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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만났다...
게시물ID : readers_341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인(志忈)
추천 : 1
조회수 : 26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9/08/31 00: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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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이를 만났다.-

MADE IN JIIN


그날도 오늘처럼 잿빛 하늘에서 비가 내렸었습니다.
저는 왜 그날만 떠올리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닭살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그날...
제가 그날을 맞이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의 여름이었습니다.
저는 비가 소심하게 내리고 있는 하늘 아래를 걸으면서 투덜거리고 있었죠

“에잇, 장화를 좀 사달라니까...”

그 당시 저는 장화를 갖고 싶었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살던 곳은 시골보다 더 시골이여서 비만 오면 땅이 질퍽질퍽했죠
그래서 친구 녀석이 비만 오면 빨간 장화를 신은 채 비 때문에 질퍽해진 거리를 쏜살같이 뛰어다니면서 양말이 젖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게 그렇게 부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가 오는 날만 되면 엄마에게 장화를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끝끝내 저에게 장화를 사주시지 않았습니다.

엄마에게 저항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저는 일부러 땅이 질퍽한 곳만 골라서 걸으면서 신고 있는 하얀 운동화를 더럽혔습니다.

하얀 운동화가 본래의 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럽혀졌을 때 저는 왠지 눈물이 났습니다.
더럽혀진 제 운동화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솔질을 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끊임없이 떨어져서 제 하얀 운동화에 가득한 진흙을 씻어내 주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울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본래의 색을 되찾은 하얀 운동화를 신은 채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굉장히 거대한 나무 아래로 뛰듯이 걸어갔습니다.

나무 아래를 제외한 모든 곳은 잿빛 하늘이 만들어 내고 있는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가 조금 약해지면 집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비가 좀 잠잠해지면 가려고?"

갑자기 제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저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제 또래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우비를 입은 채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잘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응 비가 좀 그치면 가려고”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저에게 "여기서 너희집이 머니?" "엄마는 있니?" 라고 연달아서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아이의 질문들에 대해 "응" "응" 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차게 쏟아지면서 진흙 바닥에 부딪치는 빗소리마저 없었다면 나와 아이는 귀가 아플 만큼 고요한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집에 갈래?"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빗줄기의 개수가 많이 줄어들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오늘 처음 본 아이의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지만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마스크 위에 있는 아이의 눈이 저를 보며 간절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저와 아이는 굉장히 거대한 나무 아래를 빠져나와 걸었습니다.
하얀 운동화를 진흙에 묻히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걷고 있는 저와 달리 아이의 걸음은 거침없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등을 따라서 걸었습니다.
저와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발걸음을 움직였습니다.
나무 아래에서와 달리 빗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아서 저는 고요한 소음 때문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뭐라도 말을 걸어야지 더이상 귀가 아플 것 같지 않아서 저는 “너희 집 거의 다 와 가?" 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응" 이라고 대답해주었을 때 아이의 등이 서서히 흐려졌습니다.

눈을 수차례 깜박거리고 나서야 저는 안개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아서 걸음걸이가 이전보다 더 조심해진 저와 달리 아이는 뚜벅뚜벅 잘도 걷고 있었습니다.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내 손을 잡아"

아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는 아이의 왼손을 꽉 잡았습니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서 아이의 말처럼 진짜로 길을 잃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의 손에는 뭐라도 묻었는지 굉장히 미끌미끌거렸습니다.
그 감촉이 왠지 모르게 기분 나빠서 저는 아이의 손을 이만 놓고 싶었지만 차마 놓을 수 없었습니다.

안개가 더욱 더 짙어졌기 때문에 아이의 손을 놓아버리면 이대로 길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였습니다.

불안하게 떨리고 있는 제 손의 진동을 느낀 아이가 저에게 “걱정 마 곧 우리 집에 도착할 거야” 라고 말한 것은 제가 신고 있는 신발에 차가운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고개 숙여 제 신발을 바라보았지만 짙은 안개만 보일 뿐 신발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후 차가운 물이 제 무릎에 느껴졌을 때 저는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제 손을 더욱 꽉 잡으면서 앞을 향해 걸었습니다.
차가운 물이 제 허리까지 차올랐을 때 저는 아이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우리 집에 안 갈 거야?”

“안 갈래…”

안개 때문에 아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가 저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눈앞에 있던 안개는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안개가 옅어지자마자 고개를 숙여 제 신발과 무릎, 허리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습니다.
제 몸의 절반이 물에 잠겨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안개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였습니다.

놀란 저는 물속에서 힘겹게 발걸음을 움직였습니다.
물속에서 걷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저는 다시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육지에 발을 딛자마자 저는 물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다 같기도 하고 강 같기도 한 곳에 하얀 운동화가 떠 있는 것을 보자마자 저는 제 발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오른발에 있어야 할 하얀 운동화가 없었습니다.

“우리 집에 안 오면 네 오른쪽 신발, 내가 가져갈 거야”

저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물 위에 떠 있습니다.
아이는 잠시 저를 노려보다가 물 위에 떠 있는 제 하얀 운동화를 가지고 잠수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아이를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가 그날 제가 겪은 일입니다.
저는 왜 그날만 떠올리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닭살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저는 팔뚝에 생긴 닭살을 지우기 위해 양손으로 살을 비볐습니다.
그때, 문득 제가 오랫동안 까먹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고 제 팔뚝에 생긴 닭살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에 안 오면 나중에 네 왼쪽 신발도 가져갈 거야”

그날, 아이가 잠수하기 직전에 언젠가 제 왼쪽 신발도 가져간다고 말했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왜 이 사실은 잊고 있었을까요?
아이는 언젠가 저를 찾아올까요?
아니면 제가 먼저 아이의 집을 방문해야 할까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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