에서 끔찍한 습격을 겪고 두 서로 다른 종족의 동물이 기억을 잃는 건 가능한 일이었다. 스테돌프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듯이 전투 같은 거친 일을 처음 겪는 동물들은 순간의 충격에 놀라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둘 모두가 동일한 환산을 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스테돌프는 그게 정말 궁금해졌다.
 “쥐야, 일단 이걸 기록해 두고 군부의 사무실에 가서 자세히 물어보도록 하자. 군부는 뒤처리를 잘하는 편이고 그들의 증거에서 뭔가 찾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스테돌프는 1층에 내려가 여관 홀 바텐더 역할을 하는 다른 암사슴을 발견하고 몇 번의 실랑이를 벌여 팬과 종이를 대가 없이 얻어낼 수 있었다. 여관 홀의 뒤 배경에선 제혁 조합의 포식자들이 자신들이 감독하는 잡식동물과 초식동물 몇을 데리고서는 고용주인 퓨마가 얼마나 짜증나고 과중한 업무를 시키는지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스테돌프를 한 번 바라봤는데 스테돌프가 처음 여관에 올 때부터 있었는지 스테돌프를 미치광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스테돌프를 노려보았다. 스테돌프는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3층에 혼자 있어서 불안해 보이는 쥐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스테돌프는 자신의 기억을 글로 남기려 했지만 글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존재] 그 한마디만을 쓰고 난 뒤엔 종이에 흑연을 깊이 새겨 글을 만들지 못했다.
 “그건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쓸 수 없는 거죠. 왜 그게 우리에게 온 걸까요? 늑대.”
 쥐가 그 말을 한 마디 던졌고 서랍장 근처에서 고민하던 스테돌프는 그 순간 충동을 참지 못하고 쥐의 목을 거의 조를 뻔했다. 스테돌프의 두 앞발이 떨렸다. 이 망할 쥐라는 고깃덩어리는 지금도 스테돌프의 신경을 긁었다.
 “빌어먹을 우연이 겹쳐 너와 내가 미쳤거나 세상이 이상해진 거겠지. 난 아직도 이 세상이 멀쩡하다는데 내 삶의 90%를 걸겠어.”
 스테돌프가 잔혹하고 자제심 없는 눈으로 말했다. 스테돌프는 자신과 같이 혼란스러워하는 쥐를 바라보았다. 쥐는 침대 뒤에 앉아 있었다.
 “늑대님. 나머지 10%는 걸 자신이 없으시군요.”
 스테돌프는 이번에는 진짜 뭔가 부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빈약한 제정상황이 스테돌프의 마음을 확 잡아 끌었고 두 앞발로 작은 뒤를 들어 목을 살짝 조르는 선에서 분노를 멈췄다.
 “지금 군부에 함께 가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까요? 하나가 아닌 두 동물이라면 군부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줄지 몰라요.”
 스테돌프는 쥐의 주둥이를 적어도 완전히는 아니라도 한참동안은 다물게 해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쥐의 주둥이를 부러뜨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내가 할 일이 있어. 쥐야. 난 여유로운 몸이 아니라고. 그리고 군부의 사무실은 내가 직접 나중에 따로 방문할 거야. 정 나에 대해서 꼬치 꼬치 캐묻고 싶다면 말해주마. 내 이름은 러쉬하트, 스테돌프고 방직조합의 일원이야. 나는 블로터스 다리 위 4번 째라고 적힌 집에서 살아. 이렇게 묻지 말고 너도 생각이 정리되면 나한테 와. 지금은 그게 편할 것 같다.”
 스테돌프는 살육에 대한 생각을 포기했다. 본능에 대한 이성의 승리였다.
 날은 확실히 아침이 되었다. 창문을 통해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스테돌프는 습격 당시 고장 난 시계를 습관적으로 만졌다. 스테돌프는 연필이 마치 동물을 찌르는 검이라도 되는 양, 날카롭게 종이 위에 자신의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적었다.
 “그럼 그 존재가 진짜 있었던 것일까요?”
 스테돌프가 종이를 쥐에서 쥐어주고 방을 떠나려는데 그것이 물어왔다. 스테돌프는 대답해 주었다.
 “나도 그건 정확히 모르겠구나. 빌어먹을 쥐야.”
 스테돌프는 쥐가 있는 방의 문을 잠궈버렸다. 스테돌프는 혹여라도 쥐가 따라올까 걱정돼 거의 뛰듯이 여관을 빠져 나왔다.
 평소라면 스테돌프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해도 침착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스테돌프는 다른 늑대들과는 달리 격렬한 감정을 가지지 않은 동물이다. 순한 성격이다 보니 다른 포식자 친구들이 육식동물답지 않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이 괴물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도 자신을 괴롭히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스테돌프는 하늘을 처다 보았다. 프라이드 랜드시의 하늘은 언제가 그렇듯 하늘 빛 배경과 짙은 회색의 혹은 검은색의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테돌프가 뒷발을 멈추고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는다면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었다.
 헛소리에 망상이었지만, 마치 모든 것들이 이미 예정되었고 말도 안 되는 우연에 엮여 있는 것처럼.

 프라이드 랜드시 조합의 실질적 총 본부인 길드 홀은 높이가 최소한 120층 이상 되는 거대한 바위인 프라이드 락(Pride Rock)이 있는 도시 서쪽의 반대편, 프라이드 랜드시를 관통하는 프리깃 급 범선 10척이 함께 항해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하모니강(Harmony River)을 건너 강변 동쪽에 있었다.
