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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별이 시든다
게시물ID : readers_325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육체없는사람
추천 : 2
조회수 : 25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11/08 0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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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비와 눈이 내리고

단풍과 꽃잎이 닿고

온 짐승이 할짝대도

물결은 한결같았다


얼지 않고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발원해

속 깊은 연못에게는

모든 게 똑같이 밉지도 고우지도 않았느니라


연못은, 새벽녘 물가에 유난히 많은 별 시들던 어떤 하룻밤을 잊지 못하여

그 후 모든 게 밉지도 고우지도 않으니

밤이면 아직도 회상이 일렁인다네


당시엔 아름다울 게 풍족하여서

낱낱이 존귀한 줄 몰랐을 때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 은은한 솔향과

해말간 봄볕 쬐며 지저귀는 새들과

가교 놓는 만물의 색 무지개와

계절마다 옷 바꿔 피는 꽃씨, 이슬 긷는 풀벌레,

그런 열거한 것들이 어련히 찾아드니

삼백 리 안에서 가장 운치 있는 못이라 할 만 하고

덧없이도 꿈이라 할 만치 복에 겨운 시절이었다네


참 욕심 많았더라

그러게 그쯤이면 족하고 심미안도 거둘 걸

세상 넓다고 더 강렬한 걸 원한 탓에

연못은 그 투명한 망막으로 밤새 내내 찾다가 기어코 엿보고야 만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돼버렸기에

도저히 표현치 못할 감당의

영롱한 빛을...


허접한 뭇별과는 다른 자극이어서

이번 생애 다신 안 올 별똥별인 걸 알면서도

연못은 그날 이후 땅거미가 잠들면 더욱 찰랑거리게 되었다네


혼자 빌어본 사랑 외엔 모조리 밉지도 고우지도 않느니라

이젠 무엇도 성에 찰 만치 설렐 수 없고

무엇도 그 단 한 번의 빛에 관한 애증만치 미울 수가 없다


밤이 또 떠밀려 오자 연못은

얼지 않고 마르지 않는 눈물로 애타게도

기억과 닮은 별 비추려 발악이다


애벌레부터 번데기까지

연못을 지켜봐 온 나비 한 마리가

수면에 닿을락 말락 날아든다


" 별은 아니지만, 내가 왔어 "

못은 단호하다.

" 안 된단다. 이 물에 젖지 마라 "

못은 속으로 생각한다.

( 넌 내가 사랑하면 죽게 된다 )

나비는 물길을 읽는다.

" 죽을 만큼인데도? "

못은 심호흡하고, 완벽히 잔잔해진다.

" 나비여, 너는 물에 비친 너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거란다

이렇게 고인 내 눈물처럼 동정심과 동질감뿐인 착각 말이다 "


언젠가 내게로 날아든 나비여

세상에서 넌 아름답지만

나는 세상에 없는 걸 사랑했단다

그러니 안된단다

나는 평생 어리석게 살고 싶단다

그것이 내 첫사랑이다

무슨 수로도 손 쓸 수 없는 미련함이지만

난 그것마저 추억으로 간직할 테고

넌 이 눈물과 부둥킬 수 없다


새벽녘 물가에 유난히 많은 별 시들던 날

그때처럼 아직도 한 오라기 빛만이 애증의 대상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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