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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이것은 비인간적이다. 그리고 위대하다.
게시물ID : readers_328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락서
추천 : 3
조회수 : 392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8/12/27 01: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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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마을 어귀에서 놀던 아이가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은 마을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정말 늑대가 나타난 것일까? 집 문을 급하게 닫는 사람도 있었고, 그저 아이들의 장난이려니 코웃음을 치는 이도 있었다. 마을의 경비를 맡은 장정 몇은 총을 들고 마을 입구로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정말 늑대가 있었다. 그것도 웬만한 곰처럼 커다란 늑대였다. 늑대는 마차를 끌고 있었다. 사람들이 생경한 늑대와 마차의 조합에 어리둥절해 하는 차에 마차 안에서 한 노인이 나왔다. 키가 크고 마른 노인에게는 어쩐지 좌중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놀라지 마시오. 이 늑대는 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스승이고 부모이자 자식이고 은인이자 원수요. 그의 이름은 호모(Homo)라고 하오. 그리고 여기 그를 소개하는 이 노인의 이름은 우르수스(Ursus), 보잘것없는 능력이지만 각지를 떠돌며 필요한 것을 얻고 필요한 것을 내어주는 짐승이올시다.”

  사람이 점점 몰려들었다. 늑대는 좌중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엎드려 무심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 중 하나가 물었다.

  “그렇다면 우르수스여. 그대는 무엇이 필요하여 이곳을 찾아왔습니까?”

  “이 노인이 찾는 것은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으나 어디에서나 찾을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이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것이오. 만일 그것을 갖고 있는 자가 이 마을에 있다면, 내 진귀한 것을 그에게 쥐어주겠소.”

  “당신이 찾는 그것을 무어라 부릅니까?”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실로 많으나 그대들에게 가장 친숙한 것으로 말하자면 나는 ‘위대한 것’을 찾고 있소이다.”

  군중이 수군거렸다.

  “그대들 마을에서 어떤 일에든 특별히 뛰어난 이들을 내 앞에 보이시오. 내 그들의 뛰어남이 위대한 것인지 확인하겠소.”

  첫 번째로 마을의 대장장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자신이 만든 가장 뛰어난 것들을 가져와 우르수스 앞에 내보였다. 대장장이의 솜씨는 진정 훌륭했다. 그의 실력은 아직 수도까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마을이 산적과 들짐승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만든 장비 덕이었다. 우르수스는 대장장이의 실력을 인정했다.

  “내 작은 도시부터 큰 도시까지 많이 돌아다녀 봤으나 이처럼 뛰어난 실력은 드물게 보았소.”

  긴장했던 대장장이는 그와 같은 호평을 듣자 기분이 좋아졌다. 마을 사람들은 축하의 의미로 대장장이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위대하진 않소이다.”

  낮게 깔린 우르수스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멎었다. 기대에 부풀었던 대장장이는 실망하여 자신의 작품들을 들고 뒤로 물러섰다.

  두 번째로 나선 이는 마을의 조각가였다.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은 모두 이 조각가의 솜씨였다. 조각가는 마을에서의 삶에 만족하였지만, 그것에 머물지는 아니하였다. 그는 가끔 큰 도시로 나가 최신 유행의 조각에 대해 공부하고, 직접 그것들을 보고 돌아왔다. 길게는 몇 개월 도시로 나갔다 돌아온 조각가는 돌아온 바로 그 날부터 자신이 본 것을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 두문불출하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조각은 감히 원작자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섣불리 주장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완벽하게 똑같았다. 우르수스는 조각가가 내민 작품을 보고 감탄을 표했다.

  “내 수도를 다녀온 게 불과 반년 전 일이온데 이것은 그때 궁에서 보았던 조각과 한 치도 다름이 없구려. 그 조각은 두말할 것 없이 내 살아생전 보았던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고 분명 위대한 것이었소.”

  “저도 얼마 전 수도를 다녀오면서 보았지요. 그것을 참고하여 지난밤 완성한 것입니다.”

  “이 같은 인재가 이 작은 마을에 있다니 정말 놀랍기 그지없소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곳에 찾아오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다시 한 번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그러나 대장장이의 경우를 의식한 것인지 박수 소리에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우르수스가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위대하진 않소.”

  누구보다 자신 있던 조각가는 우르수스의 말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무언가 항의라도 할 기색이었다. 그러나 우르수스가 내뿜는 위압감과 우르수스 바로 옆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늑대의 차가운 시선에 고개를 떨구고 돌아갔다.

