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초단편 연재] 무궁화아파트 경비원 실종사건
게시물ID : readers_322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밤의작가들
추천 : 1
조회수 : 24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8/29 01:52:45
옵션
  • 창작글
  • 외부펌금지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경비실 앞까지, 방금 걸어온 길에는 목련 나무가 쭉 늘어서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꽃망울들이 촛불처럼 하나 둘 켜지고 있는 걸 보니 진짜 봄이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손목에서는 초침이 채칵 채칵 봄의 시간을 헤아리고 있다. 나는 아까보다 조금 빨라진 심장박동을 느끼며, 아파트 경비실 문을 열었다. 
  “저… 김영목 씨를 뵈러 왔는데요.”
  “무슨 일로 오셨죠?”
  두 평 남짓한 경비실 안에는 낮은 탁자와 접이식 의자 두 개, 그리고 책상이 하나 놓여있었다. 남자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고스톱을 치다가 나를 맞이했다.
  “저, 김영목 씨 딸이에요. 아버지 뵈러 왔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남자는 이렇다 할 대답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려서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 건 어제 저녁, 내가 사발면에 막 끓는 물을 붓고 난 후였다. 엄마는 아빠가 실종되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실종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실종인가.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매일 두 시간 동안 사라져버려서 전화도 되질 않고, 경비실에 찾아가 봐도 흔적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엄마의 설명이었다. 나는 3분을 넘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시큰둥하게 통화를 이어갔지만, 엄마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아빠 혼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무궁화 아파트 경비원들 모두가 하루에 두 시간씩 사라져버린다는 거였다. 피식 웃음이 났다.
  “아니, 뭐 아저씨들끼리 몰래 방 하나 빌려서 화투라도 치시는 거 아냐? 아님 두 시간 동안 내기 당구를 친다던가, 뭐 그런 거겠지.”
  “단체로 한꺼번에 사라지는 게 아니야. 한길이 아저씨는 11시부터 1시까지, 진아 아빠네는 1시부터 3시까지, 그리고 느이 아빠는 3시부터 5시까지 없어진다니까? 첨엔 단체로 바람이라도 피우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거 같어. 지금 진아 엄마도 난리 났어. 꼬박꼬박 집으로 돌아오긴 하는데, 두 시간 동안 뭘 했는지 암만 물어도 대답을 안 해.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는 거야. 치매도 아니고 이게 뭐니? 어째 두 시간씩만 기억이 사라지냔 말이야.”
  두 시간 동안 사라지는 것이 뭐 별일인가 싶었지만 엄마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전화를 끊지 않았다. 겨우겨우, 경비실에 직접 찾아가서 알아보겠다는 말로 엄마를 안심시키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라면은 이미 팅팅 불어버린 후였다.
 
  “아버지는 5시가 되어야 오실 겁니다. 앉아서 기다리시죠.”
  남자는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건넸다. 나는 커피를 받아들고서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아뇨,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당장 뵈어야 하는데요. 어디로 가셨는지 알고 계신 거 같은데, 좀 불러주실 수 없나요?”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오후 15시부터 17시까지, 김영목 씨는 공식적으로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순간 손에 힘이 풀려 종이컵을 놓치고 말았다. 커피는 바닥에 쏟아졌고, 나의 운동화와 남자의 구두에까지 튀어 황토색 자국을 남겼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뭐, 어디로 가신 건데요?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엄마한텐 말  안하고 저만 알고 있을게요. 저희 아빠, 바람나신 거예요?”
  어제의 엄마처럼 점점 격앙되어가는 나의 태도와는 달리, 남자는 더없이 사무적이고 침착했다. 그는 물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고, 나를 의자에 앉히고, 노트북을 탁자 위로 가져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가족 분들에겐 일체 발설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이번만은 예외로 두도록 하죠. 단, 말씀하신 것처럼 본인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노트북 키패드 위로 손을 가져가더니 좀 전까지 켜져 있던 고스톱 창을 내리고 엑셀 화면을 띄웠다.
  “김영목 씨는 여기 계십니다.”
  남자의 손은 J11번 셀을 가리키고 있었다.
 

*
 

  경비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순간, 목련 꽃망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처음 보았을 때보다는 확실히, 조금 더, 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른손에 들려있는 남자의 명함을 버려야 할지 주머니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 ‘청부실종전문’이라니, 그 남자의 말을 어디서부터 믿어야 할까. 하지만 그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저희는 청부실종을 전문으로 합니다. 하하, 청부살인이랑은 다르죠. 그런 끔찍한 일은 하지 않습니다. 단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특정 시간 동안만 대상자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뿐입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무척 안전한 방법을 쓰고 있으니까요. 자신이 선택한 시간에, 각자의 셀― 김영목 씨 같은 경우에는 J11번이죠―로 들어가는 겁니다. 두 시간 동안, 김영목 씨는 엑셀파일 속에서만 존재하게 됩니다. 지금 이곳의 시간은 느낄 수가 없게 되죠.    
  물론, 김영목 씨도 사전에 동의하신 일입니다. 무궁화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모든 경비원들이 계약서에 서명을 했어요. 차례대로 번갈아가면서 매일 두 시간씩 실종되기로, ‘자의적’으로 선택하신 겁니다. 뭐,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고 해야겠죠. 아파트 부녀회에서 저희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올해 최저 임금이 올랐지 않습니까, 그 비용을 줄이려면 경비원들 휴게시간을 하루에 2시간씩 늘려야 했지요.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요, 그저 하루에 두 시간씩만 아파트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쉬시면서 작년과 같은 월급을 받아 가시면 되는 건데, 이 양반들이 소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하는 통에 부녀회 입장이 곤란해졌지 뭡니까. 두 시간 동안은 쓰레기도 줍지 말고, 택배도 받지 말고, 넘어져 우는 애가 있어도 일으켜 세워 달래질 말아야 하는데, 자꾸 일을 하면 임금을 계산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도 부녀회장님이 참 마음이 좋으신 분이죠. 차마 경비원들을 해고시킬 수는 없다고 저희를 찾아오셨으니까요.
  5시에 김영목 씨가 J11번 셀에서 나오고 나면 그와 동시에 다음 경비원이 J12번 셀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차례를 지키면서 셀들의 전체 합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저희의 일이죠. 이 엑셀파일 K44번 셀에는 경비원들의 이달 임금 합계가 계산되도록 수식이 걸려있는데요, 이대로만 관리한다면 작년 평균보다 4.5% 정도 낮은 수치가 나올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건 김영목 씨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지금처럼 꼬박꼬박 엑셀파일 안으로 들어오시기만 하면, 내년까지 해고당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제가 보장합니다.
  아, 명함 한 장 받아 가시겠어요?”
 
 
 
 
- written by 설탕연필 / 밤의 작가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