 강변 동쪽 도시의 중신은 거대한 높이의 바위인 프라이드 락을 마주보는 태양의 땅 광장에서 시작됐다. 광장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수많은 은행과 금고와 강화문들이 모여 하나의 요새를 만든 기름먹인 종이의 보루 지역이 나타났고 그 아래 더 남쪽에는 프라이드 랜드 전역에서 실려온 석탄의 질을 나누고 분리하는 거대한 증기공장들이 밀집한 옛 연못(Old Pond) 구역이 있었다. 길드 홀은 그 구역들을 지난 다음에 나타났다.
 플레인 사이트(Plain Sight) 구역에 위치한 길드 홀은 날고 오래되었고 한 번 화마에 휩쓸렸던 건물이다. 길드 홀은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지역의 가장 중요한 건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커다란 푸른 깃발 위에 작은 깃발 하나를 더 얹은 길드의 상징 깃발이 높은 첨탑 위에 솟아 있었다. 깃발은 기울어지고, 세로로 길게 늘어진 하얀색 육각형 안에 리본 모양의 푸른 삼각형 두 게가 중앙에 놓여진 모습이었다. [집이 최고지.] 그게 깃발 문양의 의미였고 또 길드의 문장에 새겨진 하나이자 유일한 말이었다.
 스테돌프의 어머니는 이 깃발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깃발은 잡식이나 초식동물 같이 피식자 하급 노동자에게 잔일을 시키지 않고 방직 조합에서 직접 천을 염색하고 문양을 만들고 그것을 손수 바느질 한 것이기 때문이다. 깃발엔 질 나쁜 동물들의 앞발이 아닌 고풍스러운 포식자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길드 홀의 파란 지붕 아래는 빨간색과 하얀색의 벽돌이 길드의 건물을 길드의 건물을 이루고 있다. 지붕과 같은 색으로 파랗게 칠해진 덧창들이 가지런히 펼쳐진 채 길드 홀의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연한 붉은 색 벽들 사이로 붙어있는 각 조합의 인장들, 모루, 망치, 끌 그리고 깃팬이나 실바늘이 새겨진 방패들이 보였다. 길드 홀의 삼격형 대리석 지붕과 기둥으로 장식 된 입구의 청동 문은 언제나 조합의 회원들을 환영한다는 듯이 활짝 열려 있었다.
 스테돌프는 일자로 이어진 거리를 벗어나 석조 보도 블록이 깔린 넓은 장소까지 도착했다. 길드 홀은 사자와 고양과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웅장한 분수는 없었지만 처음으로 숲을 뛰쳐나와 프라이드 랜드로 향한 두 동물의 동상이 있었다.
 프라이드 랜드란 이름을 가지기 이전 이곳은 포레스트 랜드(Forest Land)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멀리 사바나 랜드(Savana Land)란 곳에서 기원한 사자들은 그 당시 이곳에 도착해 있지 않았다.
 처음으로 종과 종을 넘어서 우정을 나누고 이 땅에 문명을 새웠다는 전설의 수곰 핀아이넨과 암늑대 랜드라우아티아가 청동 동상으로 만들어진 두 동물이었다.
 완전한 문명이 들어섰음에도 프라이드 랜드의 동물들은 종이 다르고 털 색이 다르다고 서로를 경계하고 잘 신뢰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테돌프의 키보다 두 새 배 더 큰 동상은 교훈을 위해 새워진 것이다. 동상은 우리가 이제 죽어가는 숲을 빠져 나왔다면 협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주었으니까.
 [우린 길을 잃지 않으리라, 다만 방법을 찾을 뿐.] 동상 아래 황동판에 새겨진 글자였다.
 스테돌프는 이 두 마리의 돌 창과 활을 든 동물의 조각상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아졌다. 서로 다른 종의 통합은 프라이드 랜드 출신 회색늑대와 북부 아이스 랜드(Ice Land) 출신인 하얀 늑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스테돌프에겐 중요했다. 회색 늑대도 하얀 늑대도 아닌 삶은 절대 좋은 삶이 아니라는 걸 스테돌프는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지금 시대의 숲은 이미 반쯤 죽어있는 곳이다. 오랜 옛날 숲이 주었을 편안함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조각상엔 다른 의미도 있다. 지금 프라이드 랜드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들의 조상이 정들었지만 시들기 시작한 고향을 떠나야 했음에도 그것이 삶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있었다.
 긍정적인 건 좋은 것이다. 현실은 세금과 얼마 없는 고기로 때우는 부실한 식사 그리고 사자와 고양이과 귀족 고용주들의 등살로 가득했지만.
 스테돌프는 이미 다리 위의 집에 들려 먼지가 쌓인 가구 위의 천을 걷어내고 창고와 금고 방에 있던 물건들 몇 개를 꺼내와 동물 하나는 살만한 장소로 만들어 두었다. 여행 중 가지고 다니던 짐은 오래된 길에서의 습격으로 잃어버렸지만 1년 동안 녹슬어 가던 액체 석탄 램프들은 잘 작동했다. 적어도 밤에 불 걱정은 없었다.
 길드 홀 밖에서도 파란색의 코트와 치마를 입은 동물들이 삼삼오오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꼬리가 짧은 곰이나 울버린 같은 동물들을 뺀다면 다른 꼬리에 파란 리본을 매고 있었다. 조합 소속 동물들이 리본테일이라 불리는 것답게.
 스테돌프는 길드 홀의 문으로 들어섰다. 문 앞에는 옛날 방식의 사슬이 섞인 판금 갑옷을 입은 수달과 족제비가 바늘총을 매고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 둘은 영 미덥지 않다는 눈길로 스테돌프를 올려보았다.
 “올해에 방직 조합원이 된 러쉬하트, 스테돌프이고 여고 서류가 있어요. 방문 사유는 제 어머니인 클리어윈터가 내야 하는 조합 회비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인데 그 서류는 잃어버렸네요.”
