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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readers_343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집고영이
추천 : 5
조회수 : 31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9/11/11 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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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평가를 바라고 글을 올렸었는데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것 같습니다 그냥 읽어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집에 있는 게 좋다.

33년 사는 동안 직장생활 5년 해놓고 3년째 집에만 있다. 부모님 집에서 사는 것도 불편해서 돈도 없는 주제에 제주도까지 내려와서 살고 있다.


제주도에 와서는 인테리어 현장직을 나가 일을 했는데 처음엔 생각보다 부담 없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곧 봉급이 올라가면서 주어지는 책임감에 시달리는 직장생활이 다시 시작될 것 같아 관두고 또 집에만 있다.


뭔가 끈기 있게 해 본 게 없다. 가진 게 없으면 꾸준함이라도 있어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다던데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미친 듯이 쫓다가도 적당히 알겠다 싶으면 바로 질려버려 한동안 쳐다도 보지 않는다. 아직까지 꾸준한 건 집에 있다는 것뿐이다.


인터넷 방송으로 비디오 게임을 방송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소규모 개발자들이 만드는 인디게임에 빠져있었고 이거면 가만히 집에 앉아 팬들에게 기부받고 평생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는 딱 세 달 하고 포기였다. 세 달 동안 30만 원 기부받고 게임 구매에 50만 원을 썼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게임만 하고 있으니 그 자세 그대로 심장이 굳어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짧은 기간 나를 좋아했던 분들에게 제대로 말도 안 하고 관두게 되어 아직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한때 고양이에 미쳤었는데 때마침 친구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계획도 없이 고양이 둘을 데려왔다. 집에 데리고 와서는 문득 끈기 없는 내가 반년도 안되어서 질려버려 고양이를 창밖으로 던지는 인간말종이 되는 상상을 했다. 고양이 둘과 함께한 지 2년 차, 고양이에 대한 미침은 끝났지만 고양이는 항상 집에 있어서 질리지가 않는다.


전자기기를 좋아한다. 디스플레이가 달리고 와이파이가 된다면 모든지 좋아한다. 

스마트폰,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노트북까지 사양은 기본이요 모양새도 얇고 깔끔한 것이 집에다가 예쁘게 모셔놓고 가만히 앉아 유명한 작가가 되어 떼돈을 버는 상상을 하는 놀이하기에 딱이다. 물론 버는 돈이 없으므로 나는 예쁜 기기를 사는 상상에서 멈춘다. 


애인과 같이 살게 된 게 1년이 되어간다. 당연하게도 주변에서 결혼에 대한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정작 나도 부모님도 결혼에 별로 관심이 없다. 부모님은 그저 혼자 살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 삶이 즐겁다면 그걸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하는 데에 나는 동의했고 다행히 내 애인도 그것을 존중해 주었다. 애인은 항상 기발한 유머로 나를 즐겁게 해 주고 고마워할 줄 알고 미안해할 줄 안다. 중요한 건 밖에서 고생하는 나보다 집에만 앉아있는 나를 좋아해 준다.


어릴 적부터 밖에 나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고 집에 앉아 책을 읽거나 종이를 접는 것만 좋아했는데 부모님은 내가 사교성이 떨어질까 봐 억지로 유치원에 집어넣었다. 부모님의 걱정과 다르게 나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같이 앉아 책을 읽거나  종이를 접고 놀았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만 사귀었던 것 같다.


대부분 집에서 요리해먹는다. 밖에서 먹는 것보다 저렴해서 배우게 된 요리인데 어느 순간 근본 없는 자신감이 생긴 건지 집에서 밀가루로 중화면을 뽑아낸다거나 생크림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든 적도 있다. 당연히 망했고 이후 내 수준을 깨달은 나는 가끔 집에서 직접 만든 치킨을 튀기며 오늘도 돈을 벌었다는 생각에 만족한다.


나는 집에 있는 게 좋다.

고양이랑 애인이랑 침대에 누워 집에서 만든 쿠키를 먹으며 드라마를 본다거나 컴퓨터 책상에 앉아 담요를 덮고 이젠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는 인디게임을 한다거나 책상에서 태블릿을 켜놓고 새로 나온 전자기기를 구경하는 것은 끈기 없는 나도 평생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집에 있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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