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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프롤로그(1)
게시물ID : readers_326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폴딩
추천 : 1
조회수 : 1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1/29 15:27:27
프롤로그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1화를 쓰기는 어렵다.

그래서 써보는 '프롤로그만' 모아보기로 했다.

말하자면 프롤로그의 사연집인 것이다. 그 첫 번째.


-


  “눈을 뜨십시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엄마 목소리다. 그래서 나는 눈을 뜨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늘이 토요일인 건 열 번도 넘게 확인을 했으니까.

  오늘은 토요일이고, 나는 이렇게 누워만 있을 거다. 오늘 내 하루 계획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침대에서 시작해서 침대에서 마무리한다. 이보다 더 깔끔한 계획은 없을 거다.

  “일어나있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따라 엄마는 집요했다. 보통 몇 번 깨우다가 대답이 없으면 어련히 자는 줄 알고 갈 텐데. 거기에다가 당최 오늘은 무슨 컨셉을 잡았는지 말투도 이상하다.

  “셋 셀 때까지 일어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일으키겠습니다.”
  “억지로?”

  내가 무심코 되물었다.

  “팔을 자르겠습니다.”
  “어?”

  엄마?

  아무래도 엄마가 컨셉을 아주 제대로 잡은 모양이다. 나는 적당히 어울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팔을 이불 밖으로 슬쩍 내밀었다. 얼마나 잘 자르는지 보자,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서걱.

  “다음은 반대쪽 팔입니다.”
  “엄마. 기왕 할 거면 효과음 정도는….”

  엄마의 지극 정성에 겨우 이불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깔끔하게 잘린 팔이 있었다.

  “…….”

  나는 그것을 잠깐 바라보았다. 내 옆에 툭하니 떨어져있는 건 팔이었다. 그것도 내 팔. 나는 고개를 돌려 내 팔을 바라보았다. 내 팔이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

  “엄마?”
  “저는 당신의 엄마가 아닙니다.”

  그런 목소리가 들려와서, 나는 인상을 쓰고 앞을 바라보았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안경이 없었다. 나는 사라진 팔을 멍하니 바라보다 물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죠?”
  “저승사자입니다.”

  저승사자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많이 잔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상한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다.

  “그런가요?”

  나는 떨어진 팔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긴, 꿈이 맞는 모양이다. 팔이 잘렸는데도 아프지는 않으니까.

  “꿈이구나.”
  “아닙니다.”

  단호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그것 참, 꿈인 주제에 대차네. 여기가 꿈속인 걸 알았으니 자각몽일 테고, 자각몽이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은 그간 너무 쓰레기같이 살았습니다. 변변찮은 연애도 한번 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네?

  쓰레기요?

  아니, 연애를 못해본 건 맞는데 쓰레기는 좀 심한 거 아니에요, 하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꿈속에서까지 변명을 하는 건 너무 구차하잖아.

  “그래서 염라께서는 당신을 긍휼히 여겨 한 가지 명을 내렸습니다.”
  “아, 거절할게요.”

  내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래도 안경은 보이지 않았다. 기왕 꿈이라면 시력이 좋아졌다 같은 버프 정도는 줘도 좋을 텐데 말이야.

  “거절은 윤허되지 않습니다.”
  “그럼 사절할게요.”
  “…….”

  내 대답에 꿈속의 저승사자가 입을 다물었다. 무슨 판타지 같은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도를 아십니까?’ 같은 목소리로 물어봐야 설득력이라곤 하나도 없다.

  “당신이 맡을 명은 타락한 인간을 갱생시키는 것입니다.”
  “안 할 건데요?”
  “지상계에는 당신과 같이 쓰레기처럼 사는 인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자손을 낳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간들이 늘어나는 터라,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안 한 다니까요.”
  “앞으로 열 해의 유예를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열 명의 인간을 교화하는데 성공할 경우, 당신에게 새 생명을 약조하겠습니다. 허나 실패할 경우, 당신은 지옥의 법률에 따라 재판을….”
  “PPL하시는 거예요?”
  “…받게 될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아무래도 내 말을 무시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기왕 꿈속이기도 하니, 나는 저승사자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열 명의 인간을 갱생시키면 새 삶을 주고, 실패하면 재판을 받는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득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저승사자를 향해 말했다.

  “그 제안 받고 하나 더 추가해주세요. 새로운 삶을 줄 때 꽃미남에다 재벌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어정쩡한 재벌 말고, 아무것도 안 해도 통장에 쌓인 잔고가 늘어나는 정도의 재벌로요.”
  “그건 허락되지 않습니다.”
  “꼬우면… 아시죠?”

  내 물음에 저승사자는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 꿈인데 제깟 게 노려보면 어쩔 거야?

  “좋습니다. 단 이쪽도 조건을 내걸겠습니다.”
  “말이 좀 통하는 분이시네.”
  “실패할 경우 당신은 돼지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정도는… 네?”

  저승사자는 처음과 같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생후 삼 개월 된 돼지로 태어나지만 구제역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폐기처분이 될 것입니다. 다만 그해 구제역은 불과 보름이 지나지 않아서 방역이 되고, 그 구제역으로 폐사된 가축은 백 자리 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백 돼지 안에 든 당신은 고통스럽게 골골거리다가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우와, 저 디테일함은 대체 뭐람.

  “근데요.”
  “말씀하시죠.”
  “이거 제안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살아있는 저한테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해봤자.”
  “당신은 죽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말했다.

  “전 살아있는데요?”
  “죽었습니다.”
  “전….”
  “생전의 당신은 쓰레기같이 살던 도중, 우연한 사고에 휘말려서 쓰레기처럼 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교통사고였다. 차에 치여서 붕 날아가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아하. 누군가를 살려주려다 그만 제가 죽고 말았군요.”
  “무단횡단이었습니다.”
  “…….”

  아하.

  “그럼 전 무단횡단을 하다 죽어서 여기에 온 건가요?”
  “그렇습니다.”

  저승사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납득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사고로 죽고 저승사자를 만나게 되다니. 이게 꿈이 아니라니.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죠?”

  나는 저승사자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저승사자는 흐릿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쓰레기를 찾아야 합니다.”

  하고 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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