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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듯이 잠들자, 누군가 관을 열었다
게시물ID : readers_338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물위의버들잎
추천 : 2
조회수 : 36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6/14 01: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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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그날 밤은 방안 깊은 모서리가 만든 검음이

단지 빛이 부재한 응달이 아닌,

빛을 은폐하는 이물질적인 검음으로써 한곳에 뭉쳐 있었다

기분 나쁘게 여겨 쳐다볼수록 그 검은 형질은

평면의 그림자라 할 수 없이 털 뭉치 같은 입체감을 자아내고

모르는 사이 조금씩 부풀었으리라

가위질 비슷한 소리가 벽에서 났다

미심쩍지만 잠들려 눈을 감으면 벽에서 또 소리가 나고

잘못 들은 게 아녀서 게슴츠레 눈 뜨면

방금까지 거울 안에 뭔가 움직인 걸 언뜻 봤으나

헛것이라 미루어 넘기고 만,

잠기운에서 완전히 헤어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몸에서 감각이 덜 돌아온 부위 때문에 물에 잠긴 느낌이었다

온기가 안 느껴지는 손길이 이불 덜 덮인 발목을 아래로 잡아끄는 듯한 저림이었다

팔다리에 못 박히는 그림이 뇌리에 스치더니

삽시간에 힘이 풀려 물의 심연에 가라앉는다

사각사각 벽을 긁는 소음과 공기를 무겁게 한 기묘한 수압의 정체는

모서리에서 자라난 그 검음의 경과였던 걸까 하는 그날 밤은

방의 시간이 외부랑 다르다고 착각이 들 만큼 더디게만 흘렀다

소리 질러 봤자, 아무도 들어줄 리 없는 불안감이 옥죄여왔다

검은 이물질이 잠식한 낯선 세계의 시간이 얼마간 흐르자,

저절로 열린 방문 너머로 문 높이에서 바닥까지 끌리는 넝마 같은 무언가 지나갔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문틈으로만 보인 그것은 썩은 생고기 악취 풍기며 뛰어갔다가

이윽고 주방을 헤집는 게 들렸다

쥐의 성대라고밖에 할 수 없는 웃음소리가

마치 녹슨 철창이 겨우 열리듯 길게 울려 퍼지며, 빠르게 가까워졌다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저온이 엄습했다

갈기갈기 휘날린 넝마에서 튀어나온 창백한 손은 식칼을 쥔 채

무릎관절이 없는 거처럼 부자연스럽게 뛰어온다

식은땀이 맺히고 확장된 땀구멍 하나하나를 다지류가 디뎌 오르듯 소름이 척추를 탔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한 적 없는 일이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송장이 든 관을 열고 목덜미부터 두피를 벗겨 얼굴을 뺏었다고

피에 흐르는 희석된 유전자는 무엇이었길래 다른 사람 행세를, 아니, 사람 행세를 하려 한 걸까

누운 내 머리맡에 서 있는 위치에서 갓 물에 젖은 눅눅한 머리카락이 내려와 눈을 찔렀고

눈코입이 제자리에 없는 얼굴이 떠올라 놀라서 깼다

식은땀이 스며든 침구에서 썩은 생고기 악취가 풍겼지만,

악몽의 지독한 뒷맛이었을 뿐 다행히 사실이 아니었다

근데 정신 차리려 마른세수를 하자, 어쩐지 다른 얼굴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곁눈으로 흘겨본 거울엔 고개의 각도가 나의 것이라 할 수 없던 얼굴이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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