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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맹인 - 1
게시물ID : readers_322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knk1
추천 : 1
조회수 : 20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8/28 18: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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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맹인

맹인(盲人)
"다른 말로는 시각 장애인. 앞에 있는 것을 완전히 보지 못하거나, 매우 희미할 정도로만 보이는 사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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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린 시절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열명 중 한 명은 거의 대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 말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인지라 기억하고 있는 건 매우 희미한 것들 뿐이다.

하지만 그런 희미한 기억들 중에서도 당장 어제일인 것처럼 뚜렷하게 기억하는 게 하나가 있다.

기억이 너무 뚜렷해서, 다른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 희미해졌지만 이것만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매우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아직 걷지 않고 기어 다녔을 적,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이 세상을 보았다.

그 때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난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 매우 선명하고 밝은 세상을 본다.

그렇지만 그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먼 거리의 말인 것 같았다.

그 때 처음 봤을 때, 나에게는 세상이 절반 가까이 노이즈가 끼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종이를 자른 것처럼 딱 절반만이 노이즈가 낀 것도 아니었고, 어울리지 않은 색깔을 섞은 듯 절반 이상이 노이즈에 물들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보통 사람들은 세상의 절반 이상이 노이즈가 끼어있다, 라고 들으면 뭐라고 반응할까? 라며 상상해본 적이 있다.

멀쩡히 맑고 선명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그런 게 말이 되냐고, 그런 건 없다라고 딱 잘라 말할 것이다.

아니면 이해가 안되는 눈길을 보내거나, 무관심으로 대답하거나.


3 ~ 4살정도의 아주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고 치료를 위해 의사의 도움을 받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라고 만 했었다고.

현재 기준으로는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전무하며, 이 이상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부모님이 물어봤을 때에는, 그저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계속 반복했을 뿐이라고 했다.

반복하는 말을 들었을 때, 부모님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매우 슬퍼했다고 하셨으며,

내 시력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랬다고 부모님은 내가 말을 하고 걸을 수 있을 때 말해주셨다고 했다.

다만, 부모님이 말을 했다고는 했지만 처음 세상을 봤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었기에 그 말을 들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매우 어린 시절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무렵부터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하나하나 확실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이 경우에는 단순히 나의 기억력이 좋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반 이상 항상 노이즈가 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가니 이 정도의 기억력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며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무렵은, 처음 봤을 때처럼 검은색도 아닌 노이즈가 절반 이상이 채워져 있었다.

검은색이 아닌 노이즈는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붙여놓은 것 같지만, 그 말 말고는 현재의 시야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길을 걸어가다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분명히 아주 어렸을 때에도 이렇게 보고 살아왔을 테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너무나도 희미했기 때문에, 때로는 어린 시절이 정말 있었던 걸까? 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히 어린 시절이 있었고 이를 알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실감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칠판을 봐주세요."

수업 시간, 입학한지 하루째인 초등학교 1학년 때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선생님이 칠판을 가리키며 어떤 개념인지를 설명하고, 질문을 가져보는 시간을 갖거나 했다.

선생님이 가리킨 것을 가지고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2요 ! 라고 너도나도 구분 없이 곧바로 크게 말했지만 그 칠판을 보자 2 ~ 3초동안은 저게 2라고 볼 수 있는 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큰 형태로 2가 맞을 것이라고, 보이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것들이 노이즈가 완전히 낀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려고 눈에 힘을 주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수업 중이어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지만, 가까이가도 칠판에 써있는 세부적인 것들을 하나도 볼 수 없다.

이미 책을 눈앞까지 가만히 댔는데도 세부적인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알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시력이 아무리 나빠도 가까이 들이대면 잘 보이지만, 나한테는 아니였다.

전체적인 모양은 약간 보이지만, 그 이상은 되지 않았다.

글자 같은 것들은 하나하나 크지 않는 이상, 읽고 이해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적당한 크기로 인쇄된 종이의 글자는, 몇 가지를 빼면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그 때 수업에는 숫자나 사칙연산 기호같은 간단한 도형같은 것들만 칠판에 있고 책을 쓰지 않았기에, 수업은 무사히 들을 수 있었다.

말을 자주 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니, 칠판에 써진 세부사항 같은 건 보이지 않아도 말을 들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이들도 책을 쓰지 않는 수업이 마음에 들고, 어렵지 않았는지 이를 삼아 문제를 제기하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수업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이 한 명이 나한테 물어봤다.

"눈이 매우 나쁘다면 안경을 쓰면 되는 거 아니야?"

눈이 매우 나쁘면 안경을 끼면 된다, 라는 아주 간단한 것을 나한테 물어봤지만, 그 때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안경을 껴도 보이지 않아."

"왜? 우리 엄마는 안경 끼면 눈이 매우 나빠도 보인다고 말했는데......"

그 아이는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안경을 껴도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거나 하지 않아?"

"안 그래."

안경을 안 끼고도 잘 보이는 아이니,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의 첫날에는 숫자나 사칙연산, 한글 하나하나 익혀나가는 것을 했다.

잘 보이도록 큰 칠판에 글자를 크게 써놓았으니 노이즈가 끼어있어도 어렴풋이 보였다.

나를 배려해주시는 선생님한테 감사하다고, 그때 확실히 느꼈다.

다른 아이들도 큰 것이 좋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잘 모른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은 면담을 가지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안경을 껴도 눈이 매우 나쁜 상태라고, 큰 것은 어렴풋이 볼 수 있지만 작은 것과 세세한 것은 볼 수 없다고, 나의 시력에 대한 자세한 것을 담임 선생님에게 말해주셨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납득하고, 세부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 나를 배려해주고 있다.

