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장편]인간 유래의 괴물 - 2
게시물ID : readers_341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1
조회수 : 32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9/09/01 22:00:00
옵션
  • 창작글


 "박사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쪽으로."

 그녀의 크지 않은 목소리가 고요한 빌딩 복도에 울린다. 긴장하지 말라며 스크래치의 왼쪽 팔을 재빨리 두 대 때린 세미롱이 금속 케이스를 바로잡아들며 앞장섰다. 원경과 난데없이 왼팔이 따가워진 스크래치가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안내역이 회의장 안으로 선행했다. 인기척이 들린다. 전체가 통창으로 되어있는 한쪽 벽면 바깥으로 비슷한 높이의 다른 건물이 단 한 채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조금 낮은 곳에 아까 전 지나온 텅 빈 고속도로가 보였다. 만약의 탈출시에 방향을 착각할 걱정은 없을 듯 했다.

 회의장의 내부. 그 가운데에 거대한 타원형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고 세 사람이 들어온 입구의 반대편에는 나이 많은 남자가 앉아있다.

 방금 전 박사라 불린 남자는 예상과 달리 정장에 넥타이까지 갖춰 멘 차림이었다.

 '흰 가운이 아니야..'

 세미롱의 머릿속에서 박사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쳤다.

 저 말끔한 옷차림은 어색하다. 반년 정도의 시대착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년. 좀비가 세상을 뒤덮은 후, 저런 차림의 인간을 마지막으로 본 지 벌써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인상이 희박했다.

 그리고 박사도, 반대의 이유로 비슷한 감각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리 더러운 차림인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비교가 되는 자신의 모습에 불편한 기분을 느끼며 세미롱은 금속 케이스를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 왼쪽에 원경이 둘, 오른쪽에 스크레치가 둘. 총 다섯. 박사는 내용물을 확인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푸른색 메모리 칩을 꺼냈다.

 그 메모리 칩을 본 세미롱은 순간 경직된 시선으로 물었다.

 "여기서 내용물을 확인하실 건가요."

 "아니. 굳이 여기서 꺼내볼 생각은 없네. 더러운 걸 굳이 여러 번 볼 필요는 없지."

 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박사가 그리 무겁지 않은 태도로 그것을 슥 내밀어보였다.

 "나중에 물품이 이상하면 자네들에게 다음 의뢰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절실한 건 내가 아니고, 자네들은 썩 아쉬운 게 있을 테니."

 세미롱은 틀린 말이 아니며 재수없다고 생각했다. 박사가 되물었다.

 "자네들은 물건을 확인할 텐가?"

 "할 거에요!"

 세미롱이 박사도 잘 들리게끔 대답하자 박사의 뒷편에서 사무용 드론 한 체가 나왔다. 박사가 테이블 위에 놓아둔 메모리 칩을 세미롱에게 전달한 드론은 금속 케이스를 하나씩 박사의 곁으로 옮겨 나르기 시작했다.

 메모리 칩을 건네받은 세미롱은 자신의 네비게이션 단말기에 칩을 끼우고 맵을 띄웠다. 마지막으로 체류했던 시 외곽의 톨게이트가 나타났다. 필터 탓에 온 맵이 붉다. 세미롱은 조심스럽게 그 붉은 맵의 한가운데를 건드렸다.

 순간 손가락이 닿은 주변이 파랗게 변했다.

 깜짝 놀란 세미롱은 곧장 맵을 끄고 메모리 칩을 단말기에서 뽑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원경과 스크래치. 두 사람 다 분명히 확인한 눈빛이었다. 세 사람은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미롱이 다시 박사를 보며 말했다.

 "물건은 확인했어요. 그.. 저희 쪽 물건도 틀림없을 테니 다음에도 의뢰를 맡겨주면 좋겠어요."

 박사는 말없이 눈썹을 으쓱였다. 미간을 한껏 찡그린 세미롱이 마지못해 덧붙였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처해보지."

 그렇게 말한 박사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세 사람에게 '무사히 돌아가시길 바라네'하고 무덤덤한 인사를 덧붙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누군가에게서 '무사히 돌아가길 바란다'느니 하는 허튼소리가 들려왔다면 세미롱의 입에서는 아주 심한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겠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오히려 간만에 그녀 기분에 나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돌아서려는 세미롱 일행을 배웅하는 것인지 말없이 앉아있던 박사가, 문득 책상에 두 번 노크하며 질문을 하나 던졌다.