 스테돌프가 잠시 머뭇거리다 처음으로 자신의 조합원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서류엔 길드 홀 근처 호랑이가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스테돌프는 정식으로 어딘가에 소속 돼 무언가를 제시해 보는 게 처음이라 약간 당황해 있었다.
 “아직 어리신가 봅니다. 그게 부자연스럽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저희가 얼굴을 기억하거나 조합원 서류를 가지고 있는 한 조합 출입은 자유입니다. 여기 온 목적에 대해선 길드 홀 강당 카페테리아 내부의 모든 조합 동물들을 위한 상담 카운터에서 물어보는 게 나을 거에요. 우리 일이 이 무거운 갑옷을 입고 조합의 상징처럼 서있는 거라서 움직이기 좀 곤란하니까요.”
 수달이 설명했고 동료 족제비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아마 둘은 한 조로 오래 일했을 것이다.
 “근데 그 냄새 본야드(Boneyard)의 쓰레기장을 관리하는 울버린들 냄새는 아닐 거고 대체 뭘 했길래 스컹크 친구들과 엮인 겁니까?”
 수달이 물었다. 스컹크는 군부에 소속된 조합의 일원이 아닌 몇 안 되는 동물이다. 그러니 경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입은 갑옷의 사슬은 납 탄을 막는데 유용하지 않다. 오히려 사슬 파편이 온 몸에 깊이 박히는 걸 도와줄 뿐이다. 수달 자신이 직접 말한 것처럼 둘은 길드의 얼굴 마담 역할을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진짜 길드의 경비들은 안에 있었다.
 “프라이드 랜드시로 오는 길에 습격이 있었죠. 다른 동물들 말로는 군부의 호위대와 암사자 지휘관까지 죽일 정도로 잔혹한 놈들이라고 했어요. 그 일행에 있던 스컹크의 독소탄 냄새를 뒤집어 쓴 거고요.”
 스테돌프가 다시 기분이 낮아진 상태로 말했다. 괴물에 대한 생각이 슬쩍 머릿속 수면위로 올라왔지만 스테돌프는 재빨리 이성의 닻으로 그걸 끌어내렸다. 스테돌프는 나중에 바이스텐드(Bystand) 거리에 있는 군부의 사무실에 방문해 봐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습격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감히 사자가 섞인 무리를 습격했다고? 그리고 또 죽였다고? 안 그래도 다들 난리인데 조합 내부 소식지에 실릴 일이 또 하나 늘었네.”
 수달이 의아해 했다. 스테돌프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부분이었지만 프라이드 랜드에서 사자는 절대적인 동물이었다.
 “그런데 왜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겪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거죠?”
 수달이 정곡을 찔렀다. 날카로운 건 날 같이 말이다.
 “그건, 제가 그 습격에 당황해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스테돌프는 자존심과 자존감이 절반으로 깎여 나가는 기분으로 대답했다. 정신을 잃거나 놀라는 건 포식자의 미덕이 아니다. [시작부터 반쯤 허리를 굽힌 거나 다름 없어졌고.] 스테돌프는 생각했다.
 “아무튼 이제 들어가봐요. 당신이 여기 계속 서 있으면 우리가 다른 동물들하고 이야기를 못하니까요. 오늘은 길드 홀에 찾아온 조합 동물들이 많아요.
 왜냐하면 사자왕의 동생 크레스 장관이-. 아니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듣는 게 낮겠네요.”
 수달이 말을 끊었다. 좀 이상했다. [무언가 있는 것일까?]
 스테돌프는 수달의 그 말을 통과 선언이라고 생각하고 길드 홀 안으로 들어갔다. 태양의 교회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벽화로 덮여 있진 않았지만 샹들리에가 달린 천장을 가진 길드 홀의 카페테리아에선 동물들의 웅성거림이 흘러나왔다.
 입구 저 너머엔 당구대와 뼈로 만든 당구공들이 반대편에는 솜니움 카드 게임을 하는 넓은 테이블이 있었다. 두 테이블 모두 동물들이 모여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사소한 것에도 집중하라고 했듯 스테돌프의 신경을 끈 건 입구 바로 앞의 직사각형 테이블들의 모습이었다. 그곳에 있는 코발트 색 옷의 동물들은 서로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녹색 천으로 덮인 테이블 아래는 세 겹의 강철이 덧대어져 있었다. 유사시에 군대식 방패막이로 쓸 테이블 들이었다. [저기서 이야기 하는 척 하는 동물들은 분명 경비원 들이겠지.] 스테돌프가 짐작했다.
 멀리 길드 홀 안쪽에서 피아노를 치를 늑대가 곡 위안(Solace)를 연주하고 있었다. 길드 홀의 피아노를 치는 늑대는 프라이드 랜드의 분위기가 바뀔 때마다 곡을 바꾸었다. 위안은 프라이드 랜드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연주하는 곡이었고 일종의 주의 신호였다. 스테돌프는 그 점이 이상해졌다. 스테돌프가 먼 영지의 농장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것이 수달이 말을 끊은 이유가 관련 있을까?
 스테돌프가 겪은 습격 사건은 분명히 아니었다. 암사자가 옛길에서 무참히 살해당하는 건 조합 소식지에 가쉽거리는 될 수 있어도 길드 홀에서 연주하는 곡이 바뀔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스테돌프는 안쪽으로 향했다.
 “성자 마로의 후손 세크리 장관이 왕위 찬탈자에게 산채로 잡아먹혔다며?”
 “그런 말 하지마. 성자의 후손이든 뭐든 간에 그 재무장관 녀석은 초식동물이었어. 그리고 왕위 찬탈자란 별명을 공공연하게 말했다간 사자들이 분노할지 몰라. 재무 장관은 잡아먹은 건 왕실의 일원인 사자라고.”