  그 이후로도 몇 명의 마을 기술자가 우르수스 앞에 나왔으나 우르수스의 반응은 변함없었다. 그는 뛰어나다고는 이야기했으나 절대 위대하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마을에서 나올만한 사람이 다 나오자 사람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군중들 사이에 수군거리는 소리 중에는 의심 섞인 이야기도 있었다. 사실은 보물을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라는 둥, 아니면 애초에 보물 따위는 가지고 있지도 않을 거라는 둥, 그저 사기꾼이고 저런 놈은 마녀처럼 화형에 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귀가 좋은 우르수스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들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조용히 자신의 앞으로 나올 사람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절반쯤 줄었을 때 왼쪽 구석에서 회색 천을 뒤집어쓴 사람이 나왔다. 그를 알아본 마을 사람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그 야유에 왜소한 사내의 몸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더러운 놈.”

  “악마!”

  모든 마을주민들이 그 사내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사내는 우르수스 앞으로 걸어 나왔다. 비 오는 밤 동굴처럼 습하고 음침한 기운이 풍겼다. 조용히 엎드려 잇던 호모가 고개를 들어 남자에게 그르렁거렸다. 남자는 품속에 쥐고 있던 것을 우르수스에게 내보였다.

  그건 가면이었다. 남자는 다양한 종류의 가면을 만들었었다. 축제 때면 남자의 가면을 사는 주민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근처를 지나던 외지인이 짐승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일이 있었다. 마을에서는 연고도 없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외지인의 시체를 산속에 그대로 두기로 결정하였다. 사내는 호기심이 생겼다. 죽은 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보름달이 뜨던 밤, 사내는 산에 올랐다. 그 후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내의 집에 다녀온 누군가 그곳에서 끔찍한 것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얼마 안가 급류에 휩쓸려 마을 주민 중 한 명이 사망했을 때 그 사람이 사내의 집에 다녀왔던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덧붙여졌고, 한 번 살이 붙은 괴담은 점점 부풀려져 사내는 마을에서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우르수스는 사내가 건넨 가면을 태연하게 바라보았다. 마을 주민들은 그 가면을 봤다간 저주를 받는다며 자리를 피했다. 우르수스가 사내에게 물었다.

  “이것을 자네가 만든 것인가?”

  “네.”

  “무엇을 보고 만든 것인가?”

  “아니오. 본 것은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자네는 이것을 보고 무엇을 느꼈나?”

  “모르겠습니다. 제 손으로 만들었지만, 볼 때마다 소름이 돋고 무서운 기분이 들고, 또 어떤 때에는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고, 매번 다르게 느껴져서...”

  “내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이처럼 괴이한 것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네. 이런 것은 아무리 싸도 팔리지 않을 것이야. 당장에 버려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나 역시 이것이 일으키는 이 불쾌한 느낌을 무어라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네. 도무지 인간이 만들었다고 상상할 수가 없어.”

  사내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것은 위대하네.”

  얼마 남지 않은 군중들 사이에선 조금의 박수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어떤 수군거림도 없었다. 사위가 조용했다. 

  “들어오게. 잠시 내 집에서 이야기하고 자네가 원하는 것을 주지.”

  노인과 사내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도 조용히 흩어졌다. 그날 늦은 밤까지 마차 안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자정이 다 된 시각, 사내는 조용히 품 안에 무언가를 품고 노인의 마차에서 나왔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각 일어난 마을 주민이 밖에 나왔을 때, 우르수스의 마차는 이미 마을로부터 떠나 있었다.

  시간이 흘러 폭설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누군가 우르수스의 마차를 두드렸다. 문밖에는 눈에 파묻혀 가는 어린아이가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신생아를 품에 안고 있었다. 우르수스는 아이를 마차 안으로 들였다. 아이의 젖은 외투를 벗기고 얼굴을 본 순간 우르수스는 벽 한편에 걸려 있던 가면을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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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서머싯 몸의 '달과6펜스'를 보고 썼던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위대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았던 이야기지요. 

혹시 위 글에 등장하는 우르수스와 호모를 알아보실 분이 계실까요?

부러 해당 책의 분위기와 인물을 따라해보았는데요. 완전히 다른 시대, 문화를 상상하며 쓰려니 어쩐지 낯선 경험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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