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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맹인 - 2
게시물ID : readers_322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knk1
추천 : 1
조회수 : 1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8/28 18: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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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눈에 띌 정도로 생각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몇 가지를 알면 그것에 대한 질문이나 생각을 하는 식으로 자주 생각했다.

그것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맹인은 현재 기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여러가지 생각을 했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내가 가진 시력.

손가락을 들어 점 여러 개가 솟아있는 것을 확인해나가면, 그것을 통해 의미를 알 수 있다.

초등학교 때에는 기초적인 언어 공부 같은 건 배려를 통해 잘 들을 수 있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해 중학교로 넘어가기 시작할 때 앞으로 더 커가면 이런 점자가 없을 경우 매우 큰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는 조언으로, 점자를 읽는 방법을 배웠다.

옛날에 작은 글씨는 전혀 읽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꽤나 잘 읽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건 똑같지만 점자를 이용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시세포 이식 등의 여러가지 방법이 계속 수행되고 있고, 성과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결정적인 방법이 밝혀지지 않았다."

생각을 이렇게 자주 하게 된 건 역시 태어났을 때부터 가졌던 나의 시력이 아니였을까.

아니면 그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랬던 걸까?

아마 둘 다 아닐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놓은 후, 건물에서 나왔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점만 있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책이다.

하지만 반이 보이지 않는 나한테는 거의 유일하다 싶은 방법이다.

점자 책을 이용함으로써, 작은 글씨로 써진 내용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글씨를 읽는 느낌과는 다른데, 손가락으로 점을 인식하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글을 읽는 느낌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은 옛날과는 매우 다르지만 돌아가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다.

점자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여러가지를 알 수 있었고, 외우면서 더 많은 것을 기억하게되어 어렸을 때와는 달리 큰 어려움은 없어졌다.

눈 절반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점자를 알지도 못해서, 해매고 혼란스러워 하는 일이 잦았다.

옛날에는 점자 책이 많이 없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한정되고 구하기 까다롭다고 들었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옛날 이야기라서 잘 모른다.

그래도 최근에는 매우 많은 책이 점자 책으로 새로 출판되었다고 하니, 나도 모르는 옛날에 비하면 좋을지도 모른다.

소리 없이 닫히는 문소리는, 문이 닫혔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조용했다.

어렸을 때에는 잡음이 섞인 끼이익 소리를 내면서 닫혔는데, 요즘 시대는 불필요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무엇이든 깔끔하면서도 조용하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전철이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역을 지날 때마다 알림이 나오는 건 똑같지만, 그 역시도 절제된 느낌이 나는 알람이었다.

알람이 들리기에 다른 역으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그 알람 조차 듣지 않으면 움직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절제된 알람과 들리지 않는 전차 소리라 시설도 깔끔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절반이 보이지 않으니 의미는 없다.

지하철로 여러 역을 거치고, 길을 걸어 집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약간 먼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불필요한 소리조차 내지 않는 전차 때문에 매우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일을 했기에, 집에 늦게 들어오는 편이 많았다.

오후 8시나 9시정도에 들어오는 게 대부분.

어떤 날에는 훨씬 더 일찍 들어오는 경우 또한 약간 있었고, 가끔 두 분 모두 집에 있는 경우 또한 있었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서 어렸을 때부터 나랑 지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지만, 집에 들어온 후에는 잘 돌보며 좋게 지냈다.

여러가지 말할 때가 있었지만, 자주 말하는 것은 역시 눈.

눈의 문제를 부모님이 잘 알고 있기에 걱정을 해주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오늘 눈은 어때?" 라며 가볍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고, "여전히 안 보여?" 라며 좀 더 자세히 물어보는 경우 또한 있었다.

부모님이 자주 걱정하는걸 느끼지만, 그 말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았을 때, 부모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그런 것이 있지만, 말만 하지 않을 뿐이지 오히려 전보다 더 걱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가만히 않아 생각을 하고 있으면, 몇 달 전에 비해서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에도 생각을 많이 하지만, 최근에는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인지 전보다 생각하는게 많아졌다.

치료는 아직 불가능하다, 라는 것만 얻었지만.....

잠시 생각을 하는걸 멈춘 후, 일단 집에 왔으니 정리라도 하자는 마음에 쌓인 물건들을 정리하고 쓰지 않는 이어폰을 제자리에 걸어두고, 잠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기도 했다.

집 정리를 끝낸 후, 마저 하던 생각을 할까 생각하다가 많이 졸리기에 잠깐 자고 일어나기로 결정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노을이 지던 풍경은 어느새 사라지고,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다.

