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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지구의 맛
게시물ID : readers_325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나다람.
추천 : 3
조회수 : 24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10/31 12:47:04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부호이자 세계적인 광산 채굴 기업 루티카를 소유하고 있는 로만 폴로츠키는 사람들이 한번쯤 상상하지만 엄청난 돈이 들어서 포기했던 프로젝트를 시도하고자 했다. 바로 지구의 내부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로만의 목표는 단순했다. 지구의 구조는 지각-맨틀-외핵-내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 외핵과 내핵을 합친것의 두께는 약 3,500km이고 맨틀은 약 2,900km다. 제일 바깥 표면에 위치한 지각은 고작 15km 남짓으로 지구 전체에서 보면 사과 껍질만큼이나 얇다. 로만이 하고자 하는 것은 가장 얇은 지각을 드릴로 뚫어버려 아무도 닿지 못했던 맨틀에 세계 최초로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게 로만이 최초는 아니었지만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냉전 시기의 소련과 미국도 시도했었다. 당시 소련은 24년이나 쉬지 않고 땅을 파들어가서 12,345m까지 파는데 성공했지만 장비 문제와 기술의 한계로 더 깊이 들어가진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도 9년이나 시도했지만 결국 자금이 부족해 포기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지구의 내부를 궁금해하긴 했지만 엄청난 기술과 돈이 필요해서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로만은 자신감이 넘쳤다. 루티카의 시추 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만큼 뛰어났고 자금도 풍부했다. 이제 남은것은 명예 뿐이었다. 로만은 세계 최초로 맨틀에 닿아 역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길 원했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간접적으로밖에 조사할 수 없던 맨틀을 지구 내부 구조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환호했지만 기업의 투자자들과 환경론자들은 좋게 바라보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수익성이 거의 없을것을 우려했다. 시추 프로젝트는 몇년에 걸쳐 수백억원의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시추 장소로 고른 사할린 섬은 엄밀한 조사 결과 현재 기술 수준으로 6개월 안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만 광물이나 석유같은 경제적 가치가 전혀 없는, 그저 파기 파기 쉬운 쓸모없는 땅이었다. 기업의 홍보 효과는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돈을 쓸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환경론자들은 심각한 환경 파괴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맨틀은 수십억년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깨끗한 곳이다. 그러나 인간이 함부로 뚫고 들어가면 구멍을 통해 오염될 가능성이 높고 맨틀의 대류에 영향을 끼쳐 심각한 지각 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로만은 모든 반대를 가뿐하게 물리쳤다. 대부분의 자금은 자기 재산으로 충당할 것이며 힘든 도전을 통해 누구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얻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시추 도중 심각한 환경 오염이 예상될 경우에는 즉시 프로젝트를 중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렇게 맨틀을 향한 시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목표는 맨틀이 나오는 지하 15,000m다. 2개월 동안 플랜트 설치와 장비 조달이 이루어졌고 50m가 넘는 거대한 장비가 몇 번의 시험 조작 끝에 가동하기 시작했다.


시추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모든것이 순조롭게 진행돼서 한 달 만에 10,000m를 뚫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12,000m지점부터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깊이 들어갈수록 땅 속의 온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파르게 올랐다. 200도에 달하는 지열 때문에 몇 미터 파지도 못하고 과열된 기계를 식히는 과정이 반복되며 계속 지체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뚫고 있는 암석이 급격히 단단해지면서 뚫는데 더 오래 걸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원인을 알기 위한 정밀 조사 결과 드릴 근처에 뜨거운 마그마가 흐르는 것이 밝혀졌다. 이대로 계속 뚫는다면 몇 개월은 커녕 몇 년이 걸릴지도 알 수 없었고 최악의 상황에는 바로 밑에서 마그마가 나와 드릴이 빠져버릴수도 있었다.


