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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연재] 보고서란... 늘 꼬여.
게시물ID : readers_325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밤의작가들
추천 : 0
조회수 : 20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11/08 21: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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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리, 무슨 보고서가 이따위야!!

두더지 과장의 목소리가 사무실 전체로 울려 퍼졌다. 여기저기서 무슨 일인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고개만 삐죽 내밀었다가 내려갔다. 김 대기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양손을 허리춤 앞에 곱게 모은 자세로 과장 앞에 서 있었다. 최대한 자신을 보호하려는 모습 같았다. 배 대리와 나는 그런 김 대리의 모습을 자주 봤던 터라 그다지 신경 쓰이진 않았다.


-이거 잘 될까?

-어디 보자… 그거 힘들지 않을까. 난 깨진다에 나의 전 재산 2만 원 건다.

김 대리의 표정이 일자로 쭉 찢어졌다. 그러곤 나를 봤다.

-음…. 난 중간 정도 그래서 만원만.

배 대리와 나는 김 대리의 보고서를 내린 나름의 평가였다. 결론은 깨진다 인데 강도의 문제였다. 

-너무한 거 아냐!! 이것들이, 내꺼가 어때서!!

김 대리는 단단히 삐쳤는지 구시렁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이상한가…’ 김 대리는 자신의 보고서를 다시 훑어봤다. 무엇이 문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잘한 거 같은데, 괜히 물어봐서는, 어디가 깨질만한 게 있다는 거야?’ 모니터엔 2017 사업실패에 대한 극복방안이라고 적힌 PPT 화면이 떠 있었다. 한 장씩 다시 점검하면서도 김 대리는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모르겠다.’ 김 대리는 인쇄를 실행하기 전에 뜨는 알림창에서 다시 고민했다. ‘에이, 몰라….’ 확인을 눌렀다.


-이게 말이 되냐고!! 극복방안이면 대안이 나와야 할 거 아니야, 근데 이게 무슨 대안이라고…. 이건 대안도 없이 그냥 다시 하자는 말뿐이잖아. 이게 무슨 보고서라고 들이미냐! 들이밀기를. 

두더지는 친절하게 설명까지 붙여줬다. 그리고 명확한 결론, 명확한 문제점 지적, 그리고…

-이렇게 만들 거면 광고회사를 가던가!

명확한 기회 제시.

배 대리와 나는 웃음이 났다. 살짝 걱정하던 부분이 정확히 콕 찍었다. 김 대리의 보고서는 내용은 별로 없는데 페이지는 엄청났다. 한 페이지, 페이지에 화려한 색채는 물론이요. 여러 가지 이미지로 가득했다. 그래프나, 전망치에 대한 자료라면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필요 없는 곳에까지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그냥 멋지게 보이려고 만든 페이지, 내실이 없는 겉멋만 잔뜩 있는 그런 보고서다. 나는 만원을 꺼내서 배 대리에게 건네주었다.

-저 자식은 언제 제대로 만드냐, 만날 같은 거로 깨지면서…

-억울한 건 없지. 알잖아. 멋지게! 보고서도 그런 거지 뭐.

-인정.

두더지의 잔소리가 줄어들었다. 풀이 죽어서 아래로 목이 늘어져 돌아오는 김 대리가 안쓰러워 보였다.

-힘내, 다음에도 잘 부탁하고.

배 대리는 김 대리의 어깨를 툭 쳤다. 김 대리는 성가시다는 듯 어깨를 닦아냈다.

-배 대리, 전망보고서!

이번엔 배 대리가 풀이 죽었다.

-지나 잘하지.

김 대리의 회심의 한방이었다.

-둘 다 안 잘리는 게 용하다.

나의 그 말에 배 대리와 김 대리가 동시에 나를 노려보았다.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마시자!!

셋은 삼겹살과 껍데기가 익어가는 드럼통 테이블에 둘러서서는 서로 잔을 올렸다. 몇 번이나 잔이 돌았는지 잊어먹을 때쯤 오전의 일이 생각이 났는지 김 대리가 한을 풀어냈다.

-야! 잘 만들지 않았냐? 멋지잖아. 어디 내놓아도, 안 꿇려. 누구나 와! 할만한 기획안 아니냐고, 안 그래. 배 대리.

-그럼, 그럼 맞지.

배 대리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김 대리 꺼 멋지지, 내껀 어떻고,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데, 숫자를 소수점 3자리까지 챙겨놓았다고. 이 정도 자세한, 디테일한 자료가 어디 있냐고. 그런데 두더지는 뭘 몰라. 몰라도 한참 몰라. 암.

배 대리의 꼬인 혀가 풀리다 멈추고, 풀리다 멈췄다. 

한잔이 다시 두 잔이 되는 건 쉬운데, 얼음판에 밀어버린 돌멩이가 멈추지 않는 것처럼 끝내기는 어렵다. 그냥 끝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선가 다른 한 병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뭉친 자리에 술잔이 가득 채워졌다. 

-내일 보고서 다시 올려야 하는데 말이지…

배 대리의 말이 꼬였다.

-그러게….

김 대리의 말도 꼬였다.

-가자…

나의 말도 꼬였다. 

그리고 불판 위의 고기들도 꼬였다. 


-야!!! 지 대리! 네가 제일 문제야!!! 네가!!!

오늘도 두더지 과장의 외침은 사무실이 떠나가라 울려댔다.



Written by 마모 / 밤의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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