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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대화에 대하여』, 대화의 비법보다 소중한 것
게시물ID : readers_339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들s
추천 : 0
조회수 : 4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7/06 14:29:15
"말하니까 좋다"는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먹는 다양한 음식에 영양가가 없다면 "먹으니까 좋다"라는 말이 공허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화에 대하여』, p.29.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말이다. 일상에서 수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내면이 따뜻해지는 대화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다. 카페에서 주문할 때 나누는 대화처럼, 일상의 대화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관심은 배제한 채 서로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때가 많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상대에게 호감을 느껴 친구가 되고 연인으로 거듭났겠지만, 친구 관계에서든 연인 관계에서든,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서로를 알아가려 애써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전히 수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대화의 주제는 나와 너, 우리가 아니라, 이 시간을 함께 소비하게끔 도와주는 일상의 에피소드와 사회 이슈, 맛집 정보와 소소한 팁, 재밌었던 과거의 추억과 재밌을 미래를 위한 계획 등인 경우가 많다. "나 자신이나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말하기가 아니라 대화"라고 할 수 있지만(p.30), 우리는 함께 대화하기보다는 돌아가면서 자신의 말을 쏟아내곤 한다.

저자가 대화의 영양가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을 제시할지 기대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망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글의 초반부부터 저자는 이 책이 대화의 비법을 소개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엥? 잔뜩 기대하게 만들더니 대화의 비법을 다루진 않는다고? 사실 이 자도 그런 비법은 모르는 거 아니야? 한편으로는 실망감과 의구심이 고개를 쳐들지만, 저자의 말을 좀 더 듣다 보니 대화의 비법 따위를 쫓는 것이 오히려 중요한 걸 놓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대화에 관한 지침서에 대화에 관한 이런 저런 조언은 있겠지만, 최고급 대화를 나누는 방법은 나와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려는 바는 '방법'이 아니라 최고급 대화, 다시 말해 좋은 대화란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일 것이다. 대화에 관한 지침서에서는 성공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주로 다루는데, 방법에 물두하기 전에 이 방법을 통해 다다르려는 대화가 어떤 종류의 대화인지, 나아가 어떤 종류의 대화여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추구하는 대화는 무엇일까? 정식화하자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경청하는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서로의 생각을 밝히고 이 생각에 이견을 제기할 수 있는 대화를 바람직하게 여긴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개인의 관점이 달라지고, 이 변화가 세상의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화가 "저마다의 기억과 습관을 지닌 마음과 마음이 조우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또한, 서로 다른 기억과 습관을 지닌 마음들이 만나기에, 사실만을 주고 받는 게 아니라 "사실을 변형하고 개조하고 사실에서 다양한 함의를 끌어내며 새로운 생각의 흐름을 따라" 간다고 본다. "카드놀이에 비유하자면, 대화는 패를 다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새로 만드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p.45).

이처럼 고유한 기억과 습관을 지닌 마음 간의 만남이 긍정적이고 흥미로운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그 누구와도 다른 상대를 존중할 수 있어야만 한다. 진정한 대화가 개인의 창의력을 끌어낼 뿐만 아니라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앨 수 있는 이유도, 건강한 대화가 상대를 향한 존중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발전시킬 용기를 주고, 자신의 어떤 결핍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줄여줄 수 있다. 학술지보다 대화를 선호한 크릭이 DNA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대화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고 보는 저자의 주장이 지나친 비약일까? 고대 중국에서 대화에 관한 책의 이름을 "질투를 치유하는 국물"로 지은 사람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유발할 수 있는 재치 있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진정한 대화는, 한편으로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받고 이해받는 경험인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대화에 주목해보면, 저자가 간과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갑자기 분위기 비판 ^^;) 저자는 대화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낼 용기가 있다면 진정한 대화로 나아갈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본다. 의지만 있으면 없던 용기도 뿅 하고 생길 수 있다는 얘기지만, 저자가 진정한 대화를 역설하게 만드는 상황, 다시 말해 그렇지 못한 대화가 만연한 현실을 감안하면 이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생각한다. 대화에서 존중받은 경험이 적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은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대화를 나눌 때 본인이 자발적으로 솔직히지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은 대단하고 응원할 일이지만, 그럴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 것은 오지랖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더욱 닫게 만드는 좌충수를 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저자인 시어도어 젤딘이 BBC 라디오의 아침 뉴스 후에 20분간 강연한 내용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강연 내용이어서 그런지 잘 읽히고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저자의 열정을 느낄 수 있으며, 저자의 재치 있는 비유와 흥미로운 배경 지식을 접할 수도 있다. 더불어, 진정한 대화가, 다시 말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받는 경험이 업무 능력의 향상, 나아가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게다가 책의 길이도 짧다! 그러나 내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현재 나의 대화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고, 대화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나, 너, 그리고 우리에 관해 이야기 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켜준다는 점이었다. 아, 솔직해지기 위해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면, 일단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겠다는 기특한 마음도 키워주었다. 수많은 관계와 대화 속에서도 공허함이나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읽어볼만 한 책이다.

※ 저자 시어도어 젤딘을 좀 더 알고 싶으시다면 여기로 고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5903334&memberNo=8527280&vType=VERTICAL


다른 리뷰도 있으니 제 블로그에 한 번 놀러오세유~ 
https://blog.naver.com/keep_selfs_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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