많이 졸린 것은 사라졌지만, 예상보다 더 많이 잔 것 같았다.

"얼마나 잤을까?"

얼마나 잤는지 확인하기 위해 휴대 전화를 보니, 글씨가 깨진 듯한 화면으로 시간이 보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1시간 정도 잠을 잔 거 같다.

너무 잔 게 아닐까라며 생각하던 도중, 집안에서 그릇 소리가 나는 게 들렸다.

부모님이 들어오신 것 같다.

평소에는 늦게 들어오시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무언가 일이 생겨서 그런지 빨리 들어온 거 같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면, 아빠는 앉아서 TV를 보고 있고, 엄마는 방금 설거지를 마친 듯 나머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어, 그래. 자다 일어났냐?"

"네. 할게 없어서 잠깐 잠자고 있었어요."

"그래, 불편한 거 없이 잠 잘 잤고?"

"네."

어느 때와 다름없는 말이지만, 오늘은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할 것으로 보였다.

"여보, 잠시 마실 것 좀 갖다 줘요. 오늘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요."

"알았어요."

엄마한테 마실 것 좀 갖다 달라고 하면, 아빠는 나를 향해서 말했다.

"오늘은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여기 앉아봐라."

앉은 후 잠시 기다리니 엄마가 녹차 세 컵을 타서 가져왔고, 나와 아빠 주위에 엄마가 앉았다.

녹차를 한 번 마신 후, 아빠는 말을 이어갔다.

"한동안 말하지 않았던 시력 쪽 문제에 관해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부른 거야."

"시력 쪽이요?"

"그래. 나와 엄마도, 평소에 너의 시력 문제를 많이 걱정하니까. 주위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듣거나, 상담 받아보는 경우가 많아."

"......."

"그래서, 그 시력 문제에 대해서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래."

"어떤 건데요?"

"병원에 다시 가볼 생각은 있어?"

"병원?"

"주위에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일단은 병원에 가는 것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우선이라고 했고."

아빠는 나의 말을 기다리면서도 할 말이 아직 남았는지,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어렸을 때부터 병원에 자주 갔지만, 재정 문제 때문에 몇 년 만에 그만둬버렸고.....

하지만, 옛날과는 다르게 이제 재정 문제는 없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수도 있으니까."

"......."

"옛날에 집안 한계 때문에 많이 지원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저는 괜찮아요."

"그래....."

아빠는 내 말을 듣고도, 뭔가 마음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잘 모르겠다.

"병원에 거부감 같은 것은 옛날에도 없었으니까, 가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럼 정말 다행이네.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정말 다행이야."

그런 말을 꺼내고, 아빠 마저 남은 녹차를 마셨다.

아빠가 마시는걸 보다가, 나에게도 녹차가 있었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걸 깨달았다.

옆을 보니 엄마도 녹차를 마시고 있기에, 나도 녹차를 마시기로 했다.

셋 모두 녹차를 다 마신 뒤, 그 밖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하루동안 무엇을 했었냐, 최근에 관심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이냐 등등, 수없이 많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까, 미래에는 무엇을 하고 싶어?" 부모님이 미래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라고 말을 아꼈다.

아직 정하지 못했다라는 말을 들은 부모님은, 조언이나 여러가지를 많이 알려주셨다.

관심 가지는 것을 해보라던지, 여유를 많이 가지면서 편안하게 지내보라던지 등.

하나하나 도움되는 것들이었고, 그 말을 잘 새겨들었다.

"최근에는 책을 많이 읽어요. 책 많이 읽는 게 미래와 관련이 있을까요?"

"책을 많이 읽는구나. 책을 읽는 건 좋지. 하지만 그게 반드시 미래와 관련 있는 건 아니니까."

아빠는 자기가 겪어왔었던 경험들을 이야기해주시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어렸을 적, 아빠는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좋아했다고 했다.

학창 시절, 수업 중에도 몰래 글을 쓰거나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좋아하고 열심히 했었던 탓에 공부를 빼먹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것 때문에 혼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했던 글쓰기도 나중에는 재능이라는 벽에 막혀버려서 그만둬야 했다고, 아빠는 말했다. 당시 이를 깨달았을 때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슬퍼했고, 한동안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덧붙여서 말했다.

"지금도 가끔가다가 글을 쓰거나 하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의 선에 그치지.
옛날의 미련을 못 버리는 것에 가깝지만...."

뭔가 씁쓸한 듯이 아빠는 말했다.

“무엇을 하든지 좋지만, 그것이 항상 미래와 관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 알아두면 되는 거야.”

“잘 알아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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