 스테돌프는 8칸으로 나뉘어진 상담 카운터로 향하는 중에 조합 동물들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분명 서로의 말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그건 은밀하고 작은 웅성거림처럼 들렸다. 거의 모든 동물이 그러고 있었다. 당구나 솜니움 게임 자체에 신경 쓰는 동물은 드물었다.
 “내가 왜 1톤짜리 강철을 버려야 하지? 겨우 비버랑 토끼 같은 풀 먹는 동물 몇이 쇳물에 빠진 거잖아. 그 녀석들이 발을 헛디디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런데도 뭐? 너희 조합은 품질 유지를 위해 그 강철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불순물이 함유됐던 말던 물건을 파는 건 나야!”
 긴 프록코트를 입은 수사자 하나가 길드 홀 중앙에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조합의 동물들은 항상 그렇듯 품질과 정밀함을 신경 쓰고 제품을 통제했지만 그런 상거래나 시장의 신뢰도를 무시하고 자기 주장만 하려고 드는 고양이과 동물들이 꼭 있었다. 자신들이 소유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조합이 상품을 통제하는 건 바로 사자 국왕이 내린 그 법률을 따르는 것인데도. 그 수사자는 승냥이 하나를 잡고서 시비를 걸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다들 바쁜 듯 주변에 말리는 동물도 없었다.
 “러쉬하트, 클리어윈터의 아들 스테돌프가 맞지? 그렇다면 상당 카운터를 이용하는 건 포기하는 게 나을거야. 다들 다음 조합 소식지가 언제 나오는지 보려고 그 넓은 8칸 전체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거든. 어머니의 일이라면 날 따라와.”
 스테돌프가 조합 동물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주변은 무시한 채 고래고래 소리치는 사자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타래와 바늘이 새겨진 방직 조합의 간부 배지를 찬 코요태가 앞발을 잡았다.
 스테돌프는 작년에 그 코요테를 본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농장을 떠나기 전 한참이고 돈 문제를 상의 했던 그 간부 코요테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평소라면 카운터 한 두 개는 비어있을 텐데 왜 다들 몰려 있죠? 공식 소식지는 굳이 찾으러 갈 필요 없이 비둘기들을 시켜 배송하잖아요?”
 스테돌프는 이름을 먼저 묻기 전에 이 질문부터 던졌다. 길드 홀의 분위기가 약간 이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아스러웠다. 평소라면 자신감 넘치는 포식자들이 돌아다녀야 할 장소가 아닌가?
 “혹시 여기 도착한 게 오늘인가?”
 “그런 셈이죠.”
 “그렇다면 차라리 위층으로 올라가서 나한테 직접 듣는 게 낫겠군.”
 코요테가 한 번 헛기침을 하더니 스테돌프를 끌고 동물들 사이를 헤쳐나가며 말했다. 그는 스테돌프의 앞발을 단단하게 꽉 쥐고 있었다. 거의 발톱에 긁힐 정도로 거칠게. 길드 홀 위층으로 올라가는 붉은 천이 깔린 계단에는 리볼버로 무장한 경비 둘이 있었지만 코요테를 보고 잠시 인사하더니 바로 둘을 들여보내주었다.
 스테돌프는 어머니와 함께 올라왔던 몇 번을 제외하고는 길드 홀 위층까지 올라와본 적은 없었다. 1층 이상은 중요한 일을 제외하면 보통의 동물들은 출입허가를 받아야 하는 간부들의 공간이었다.
 “자네 어머니가 올빼매 편으로 편지를 보내 자네가 곧 도착한다고 연락을 보냈었지.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가지고 왔나?”
 “방직 조합의 휴직서 말인가요? 그건 옛길에서 습격을 당해 잃어버렸는데요. 제가 직계혈통인데 혹시 제 서명으로 대신할 수 없을까요? 공증인을 불러도 되고 제 피로 글을 써도 되요.”
 5층 높이의 길드 홀에서 코요테가 그를 데리고 간 곳은 4층의 어느 먼지 쌓인 방이었다. 그 방에는 일부로 놓아둔 듯한 깨끗한 테이블과 의자가 먼지 속에 있었다.
2층도 아닌 4층이라니 스테돌프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일단. 앉게.”
 코요테가 말했다. 스테돌프는 멋쩍은 표정으로 테이블 옆의 의자 하나를 당겨 앉았다.
 “휴직서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 잃어버려도 상관없지. 하지만 자네 어머니가 휴직서 말고도 열지 말라고 밀봉해둔 편지 하나를 더 보냈을 텐데 그건 어디 있나?”
 코요테는 조바심이 났는지 발톱으로 탁탁소리를 내며 테이블보를 쳤다. 어머니가 편지 하나를 더 보내기는 했다.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했고 그래서 나무 짐 상자 깊이 넣어 두었다. 하지만 짐들은 습격 때 잃어버렸다. 스테돌프는 겨우 자기 신분증만 챙긴 신세였다.
 “죄송하지만 그것도 습격 때 잃어버렸어요.”
 “혹시 읽어보지는 않았지?”
 스테돌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요테는 약간 안심하는 듯 했다. 그때 코요테의 이름이 떠올랐다.
 “혹시 별명이 항상 웃는 레리인 인스머스 지역 조합 담당자가맞으시죠? 제가 이름을 잘 기억 못해서요. 그리고 그 편지에 대한 내용도 생각났어요. 어머니가 그 편지는 현 사자왕 엠렛왕의 동생 치안장관 크레스가 왕실 명령으로 특별히 인가해준 뭔가가 있다고 했어요. 인스머스 지역의 옛 금괴 재련 공장과 관련 있는 일이라고 했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어요.”
