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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판타지소설연]민족혼의 블랙홀 제12화 찹쌀떡 하나에 맺힌 각오
게시물ID : readers_339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K.sy.HE
추천 : 1
조회수 : 2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7/27 0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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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민족혼의 블랙홀

 

 

 

12화 찹쌀떡 하나에 맺힌 각오

 

"안국동 이모"

 

어린 소년이 말했다.

 

나보다 어린, 동생뻘인 아이에게서 이모 소리를 듣자 웃음이 절로 헤실헤실 나왔다.

 

손을 뻗어 아이의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쓰윽쓰윽 쓰다듬어 주었다. 머리가 채 자라지 않아 동여맨 도투락댕기 밖으로 고수머리가 여기저기 빠져나왔다. 재면이라고 불린 소년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내 얼굴을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다.

 

 

"자주 놀러 오너라."

 

현부인이 말씀하셨다.

현부인은 그리 말씀하셨지만,

 

내가 그 집에 놀러갈 수 있었던 것은 이태가 채 되지 않았다.

감고당(感古堂)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양까지 오는 노상에서 불어난 일가붙이까지 다 먹고도 남을만한 음식을 바리바리 싸 주고, 소액이나마 엽전 한 움큼도 넣어 주셨다. 5년 전 돌잔치 선물로 주신 수 놓은 주머니에.

 

날 따라온 성남이에게 음식을 지게 하여 돌려보내셨다. 한양은 사람이 많아 위험하다고 부득불 우기며 나를 따라왔다가, 졸지에 지게꾼 노릇을 하게 되었다. 운현궁에 놀러갈 때, 장옷을 쓰고 성남이에게 업혀 갔던 터였다. 옷에 포옥 싸여 업혀서 흔들리느라 보지 못했던 한양 거리 구경을, 돌아오는 길에는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종로 육의전 근처는 한적했다. 점포 하나하나가 큼지막했다. 구색이 번듯한 피륙(옷감)과 담배가, 인삼, 녹용 등 귀한 약재와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고 한산했다. 시전 상인들은 담뱃대를 들고 서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광통교를 건너자 사람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육의전 부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난전(亂廛; 노점상)이 길을 따라 줄지어 펼쳐져 있었다.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 값을 깎으려는 아낙네, 구매가 결정된 물건을 나르는 짐꾼들이 섞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물건 역시 없는 게 없었다. 전국각지에서 올라온 특산품 중에는 제사상에 많이 올라와서 아는 것도 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도 있었다. 한산의 모시, 밀양의 알밤, (육의전 것보다는 작았지만) 개경의 인삼, 제주도 말총, 전주의 생강, 보은의 대추, 충주의 수박 같은 것들을 신기해서 열심히 구경하는 중이었다.

 

아씨, 사람이 많아 다치시거나 잃어버릴까 염려됩니다. 제 손을 잡으십시오.”

지게를 멘 채로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마냥 신나서, 뒤집어 쓴 장옷이 질질 끌려 밟히는 것도 모르고 주위를 열심히 둘러보다가, 마침내 당혜(아동용 꽃신) 아래에 위치한 장옷 끝자락의 이물감을 느꼈다.

이거 벗고 가면 아니 되느냐? 갑갑해!”

장옷을 벗어서 성남이에게 내밀었다.

 

아니 됩니다! 큰일나요!”

성남이가 기겁을 하며 장옷을 다시 내 머리 위에 씌우려 했다.

 

아따, 거 아직 애기씨인데, 굳이 벌써부터 장옷을 씌울 필요가 있소? 좀 더 큰 다음에 쓰고 다녀도 늦지 않을 것 같은디.”

바로 옆에서 난전을 펼쳐 놓았던 상인 한 명이 붙임성 있게 말을 걸었다.

 

거기 잘생긴 총각, 이거 하나 먹고 가시랑께. ~조 꿀맛이야!”

상인이 찹쌀떡 한 개를 성남이에게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성남이가 냉정하게 말했다. 짙고 고운 아미(蛾眉)에 금이 갔다. 내 손을 당겼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성남아, 저거 하나 사도록 하자. 수중에 돈이 얼마간 있지 않느냐.”

홀린 듯이 찹쌀떡을 응시했다. 동시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성남이가 내 손을 잡아 당겨도 굳건하게 뿌리박은 듯, 떠나지 않았다.

 

상술은 성공했다.

찹쌀떡 한 개를 미끼로 하여 나를 낚는 데 성공한 상인은, 무려 20개가 든 함 하나를 팔 수 있었다. 표정이 환해진 상인이 메밀묵 두 모를 얹어 주었다.

아씨가 너무 아리따워서 주는 거닝께, 부엌에 갖다 주시랑께요.”

상인이 메밀묵을 지게 맨 위에 단단히, 그러나 터지지 않게 동여맸다.

손을 마주 잡았다. 성남이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내 손을 잡고 걸었다. 난생 처음 맛본 찹쌀떡 한 개의 단맛에,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제사를 지낼 때도 떡을 찧었지만, 이토록 단맛을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까닭이다. 찹쌀경단을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거의 백설기나 절편을 제사상에 올렸다. 그마저도 떡이 올라오는 것은 추석 즈음뿐이었다. 아마 매해 열 번도 넘는 제사에, 떡을 하기도 어려웠을뿐더러, 팥을 쓰기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행복한 얼굴로 미소 짓는 나를 보며 성남이가 다짐했다.

아씨, 제가 필히 입신양명하여, 이런 찹쌀떡을 끼니때마다 드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난전에 정신이 팔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한참 걸었다. 집에 도착할 무렵, 다소 붉어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아씨, 아까 그 코흘리개 도련님보다는 제가 낫지 않습니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

 

아니, 아닙니다. 제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등에 지게를 지고 다니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등에 무언가를 지게 된다면, 그건 아씨뿐입니다.”

 

성남이가 굳은 각오로 말했다.

 

이튿날부터, 성남이는 무과시험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출처 자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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