 "자네들, 혹시 좀비가 우는 걸 본 적 있나?"

 회의장을 나서다 만 세미롱이 박사 쪽으로 반쯤 돌아서며 대답했다.

 "뭐 본적은 있죠? 꾸어엉 꾸어엉하고?"

 질문도 답도 의미불명이다. 박사는 이렇다 할 반응 없이 세미롱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다른 질문이 이어질 낌새가 없었다. 어색한 눈빛으로 다른 두 사람과 시선을 교환한 세미롱은 다시 몸을 돌려 회의장을 떠났다.

 말없이 걷는 소리만 이어지는 복도. 세 사람이 다가오자 미리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그들이 처음에 타고 왔던 엘리베이터에 다시 올라타고 문이 닫히고 나서야, 세 사람은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세미롱이 허탈해하며 말했다.

 "으으윽, 저 진짜 너무 긴장했어요.. 처음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 군사기업 제복 입은 사람 있었잖아요. 총격전이 되면 어쩌나하고 총 빨리 뽑기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몰라요!"

 웬만해선 약한 체를 하지 않는 스크래치도 이번만큼은 동감하는 태도로 말을 받았다.

 "제복 생김새가 비슷해서 처음에 청소부인줄 알고 나도 총 뽑을 뻔 했다."

 청소부. 그것은 독자적인 행동방침으로 악명이 높은 민간 군사기업 스위퍼스의 별칭으로, 그들은 좀비에게 포위될 것 같으면 보호하고 있던 민간인들을 모두 죽여버리기로 유명했다. 세미롱은 그 이름에 소름끼쳐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진짜요; 진짜 그 사람들 있었으면 바로 유리창 깨고 뛰어내렸어요."

 원경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름에 휩쓸려 무심코 동의하려던 스크래치는 문득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를 쳐다봤다. 이곳은 5층이었다. 스크래치는 청소부에게 총을 겨누는 것과 5층에서 뛰어내리는 것, 어느 쪽이 용기를 덜 필요로 하는 일인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세미롱처럼 자신의 전생이 고양이라서 5층 높이 정도면 맨몸으로 떨어져도 문제없이 착지할 수 있으리라 꿈을 꾸는 것은 아니었지만, 청소부와의 조우는 언제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종류의 사태였다.



###



 반년 전. 인류의 상태는 세 종류가 되었다. 살아있는 사람. 죽은 시체. 그리고 살아있는 시체. 당시의 질병대책본부는 '살아있는 시체'가 나타난 첫 번째 도시를 접근금지 구역으로 규정하고, 거주민들에게 즉시 이주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그 도시는 라플라스 필터에 처음으로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되었다.

 라플라스 필터는 사회 전반에 걸친 자동화 시스템 오가스의 '분별'을 담당하는 부분으로써, 단순히 개와 고양이의 구분부터 시작해 3차원 우주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물체에 대한 구별도 문제없이 수행했다. 모든 전문가가 라플라스 필터는 완벽하다 말했고 그것은 당시까지 사실이었다.

 때문에 그 누구도 라플라스 필터가 인간과 좀비를 구분하지 못하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



 조금 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세 사람을 배웅한 후, 별다른 행동 없이 멍하니 앉아있는 붉은 후드를 뒤에서 지켜보던 도련님이 문득 말을 걸어왔다.

 "저기, 여기엔 뭘 구하러 오신건가요?"

 고개를 든 붉은 후드는 느슨한 눈빛으로 도련님을 돌아보며 되물었다.

 "뭘 거 같은데요?"

 "어.. 총이라던가.. 무기?"

 "뭐 그런 건 아니고요."

 잠시 이야기해줘도 될까를 고민하던 붉은 후드는 뭘 이제 와서 비밀로 하냐 싶은 기분으로 말을 계속했다.

 "블루 메모리란 거에요. 들어본 적 있어요?"

 "그게 자세힌 모르지만... 도시전설 같은 것 아닌가요?"

 "뭐 그런 거에요. 그거 구하러 왔어요."

 "어? 진짜로 있나요?"

 "나야 모르죠. 받으러 간 사람들이 돌아 와봐야 아는 거니까."

 붉은 후드는 소년의 흥미로워하는 눈빛을 빤히 바라봤다.

 이 도련님은 참 세상물정을 모른다. 뭐랄까, 머릿속이 깨끗했다. 세간에 대한 세세한 지식에도 그랬지만 반년 전 좀비 사태 이후 누구나 다 겪어야 했던 더러운 경험들이 이 도련님에게 만큼은 모두 빗겨간 모양이었다. 그에 비하면 세상에는 이제 정말 깨끗한 곳이 없다.