모두가 프로젝트의 중단을 요청했다. 성공 확률이 너무 낮았다. 과학의 발전과 명예도 좋았지만 그걸 위해 도박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만은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프로젝트부터 자기의 욕심으로 무리하게 시작된건데 여기서 중단된다면 과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로만은 자기가 파산해도 상관없으니 계속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맞춰서 특수 개발한 드릴을 투입하고, 계속해서 변하는 암석 때문에 고장나고, 어디선가 새어나온 천연가스가 폭발해 드릴이 끼어버릴뻔 하고, 지하로 들어갈수록 온도와 압력은 계속 상승하고… 모든게 힘들었다. 마치 지구가 이 이상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만의 의지는 깎여만 갔고 돈도 계속해서 떨어져갔다. 그러나 마침내 1년의 시간 끝에 드릴이 15,023m 지점을 뚫으면서 세계 최초로 맨틀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시끄럽게 돌아가던 드릴이 멈췄다. 로만과 기업 로티카의 임원들, 직원들, 초대한 중요 손님들, 과학자들, 기자들, 구경꾼 등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역사적인 순간을 두눈으로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거대한 장비가 조용히 웅웅거리며 크레인을 끌어올렸다. 채굴기가 15,023m 밑 지하에서 지상까지 맨틀의 조각을 작은 상자에 넘어 끌어올리고 있었다. 기술자들은 기기가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여태까지 지층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현상들을 많이 목격해서 맨틀도 놀라운 물질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멋진 양복에 흰 장갑을 낀 로만은 가장 먼저 보고 만지기 위해 맨 앞에 섰다. 로만도 그동안의 노력에 보답하는 특별한 선물이 도착하길 기도했다. 모두가 침을 삼켰다. 기자들은 최고의 장면을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리기 위해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철컥.


영원히 돌아갈 것처럼 보였던 크레인이 드디어 멈췄다. 크레인의 끝에 작고 투박한 쇠 상자가 매달려 있었다. 로만은 준비된 테이블로 다가가 손바닥을 매만졌다. 기술자들이 상자를 분리하고 기름떼와 먼지를 닦아내고 조심스럽게 로만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로만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고기가 있었다.


고기?


누가 봐도 틀림없는 고기였다. 적어도 모두가 예상했던 딱딱한 돌맹이는 아니었다. 선홍색 단백질에, 하얀 지방질 얼룩이 있고, 근섬유가 선명하게 보이는 쫄깃한 고기 덩어리. 로만은 당황해서 한동안 가만히 노려보다가 장갑을 벗고 맨 손가락으로 눌러보았다. 그 광경을 수십대의 카메라가 손가락이 고기를 찔러서 움푹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나오는걸 클로즈업으로 촬영했다. 로만은 믿기지 않는지 계속해서 누르다가 양 손으로 들고 문질거렸다. 아무리 만져도 딱딱한 돌이 아니라 따뜻하고 말랑한 고기였다.


“고기네요.”

로만의 소감이었다.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지구의 지각만 해도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맨틀이 고기라는게 말이 되나? 이게 맨틀일리가 없다. 맨틀 속에 사는 생명체이거나, 실수로 시추 구멍에 빠진 동물의 고기일 것이다. 로만은 즉시 샘플의 성분 조사를 의뢰하는한편, 계속해서 다음 샘플의 채취를 지시했다. 성분 분석 장비도 사전에 준비해왔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결과는 샘플이 살아있는 생물의 고기와 아주 흡사하다고 말했다. 다음 샘플들도 이어서 올라왔다. 두 번째 샘플 : 고기, 세 번째 샘플 : 고기, 네 번째 샘플 : 고기…...


사람들은 이 황당한 결과를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래,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각과 맨틀 사이에 고기가 있나보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어쨌든 사실이 이런걸, 이론을 사실에 맞춰야지 사실을 이론에 맞출 수는 없는 거니까. 사람들은 토론을 하기 시작했고 채굴기는 계속해서 고기를 퍼올렸다.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드릴은 1,014m를 더 뚫어서 16,037m에 도달했다. 외부 측정 결과는 드릴이 맨틀을 뚫고 있음을 보여줬다. 땅 위로 올라오는건 고기 뿐이었지만. 모든 사람은 맨틀이 고기로 이루어져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가지고 수많은 토론을 통해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가장 그럴듯한 이론을 만들어냈다. “지구는 살아있는 거대한 동물이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지구 중심에는 심장 역할을 하는 핵이 두근거리며 뛰고 있고 그 주위를 뼈와 근육 조직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가장 바깥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각은 가죽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학자들은 모든 궁금증을 정리해서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질문: 그동안 지구 내부의 측정 결과는 암석이었는데 측정이 틀린건가?


