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늘의 프롤로그(4)
게시물ID : readers_326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폴딩
추천 : 1
조회수 : 1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2/01 18:28:10
제목은 고기방패.


-


  “으악!”

  하성이 비명을 질렀다. 이미 몸에는 여섯 개의 칼이 꽂혀있었다. 체력 게이지가 빠른 속도로 줄어나갔다.

  “뭐야, 좆밥이누.”

  상대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하성은 치욕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상대의 머리 위에 [육성검]이라는 칭호가 떠있는 게 보였다. 크윽, 하고 하성이 신음을 삼켰다.

  상대가 좋지 않았다.

  사냥 후 전리품을 정산하기 위해 들른 마을에서, 웬 남자 하나가 여자를 추행하고 있었다. 게임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려 했건만 상대가 너무 지나쳤다. 엉덩이에 손을 대는 걸 보고 달려들었다가 이 꼴이 났다.

  “이세계인이면 다 될 거 같지?”

  상대는 그렇게 이죽거리면서 하성에게 꽂힌 검을 지독하게 뽑아들었다. 체력 게이지가 큰 폭으로 깎여나갔다.

  “크윽.”
  “꼭 이런 멍청이들이 있더라고. 원래 병신이면 여기서도 똑같이 병신이야.”

  조금 전에 뽑혔던 검이 다시 하성의 몸에 박혔다. 겨우 비명을 참았지만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보아하니 마땅한 능력도 못 받았지?”

  하성은 숨을 들이켰다. 상대의 말 그대로였다. 모든 이세계인은 이 세계에 도착할 때 단 한 줄의 능력을 부여받는다. 하성이 처음 받은 문구는

  ‘power overwhelming’이라는 것이었다.

  몇 세기 전, 한국의 국민게임으로 평가받던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치트키 문구였다. 내용은 문자 그대로 무적상태가 되는 것. 처음에는 사기라고 좋아했지만….

  “어쭈? 안 죽네?”
  “크윽.”

  직접 겪어보니 전혀 사기가 아니었다. 요지는 이 세계의 시스템에 있었다.

  무적이라고 쓰인 능력 문구와 달리, 단순하게 무적인 건 아니다. 체력 게이지는 맞으면 깎인다. 무적이 되는 건 현재 체력이 남은 체력의 정확히 1%가 되었을 때다.

  즉, 정확히는 무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체력 게이지가 1%에서 고정되는 것뿐이다.

  “뭐야. 이 새끼.”

  상대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성의 몸에 칼을 꽂았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검을 높게 치켜들어서, 하성의 목을 그대로 베어냈다. 물론 목은 잘리지 않았다. 체력이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하, 혹시 좀비냐?”

  상대가 말했다. 하성은 상대를 노려보기만 할뿐, 대답하지는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해서는 안 된다. 기껏 얻은 능력이 이런 쓸모없는 능력이라는 게 밝혀져선 앞으로의 일에 차질이 생긴다.

  [power overwhelming]
  [설명: 체력이 1%에서 고정됩니다. 이 능력은 어떤 마법이나 상태 이상으로도 해제되지 않습니다.]
  [랭크: S]

  시스템에는 S랭크의 능력이라고 되어 있지만, 하성이 느끼기에는 영 글쎄올시다, 였다.

  통상 체력 게이지는 100%에서 시작해서 0%까지 줄어든다. 0%가 의미하는 것은 사망. 그리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상태는 계속해서 변한다.

  가령 체력이 100%일 때 힘을 100%발휘할 수 있다면, 50%일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은 50%밖에 되지 않는다. 체력이 1%일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은 1%.

  무적이라고는 하나 모든 스탯이 쓰레기인 상태라는 게 된다.

  “하하! 좀비라! 영 병신 같은 능력이네!”
  “크으.”
  “다행이도 죽지는 않겠네. 병신처럼 기어다니긴 하겠지만!”

  상대는 그런 폭언을 뱉어낸 후에도 하성을 마음껏 가지고 놀았다.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 마음대로 스킬 연습을 하고, 연계기를 써보곤 했다.

  덕분에 하성은 공중에 떠다니다가, 떨어질 즈음에는 부유 마법에 걸려 다시 떠오르고, 겨우 바닥에 착지한다 싶으면 강력한 쳐올리기에 의해 떠올랐다.

  “이게 무한 콤보다!”

  그리고 상대는 마치 게임이라도 하는 듯이 즐거워했다. 한참이나 얻어터진 후에 하성은 바닥에 들러붙을 수 있었다.

  “존나 병신 같은 능력이네.”