 코요테가 항상 웃는 이라는 별명을 가진 건 그가 여려 다른 종족의 동물들과 친하기 때문이다. 조합은 동물들의 화합을 바라지만 동물들은 서로 다른 종족을 경계하는 구습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스테돌프는 종족이 다르지만 그가 자신에게 미소를 지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코요테가 지은 나쁜 표정은 종족이 다르다는 경계심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뭔가 다른데 있었다.
 “빌어먹을 암컷 같으니라고. 자기 새끼라고 절반은 알려줬군.”
 코요테 레리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잠깐의 틈도 없이 말을 이었다.
 “그럼 절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당분간 자네 가족에게는 내가 연락할 테니까 자네 농장에 편지 하나도 보내지 말고 입 닫고 조용히 있어.
 오늘 만난 건 어디까지나 원래 지불하기로 되어있던 조합 회비 미납금 30,000입을 내러 온 거야. 휴직서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내야지.”
 레리가 사악한 주술을 읊조리는 주술사처럼 낮게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전 지금 그만한 돈을 낼 형편이 없어요. 원래는 당연히 휴직서를 내기로 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왜 이렇게 당황하시는 거에요?”
 스테돌프가 물었다.
 “그건 현 국왕 엠렛 왕이 이번 해외 원정에서 살해당했기 때문이지. 지난해에 사자왕이 멀리 바다를 거쳐서 원정을 떠난다고 한 거 기억나나? 원정 이후 남쪽 해안가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함대와 연락이 끊겼어.
 그리고 어제 사자왕의 동생인 크레스가 수 천 Km는 떨어진 북쪽 해안에서 따라 클리퍼 경범선을 타고 돌아온 거야. 원정대의 수많은 동물들은 아무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못했고. 사자왕의 동생은 왕실 궁전에 가서 원정대는 다 죽고 자기만 돌아왔으니 이제는 자신이 왕좌에 올라야 한다고 했다더군.
 여왕은 분노했어. 왕의 동생인 그가 자신의 남편과 심복들을 모두 죽였다고 생각했거든. 원정대에 참가했던 여왕의 자식까지 포함해서. 크레스는 이렇게 말했지. 바다에 멀쩡하게 떠있는 원정 함대엔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락하지 않고 코끼리 무덤이란 곳을 빙 둘러 돌아오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이야. 믿을 동물도 없는 거짓말이지.”
 레리는 잠깐 숨을 들이 쉬었다. 물이라도 필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거짓말쟁이 살인자 크레스는 오늘 아침 여왕의 총애를 받는 재무장관을 산채로 잡아먹어버렸어. 재무장관 자리는 원래 초식동물만 뽑으니까 격이 없어서 직접 잡아먹어 처리했다는 게 변명이었지. 그리곤 욕심도 많게 자신이 재무장관도 겸하겠다고 했지.
 여왕이 이제 뭘 할거라고 생각하나? 자신의 부하들을 모아 복수하는 것 밖에 더 있나? 왕의 동생이 형을 죽였으니 왕의 동생과 관련된 동물들도 똑같이 죽여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벌써 여왕이 자신을 따르는 사자들을 이끌고 살육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해. 나와 네 어머니 사이의 편지는 크레스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어. 여왕이 길드 홀을 들쑤시고 나와 네 어머니 가문을 끝장내고 싶어할 만한 내용 말이야.
 야이기가 끝나고 정적이 돌았다. 단 둘이 있고 말을 하는 동물들이 없으니 생기는 당연한 정적이었지만 스테돌프는 그런 불유쾌한 정적이 싫었다. 특히 조합 담당자 코요테의 말을 들은 이 시점에선.
 “정확히 편지에 무슨 내용이 있었길래 그런 말을 하시는 거에요? 사자왕의 동생이 나쁜 평판을 가지고 있다는 건 포식자라면 다 아는 일이에요. 혹시 어머니가 그 방탕한 사자왕의 동생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하는 일에 서로 앞발을 잡은 건가요? 저희 가족은 그냥 보통의 늑대들일 뿐인데 말이에요.
 그리고 30,000입은 기본적으로 대량거래를 할 때 사용되는 최저 가격이잖아요. 무슨 안 좋은 거래라도 했어요? 어머니는 그러실 분이 아닌데.”
 코요테 레리의 말이 스테돌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길드 홀에 오자마자 듣는 소리가 목숨을 저울질하는 말이라니. 이건 아니었다.
 “사자들의 왕실 내부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나?”
 그가 물었다.
 “전 잘 모르겠어요.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일이었잖아요. 전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일이라고요.”
 여전히 당황한 채로 스테돌프가 말했다.
 “매번 왕실에 대한 살해 시도, 모함, 음모가 있을 때마다 피가 폭풍처럼 들이닥쳤어. 고문과 암살 그리고 무고한 이들에 대한 처형이 이루어졌지. 모르고 했든 알고 도왔든 왕실에 적대한 모든 동물들은 교회에 넘겨져 생살이 갈리고 마구 파해쳐졌어.
 그 유명한 엔리븐 왕의 해에 디와은 왕자가 일으켰던 왕위 찬탈은 어떻게 됐는지 아나? 온 도시가 피에 휩쓸려 완전히 불타버렸지.
 레리가 수백 년 전의 왕위 찬탈에 대해 언급했다. 비록 과거의 역사였지만 그건 프라이드 랜드시를 뒤바꿔 버린 일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건물들이 잿더미가 되어서 지금의 프라이드 랜드시는 그 재들의 위에 서있는 것이었다. 과거의 역사는 그렇게 현재로 이어졌다.
 “그럼 제가 뭔지는 몰라도 거래 비용인 30,000입을 내지 않고 가만히 숨죽이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저희 가족 집 문은 철로 되어 있고 전 제 총을 가지고 있어요. 그걸 쏘는 방법도 알고 있고요.”