 '더러워졌어.‘

 붉은 후드는 그 만회할 수 없는 감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블루 메모리라는 것에 이상한 기대를 했다. 마치 그게 있으면 시간이 반대방향으로 슝 되돌아가기라도 하는 마냥. 하지만 어림도 없다. 블루 메모리는 뜬소문으로라도 전혀 그런 물건이 아니었다. 붉은 후드는 그 미심쩍은 소문이 설령 사실이더라도 그리 요란떨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이미 좀비판이야. 시체가 썩어 나뒹굴어. 더럽다고.'

 이런 곳에 블루존을 다시 만들어서 뭘 어쩌겠다는 걸까?

 블루 메모리는 단순한 물건이었다. 라플라스 필터에 의해 레드존으로 규정된 곳을 임의에 따라 청색으로 되돌릴 수 있는, 일종의 명령 회로칩일 뿐이었다.

 명령. 붉은 후드가 꼽는 도통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 거 1위.

 과거 좀비 발생지에 투입되던 진압 드론이 받은 최초의 명령은 ’감염구역 내의 모든 감염체를 말살할 것’이었다고 한다.

 감염 구역. 레드존. 라플라스 필터가 붉게 표시하고 있었으므로 당시에도 그 명령이 뜻하는 바는 명료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진압 드론은 좀비를 공격하지 못했고, 그 명령불복종 문제가 해결된 쯔음에는 온 지상이 이미 모두 붉게 물들어있었다.

 붉은 후드는 잘난 사람들이 뭔가 명령을 내려서 좀비가 유의미하게 처리되는 걸 본 역사가 없었다.

 마비된 진압 드론을 대체해 인간 군대가 투입되었다는 보도와, 그 인간 군대 내에서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6시간도 채 안 되는 우스꽝스런 간격으로 뉴스에서 흘러나오던 적도 있었다.

 '예능 프로를 대체해서 긴급 뉴스가 투입된 줄 알았지..'

 붉은 후드는 당시 정신없는 피난 와중에도 그 뉴스를 보곤 깔깔 웃어버리기도 했다. 우스웠으니까. 그러나 마찬가지로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쪼개진 눈동자가 따로 움직이고 온몸에 검붉은 기포가 올라온 군복 차림의 좀비가 그녀가 있던 피난소에까지 쳐들어왔을 땐 그 웃음기도 금방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그 후로 뒤늦게 불복종 문제가 해결된 진압드론은 모든 형태의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드존 내의 살아있는 시체를 말살하라 명령받았을 뿐인 그것이 아직 감염되지 않은 인간까지도 모조리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좀비를 쏴죽여 주는 건 고맙지만 인간을 살해하는 로봇이라니 고전 영화에서도 본적 없다.

 정식으로 정부 대행 시스템이 된 자동화 Ai 아고스의 인도에 따라 수도를 향해 피난하다가, 한번이라도 그 행렬에서 벗어나 본 인간들은 누구나 금방 깨달았다. 이제 지상엔 인간의 땅이 없다는 걸. 대부분은 좀비에게 빼앗겼고, 그 외에는 아고스의 점령 아래 있었다.

 레드존을 블루존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진압 드론에게 내려진 말살 명령을 국지적으로 해제하고 그 영토의 자주권을 인간이 되돌려 받는 것을 의미했다. 아고스에게서만.

 도무지 의미를 들어도 이해를 할 수 없는 얘기였다. 돌려받아서 뭘 어쩌면 되는 걸까? 아고스에게서 다시 돌려받더라도 좀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차라리 좀비 감염에 대한 치료제라도 나온다면 그것을 찾는데 혈안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블루 메모리는 그만한 가치가 없었다. 붉은 후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음식물이 상해버린 냉장고로 들어가려고 고군분투하는 정도의 인상밖에 느낄 수 없었다.

 '뭐, 버스가 안에서만 살다가 밖으로 나가보려 하는 거니 비유가 반대로긴 하지만.'






----------------------
쓰는중 : 이렇게 쓰면 되나?
수정중 : 이렇게 바꾸면 나은가?
맞춤법 검사중 : 아닌가 다시 되돌릴까?
올리는중 : 아닌데 아까 바꿧던게 나은거 같은데
올린 후 (예상) : 아냐 이건 애초에 내용이 잘못됐어.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