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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와 아가씨(상)
게시물ID : readers_326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3
조회수 : 2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1/28 19:57:20

몇 일 전 문장연습(사투, 참견, 도도, 생각, 밤)에 썻던 댓글의 뒷 이야기를 써 보았어요!

검투사와 아가씨(상) ←
검투사와 아가씨(중)
검투사와 아가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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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그의 사투에 참견할 수 없다. 이기적인 행동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옛날에 한번 의문스러워 질문을 건넨 적이 있다. '그'는 아니었고, 다른 검투사에게였다.

 "왜 목숨을 걸고 싸우나요? 그냥 행복하게 살면 될텐데요. 정원을 관리하거나 하면서요. 날붙이를 잘 다루잖아요."

 검투사는 이 아가씨가 무슨 세상물정 모르는 소릴 하냐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는 배운 것 없는 싸움꾼이었다. 무언가 어려운 것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된 어휘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의 대답은 결국 단순한 것이 되었다.

 "불가능해서요."

 "왜요?"

 "나는 싸움밖에 못해요. 세상엔 그런 종자들이 있습니다. 이것 말고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이해가 안 돼요."

 "상상이 안 되시는 거겠지요." 검투사는 자신이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덧붙였다. "귀족 아가씨는 못난 사람들의 삶이라는 걸 꿈도 못꿔볼테니."

 아가씨는 어렴풋한 기억으로, 그저 무례한 말에 화가 났던 것만을 기억했다. 자신의 질문이 이기적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먼 훗날이었다. 그 검투사는 이미 결투에서 패해 죽고 난 후였다. 아가씨는 이따금씩 그 기억을 떠올리며 투기장을 찾곤 했다. 그때마다 그녀가 응원하는 투사는 오래 못가 죽었다.

 지금 응원하고 있는 '그'는 특별한 경우에 해당했다. 1년 하고도 3달째. 이정도면 굉장한 기록이었다. 상금을 챙겨 투기장을 떠날 수도 있을텐데 그는 어째선지 그러지 않았다. 아가씨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왜 당신은 목숨을 걸고 싸우나요?'

 하지만 질문할 수 없었다.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이젠 알았으므로. 그리고 어떻게하면 이기적이지 않은 질문이 되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이제 그만두면 좋잖아요' 하며 사지로 걸어나서는 그의 발걸음을 붙잡고 싶다. 관심을 가지던 사이 진심으로 그가 이번에도 승리해 살아남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탓에 어느순간부턴가 그녀는 그의 승리에 가장 많은 돈을 거는 후원자가 되어있었고, 그 후원 자격으로 그가 출전할 때는 가장 가까운 특등석에 앉아야 하게 되었다. 출전하는 이가 바로 곁을 지나쳐가는 자리이고 말을 건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무심한 체를 했다. 관심 없는 척. 걱정 없는 척. 의문스럽지 않은 척. 온갖 도도함을 다 부렸다. 그러다보니 결국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런 무언의 반복이 세번째 쯤 되었을때, 그녀는 결국 스쳐지나가는 '그'의 팔뚝을 손을 뻗어 잡아버렸다. 급한마음 탓이었다. 단단한 팔근육과 두드러진 핏줄에 화들짝 놀라 손을 떼고 말았다. 투구를 쓴 그가 아가씨를 바라본다.

 아가씨는 스스로도 생각지 못한 말을 꺼내었다.

 "밤에 시간 있어요?"

 그의 표정은 투구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답했다.

 검투사의 인생은 단순하다. 모르는 것은 결투의 승패 뿐. 모른다는 것은, 결투의 결과가 그것을 좌우한다는 의미였다. 승리한다면 있을 것이고, 패배한다면 없을 것이다. 죽은 이에게 시간은 없다. 아가씨는 그 말을 이해했다.

 "이긴다면 있겠군요." 아가씨가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난 항상 당신이 이긴다는데 걸어왔으니까. 난 당신에게 걸어서 실패한 적이 없어."

 "이번에도 성공하시길 빌겠습니다."

 "그래요."

 아가씨는 지금부터 사투를 벌이러가는 검투사보다 자신 쪽이 더 열띈 기색이 되어서 덧붙여 말했다. "성공하면 당신의 오늘 남은 시간은 다 제꺼에요."

 최고 후원자가 자기 검투사를 개인적인 여흥을 위해 부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응하는 것도 검투사들 암묵의 룰이었다.

 "좋으실대로 하십시오." 투구 속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좋아요."

 다른 의미는 없고, 대답이 시원스러워서 좋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가씨는 마음이 복잡했기 때문에, '나쁘지 않네요.' '시원스런 대답이군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하는 귀족 영애다운 고상한 대답을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이정도로 돈을 썼으면 괜찮겠지. 당신에게 무엇을 물어도 말이야. 아가씨는 오늘 긴 의문을 끝낼 생각이었다. 이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도 궁금한 것은 여전히 남았다. '사투를 그만두고 행복하게 살면 안 돼?' '대체 왜 안 되는거야?'. 여전히 모른다. 귀족 영애인 아가씨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정원사가 되어라. 안 되면 내 호위라도. 그게 아니라면 서방이든 뭐든 시켜주겠다.

 '불가능해? 안된다고? 난 이해 못하겠어.'

 아가씨는 증명하고 싶다. 그녀가 그들의 사투뿐인 삶을 꿈에서도 상상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이 어떤 형태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 저 근육만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각오해. 오늘밤 이해시켜 줄테니까.'
 
 아가씨의 눈빛이 불탄다. '그'는 투기장의 한가운데로 나서며 처음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우람한 삼두박근이 찌르르 떨려왔다. 등 뒤에서부터의 전에 느껴본적 없던 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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