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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판타지]민족혼의블랙홀제21화 똥 묻은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게시물ID : readers_340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K.sy.HE(가입:2017-04-27 방문:60)
추천 : 1
조회수 : 14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8/05 0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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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혼의 블랙홀



제21화 똥 묻은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내 사위가 되게.”

병조판서의 눈이 빛났다.

“불가(不可)합니다. 저는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습니다.”

성남이가 말했다.

두 사람의 팽팽한 신경전은 별안간 중단되었다. 병조판서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그게 뭐 별 일이라고.”

그러더니 별안간 웃음을 그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문제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네. 일단 내 사위가 되게. 그렇게 하여 성공 가도를 걷게나. 충분히 높은 지위에 오르면, 자네가 연모하는 여인이 하나든 백이든 간에 모두 첩(妾)으로 들일 수 있네. 단, 내 딸은 반드시 하나 뿐인 정처(正妻; 본부인)이어야 하네.”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성남이가 반문했다.

“방금, ‘내 딸이 늙은 고관대작의 첩이 되어 뒷방에서 시들어 가는 꼴만은 정녕 보기 싫다. 딸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부모라면 다 똑같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정실(正室)이 되어 안채(부인의 거주지)에서 시들어 가는 꼴은 보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병조판서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부부유별(夫婦有別; 삼강오륜의 덕목)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지아비와 지어미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이네. 대저 요조숙녀는 정조를 지켜 다음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 기르며, 집안을 번창시킬 수 있도록 안살림을 하는 데 온 힘을 다 하는 것이 마땅히 행해야 할 본분이네. 반면 우리 사내들이란, 현재 혼인을 했든 안했든 간에, 옆에 아름다운 소녀의 향기만 풍겨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족속들이지. 당장, 거시기만 해도 바깥으로 나와 있지 않은가. 여인네가 열 달 동안 씨를 품을 동안, 사내는 계속해서 아이를 만들어낼 수 있네. 여와(女媧; 중국 신화에 나오는 창조의 여신)가 사람을 빚을 적에,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일세. 더구나 남자가 바깥에서 일을 하다 보면, 혼맥(婚脈; 혼인을 통한 인맥)이 하나로는 부족할 수도 있는 법이지. 과거에 급제해, 입신양명하여 부모의 이름을 빛내고, 가문의 영광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다 뭐라고 생각하나. 궁극적으로는 구운몽(九雲夢; 조선 시대 서포 김만중이 쓴 라이트 노벨 하렘물, 남주 성진이 8명의 처첩을 거느린다.)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을 사모하는 여인들을 취하여, 그 사이에서 최대한 많은 자식들을 낳아 가문을 번창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않을까. 나 역시 그런 사실을 일찍부터 궤뚫고 있어. 하여, 자네에게 내 딸만을 아껴달라는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겠네. 그저 내 딸이 정실(正室) 부인이 되어, 족보에 내가 물려준 성(姓)이나마 오르고, 아들을 낳아 가문을 잇는다면, 그게 설사 자네 가문일지라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네.”

그러고는, 더 이상 관대한 제안이 어디 있겠냐는 듯,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남이를 돌아보았다.

성남이가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판서 대감의 고견(高見; 남의 의견을 높이는 말)은 잘 들었습니다. 다만, 그 부부유별(夫婦有別)이란 개념에 대해,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부부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고조선 시대 노래)에 나오는 백수광부(白首狂夫)와 그의 처(妻)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마땅히 삶과 죽음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렇기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는 말이, 지아비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서 대감께서 저를 높이 평가하여 주심은 더없이 감사한 일이나, 저는 이 혼담(婚談; 결혼이야기)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병조판서가 정확히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허허허. 마음에 두었다는 처자가, 바로 저 벽 너머에 있는 저 여인인가? 당사자가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멋있는 말을 하는구먼.”

병조판서의 시선이 예리하게 빛났다. 벌써 오랜 시간 동안 벽에 난 구멍으로 손님맞이 방을 훔쳐보고 있던 나는, 기겁해서 주저앉았다.

“예?”

금시초문(今時初聞; 처음 듣는 말)인 것이 분명한, 성남이가 물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방문을 열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병조판서는 처음부터 내가 엿듣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들킨 나머지 나는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판서 대감, 소녀(小女) 사도시(司䆃寺) 첨정(僉正)의 딸 민자영이라 하옵니다.”

비록 엿보다 들켰을지라도, 나는 다소 뻔뻔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며 웃어른에게 인사하는 절을 올렸다.

나를 처음 본 병조판서가 눈을 빛냈다.