 스테돌프가 항변했다. 방직 조합의 일원으로 옷 만드는 일 말고는 다른 방법으로 사자와 마주한 적은 없었다.
 스테돌프에게 있어 사자들의 세계는 자신보다 더 고귀하고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스테돌프는 사자들을 잘 알지 못했다. 그냥 숨죽이고 있으면 될 것 같았다.
 “그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넌 어리고 이제는 돌아가신 엠릿왕 이전 선대왕 시대를 살아보지 못해서 그래. 지금 상황에선 이미 진행하던 거래를 안 하는 게 더 이목을 끌 거야. 그저 나에게 30,000입만 건네면 돼 그리고 숨죽이는 것보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범하게 행동하는 게 나을거야.”
 스테돌프는 왜 1층의 카페테리아에서 동물들이 상담 카운터에 몰려들어 조합 소식지를 받아가려 한 건지 알게 되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조합 소식지 안에 실리는 작은 소문이라도 중요했다. 대부분의 그런 소문들은 그 양이 크고 작던 진실을 포함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알았어요. 여기 30,000입이요. 그냥 지폐들이라서 조합 수표로 드리는 게 아니게 됐네요. 스테돌프가 결정을 내렸다, 스테돌프는 이제 3일이 아니라 몇 주룰 굶주려야 할지도 몰랐다. 골치가 아파졌다.
 “그런데 그 거래와 사자왕의 동생이 우리 가족에게 한 일이라는 게 무엇이에요?”
 스테돌프가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스테돌프는 이제 자리를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인스머스 조합 담당자인 항상 웃는 레리, 거기 있었군요. 당신을 찾아서 길드 홀을 다 돌아다닐 뻔 했다고요. 조합 경비들은 어찌나 절 안 들여보내주려고 애쓰던지. 아, 스테돌프 너 돌아왔구나.”
 먼지 쌓인 방의 문이 열렸다. 그 충격으로 천장에 걸린 촛대 위의 먼지가 조금 떨어져 깨끗한 테이블 보를 더럽혔다. 인스머스 지역의 염색 작업장 관리자로 일하는 스테돌프의 친구 렐러스트였다. 스테돌프는 지금 상황에서 자신을 반가워 하는 그 곰을 좋아해야 하는지 싫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네도 인스머스의 문 닫은 금괴 제련 공장에 대한 일로 온 건가? 그럼 여기서 앉아서 나와 먼저 이야기하지. 친구는 나중에 만나도 되니까. 당장 여기 와서 앉게.
 레리가 피리의 날카로운 고음 같은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는 먼지 먹은 콜록거림이 섞여 있었다.
 “그럼 내가 레리랑 먼저 이야기하고 나서 길드 홀 1층에서 만날까?”
 곰은 커다란 앞발로 반가움을 표현하기 위해 스테돌프를 앉으려고 했지만 스테돌프는 자신이 연달아 겪은 사건과 소식으로 오늘 아침부터 도통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스테돌프는 곰의 포옹을 슬쩍 피했다.
 “나중에 내가 네가 일하는 작업장으로 찾아갈게.”
 스테돌프가 짧게 말했다.
 “스테돌프. 그런데 소식 들었어. 그 크레스, 사자왕의 동생, 그 왕위 찬탈자가 형인 국왕 엠렛 왕을 살해했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건 나도 이미 레리에게서 들었어. 그럼 나는 시장에 가서 당분간 먹을 만한 고기를 구해와야겠어.”
 스테돌프는 말을 끊었다. 친한 친구라도 이미 스테돌프의 마음은 이물질이 끼어 막힌 수로처럼 답답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스테돌프는 문을 닫고 길드 홀을 나섰다.
 이미 30,000입이나 남에게 준 상태에서 값싸게 그리고 오래 먹을 만큼의 고기를 구하기는 힘들었다. 도시의 중심 시장인 미들 마켓은 물론이고 도시의 다른 시장들에서도. 스테돌프는 그것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다른 곳에 가기로 했다.

 “줄 서요. 줄 서라고요.”
 프라이드 랜드시의 치안 담당부대가 입는 진한 녹색 군복을 입은 여우가 소리쳤다. 멀리서부터 피 냄새와 내장 냄새가 퍼지는 그곳에는 많은 포식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이 입은 옷은 스테돌프가 여관 여우를 통해 대충 구한 파란 롱코트 보다도 낡아보였다. 대부분 색이 바랜 옷이었고 이곳 저곳 찢어지거나 구멍 나 있었다.
 특별히 통조림으로 팔리거나 염장되는 게 아니라면 프라이드 랜드에서 고기는 며칠 내로 빠르게 소비되는 편이었다. 프라이드 랜드시 당국은 피식자를 시켜 주요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렇다고 정육점들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신선하지도 않고 어느 정도 청소되어 희미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닌 곳은 도시에 몇 곳 없었다. 죄를 저지른 초식동물이나 잡식동물의 삶이 끝나는 사형터가 그런 곳 중 하나였다.
 프라이드 랜드의 포식자들은 기준이 있었다. 교양 있게 좀 덜 먹더라도 질 좋은 피식자들의 고기를 먹는 것 말이다. 그게 사회의 규칙이었다. 범죄자들의 고기를 먹는 건 품위가 없었다. 특히 그들의 고기는 그들이 범한 죄의 값만큼이나 질기다고 했다. 이보다 더 한 건 제 수명을 다해서 그만큼 늙은 몸뚱이를 남기고 죽은 나이 많은 피식자들의 고기 밖에 없었다.
 스테돌프는 집에서 큰 카트를 끌고 와 한 시간이 걸려서 사형터에 도착해 있었다. 포식자의 격식있는 총살이 아닌 목매달려 죽고 해체되는 피식자들이 모인 곳 말이다.
