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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자오빛 꿈
게시물ID : readers_318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상연
추천 : 4
조회수 : 35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6/08 14: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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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빛 꿈 이상연

 

깜깜한 방 안에 상연은 노트북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파란 불빛은 얇은 담요같이 얼굴을 살포시 덮었다. 축 처진 눈매가 한 번씩 떨면서 졸음을 떨쳐내려 했으나 졸음은 윙윙 거리며 다시 달라붙었다. 결국 자판기 위에 두 팔을 감싸고 고개를 처박았다. 화면에는 세 시간 동안 쥐어짠 소설 한 문장이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상연 또한 간절히 기다리지 못해 버티고 있었다. 아무리 애를 쓰고 간절히 빌어도 빈곤한 필력이 허락하는 분량은 언제나 한 문장. 그 다음에 허락된 것은 쓸모없는 잠뿐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상연이 서있는 곳은 교실이었다. 운동장이 보이는 창밖은 어두웠으나 복도는 오후 5~6시에나 볼 수 있는 자오빛이 흐르고 있었다. 자오빛이란 가슴 두근거리는 이야기나 애절한 그림, 영화나 게임에서만 볼 수 있는 해질녘 노을이다. 상연은 소년 시절에만 느껴졌고 지금은 잊어버린 애절한 정서를 느꼈다. 설명 할 수 없는 이 느낌은 혈관을 타고 심장을 두드렸다.

가슴 뛰었다. 어쩐지 친숙한 이 장소에서 상연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살폈다. 빨간 넥타이를 만져보고 손목 닿아 때가 탄 와이셔츠를 살폈다. 회색바지와 삼선슬리퍼까지 보고는 자신이 중학생 쯤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이것이 꿈이란 것도 알았다. 운동장이 보이는 창문은 밤이고 복도는 노을빛 오후다. 이제는 맞지 않을 오래전 교복을 입고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스스로 알 수 없었다. 딱 꿈이란 것이 느껴졌다. 꿈이란 깊게 꾸면 꿈인 줄 모른다. , 얇은 꿈에선 가끔 자각몽이란 것을 경험 할 수 있다. 상연은 이런 상황이다.

상연은 꿈에서 깨기를 기다리다가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애절한 학창시절에 마음이 심장을 쿡쿡 쑤신다. 그래서 못 이뤄본 연예 경험을 이루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갑자기 주변에 학생이 수십 명 정도 나타났다. 모두 남자였다. 빌어먹게도 왠지 이럴 것 같았다. 현실에서나 꿈에서나 내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연은 본능적으로 자리에 앉았다. 자오빛이 스며드는 복도 쪽 끝자리였다.

시끌벅적 해지더니 왠지 알 것 같은 얼굴이 여럿 보였다. 아니, 얼굴보다는 느낌이다. 한 녀석이 가까이 왔다. 차림세로 보아 이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이름은 모를 누구였다. 덩치가 있고 자기가 할 말은 누구에게나 똑바로 했던 녀석이다. 녀석이 가까이 오더니 느닷없이 단팥빵을 내밀었다.

"상연아, 이거 먹어라."

"? 아니 고마워. 이름이 뭐였더라?"

"허밍웨이다."

"진짜? -"

"물론 장난이다. 그건 너도 알고 나도 알지. 덤으로 이게 꿈이란 것도 나는 알고 너도 알지. 그거그거 단팥빵 아니다. "

상연은 쥐고 있던 단팥빵을 바라봤다. 어느새 단팥빵은 사라지고 손아귀에 책 한 권을 쥐고 있었다. 노인과 바다였다. 세계적인 고전인데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제목만 봐도 감동적이다.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하곤 했다. 뚫어져라 책을 바라보는 상연에게 이름 모를 녀석은 쥐고 있던 책을 두드리며 말했다.

"너의 미래 20년이면 이 책을 너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

별 다른 설명을 붙일 것도 없다. 이것은 상연의 꿈이고 상연의 욕망이다. 상연은 이 꿈을 꾸기 전까지 어두운 방에서 글을 쓰고 있었음을 기억했다. 도대체 간단한 이야기 하나라도 제대로 쓸 수 있는지 상연은 본인 능력을 의심하던 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꿈을 꾸게 됐다. 물론 꿈이기에 상연은 별 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상연의 미래 20년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알아야 했다. 상연이 이름 모를 녀석을 바라봤다. 입을 열 것도 없이 녀석은 먼저 대답했다.