초등학교 때에는 담임 선생님이 수업을 계속 하시니, 잘 안 보여도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이후는 당시에는 잘 몰랐기에, 나중에도 계속 이렇게 하지 않을까라며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대낮임을 알리는 맑은 하늘이 보였다.

푸른 하늘이 보이는데 검은색도 아닌 노이즈가 끼어있으니 이상하게 보이는 하늘이 거기 있었다.

안 어울리는 색깔을 억지로 합쳐놓은 것처럼, 너무나도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분명히 맑은 하늘을 보고 있을 텐데, 나한테만은 이 이상한 광경만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보지 않고 전부 선명한 광경을 볼 텐데.

이 말이 언제부터 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주 이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많이 생각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전에 들었던, 태어나면서 사람들은 선명하고 밝은 세상을 본다는 것을 생각했다.

하나하나가 선명하고 매우 맑은걸 본다고 하던데,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보는데 왜 나만 이렇게 보이는 걸까?

질문이 너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질문을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표지판이나 도로명 같이 작게 써진 글씨는 아예 볼 수 없지만, 큰 형태로는 보인다.

다만, 이런 것들이 가리키는 방향에 의지해 돌아다니는 건 아니었다.

보이는 길 자체를 통째로 외워버려서, 그걸 토대로 집으로 간다.

길가가 매우 큰 것도 있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매우 적기도 해 피해를 보는 경우는 없었다.

부모님이 내 시력을 고려해 주위를 잘 보고 걸어오라고 말했었지만…..

집에 왔지만, 특별히 할 것은 없다.

시야가 크게 제한되어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기에, TV를 보지만 화면은 거의 못 보고 소리로만 듣거나, 가만히 누워있거나, 잠을 자거나 한다.

당시에는 유난히 움직이는 것이 적었다. 다른 아이들은 많이 움직이거나 바깥에서 뛰노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폐인처럼 움직이지는 않고 움직이거나 하는데, 비교하자면 확실히 적었다.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는 것을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도 이 시야를 계속 본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도 본 것도 역시 노이즈가 가득 끼어있었다.

꿈속에서는 다른 게 보이지 않는 걸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물며 꿈속에서라도 다른 게 보였으면 했는데, 세상은 날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게 수업을 받고 공부해나가며 지내는 시간이 계속 지나갔다.

몇 년이 지났을 때 안 사실이지만, 초등학교같이 어린 시절에는 어제 일인 것처럼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다.

과거를 생각해보니 벌써 4년전이고, 언제 그렇게 빨리 지나갔냐고 느낄 때가 있다고.

이 사실은, 10명중 7명이 모두 그렇다고 대답 할만큼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아닌 것 같았다.

수업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는데, 더 길어지는 경우는 있었지만 결코 더 짧아지는 경우는 없었다.

심하면 하루를 2일로 느낄 만큼 매우 길어진 적도 있었고, 1주일을 3주로 느낄 만큼 시간관념이 망가지는 경우 또한 있었다.

최근에는 2주 넘게 지난 거 같은데, 확인해보니 5일.

이런 노이즈가 낀 광경을 더 긴 시간으로 봐야 하는 걸까?


아침에 눈을 뜨면 완전히 어두운 광경에서 반쯤이 밝혀진다.

언제라도 똑같이 반은 노이즈로 끼어있고, 반은 세상이 보인다.

이 경험만 몇 번이나 했을까?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많이 겪은 것 같은데, 언제라도 똑같고 언제라도 바뀌지 않은 세상만이 보인다.

문득 부모님이 말해주셨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현재로써는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으며, 이 이상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알 수 없다고들 했다.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알 수 없다 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인 걸까?

며칠 전, 이 세상에는 나랑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와 돌멩이조차도 완전히 볼 수 없는 맹인.

특정 색깔을 잘 볼 수 없는 색맹.

상이 여러 개로 겹쳐 보이는 난시.

색깔을 볼 수 없으며 오로지 흑백만이 보이는 전색맹.

이름은 모르지만 상태가 매우 나쁜 사람은 물체의 상 자체를 구분할 수 없으며, 농담 구분만이 가능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밖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몇 가지 더 있다고들 하던데,
이런 것들에서 나는 어떤 걸까?

궁금하기도 해서 곧바로 생각을 했다.

맹인은 아니지만 맹인에 매우 가깝다라는 것이 있을까?

이런 구분은 아마 없지 않을까라며 생각했다.

나랑 비슷하지만 확실히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던, 맑고 선명한 광경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약간 있었다는 걸 알았다는 것,

특정 색깔을 잘 보지 못하는 색맹, 모든 것들이 흑백으로 보이는 전색맹 등, 나는 알 수 없지만 맹인이 보는 세상은 어렴풋이 알 것만 같기도 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맹인인데, 큰 것만 볼 수 있고 세세한 것은 전혀 볼 수 없다가는게 조금 들어맞는다. 노이즈가 끼어있는 것도 그렇고.

갑자기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이 완전히 노이즈로 끼어버리면, 그때에는 완전히 맹인이 되어버리는 걸까?

부모님이 의사 선생님한테 들었을 때, 어떻게 진행될지 아예 알 수도 없다고 말했는데 완전히 맹인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는 게 아닐까?

지금 상태를 넘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맹인이 될지도 모른다. 이 생각을 처음으로 떠올린 순간 엄청난 공포에 시달렸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기는 싫다 라며, 소리를 지르며 울었던 기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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