 다행히 아직 사형과 도축이 시작되지 않았다. 스테돌프가 서있는 줄까지 고기를 살 있을 걸로 보였다. 스테돌프는 싼 고기를 얻기 위해 줄 서있는 가난한 포식자들 사이에 있었다. 품위 없는 동물들과 함께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게 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멀리 언덕 위에서 사슬과 족쇄를 찬 피식자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다리 밑에는 탄피를 쓰는 연발 총을 걸치고 목에는 제분소 문양이 새겨진 반다나를 걸친 군부의 독수리가 근처의 긴 나무 장대에 앉아있다가 하늘로 올라섰다. 독수리는 눈에 고글을 쓰고 머리위에 노란 황동 부대 표식과 털 장식을 쓰고 있었다. 군부의 척탄병이었다.
 멀리서 도축을 담당하는 멧돼지들이 피식자들을 끌고 플랫폼 위에 있는 올가미 밧줄로 향하는 게 작게 보였다. 척탄병 독수리는 연발총을 발톱으로 잡고 주위 하늘을 날았다. 태양의 사제로 보이는 로브를 쓴 동물 몇몇이 그 다음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게 보였고 그들은 멀리서 잘 안 들리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피식자들이 고기가 되는 게 당연한 운명이라는 생명의 순환에 대한 설교일 것이다. 멧돼지가 레버를 당겼다. 올가미가 씨인 피식자들이 공중에서 허우적대다가 이네 축 늘어져 죽어 버리는 것이 보였다.
 [당연한 일일 뿐이야.] 적어도 죽기전 그들은 태양의 교회 사제들의 축성을 받지 않았는가? 그들은 프라이드 랜드의 모든 피식자들이 맞이하는 섭리대로 고기가 된 것이다.
 “들어 오셔도 됩니다.”
 사형터의 낡은 돌담 문을 지키던 멧돼지가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돼지들의 사촌 종족인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처형자이다 도살자로 일했다. 동물들이 웅성거렸다. 그 속에서는 죽은 엠렛왕의 이야기와 왕위 찬탈자 동생 크레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이야기 대부분은 빨리 도축이 끝나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프라이드 랜드의 구름 낀 회색 하늘 아래서 길고, 좁고, 단단하고 그리고 얇은 칼들이 죽은 피식자의 가죽을 벗기는 소리가 들렸다. 스테돌프가 카트를 끌고 기다리던 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 냄새가 심해졌다.
 “늑대님 이 고기로 드릴까요? 아니면 다른 고기가 손질 될 때까지 기다리시겠나요?”
 스테돌프의 차례가 됐을 때 피로 얼룩진 앞치마를 입은 멧돼지가 물었다. 가죽이 벗겨져 약간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멧돼지가 들고 있는 건 쥐의 몸뚱이였다.
 “그 쥐를 다 살 테니까 손질했던 내장을 다시 뱃속에 집어넣고 줘. 그리고 머리는 잘라서 다른 동물 주던지 해. 머리는 별로야.
 눈꺼풀이 벗겨진 초점 없는 쥐의 눈을 보니 스테돌프는 불쾌해졌고 맷돼지에게 그렇게 말했다. 스테돌프의 비위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소심하든 그렇지 않든 스테돌프도 포식자 늑대였다. 다만 그 범죄자 쥐의 눈이 여행길과 여관에서 만났던 그 쥐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두 쥐의 눈을 똑 같은 회색이었다.
 [그냥 뇌는 먹지 않는 부위니까 버리는 거야. 의사들도 뇌 부위는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잖아.] 스테돌프는 그냥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스테돌프는 800입의 값을 치른 뒤 쥐의 몸뚱이를 밧줄로 묶어서 카트에 싣고 작은 간단한 광장과 몇 개의 감옥 그리고 하나의 감시 탑으로 이루어진 사형터를 떠났다. 스테돌프는 개의치 않았지만 스테돌프가 지나가는 길마다 카트에서 떨어진 피가 줄줄 흘렀다. 스테돌프는 걸음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의 시장에서 후추와 빵 덩어리도 조금 샀다.
 스테돌프의 다리 위 집은 거대한 증기 기계로 움직이는 도계교의 다리 부분, 정확히 말하면 다리 위 증기 장치가 설치된 공장 같은 건물에서 세 건물 떨어진 다리 오른편에 있었다.
 스테돌프는 습관적으로 고장난 시계를 꺼내보았고 시간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새벽에 고기 몇 조각을 먹은 건 왜에는 아무것도 먹은 게 없었다. 도계교가 올라가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식사를 하는 건 입맛이 떨어지는 일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스테돌프는 배고픔에 위장에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집의 문을 열었다.
 쥐의 몸뚱이는 고기를 걸어두는 층인 3층 다락방의 갈고리에 꾀어 두었다. 포식자들은 그렇게 고기를 꾀어 걸어놓는 방을 갈고리 방이라고 불렀다. 대게는 지하실이나 다락방 같이 사용 용도가 적은 방이 갈고리 방이 되었다.
 스테돌프는 집 왼쪽의 계단을 내려가 부엌의 석탄 스토브로 향했다. 부엌 한 켠에 놓여있던 솔을 이용해 스토브 위쪽의 먼지를 털어낸 뒤 불쏘시개로 쓸 숯을 넣고 스토브에 불을 지폈다.
 스테돌프는 냄비를 들고 다시 다락방으로 돌아가 갈고리에 걸린 쥐 고기에서 내장과 피를 덜어낸 뒤 시장에서 산 후추와 함께 끊였다.
 스테돌프는 요리실력이 없었으므로 그렇게 좋은 요리는 못되었지만 맛있는 고기 냄새가 높고 큰 냄비에서 풍겨져 나왔다.