"가진 수명이 100년이라면, 너의 미래 20년이란 80세부터 100세 사이를 말 한다. 120년이라면 100세부터 120세 사이다. 작품 값 대신에 너의 잉여 인생을 가져가는 것이지. 늙어서 근근거리며 20년을 사는 것보다. 휠씬 낫지."

"그래 하자. , 아니 그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 나는 몇 살까지 살고 넌 누구야?"

"너의 수명은 알려주지 않는 것이 내 즐거움이고 규칙이다. 나는 너의 꿈이자 너가 만든 이야기다."

아리송한 대답이지만 본인 꿈이기에 상연은 대충 이해했다. 꿈이란 그런 것이다. 상연은 동의를 하였고 언제인지 모르게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고 처음으로 본 것은 빈칸이 가득 채워진 텍스트 문서였다. 무엇하나 나무랄 곳이 없는 완벽한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놀랍게도 한국에 맞춰서 새롭게 짜인 노인과 바다였다. 상연은 이것을 곧 바로 인터넷 개인 블로그와 소설 사이트에 올렸다.

상연이 올린 노인과 바다는 일주일만에 폭발전인 이슈가 되었다. 출판사에서 제의가 끊이지 않았다. 상연은 최고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노인과 바다를 출간했다. 출간 시점부터 1년도 안 되어 국내에 100만부가 팔렸다. 걸어오는 인터뷰는 물론이고 여러 방송사에서 출연하며 한 순간에 유명인이 됐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서양문화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미국에서 반응이 좋았다. 노인과 바다는 미국 정서와 과거 시대정신에 딱 맞는 것이다. 단 한 작품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게 됐다.

한 인터뷰에서 상연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우선 명예와 유명해지는 것을 위해서 글을 쓰지 않겠노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변화와 질서 사이에 갈등을 직면하고 그 속에서 인간성을 찾아내어 새로운 정신세계를 개척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 제발 상연아. 정말 굉장히 거창하게 말해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이 한 마디 때문에 세상은 상연이 다음에 어떤 작품을 쓸지 기대를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상연은 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아니, 익명으로 인터넷 소설 사이트에 올려 봤는데 제일 잘 쓴 글이 추천수 5개를 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5년이 지나가자 속이 썩어 들어갔다.

다시 깜깜한 방에 노트북을 마주보고 앉았다. 비싼 노트북과 88평짜리 트리마제 펜트하우스라는 것 빼고는 달라진 것이 없는 생활 패턴이었다. 환경은 좋아졌지만 상연 본인은 하나도 성장 한 것이 없었다. 그 좌절감과 불안감에 탈모 현상은 가속화 됐다. 이젠 주변에 상연이가 어떻게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체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고 상연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 꿈을 꾸기를 간절히 원했다. 아직 31세로 젊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한다. 60살만 살고 죽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다. 그렇게 노트북에 코 박고 잠을 청하기를 100일이 지났다.

"이걸 찾았지?"