  상대는 그런 말만 남겨놓고 멀어져갔다. 하성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체력이 1%였기 때문이다. 이 상태라면 제대로 서있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하필이면.’

  이런 쓰레기 같은 능력이라니. 하성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반면에 상대의 능력은 무기 마스터리와 관련된 것인 게 분명했다. [육성검]이라는 칭호는 능력으로 얻은 것이리라.

  “제길….”

  겨우 하나의 능력으로 인해 이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그런데 뒤엎을 수도 없다. 단 한 줄의 문구가 인생을 바꾸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연 재생을 기다려서 겨우 30%의 체력을 만들 때까지, 하성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지독하네요.”

  그 목소리에 하성은 겨우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해를 등지고 선 사람이 있었다. 체력 게이지는 어느새 100%였다.

  ‘100%?’

  그럴 리가. 처음 이쪽 세계로 넘어왔을 때 능력을 시험한다고 체력을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20%까지만 떨어뜨리려던 걸 치명타를 맞는 바람에 1%까지 떨어져서, 자연 재생을 기다린 적이 있다.

  그 때의 경험으로 하성은 알고 있다. 체력 재생량은 어마어마하게 낮다는 것을. 능력의 효과를 전혀 받지 못하니 평범한 수준인 셈이다.

  그런데도 100%라는 건, 누군가 치료를 해줬다는 게 된다.

  “일어날 수 있죠?”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일어서고 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에요.”
  “예?”

  얼빠진 목소리를 낸 하성이 주변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도 아무도 없었다.

  “아, 제 능력 때문에 안 보이겠네요. 잠시만요.”

  상대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윽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를 확인한 내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변태?”
  “네? 꺄아!”

  눈앞에 나타난 여자는 아마도 마법사인 것 같았다. 인비저블(Invisible)이라도 썼다가 해제한 모양인데, 문제는 왜 알몸이냐는 것이다. 몹시 당황스러운 얼굴로 주저앉은 여자가 말했다.

  “봤죠?”
  “뭘요?”
  “제 알몸이요.”
  “당연히 봤죠.”

  정직한 내 대답에 여자가 부르르 떨었다. 여자는 몸을 잔뜩 웅크린 상태에서 말했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빨리 덮어주세요.”

  내참.

  나는 인벤토리를 뒤져 장비 하나를 건넸다. 팔만 뻗어 장비를 받아든 여자가 오만상을 썼다.

  “이게 뭐에요?”
  “거적때긴데요.”
  “거적때기요?”
  “네.”

  안타깝지만 내 인벤토리에서 그나마 쓸 만한 건 거적때기가 전부다. 와이번 가죽을 무두질을 해서 입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물론 내 장비제작 랭크가 F인걸 감안하면 저것도 양반이다.

  “……윽.”

  그러나 알몸으로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여자는 보기 흉하게 생긴 거적때기를 걸쳤다.

  “그래도 알몸보다는 낫죠?”

  내 물음에 여자는 대답을 삼켰다. 몹시 분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 여자가 몇 번인가 심호흡을 했다.

  “아까부터 봤는데,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지 않을래요.”

  그제야 용건을 말한 여자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길드요?”
  “네. 육성검에게 당한 사람들이 만든 길드에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체… 그 무슨 피해자 모임 같은 길드란 말인가. 나는 여자의 정보창을 슬쩍 확인했다.

  [메이든]
  [레벨: 26]

  나머지 정보는 비공개였지만 중요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레벨. 레벨은 어디에서나 절대적 지표다. 26이면 충분히 낮은 수치다. 내 레벨은 34니 나보다도 더 낮다.

  “몇 명이나 있는데요?”
  “두 명이요.”

  여자가 발랄하게 대꾸했다.

  “두 명이요?”
  “네. 당신까지 포함해서요.”
  “네?”
  “아직 저밖에 없거든요. 헤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머리가 아픈 여자인 것 같았다. 길드원이 한 명인 것도 길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였다.

  “아, 그럼 이만.”
  “앗! 잠깐만요! 어딜 가시는 거예요!”

  돌아서려는 내 팔을 여자가 황급히 붙잡았다.

  “이대로 얻어터진 채로 도망갈 거예요? 비겁한 못난이처럼요?”
  “뭐요?”

  저절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얻어터지긴 했지만 비겁한 못난이가 된 적은 없다. 이길 승산이 없는 적을 상대로 맞서는 건 정신건강에 이롭지 못하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한심한 패배자가 되려고요?”

  여자가 나를 자극했다. 속셈이 빤히 보였다. 하지만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뒤에 들려온 여자의 말 때문이었다.

  “저한테 육성검을 죽일 방법이 있어요.”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