 스테돌프는 내장 스튜의 숟가락을 때며 조합 담당자 코요테 레리가 경고한 프라이드 랜드의 상황을 생각했다. 사자 왕족들의 분란과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형을 죽인 방탕한 사자 크레스 장관.
 스테돌프의 주위를 둘러싼 상황은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수저를 닦고 부엌 선반 위에 아무렇게나 던진 수건처럼 엉망이었다.
 스테돌프는 혹시 자신이 적어준 주소를 따라 쥐가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포식자는 동물을 잡아먹을 권리가 있었다. 스테돌프가 쥐의 내장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해도 여관에서 만났던 쥐가 그것 때문에 놀랄 일은 없었다. 프라이드 랜드의 삶의 순환대로 하나는 고기가 되고 하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쥐는 찾아오지 않았다.
 [이 쥐고기도 일을 구할 때까지는 아껴먹어야지.] 스태돌프는 적당히 배가 약간 찰 때까지만 스튜를 먹은 뒤 냄비를 다시 부엌으로 옮겨놓았다. 나머지 허기는 빵 덩어리로 채웠다. 포식자는 절대 이 곡물로 만들어진 노란 물체를 먹고 생존할 수는 없었지만 배고픔은 덜 수 있었다. 부엌 쪽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하모니 가의 서늘한 바람에 스튜가 서서히 식어갔다.
 스테돌프는 오늘 도시를 꽤 돌아다녔다. 몸이 약간 피곤했다. 아직은 오후였지만 침대에서 약간만 쉬기로 했다. 2층 누나와 같이 쓰던 침실의 침대는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푹신했다. 아직 이불보의 털지 않은 먼지가 스테돌프의 코로 들어왔지만 침대에서 약간만 쉬기로 한 것이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솜을 집어넣은 낡지만 정겨운 침대가 푹신하게 느껴졌다.
 [젠장, 오늘은 군부의 사무실에 가기 늦었군.] 스테돌프가 깨어나 2층 가족 침실의 창문을 열었을 때 스테돌프는 하늘 위에 떠있는 달을 보았다. 잠시 쉰다는 것이 반나절이나 자버리게 된 것이었다. 옛길의 습격 때부터 지쳐있었던 몸이 침대에 눕는 순간 무너져 버렸던 게 분명했다. 스테돌프는 가족 침실 서랍장 위의 액체 석탄 랩프를 켜고 한기를 막기 위해 벗어두었던 롱코트를 다시 껴입었다. 달을 보며 생각해보니 차라리 내일 아침 군부의 사무실에 들르는 게 더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군부의 장교에게 어떻게 습격이 일어났는지 묻는 건 여관에서 쥐와 이야기 했던 내용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불쾌한 일이었으니까.
 밤은 지루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고 싶지는 않았다. 스테돌프는 옛날 동화라도 읽으며 시간을 보내려고 1층 거실의 책장으로 향했다. 가족 책장엔 가중장정이 되지 않은 싸구려 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쁜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은 아니었다.
 스테돌프가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때 철로 된 문의 구리 걸쇠가 움직이며 똑똑 거리는 소리를 냈다. 스테돌프는 2층 창문 아래를 내다보았다. 후드를 쓴 대여섯의 포식자들이 문 앞에 있었다.
 “무슨 일이죠?”
 스테돌프는 아래 동물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동물들 중 하나가 후드를 벗었는데 후드 아래에 교회의 상징색인 노란색 옷을 입은 수사자였다. 스테돌프는 순간 코요테가 말해주었던 여왕의 복수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지만 다시 안심했다. 태양의 교회의 옷은 자주 빛인 왕실의 옷과 달랐다.
 “교회의 일 때문이지. 당신이 죽어가는 밀의 기사 작위를 가지고 있는 러쉬하트 가문의 장난 스테돌프가 맞나? 수사자는 권위를 가진 갈색 눈으로 창문 밖으로 튀어나온 스테돌프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사자이시고 교회의 일원이신 걸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러쉬하트가의 스테돌프가 맞습니다만 교회의 사자께서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스테돌프는 2층의 창문에서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직접 마주보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어색한 모습이 나왔다.
 교회의 일원들은 스테돌프의 어머니가 가진 작위를 물었다. 작위는 첫째인 누나가 계승할 것이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스테돌프의 것은 아니었다.
 작위를 가진 집안이라는 건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갈 때 몇 가지 특권을 가졌다는 걸 의미했다. 예를 들어 무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지 오직 고양이과 동물들만 앉는 교회의 상석에서 자리를 잡을 자격이 있다든지 말이다.
 스테돌프의 어머니는 허례허식인 작위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예배를 보러 갈 때 꼭 권총을 지니고 갔다. 교회에서 작위와 상관없이 고양이과 동물이 아니니 무기를 들고 오지 말라고 동물들을 몇 번 보낸 적 있었다.
 스테돌프 어머니의 작위가 별볼일 없는 형편없는 것이라는 건 교회가 더 잘 알았다. 물론 어머니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꼭 무기를 들고 예배에 참석했지만 말이다. [그것 때문인가?] 스테돌프는 1층으로 내려가 철문을 열었다.
 “잠시 밖으로 나와줬으며 좋겠군. 시간은 귀중하고 우리도 바쁘니까 말이야.”
 수사자가 말했다. 스테돌프는 그 말대로 따랐다. 후드를 벗은 사자의 모습엔 교회의 엄격함이 묻어 나왔다. 급히 나오느라 뒷발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석제 보도의 조그만 돌들의 차가운 한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스테돌프는 후드를 쓴 형상들을 보며 가볍게 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수사자는 순간 스테돌프의 주둥이를 잡고는 코에 축축한 하얀 천을 덮었다. 묘한 약품의 냄새가 풍겼다. 스테돌프는 그리고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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