꿈이다. 녀석은 나타나자마자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표지에 그림은 없고 제목뿐이었지만 상연은 제목을 읽자마자 감동해버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이건 빈 종이에 제목만 써도 베스트 셀러감이다. 책을 받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전처럼 운동장 쪽은 밤이었고 복도 쪽은 자오빛이 은은하게 번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제 60살까지 밖에 못 살게 된다. 아니지, 수명이 얼마인지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에 40살도 80살도 될 수 있다. 어쨌거나 또 다신 와선 안 되는 곳이었다. 상연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꽉 쥐고는 스스로 뺨을 쳤다. 그리고 깨어났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간 되었다. 21세기 초 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이 나타난 것이다. 상연이 출간한 신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세상이 걸었던 기대를 초월하는 명작이 되었다. 내용 또한 시대에 맞게 재구성이 되었는데 이게 오리지날을 아득히 초월했다. 같은 작품이라 보기 힘들었다. 31살 나이에 벌써부터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이 되었다. 그렇게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될 가능성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노벨상을 받을 수 없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받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5년 전이다. 한국 사람들이 상연에게 노벨 문학상 타령을 할 때마다 짜증과 분노가 올라왔다. 외국에서는 상연이 쓴 작품은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수상자가 될 수 없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거장이 나타났다. 25살 이애송 이라는 청년은 벌써 일곱 작품을 출간했다. 일곱 작품 하나하나가 서구와 동양 문학계에 인정받을 만한 완성도를 지녔다. 그래서 상연과 함께 노벨 문학상 후보가 됐다. 그러더니 뉴스에서는 과연 누가 먼저 노벨상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이슈가 터졌고 겨우 두 작품만 쓴 상연은 이 애송이 자식과 비교를 당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탈모는 가속화 되었고 드디어 상연의 정수리가 빛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상연은 빛나는 정수리로 노트북 화면을 박아버렸다. 얼마나 쌔게 박았는지 머리가 노트북 화면을 뚫고 뒤로 튀어나왔다. 상연은 기절하며 잠이 들었다.

"또 올거라고 생각했다. 자 받아라!"

꿈 녀석이 책을 내밀었다. 책을 받자마자 제목을 확인했다. 카뮈의 [이방인]이다. 상연은 이것을 받자마자 꿈에서 스스로 뺨을 쳤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상연은 목에 노트북이 걸린 상태였다. 목에서 피가 질질 흘렀다. 상연은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출판사에 새로운 작품이 완성되었음을 알렸고 그 소식을 들은 출판사 직원들이 상연의 집으로 곧장 뛰어갔다. 그들은 노트북 화면이 목에 걸린 체 쓰러진 상연을 발견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기절한 상태였다. 상연은 곧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방인이 출간됐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상연이 노벨상 수상자로 확정 되었다. 세계는 이방인이라는 인류 문화유산적인 걸작이 탄생한 것을 기뻐했다. 동시에 세계는 죽음이 간당간당한 상연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빌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 날에 상연이 깨어났다. 그런 상연은 비장한 눈빛을 짓더니 수상식에서 노벨 문학상을 거절해버렸다. 그 이유는 세상적인 명예를 위해서 글을 쓰지 않겠노라고 선포한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행동은 문학을 꿈꾸는 모든 작가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그러나 사실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고 거절을 하면 더 멋있게 보이기 때문에 거절했던 것이다.

노벨 수상을 거절하고 다음 날 상연은 세상을 떠났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상연을 보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역시 천재는 단명하다, 역시 착한 사람은 빨리 죽는다. 아 잘생겼다.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나 죽는 순간에 상연은 또 꿈을 꾸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인생이었지?"

"... . 아직 안 죽었네."

"그래. 아직 특전이 남아있다. 너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지. 하나는 저 어두운 운동장이 보이는 창문으로 걸어가는 거야. 가면서 너가 살아가게 될 본래 인생을 보게 된다. 그것을 견디고 창밖으로 뛰어내리면 이 모든 것이 개꿈이 된다. 너는 이 꿈을 꿨던 그 시점에서 다시 시작 할 수 있어. 물론 기억은 사라지지. 다른 하나는 자오빛 복도로 걸어가는 거야.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모두 사실이 되고 너는 위대한 문학가로서 역사에 영원히 남아 죽는 거지. 선택해라."

상연은 주저 없이 운동장이 있는 어두운 창문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또 다른 현실을 보았다. 책을 한 권도 쓰지도 못 하는 미래를 보았다. 여자친구도 없고 가난하게 살아다가 죽는 인생을 보았다. 노인이 되어 폐지를 줍는 꿈을 보았다. 모든 것이 비참했으나 상연은 묵묵히 걸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새로운 환영이 보였다. 그것은 27세가 되기 전에 앞머리에서 정수리까지 완전히 배껴저서 태양열 충전기로 써도 될 만큼 매끈한 해바라기 대머리가 돼버리는 미래였다. 그 미래를 보는 순간 상연은 비명을 지르며 자오빛 복도를 향해 달렸다. 그렇게 상연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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