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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냄새
게시물ID : readers_326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상연
추천 : 1
조회수 : 36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11/28 22: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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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상연아, 내가 재밌는 상상을 했거든..."
 "아, 닥쳐. 좀 떨어져서 말해 입냄새나."
 "아, 미안하다."
 글쓰는데 건우가 옆에 앉아서 입을 여는 순간 나는 짜증부 났다. 시선은 모니터에 단단히 꼽고 미간을 잔뜩 오무렸다. 그 상태로 쓰던 손을 한 참 멈췄다. 너 때문에 집중 안 되니까 알아서가라는 신호다. 
 건우는 눈치도 없이 옆에 앉아서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래도 말을 하고 싶은가 보다. 사람은 말하고 싶은 욕구가 한 번씩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받아 줄 여유가 한 점도 없었다. 설령 오늘 하루내내 즐거웠더라도 건우가 옆에서 말을 하는 순간 짜증이 폭발했다.
 "상연아, 내가 상상한 게 있거든? 옛날에 어렸을 때 그 느낌 있잖아. 요즘 그게 사라졌는데 영화에 그 느낌을 그대로 표현만 할 수 있다면..."
 "알았어, 알았으니까 저리  좀 가라. 아가리에서 입냄새난다. 니 이빨 썩은 거 아니냐? 이빨 좀 딲아라. 니 이빨 썪으면 돈이 얼마나 깨지는데.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그리고 집중해야 하니까 저리가!"
 "아, 알았다. 방해해서 미안하다!"
 건우가 방을 떠나고도 한 참을 손을 얹고 모니터만 바라봤다. 화장실 쪽에서 건우가 이빨을 딲는 소리가 들렸다. 집중이 안 된다. 3분 전에는 글과 상상의 속도가 합이 맞아서 술술 흘렀는데 흐름이 뚝 끊겼다. 키보드에 손을 때고 고개를 뒤로 넘기며 숨을 뱉었다. 
 "하아... 씨-발"
 한 번 끊기면 억지로도 써지지가 않는다.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두 시간 동안 쓴 글을 전부 삭제했다. 그리고는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또 하루를 허비하게 생겼다. 그때 거실 건너편 방에서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으이고! 우웩 퀙! 퀙! 건우야. 당장 이빨딲아!"
 "아니여, 괜찮아. 안 딲아도 돼."
 "거짓말 하마! 얼릉 이빨 딲아! 가! 화장실로 얼릉 가! 내가 못살아! 이빨 썪었네 썪어! 온 이불에 냄새는 다 배어불고!"
 "아까 딲았어!"
 "딲긴 뭘 딲아! 그게 딲은 거냐? 다시 딲아! 도대체 이빨을 어떻게 딲았길래 냄새가나! 이빨 썪은 거 아니야?"
 손은 그대로 굳어 버렸고 나는 한 숨을 푹 내뱉었다.
 "하아... 씨-발!"
 머릿속에 가득찬 상상과 정서는 짜증섞인 오물이 되버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얼마나 좋은 상상을 하든 그것이 표현 될 수 없다면 그저 막연한 상상에 불과했다. 걸래의 물기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듯 집중해도 모자랄 판국에 짜증이 스며들었다. 키보드를 손 끝으로 툭! 치고는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산책하러 나가는데 엄마가 화장실에 서서 건우가 이빨을 제대로 딲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나가면서 한 마디 했다.
 "아니 건우야, 나도 이빨 더럽게 안 딲는 사람인데, 도대체 얼마나 안 딲으면 입에서 가축냄새가 나냐.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딲아라."
 집주변을 쭉 돌고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걷기라는 것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간혹 걷다보면 뛰어난 생각이 찾아오거나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런데 글쓰기 흐름과 함께 찾아오는 날은 흔치가 않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곧 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이번엔 제대로 쓴다!
 "상연아, 위대한 영웅 이건우의 전설에 대해 들어봤냐? 승모근으로 혜성 충돌을 막아낸."
 건우가 문을 열고 불쑥 들어와서 내 옆에 앉았다. 흐름에 마가 끼었다. 위장에서 꿈틀 거리는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 건우가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는데 치약 냄새와 함께 시궁창 냄새가 함께 났다. 악취와 박하 냄새가 콧구멍을 제대로 찌른다. 키보드에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지혼자 입터는 건우를 바라봤다.
