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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프롤로그(8)
게시물ID : readers_329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폴딩
추천 : 1
조회수 : 21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12/31 10:01:20
앵간하면 5천자까지는 써보는데, 이건 간만에 진짜 망한 거라서 기념으로.


-



  세상의 모든 일은 예고 없이 일어난다. 그게 큰일이면 더 큰일일수록. 그날도 그랬다. 해가 밝아오는 2019년의 1월에, 의도치 않게 일찍 일어나버린 1일에도 세상은 예고를 하지 않았다.

  - 나 살해 설명서

  내 앞으로 온 한 통의 편지 역시도 그랬다.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단지 그뿐이었을 뿐이다.



-


  “밖이냐?”
  “아니.”
  “해 뜨는 거 보러 안 가냐?”
  “이제 잘 거다.”

  몇 통인가 전화를 돌렸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졸음이 핸드폰 너머까지 날아오는 느낌이라 급히 통화를 끊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바깥은 아직 어두웠다.

  [AM 05:45]

  해가 뜨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걸, 작년에 산 디지털시계가 고지해주고 있었다. 디자인이 예쁘다는 이유로 산 디지털시계는 그 후로 건전지를 한 번도 갈아주지 않았는데도 아직까지 제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사람도 저 시계 같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시계와 다르다. 시계와 달리 불확정성에 기대야 하는 생물이다.

  이를테면 새해 첫날에 일찍 일어나서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것과 같은.

  물론 그건 다들 한 번씩 겪는 성장통과 같은 것이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성장통과 달리 해돋이를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건 아프지 않다는 것 정도. 대신 하루가 피곤하긴 하지만.

  그리고 이미 성장통을 운운할 나이는 아니었다. 이미 이십대 후반이었고, 이미 해돋이는 여러 번 갔었고, 이미 그런 불확실한 것은 믿지 않을 만큼 어른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오늘도 일찍 일어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눈이 일찍 떠졌을 뿐이었다.

  겸사겸사 일어나보기로 했다가 금방 주저앉았다.

  “개 춥네…….”

  전기장판을 먼저 체크했다.

  43도, 확인.

  그 다음은 보일러였다. 보일러는 사망. 끈 기억은 없는데 무언가 잠결에 걷어찬 기억은 있다. 대체 침대에서는 한참이나 먼 보일러 스위치를 걷어찰 건 뭐냐 싶었지만 내가 한 짓이었기에 나무랄 사람이 없었다.

  다시 누웠지만 잠에 들 수는 없었다. 몸이 이미 수면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불에서 한참을 뒹굴다 결국 빠져나오는 쪽을 선택했다.

  냉장고에는 마침 먹을 게 없었다. 새해 기념으로 편의점에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신었던 양말을 다시 신고 슬리퍼를 신으려는데, 무언가 낯익은 봉투 하나가 신발장 위에 놓여있는 게 보였다.

  - 나 살해 설명서

  보내는 곳은 적혀있지 않았다. 어깨를 가볍게 털어낸 다음 봉투를 뜯었다.

  봉투에 든 것은 한 통의 편지였다. 그리고 편지의 첫 문장은 다소 기괴했다.

  - 당신은 누군가를 죽여본 적이 있습니까?

  “뭐야?”

  저절로 그런 목소리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어쩌고 하는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당연히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장난 치고는 정성을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금부터 당신은 한 명의 인간을 죽여야 합니다.
  - 동시에 당신은 그 인간에게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거기까지 읽었을 때 대번에 감이 왔다. 게임 광고였다. 다만 보통은 문자로 광고를 하는 걸 감안하면 상상 이상으로 정성을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사람들 참 많아.”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봉투를 찢었다. 나가는 길에 버릴까 하다가 들고 있으면 손이 시릴 것 같아서 방바닥에 그대로 던졌다.

  그리고 그 순간 바라보고야 말았다. 

  [AM 05:45]

  시계는 예고도 없이 멈춰져 있었다. 그것이 새해 첫 불확정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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