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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외로울 때가 있다. (비평환영)
게시물ID : readers_342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reamOrange
추천 : 5
조회수 : 48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9/10/10 16: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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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연, 월, 주, 일을 나눠 계획을 세워봤자 직접 하지 않으면 도루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항상 실행에 옮기려고 하면 막연히 실패할 것 같아 두렵고, 지속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문턱 하나를 앞에 둔 채 머뭇 거리다 끝나버리곤 한다. 일상과 해야할 것들에 대한 압박감에 힘겨워 하면서도 내가 생산적이지 못 한 무언가들을 꾸준히 해보려고 끄적이는 이유는, 힘들게 찾은 나를 기록하고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서겠다. "자네는 항상 생각만 가득해. 지금 밖은 해가 쨍쨍 비치고 있는데 자네는 비가 올게 두려워 문 밖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지 않은가?" 교수님은 이미 잊었을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여전히 당신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실체 없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했더라.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언제까지고 나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참 많이도 변했다. 사실 나는 굉장히 외향적이고 사회적인 사람이라는 것, 단지 방법을 몰라서 두려워했을 뿐,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았다. 그동안 혼자 주어진 작은 공간에서 성취에 대한 강박에 휩싸인채, 심리적으로 압박을 느낄 때 사람부터 끊어내던 습관을 생각하면, 내가 고독함에 몸부림 치던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구나 싶다. 경험들이 쌓이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늘어날 수록, 나는 더 많이 개인의 바탕이 된 생경한 문화와 역사의 맥락들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알던 세계는 얼마나 조그마한 파편에 불과했나, 내 한계를 확장시키는데 끊임없이 노력하자 다짐한다. 꽤 오래 전 부터 선악이니, 도덕이니, 윤리, 법, 정의 따위의 모호함과 상대성에 대해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나에게 당연한 것이 상대에겐 그렇지 않은 상황들을 마주할 때면 여전히 나는 당혹감에 화가 나고 슬퍼지는 것이다.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가치에 대해 설득하려다가도 내 믿음에 나부터가 자신이 없어, 그냥, 그렇구나 한다. 한참 전에도 아는게 없어 말할 수 없다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아직 그대로구나.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받는 것은 아직도 싫다. 공적이거나 명백한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면 그냥 나 하나 피하면 그만이지, 그 치도 남들에게까지 상병신은 아닐 것이다, 하면서도 가끔 불쾌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당신은 왜 그렇게 나에게 관심이 많나요? 나에게서 무엇을 할퀴어 당신을 채우고 싶은 건가요? 내가 당신과 다름이 기분나쁠지라도 우리는 어른이잖아요. 나를 좋아하는 척 하면서 실은 모자란 당신을 메우려 나를 이용하고 싶은 것 다 알아요.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꽤 기민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는건 아주 쉽거든요. 좋은 사람들 보다 감당할 정도를 넘어선 사람들을 만나는게 더욱 빈번한 요즘, 졸업 전 내 모교와 그 근방의 작고 소중한 장소들이,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진 고마운 이들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사람 속에 둘러쌓여서도 여전히 나는 외로울 때가 있다. 이 넓은 세상에 나와 닮은 너 하나 찾기가 이다지도 힘듬이, 내가 얼마나 더 나를 확장하고 너를 수용해야 더 많은 너를 찾을 수 있는지, 나를 지치게 한다. 

또 나는 내가 부끄러웁겠지, 허나, 내가 좋아하는 이들아 나는 가끔씩 내가 너에게도 닮은 이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연연하지 않으리라, 내 할 수 있는 최대한 너에게 주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하면서도 나도 사람인지라, 여전히 어린지라, 가끔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른이 되면서 다들 소위 말하는 쿨한 존재들이 되어가는데, 태생이 쿨하지 못하고 질척이는 나는 외로울 때가 있다. 그래도 가끔씩 비치는 작은 너의 애정에 나는 며칠이고 행복하니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작은 말 하나에도 고마움을 비치는 당신들아, 내가 생각한 것 만큼 세상은 아름답지 못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나로써 자신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덕분이라는 것을. 사람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 드디어 가슴에 와 닿는 요즘, 수많은 스쳐지남 속에서도 기어코 맞닿은 사람들을 보며 기운을 내야지. 또 만날 너를 찾아 다시 나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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