답변: 그렇지 않다. 측정은 지진파의 속도 변화를 통해 얻은 밀도를 통해 구성 물질을 추측한 것이었다. 설마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을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샘플에 다시 맨틀과 비슷한 온도와 압력을 가하자 암석과 비슷한 성질이 나타나는것을 확인했다.


질문: 단백질은 40도만 넘어도 변성되어 익기 시작한다. 채취한 맨틀의 온도는 300도가 넘는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째서 익어버리지 않나?


답변: 채취한곳의 압력은 50만 기압이 넘는다. 맨틀의 조직 구조는 놀랍게도 그 기압에 구조가 압축되면서 높은 온도에서도 변성되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질문: 지구가 생물이라면 지구는 뭘 먹어서 에너지를 얻고 있나?


답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과학자들의 추측으로는 거의 가사 상태로 잠들어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것 같다.


질문: 기존의 과학이 틀렸다는거 아닌가?


답변: 지금까지의 측정이 간접적이라 검증할 수 없었던 것 뿐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틀린 것이지 그동안 수집한 데이터는 진실이다.


얼마나 답변을 해도 논란이 쉽게 잦아들지는 않았다. 이런 이론을 내놓은 학자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였으니. 이런 논란은 지질학 쪽에서만 나타난게 아니었다. 천문학과 생물학 등 수많은 학문에도 영향을 끼쳤다. 누군가는 지구가 거대한 난자이며 운석의 형태인 정자를 만나 수정해 착상할 자리를 찾아 우주를 떠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누군가는 잠들어있는 지구가 깨어나는 날이 인류 최후의 날이라고 주장했다. 또 누군가는 지구 생물의 기원은 지구 내부이며 생물이 죽으면 영혼은 지구 내부로 들어갔다가다시 환생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가설들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상력 풍부한 이론들이 등장하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구가 고기라면 먹을 수 있나요?”


충분히 나올만한 질문이었다.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이라면 외계인을 닮은 문어부터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곤충까지 다 먹어보는게 인간인데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운 맨틀의 외형은 호기심을 당기기에 충분했다.


가장 먼저 맨틀을 만져본 로만도 궁금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과학자들은 위생과 독성, 인체 영향, 영양성분 등 수많은 검사를 통해 맨틀이 먹어도 안전한 고기임을 검증해냈고 상온의 대기압에서는 평범한 고기처럼 불로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른 고기와 똑같이 요리해도 된다는 말이었다. 로만의 전용 요리사가 세계 최초로 맨틀을 조리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고 요리사는 이 처음 보는 식재료를 6가지 종류의 요리로 만들어냈다.


로만이 시식을 시작했다. 맛은 놀라웠다. 익히지 않은 날고기는 육회처럼 부드러웠다. 얇게 썰어 철판에 굽자 고소하고 살살 녹았다. 숙성시켜 각종 소스와 함께 익히자 깊은 풍미가 우러나왔다. 볶아도, 쪄도, 구워도, 어떻게 요리해도 잘 어울렸다. 놀라운 것은 요리하는 방식마다, 불의 세기나 압력, 조리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나타나는데 어떤 맛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맛있었다. 마치 꿈 속에서나 먹어볼 수 있을것 같은, 극상의 맛이 뿜어져 나왔다. 고기를 먹어본 다른 사람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모두에게 알려야 해요!”


맨틀 고기는 곧바로 사업화가 진행되었고 잘 포장되어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모두가 맨틀 고기를 사랑했다. 항생제, 방부제 등 화학 첨가물이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자연의 고기. 말 그대로 자연 그 자체의 맛이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팔려나가서 로만은 그동안 투자했던 돈을 순식간에 회수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맨틀 고기 판매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지구의 자식인 인간으로서 어머니 지구의 살을 먹는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행위이고, 맨틀을 너무 많이 채굴해서 고갈되거나 내부가 오염될 경우 범지구적으로 끔찍한 재앙이 나타날수도 있으며, 고기는 지상의 것들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맨틀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성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도 안돼는 소리.”


고기 찬성자들은 콧방귀를 꼈다.

