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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연재] 날아오를 시간
게시물ID : readers_324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밤의작가들
추천 : 1
조회수 : 2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0/08 2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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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우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유명 프렌차이즈 레스토랑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가게 앞에 멈춰 선 철우는 한쪽 화단 구석에 하얀 꽃 한 송이를 놓고 두 손을 모았다.
'삼촌, 잘 지내시죠? 저 사장님 됐어요! 1인 기업이기는 하지만.... 다 삼촌 덕이에요. 고마워요.'
철우는 마음을 담아 인사하고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는 깃털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철우가 다섯 살 때, 이 레스토랑은 시장통 끝자락에 있는 낡은 상가였다. 
어느 날, 그 건물은 전선의 피복 손상으로 전기가 누전되어 불이 났고, 그 곳을 지나던 H아파트 경비로 일하는 70대 김모씨가 불 속에서 어린아이를 구해내고 자신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어린아이가 철우다. 
그 시절에 철우는 남자는 누구나 삼촌, 여자는 누구나 이모라고 불렀다. 낯가림이 없어 누구에게나 삼촌, 이모라고 부르며 어른들을 잘 따랐고, 어른들도 그런 철우를 좋아했다. 
김씨는 철우가 살던 아파트의 경비였다. 홀로 살던 김씨는 어린 철우가 삼촌, 삼촌하면서 졸졸 따라다니자 철우를 친손주처럼 이뻐하고 잘 챙겼다. 흙 묻은 손을 닦아주기도 하고,  당직 설 때 먹으려고 아껴놨던 사탕을 꺼내 쪼그라든 손으로 사탕껍질을 까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번이었던 김씨는 지나가던 길에 누가 불러서 위를 쳐다봤다. 철우가 건물 2층 창문에서 내다보며 "삼촌! 여기! 여기!"하고 작은 손을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에구구, 철우야 위험해!" 하면서도 김씨는 크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건물에 불이 난 것이다. 
김씨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가던 길을 돌아와 철우가 있던 건물로 뛰어갔다. 김씨는 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팠지만 마음이 불안해서 천천히 걸어갈 수가 없었다.
건물 앞에는 사람들이 어떡해, 어떡해, 하며 웅성거리고 있었고, 지하에서 시작된 듯한 불이 1층을 태우고 있었다.
'철우!' 
김씨는 조금 전 2층에서 손을 흔들던 철우 생각에 심장이 떨렸다.
"철우야!! 철우야!!!" 
김씨는 이제껏 내본 적 없는 큰 소리로 애타게 철우를 불렀다. 불길이 1층 현관을 덮치고 2층으로 가고 있었다.
김씨의 귀에 철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삼촌... 살려줘, 삼촌......' 
분명 김씨의 귀에는 살려달라는 철우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김씨는 온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다리가 몸을 가누지 못 할 정도로 흔들렸다.
"철우야... 철우야......." 
그 어린 것이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외로울까.
김씨는 오른 손으로 흔들리는 다리를 꽉 잡았다.
조금씩 흔들림이 멈췄다. 
김씨는 크게 호흡하고는 건물을 향해 냅다 달렸다. 
갑자기 뛰어든 김씨를 사람들이 잡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탄식했다.

건물 안은 온통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김씨는 콜록거리면서도 계속 철우를 불렀다. 3층에서 겨우 철우를 발견했을 때, 철우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채 크게 울고 있었다. 
"철우야. 이제 괜찮아. 삼촌이 우리 철우 데리러 왔어."
철우는 김씨에게 안기면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김씨는 옷을 벗어 철우를 감싸고 불길을 피해 위로 올라갔다. 5층이 되자 다리에도 무리가 오고 호흡도 가빠져서 더 이상 도망갈 수가 없었다. 밖에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 불길이 5층까지 번졌다. 
김씨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철우를 데리고 겨우 창가로 갔다.
김씨는 평소처럼 무릎을 꿇어 철우와 눈을 맞추고는 눈물과 그을음으로 얼룩져 있는 철우의 얼굴을 스윽 닦아 주었다. 철우가 훌쩍거리며 말했다.
"삼촌, 나 무서워. 나 죽는 거야?"
"아니야. 철우야, 넌 여기서 죽지 않아."
"정말?" 철우는 그제야 울음을 멈췄다.
"그럼, 우리 철우는 똑똑하고 강하니까, 세상에 나가서 크게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거야."
"그게 뭐야? 천사가 되는 거야?"
김씨는 눈꺼풀이 눈을 반쯤 덮은 축 처진 눈으로 웃어주었다. 주름진 이마에는 온통 검정이 묻어 있었다. 그사이 불은 바로 등 뒤까지 번져 있었다.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철우야, 삼촌 꽉 잡아."
김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철우를 껴앉은 채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그 찰라 같은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동안 살면서 행복했던 많은 일들이 김씨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린 아이를 안고 떨어진 김씨는 이미 손 쓸 도리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아주 평온했다. 
철우는 너무 놀랐는지 울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달려와 아이를 꽉 끌어 안고 있는 김씨에게서 겨우 철우를 떼어냈다. 사람들은 어린 철우가 무사한지 살펴보다가 큰 부상이 없다는 걸 알고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그 소란한 와중에도 철우는 부은 눈을 깜빡이며 김씨를 쳐다봤다. 
사람들 사이에서 김씨가 웃으며 크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까 2층에서 본 그 모습이었다. 철우가 조그맣게 손을 흔들어 답하자 김씨의 몸에서 밝은 빛이 새어나오더니 깃털 같은 날개가 자라났다. 
'아... 천사다.'
날개가 김씨보다 커지더니, 김씨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철우야... 주머니를 봐.' 
김씨는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손을 흔들며 빛과 함께 하늘로 사라졌다.   
김씨가 걸쳐 준 옷의 주머니에 손을 넣자 둥그런 무언가가 철우의 손에 잡혔다. 조그만 사탕이었다.
철우는 사탕을 꼭 쥐었다. 
'천사 삼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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