“서하(棲霞; 이름 외에 부르는 호)의 딸이라면, 익히 들어본 적이 있네. 내 처(妻) 또한 여흥 민 씨이거든. 서하에게 무남독녀 외동딸이 있는데, 어찌나 똑똑하고 재기발랄한지 모르겠다고 칭찬이 자자하더군.”

“과찬이십니다.”

내가 대답했다.

“게다가 어여쁘기까지 하군. 내 딸이 울고 갈 정도야. 저 고운 이목구비가 벌써 미색(美色; 아름다움)을 흘리는 게, 좀더 자라면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망하게 한 미인) 소리를 듣겠는걸. 그나저나 이 사람, 신언서판(身言書判; 인물을 고르는 4대 조건) 훌륭하고 무예 솜씨가 빼어나 내 사윗감으로 점찍어 놓았었는데, 알고 보니 영 도둑놈이었네 그려.”

병조판서가 혀를 차며 짓궂게 웃었다.

“이렇게 어린 처자와 혼인을 하겠다고? 어린애를 안는 것이 취향이었는가?”

성남이의 얼굴이 한순간에 시뻘개 졌다. 한겨울 방안에 놓는 화로 같았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아씨 비록 연차(年次; 나이) 어리나, 그 총명함은 능히 제갈공명에 견줄 만하고, 아랫사람을 부리는 그 인덕(人德; 자비로운 인성)은 능히 신사임당(申師任堂; 율곡 이이의 어머니)에 비길 만합니다. 걸음마를 뗄 때부터 첨정 나으리로부터 천문과 지리, 예법을 배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으십니다. 시, 서, 화에도 능통하여 사대부의 기량 중에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전무(全無; 없음)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문과 제술과(製述科; 유교경전을 외우는 과거시험)에 응시한다면 장원급제를 하실 것입니다. 여인의 몸인지라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이 몸 비록 이대로는 심히 부족하나, 장차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간 뒤에, 아씨가 장성하거든, 그 때 가서 아씨의 부모님께 청할 예정입니다.”

병조판서가 미소를 지었다. 나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붕어 같이 툭 튀어나온 두 눈이 탐욕스레 빛났다.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흐음, 그래? 그렇다면 더욱 더 입신양명(立身揚名)해야 되겠군 그래. 첩의 자식으로서, 감히 인현왕후마마의 5대 직계 손녀를 넘보다니!

그러니 내 제안을 받아들이게. 자네가 저 백두산만큼이나 높은 눈높이를 충족시키려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한 길일세.”

성남이가 강력하게 거부했다.

“제 마음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다른 여인과 혼인을 할 수는 없습니다.”

병조판서가 비꼬았다.

“흠. 역시, 민유중 어른(숙종의 장인)의 6대손 정도라면, 첩으로 들이기엔 아깝지. 그렇다고 해서 두 명의 정실을 들여 내 딸의 경쟁상대로 썩게 하는 것도 싫은 일이야.”

성남이가 기겁을 했다.

“다시 말씀드리겠거니와, 판서 대감께서 제안하시는 혼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일단 그 제안 자체가, 군자(君子; 유교이념으로 존재하는 인성 갑)의 도리에 너무나 어긋납니다. 전국에서 무과에 합격하기 위해, 오늘도 수 만 명의 한량(무과응시생)들이 피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병조판서가 신랄하게 말했다.

“내 판서 직을 걸고 장담하건대, 자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평생 저 처자 발끝만 바라보며 살아야 할 것이네.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서하가 인망이 깊어 자네를 거두어 길러준 것은 내 처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네. 그러나 현재의 자네는, 설사 무과 장원급제를 한다 하더라도, 대대로 왕실 종친과 혼약을 맺어 온 여흥 민씨 집안 처자를 정실로 맞이할 수 없어. 적어도 자네가 생각하는 정당한 방법으로는 말이야.”

병조판서가 일어섰다.

“자, 그럼 할 말은 다 한 것 같으니, 난 이만 가보겠네. 자영이라 했던가? 민 씨 처자도 이 자리에 있고 하니, 내 더는 강요하지 않겠네. 내 제안에 대해서는 천천히 생각해 보고,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찾아오게나. 원래 나를 만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그렇지만 자네는 특별하니까, ‘따님 문제로 영초 어른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말하면 곧바로 내게 안내하라고, 청지기에게 그리 말해 두겠네.”

병조판서는 일어난 그 상태로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대접 잘 받았네. 술과 차와 밥 모두 맛있었어."

내게 말했다.

방문을 열었다.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판서 대감!”

돌아서는 병조판서를 붙잡았다.


-22화에서 계속-

출처 자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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