물론 어머니 지구의 살을 뜯는다는데 죄책감이 드는건 인정했다. 하지만 사람은 이미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죽여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석탄이나 석유도 캐왔는데 고기라고 못 캘 이유는 뭔가? 오히려 맨틀을 먹는 만큼 동물을 적게 죽일 테니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맨틀이 고갈된다는것도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사람이 매일 물과 고기를 먹어도 생태계가 순환되며 재생되는 것처럼 맨틀도 느리지만 천천히 재생된다. 그리고 지구는 너무 크고 인간은 너무 작기 때문에 전세계의 모든 사람이 매일 먹어도 모기가 사람 피를 빠는 양보다 적었다. 그리고 맨틀이 오염된다고? 300도와 50만 기압이 넘는 맨틀의 환경에서는 지상의 세균이 번식하는게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너무 맛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맛이었다. 어쨌든 맨틀 고기는 계속해서 팔려나갔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완전히 맨틀 고기에 익숙해졌다. 목축업이 줄어들면서 탄소 배출이 줄어들었다. 가격도 저렴한 맨틀 고기는 캔 형태로 가공되어 제 3 세계에도 보급되었다. 다른 나라와 기업들도 고기를 얻기 위해 지구에 빨대를 꽂기 시작하면서 고기는 세상에 넘쳐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사냥-목축을 이은 3차 고기 혁명이라고 불렀다. 세상에서 채소를 굶어도 고기를 굶는 곳은 없게 되었다. 모든게 좋게 흘러가는 듯 싶었다.


어느날 서태평양 적도부근 섬에 지어진 한 채굴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분명 금방 채굴한 신선한 고기인데 몇몇의 고기가 검게 썩어있었다. 처음에는 채굴 이후 가공 과정에서 오염된 것이라고 판단해 썩은 고기만 폐기하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썩은 고기의 비율이 높아져가고 다른 채굴장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결과는 금방 밝혀졌다. 맨틀 내부에서 신종 박테리아가 번식하면서 고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오염 범위는 지금도 빠르게 넓게 퍼져가고 있었다.


“아니 지구 내부 환경에서는 세균이 생존할 수 없다면서요?”


지상의 세균은 그랬다. 하지만 이 박테리아는 맨틀 고기의 단백질을 이용해 특이하게 진화해냈고 하루에도 수십차례 오르락 내리락하는 채굴기를 통해 맨틀 내부로 들어가 번식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이대로 놔두면 지구 전체가 썩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빨리 치료해야지.”


사람들은 서둘러 치료하라고 성화를 냈지만 치료는 사실상 불가능이었다. 오염 범위를 파악했을때는 이미 범위는 몇백km, 지하 50km까지 퍼져 있었는데 깊이가 고작 15km인 구멍으로 뭘 한단 말인가? 항생제를 투입하려 해도 나라 한두개를 물바다로 만들 만큼의 양이 필요한데 이만한 양을 언제 어떻게 만든단 말인가?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지구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누군가가 핵폭탄을 터트려 방사능으로 박테리아를 전멸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줄 알고!”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면 뭐라도 해봐야 하는거 아니냐!”


그렇게 싸우는 동안에도 오염 범위는 넓어져만 갔고 인류는 결국 더 늦기 전에 핵무기를 투입하는걸 승인했다.


그리고 핵무기를 준비하는 도중 어느날,


우웅-


이 날 지상의 모든 생물은 낮고 웅장하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지구의 목소리였다.

동시에 지구는 몸을 살짝 움추렸다. 지상의 모든 땅과 바다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크기로 진동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바다가 갈라지며 잠시 바닥을 드러냈다.모든 화산이 불을 뿜었다. 지구는 처음 커다란 진동 이후로 몇 번 더 진동하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잠들어있던 지구가 잠시 깨어나 잠꼬대를 한 것이었다.


지구가 다시 조용해졌을 때 지상은 종말의 날 같은 풍경이었다. 지도가 바뀔 정도로 지형이 뒤집히면서 인류의 모든 문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마그마가 강처럼 흘렀다. 하늘은 화산재로 시커매지고 바다도 흙탕물이 되었다.


이 와중에 살아남은 몇몇의 사람들이 겨우 고개를 들었다. 모든게 끝난건 아니었다. 적지만 햇빛이 드는 곳도 있었고 나무와 동식물들도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가지 사실은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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