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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연재] Show me
게시물ID : readers_321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밤의작가들
추천 : 2
조회수 : 24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8/21 02: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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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그거 열면 안 돼!”
이미 늦었다.
나는 회중시계의 뚜껑을 열고 말았다.
시계바늘이 마구 돌아가더니, 그 중심에서 작은 토네이도가 생겨나더니 주변에 모래바람이 일었다. 그것은 점점 커지더니 순식간에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정말 눈 깜빡할 순간이었다.
다행히 토네이도와 모래바람은 금방 사라졌다. 집도 그대로였다.
으아악!”
엄마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괜찮아?”
... ...”
엄마는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
? 내가 왜?”
순간 나는 내 목소리에 흠칫했다.
뭐야? 내 목소리가 왜 이래?!”
내 입에서 나오는 건 할아버지의 쉰 목소리였다.
목으로 손을 갖다 대려다가 내 손을 보고 흐억,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손이 쪼글쪼글하고 군데군데 검버섯이 올라와 있었다.
엄마... ...이게 뭐야? 나 어떻게 된 거야?” 쉰 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거울에 비친 모습에 경악했다.
70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더라는 남자 얘긴 들어봤지만, 갑자기 늙어버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얘기는 검색 해봐도 안 나온다.
나는 래퍼가 꿈인 17세 고등학생이다. 이제 한참 잘 나갈 시기인데... 할아버지가 되다니.
심지어 40대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다. 으아아아악...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이 몸에 적응하는 데는 한 달쯤 걸렸다.
이건 어느 정도 사용법에 익숙해졌다는 것이지 좋다는 뜻은 아니다.
그에 반해 엄마는 아직도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엄마라도 내가 누군지 알아봐서 다행이다.
어쨌든 덕분에 지긋지긋한 학교생활은 마감하게 되었다.
다행이 좋은 것도 있군.
하지만 대부분 불편한 것 투성이다.
일단 숨이 차다. 걸을 때도 그렇고 뛰는 건 생각도 하기 싫다.
때문에 랩을 하는데도 지장이 많다. 젠장, 담배를 끊어야하나?
내 유일한 즐거움인 게임도 못하겠다.
노안인지 채팅도 안보이고, 나보고 컨트롤을 발로하냔다. 게다가 한두 시간 하다보면 두통이 오고 구역질이 난다. 젠장, 이제 뭐하고 살라는 거야.
내 꿈! 내 미래! ,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럴 때는 가사를 적어야지.
 

어제까진 잘나가던 세븐틴
눈떠보니 숨차오는 세븐티
난들 이리될 줄 알았나, xx
스킵 한 오십 년 어디 갔나, 인생무상
 

 

 

 

또 한 달이 지났다.
앞으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지 계속 이대로 살게 될지, 아직까지 확인 할 방법이 없다.
그러는 사이 몸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 병원에 가보니 시한부란다. 길면 1년이란다.
내 인생 드라마냐? 저기요, 17살이거든요!
엄마는 나만 보면 울었다.
나는 생소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 17년이면 인생의 단맛, 쓴맛 다 봤다. 좋은 인생이었다.
홀로계신 어르신들처럼 종일 티브이를 봤다. 주로 예능을 골라 봤다. 남은 시간을 웃음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게 공허한 웃음일지라도.
 

그러다 유명한 '래퍼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 모집 광고를 봤다.
래퍼! 17살의 꿈!
나는 고민할 것 없이 바로 지원했다. 무섭지 않았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터였다.
솔직히 말해 내 랩 실력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개성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마지막이라 열심히 했다. 젊을 때 이렇게 했으면 뭐가 돼도 됐겠다.
리듬감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들었다.
목이 잠겨 쉰 소리마저 안 나올 때도 있었다.
가사도 몇 번이나 고쳐 썼다.
두 달을 70살로 살았다고 확실히 17살 때보다는 깊이 있는 가사가 나왔다.
 

 

 

 

첫 예선에서 나는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카메라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따로 인터뷰도 했다.
많은 사람이 내 열정을 높이 샀지만, 대부분 70대 래퍼를 신기해했고 킥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60초 랩 미션. 내 차례가 왔다.
1분의 시간동안 내 17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나는 강렬하고도 차분하게 내 마지막일지도 모를 랩을 마쳤다.
조용했다.
앞에 선 심사위원도 잠시 멈춘 듯 보였다.
그가 코를 씰룩거리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심사위원이 'PASS'라고 적힌 목걸이를 건넸다.
숨죽인 듯 조용하던 관중석에서 일시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멀리서 지켜보던 엄마가 달려왔다.
그동안 못난 짓만 보인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다.
마지막에라도 이런 모습 보일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큼직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무하 in <밤의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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