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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이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한다인생 에세이 03
게시물ID : readers_340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anda
추천 : 1
조회수 : 33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8/04 06: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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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며칠 동안 핸드폰만 붙잡고 살았다. 아니 사실 몇 달간 계속 그래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면 새벽시간 때를 이용하곤 한다. 한낮에는 울려대는 휴대폰, 쾅쾅거리는 택배아저씨, 하악 으르렁하며 뛰어다니는 똥 고양이들까지... 도통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 그것들 모두를 무시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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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00시가 넘은 시각.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는 시간이 오니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슬쩍 남편에게 눈빛을 보냈다. "왜? 뭐 먹고 싶어?" 나를 너무 잘 아는 이 남자가 좋다. 우리는 대충 옷을 걸쳐 입고서 털레털레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시원하고 환한 곳.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곳. 24시간 언제든지 필요한 것을 살수 있는 곳. 참, 세상은 편리해졌고 나는 이 편리함이 좋다.

옛것이 그리울 때도 있고 지금은 느끼지 못하는 옛 감성과 추억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현재에 편리함들이 좋고 현재에 느끼고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편의점에 들려 주섬주섬 눈에 보이는 대로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요즘 편의점은 정말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어느새 바구니가 한가득이다. 편의점에서 탕진 잼이라니... 언젠가 누군가 내게 말했었다 "난 편의점에 가서 1000원짜리 음료수 하나 살 때도 고민해" 그는 1000원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을 거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1000원 한 장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에 우울해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1000원 한 장도 귀하게 쓰고 있을 거다. 그는 나보다 부유하고 재테크도 잘 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물론 내가 그보다 더 행복하다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사실 모른다. 나는 알지 못한다. 누가 더 행복한지 누가 더 불행한지. 우리는 그저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 푸르스름한 새벽에 늘어난 티셔츠를 걸치고 슬리퍼에 대충 발을 밀어 넣어 터덜터덜 편의점에 들려 몇 만원치 쇼핑을 하는 우리 부부를 그는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사실 난 이것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월급의 기쁨을 편의점에서 사치스럽게 쇼핑하며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새벽에 내 손을 잡고 함께 편의점을 가주는 MH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눅눅한 공기가 감도는 여름 새벽 사람 없는 도로의 설렘마저 행복했다. 누군가 이런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살 거냐고 나를 타박한다 해도 난 사실 충분히 행복했다.

살다 보면 또다시 이 행복감을 잊을지 모른다. 더 많은 것을 바랄지도 모른다. 오늘이 아닌 훗날을 나는 말할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오늘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출처 https://love877912.blog.me/22160489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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