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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판타지연재소설]민족혼의 블랙홀 제22화 남장여자
게시물ID : readers_340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K.sy.HE
추천 : 1
조회수 : 3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8/06 02: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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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혼의 블랙홀

 

 

 

22화 남장여자

 

 

판서 대감!”

 

병조판서가 뒤를 돌아보았다.

 

대관절 제가 엿보고 있음을 어찌 아셨습니까?”

 

병조판서가 픽 웃었다.

 

옆방에다 구멍을 뚫고 훔쳐보는 방식은, 200년 전 환국(換局; 숙종이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일을 빌미로 서인과 남인을 3번에 걸쳐 대대적 숙청)이 극에 달하였을 때, 세도가에 알음알음 퍼졌다네. 당연히 우리 집에도, 숙부 댁에도 개량한 장치가 있지. 그리고 아까 상을 내어 올 때, 문 밖에서 들리는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로, 엿보는 자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네.”

 

순전히 혈연만으로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 직에 오른 것은 아닌 듯, 정치질로 노회(老獪; 교활하고 다져진 경험)한 눈에서 빛이 순간 번뜩였다.

 

참말로 재희(在熙; 성남이의 본명)를 데려가실 작정으로 납신 것입니까?”

 

나는 적대적인 태도로 병조판서를 째려보았다.

 

그래. 몰락한 종4품 첨정 댁의 더부살이보다는, 잘나가는 정2품 병조판서 댁 사위가 훨씬 낫지 않겠는가.”

 

병조판서가 얄밉게 웃었다. 그러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지 손을 뻗었다. 나는 잽싸게 피했다.

 

그래. 민첩하기도 하지. 과연 민씨 집안 처자야. 허허허.”

 

재빠를 민()과 여흥 민()씨 성을 소재로 농을 던졌으나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그러나 적개심을 대놓고 표현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나는 속마음을 감추었다.

 

", , , 늦은 시간에 납시어, 이토록 과분한 칭찬을 해 주시다니요! 이미 날이 어두웠고, 곧 새벽이 됩니다. 재희가 거절하였으니, 다음에 정식으로 매파를 보내 청혼을 넣으심이 어떠합니까."

 

'다음은 없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매파의 매자만 보여도, 집사를 시켜 문간에 발도 못 들이게 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밤중에 아픈 아버지 있는 남의 집에 마음대로 쳐들어온 것에 대한 불쾌함을 에둘러 말했다.

 

"엄친께서 병환 위중하신지라, 배웅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깊은 밤중이라, 달이 구름에 가려 사위가 캄캄한 나머지 돌부리에 걸릴까 저어됩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돌부리에 걸려 코나 깨져라.'

 

라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 가마를 타고 왔거든. 가마꾼 네 놈 중 한 놈이 넘어지더라도 세 놈은 버티겠지."

 

내 미소를 본 병조판서의 웃음이 한층 짙어졌다. 웃음이 불길했다.

 

가마를 타고 왔다면, 대체 변복은 왜 하고 왔는가.

 

내가 그 웃음에 불길함을 느낄 새도 없이, 저 멀리에서 집사를 제치고 건장하게 생긴 장정 네 명이 가마를 메고 왔다. 본래 가마는 대문 앞에서 타고 내리는 것이 법도일진대, 대단히 무례한 짓이었다.

 

"또 보세나!"

 

병조판서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와 성남이를 번갈아 보고는 가마에 올랐다.

 

가마가 문지방을 넘었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 멀리 호롱을 들고 가는 하인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성남아......"

 

내가 말을 시작하려고 했다.

 

"절대 안 갑니다! 아씨를 두고 제가 어딜 갑니까!"

 

성남이가 소리쳤다.

 

아까 받은 제안을 생각하는 것인지, 우뚝한 콧날 양쪽으로 뻗은 짙은 눈썹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를 일컬어 도둑이라 했느냐.”

 

궁금해서 물어봤다.

 

다음 순간, 성남이는 내 눈치를 보더니, 분노에 찬 표정이 허물어지며, 내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씨! 어디까지 들으셨습니까? 전부 오해입니다. 제가 다~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남이가 열심히 변명했다. 귀 끝이 붉어졌다.

 

"뭐가?"

 

내가 물었다.

☆ ★ ☆ ★ ☆ ★

 

밥상을 치우던 소년이, 병조판서가 밥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운 것을 보고 매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번, 성남이와 시장을 지나던 중 산 찹쌀떡은 집안의 모든 식솔들에게 1개씩 나누어 주었었다. 그 때 덤으로 받았던 메밀묵을 가을이라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에 놓아 보관해 두었었다. 그 메밀묵 중 한 모를 내밀었다.

 

먹으렴.”

 

고맙습니다!”

 

소년은 반색을 하며, 메밀묵을 한 입에 해치웠다. 먹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선이 가늘고 고왔다.

 

아직 우리 통성명도 안 했구나. 이름이 뭐니?”

 

꺽다리 아저씨의 아들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한 번도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 , 추동이라 합니다.”

 

나는 의아해졌다.

 

? 생김새가 이리 고운데 어째서 추동(외모가 자로 알아들음)이라 부를까?”

 

소년이 해명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가을 추()자입니다.”

 

아하, 춘하추동(春夏秋冬;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뒤 두 글자를 땄구나.’

 

나는 내 멋대로 생각하고 더 이상 파고드는 걸 그만 두었다.

 

밤늦게까지 술상, 차상, 밥상을 내어 가느라 수고했다.”

 

노고를 치하했다.

 

아니, 아닙니다. 아씨, 한양에 있으니 매일 아침 소를 몰고 풀 먹이러 나갈 일이 없는걸요.”

 

추동이가 말했다.

 

찬겸 부정자(중국, 일본과 교류하는 홍문관에서 실무를 맡아 보는 말단 관리)는 같은 마을 사람들이 도적 떼로 변신한 것에서 느낀 바가 있었는지, 한양까지 올라가는 데 사용한 서원 재산인 소, 나귀, 노새를 팔아 그 돈을 우리 집에 맡겼다. 언젠가 형식적으로 썼던 노비문서를 태우고, 우리 집에 머물렀던 마을 사람들이 독립할 때가 오면 살림밑천으로 지급해 달라면서.

 

세 마리의 동물들을 한 번에 먹이고 입힐 여물, 장소와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했을 뿐더러, 동물 세 마리를 한 번에 몰아 서원으로 돌아갈 사람도 없었다.

 

☆ ★ ☆ ★ ☆ ★

 

며칠이 지났다. 아버지는 여전히 차도가 없으셨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내가 쓰러졌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넘어가셨다. 내가 실질적인 안살림을 담당하게 되었다. 성남이는 내년 봄에 있을 복시(覆試; 과거 2차 시험)를 준비하느라, 병법서 탐독(耽讀; 집중해서 책 읽음)에 매진하고 있었다. 간간히 찬겸 부정자도 들러 병법서 읽는 것을 지도해 주었다.

 

그러나 성남이의 안색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였는데도, 눈 아래에 그림자가 짙게 그늘졌다. 보다 못한 내가 물었다.

 

성남아, 병조판서가 그리 너를 핍박했느냐. 지금이라도 현부인께 가서 내 말씀을 드려보마. 상소를 올리는 것이 어떻겠느냐.”

 

성남이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아닙니다. 부디 현부인께만은 가지 마십시오! 제가 아씨 면전에서 더욱 비참해집니다.”

 

그 때였다.

 

집사가 손님이 당도함을 고했다.

 

아씨, 첨정 나으리의 조카 뻘 되는 민희호(閔羲鎬) 선달(先達)이 오셨습니다.”



-2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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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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