 "건우야, 니 이빨 제대로 썪었다. 그리고 제발 좀 입좀 닥쳐라. 듣기 싫다."
 "아니, 상연아 상연아, 들어봐. 미안하다. 그런데 진짜 그 옛날 느낌 있잖아."
 "그만 하라고! 꺼져! 이씨이발놈아! 니가 맨날 하는 똑같은 개소리 듣기 싫어! 내 미처 버리겠다! 맨날 방구석에 처박혀 있지말고 좀 나가서 운동이라든지 해봐!"
 "아, 내가 미안하다..."
 건우가 다시 나가고 나는 멍하게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겨우 한 문장을 쥐어 짰다. 짰는데 그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지가 않았다. 지그시 눈을 감고는 방구석에 쌓아 놓은 이불에 등을 기대로는 스마트 폰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켰다. 얼마 후 느닷없이 방문을 열고 건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연아, 산책 갈까?"
 "안 가."
 "커피 사줄게."
 "필요없어."
 건우가 혼자 산책을 나가고 나는 멍하게 스마트 폰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대충 쌓아놓은 전공 서적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또 언제 공부하냐. 생각하기도 싫다. 눈을 감았다. 
 우리 가족은 새벽잠이 거의 없다. 나 또한 항상 밤에 눈을 감아도 정신은 더 고양된 상태이다. 잠도 안 자고 상상이나 했다. 중학교 때로 돌아가면 뭘 할까. 그때 뭘 어떻게 그자식을 손봐야 했나? 무슨 능력을 지녀야 무적인가. 질리지도 않고 항상 하고 또 했던 소비적인 상상. 
 그러다가 거실에서 건우가 아야, 아이고야. 하는 소리를 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빨이 아픈 것이다. 피부가 좀 찢어져도 놔두면 금방 아물지만, 이빨은 한 번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 버틸 노릇이 아니다. 아플 때 병원에 안 간다니, 정말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 아닌가. 거실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시면서 건우게 말했다.
 "건우야. 내일 바로 병원에 가라."
 "아이고 상연아, 왼쪽 이빨이 애린다. 어떻게 좀 해봐."
 "야임마, 나보고 뭘 어쩌라고? 니가 이빨 관리를 안 해서 그런 거잖아.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근데 상연아, 내가 재미난 상상이 떠올랐거든 내 말좀 들어봐."
 "듣기 싫어! 알아서 해!"
 또 힘겨운 하룻밤이 흐르고 다음 날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서 학교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와 건우가 같이 들어왔다. 엄마가 건우의 등을 두둘기면서 "아이고 우리아들 앞으로 말 많이하소~ 이빨도 잘 딲고." 하면서 친절하게 행동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상연아, 앞으로 치실도 잘 사용해야돼. 사용하는 방법이 따로 있거든? 잘 봐봐"
 "아, 난 괜찮고. 뭐, 치과 갔는가? 건우 이빨 다 썪었데?"
 "괜찮아. 좀 때우면 된대."
 "하여간, 입에서 시궁창 냄새 날 때부터 알아봤어."
 그러다가 엄마가 울쌍이 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뒤늦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건우 입에서 냄새가 이빨이 썪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말을 안 해서 그런데. 말을 많이하면 괜찮아진데." 
 "...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 건우 대리고 좀 나가서 이야기 좀 많이 해라."
 "뭐, 알았어."
 "그리고 이빨 딲는 방법이 따로 있는데 이렇게..."
 "옜날에 배웠어 알아."
 "봐봐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안 다고."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한 숨을 내뱉었다.
 "하아,... 씨-발."
 글도 안 써지고 공부도 안 돼고 항상 그랬듯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방구석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새벽 1시가 되었다. 거실로 나가보니 건우가 벽에 기대어 구부정한 자세로 누워서 스마트 폰을 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실실 쪼개며 웃는다. 한심하게 건우를 처다보며 말했다.
 "니 그러다가 이빨도 모자라서 허리까지 병신된다."
 "아니라, 이게 허리에 좋은거라."
 "또 혼자 뭔 상상하냐."
 "상연아, 초입체 물질공명샷이라고 아냐?"
 "니가 만들어낸 말이잖아."
 "흐흐 어찌 알았냐?"
 "맨날 하는 게 그런 상상이잖아. 그리고 담배 있냐?"
 "없지."
 "내가 커피도 사줄게 한옥마을이나 돌자."
 "아아, 좋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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